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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편지】: 제1001호
2020.6.18. (음 4.27. - 윤) / 발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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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오늘의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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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은 번 돈을 한 잎 두 잎 세듯, 차근차근 소중히 간직하시도록. ― 칼 샌드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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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말글 / 한글바로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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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쩡하다
<교수신문>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뽑은 말은 지록위마(指鹿爲馬)이다.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한다’는 뜻이다. ‘2014년엔 온갖 거짓이 진실인 양, 수많은 사슴들이 말로 바뀌어 말의 진짜 모습은 볼 수 없는’ 요즘 현실을 담아낸 표현이다. 선정 이유가 ‘말’(馬)과 ‘말’(言)의 뜻이 뒤섞인 중의적 느낌으로 다가왔다. 사슴을 두고 말이라 하는 것은 거짓‘말’이기 때문이다. 멀쩡한 사슴을 보면서 멀쩡한 세상에 멀쩡한 사람이라면 ‘그것은 말’이라고 멀쩡한 거짓말을 할 수 있을까 싶지만, 멀쩡한 인간들에겐 충분히 가능한 일일 것이다.
다섯 차례 거듭한 ‘멀쩡하다’는 중의적이고 다의적이다. ‘중의적’(重義-)은 ‘한 단어나 문장이 두 가지 이상의 뜻으로 해석될 수 있는, 또는 그런 것’이고 ‘다의적’(多義-)은 ‘한 낱말이나 표현에 여러 가지 뜻이 있는, 또는 그런 것’이다. 사전은 ‘멀쩡하다’의 뜻으로 다섯 가지를 제시한다. (흠이 없고 아주 온전한)멀쩡한 사슴을, (지저분한 것이 없고 아주 깨끗한)멀쩡한 세상에 (정신이 맑고 또렷한)멀쩡한 사람이, (그릇된 짓을 하는 태도가 예사롭거나 뻔뻔한)멀쩡한 거짓말을 할 수 있을까? (속셈이 있고 아주 약삭빠른)멀쩡한 사람은 밥 먹듯 하는 일일 것이다.
한 해를 보내며 빼놓을 수 없는 말이 ‘송구영신’(送舊迎新)이다.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다’는 말이다. 멀쩡한 거짓말로 뒷일 모른 채 눈앞의 권력에만 붙어사는 멀쩡한 사람들을 보며 ‘송구영신’의 원말을 떠올린다. <한서>(漢書) ‘왕가전’(王嘉傳)에 나오는 ‘송고영신’(送故迎新)이다. ‘구관(옛 관리)을 보내고 신관(새 관리)을 맞이한다’는 뜻이다. ‘십상시’에 ‘문고리 3인방’, ‘7인회’가 유령처럼 떠돌던 올해가 저문다. 묵은해가 가고 새해가 오면 새해에 걸맞은 새사람이 오기를 기대한다. 기왕이면 ‘흠이 없고 온전한, 정신이 맑고 또렷한’ 멀쩡한 사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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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외빈
다양한 송년회를 치르며 여기저기에서 사회자 노릇을 했다. 내 재주 부릴 곳 있다는 건 고마운 일이다. 스물 몇 해 방송 월급쟁이로 살아온 덕분이다. 웬만한 행사에 빠지지 않는 게 있다. 단상이나 앞자리에 앉은 이를 소개하는 일이다. 처음으로 공식 행사에서 사회를 맡았을 때가 새삼스럽다. 식순에 ‘내빈’과 ‘외빈’, 그리고 마무리 즈음엔 ‘내외빈’ 소개가 있었다. ‘-빈’(賓, 손님)은 알겠는데 ‘내/외-’의 구별이 아리송했다. 선배에게 물으니 기다렸다는 듯 답했다. “주최 측 고위층은 ‘내빈’이고 외부 인사는 ‘외빈’, ‘내외빈’은 둘을 한데 이르는 말이다.” 한마디로 ‘안팎의 차이’라는 중견 아나운서의 답은 의심할 여지를 남기지 않은 ‘확언’으로 남았다. 이후 줄곧 그렇게 알고 살았다. 지난해 마지막날, 불현듯 잘못 알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사전을 찾아보기 전까지는….
‘내빈’은 ‘내빈’(來-, 오다)으로 ‘모임에 공식적으로 초대를 받고 온 사람. 초대 손님’이다. ‘내빈’(內-)은 여자 손님을 일컫는 ‘안손님’이다. 남자 손님을 이르는 ‘바깥손님’의 반대말인 것이다. ‘외빈’(外-)은 ‘외부나 외국에서 찾아온 손님’이지만 대개 ‘외국 손님’을 가리킬 때 쓴다. ‘우방 제국으로부터의 외빈과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요인…’(ㄷ일보, 1948년 8월15일)처럼 오래전부터 써온 표현이다.
널리 쓰이는 사전 밖의 말 가운데 하나가 ‘내외빈’이다. ‘한국 독립을 위하여 노력한 내외빈을 위문하게 되었다’(ㄱ신문, 1948년 8월), ‘졸업식에 참석한 내외빈과 환담하고…’(ㅇ뉴스, 1998년 3월), ‘야구공원 기공식에 참석한 내·외빈’(ㅇ경제, 2014년 7월)처럼 ‘내외(內外)귀빈’과 한뜻으로 쓰는 표현이다. 국어원의 ‘온라인 가나다’는 ‘내외 귀빈’을 다루면서 ‘행사를 주최한 기관에 속해 있는 사람도 행사에 참석한 손님이라는 점을 고려해’ 설명했다. ‘내외빈’과 ‘내빈’(내부 손님)은 이제 표제어 대접을 해줄 때가 되었다.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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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눔 → 우리나라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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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린 사람 - 기형도
사회자가 외쳤다.
여기 일생동안 이웃을 위해 산 분이 계시다.
이웃의 슬픔은 이 분의 슬픔이었고
이 분의 슬픔은 이글거리는 빛이었다.
사회자는 하늘을 걸고 맹세했다.
이 분은 자신을 위해 푸성귀 하나 심지 않았다.
눈물 한 방울도 자신을 위해 흘리지 않았다.
사회자는 흐느꼈다.
보라, 이 분은 당신들을 위해 청춘을 버렸다.
당신들을 위해 죽을 수도 있다.
그 분은 일어서서 흐느끼는 사회자를 제지했다.
군중들은 일제히 그 분에게 박수를 쳤다.
사내들은 울먹였고 감동한 여인들은 실신했다.
그 때 누군가 그 분에게 물었다, 당신은 신인가
그 분은 목소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당신은 유령인가, 목소리가 물었다.
저 미치광이를 끌어내, 사회자가 소리쳤다.
사내들은 달려갔고 분노한 여인들은 날뛰었다.
그 분은 성난 사회자를 제지했다.
군중들은 일제히 그 분에게 박수를 쳤다.
사내들은 울먹였고 감동한 여인은 실신했다.
그 분의 답변은 군중들의 아우성 때문에 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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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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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 - 함석헌
제2부
내가 겪은 관동대지진
신전구 쪽에서 불어오던 불이 어슬어슬할 무렵 이 피난민들이 몰려 있는 데서 2.3백 미터밖에 아니되는 데 있는 큰길 건너편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어디서 왔는지 자동 소방 펌프 두 대가 거기 와서 물을 뿌리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데서는 수도가 다 끊겨 물을 얻을 수 없는 데 여기는 불인지가 있으니 물은 거의 무진장입니다. 아, 밤새 난 그 엔진 소리의 고맙던 생각! 고학의 고마움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그러나 정말 우리를 살린 것은 펌프가 아니고 바람이었습니다. 이때까지 바람이 이쪽으로 불어와서 사람들의 간장을 태우고 있었는데 밤이 깊으면서부터 누가 명령이나 하는 듯 반대로 저리로 불어나기 시작하지 않습니까? 그 기세를 타서 펌프가 밝도록 작업을 하니 그 불을 멈출 수가 있었지 만일 그 바람세 아니었다면 그 몇만 명은 다 죽었을 것입니다. 추측이 아닙니다. 사실입니다.
밝은 아침 우리가 떠난 후 불이 다시 역습해 오기 시작해서 그 불인지 가에 있던 사람이 거의 다 죽었다고 합니다. 뒤가 물이니 도망갈 수도 없고 물 속에 뛰어들어 날아오는 불티를 피하려 이불같은 것을 적셔 머리에 쓰고 물 속엘 들어갔다. 숨을 쉬어야겠으니 나왔다가, 나오면 뜨거우니 또 물 속에 들어갔다가, 그것을 반복하다가 기진맥진해 모두 죽어 정말 불인지가 돼 버렸답니다. 그러니 신기하게 생각을 아니할래도 아니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목숨이란 모진 것입니다. 그렇게 하고 살려주어서 살아난 목숨인데 글쎄 이러고 있지 않습니까? 모진 목숨이란 말을 이래서 하는 말인가? 그러나 정말 무서운 것은 아직 말하지 못했습니다. 정말 무서운 것은 하늘에도 있지 않고 땅에도 있지 않습니다. 지진도 불도 아닙니다. 내 마음이었습니다. 지진이 일어나서 집이 무너지고 불이 일어나서 사람이 타 죽어서 무서움이요 비참이 아니라, 그러한 밖의 변동으로 한때 무법천지가 되고 이성. 오성의 한때 공백기가 생기자 그 틈을 타서 일어나는 본능.충동의 불길이 정말 무섭고 비참한 것입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입니다. 남은 아니 그랬고 나만이 그렇게 약한지 모릅니다. 그러나 아무리 부끄러워도 내가.이 말을 아니하면 다른 모든 말의 의미가 없습니다. 겉으로는 지진의 흔들림과 불실과 싸우고 있는 동안 나는 마음의 밑바닥을 가르고 그 틈으로 치솟는 불길과 연기와 진동과 밤새 싸워야 했습니다. 그리고 참 의미에서 살아났었습니다.
그런 대동지환을 만나니 한편 좋은 것도 있었습니다. 제도나 병이나 교리의 구속이 없어지고 말없는 동안에 일종의 혁명이 선포되자 사람들에게서 자유로 하는 선심이 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네 것 내 것 없이 서로 나눠 쓰고 네 짐 내 짐 없이 서로 동정하고 열린 마음으로 대하고 서로 위로하고 서로 격려해주었습니다. 그것은 확실히 좋습니다. 그러나 그러는 반면 깊은 속에서는 은근히 만 것이 움질거려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평소에 저도 그런 것이 제 속에 있는 줄 모르던 것이 물 밑에서 일어서는 ‘레비아단'처럼 일어납니다. 물론 나 스스로도 픽 웃으며 ‘고약한 생각' ‘우스운 생각' 하며 곧 쓸어버립니다만, 하여간 일어나는 것만은 사실이었습니다. 저 사람의 손에 반지가 있고 팔목에 시계가 있는 것도 사실이고 저 여자의 얼굴이 예쁘고 그 보드라운 살같이 뵈는 것이 사실입니다. 언제 죽을 시간이 올지 모르는 것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그 자리에서도 인기를 얻고 싶고 내 잘난 것을 꾀고 싶은 생각이 나는 것도 사실입니다.
왜 이럴까? 나 스스로 반문하지만 그것으로 그 지진 그 불길은 쉬지 않습니다. 붙는 불을 몽둥이로 때리면 점점 더 뛰어 번져나가 듯이 그것을 쓸어버리려 하면 할수록 더 펄펄 일어나고 섞이고 끓고 꼬여 돌아갔습니다. 그것이 지진보다 무서운 지진이요 불길보다 사나운 불길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음행하다 잡힌 여인과 고소하는 바리새인을 놓고 말없이 땅에 글씨를 쓰고는 지우고 지우고는 또 쓰셨다 합니다만, 그때 무슨 글자를 쓰셨는지 모릅니다만, 나는 불인지 못가의 그 밤에 밤새도록 내 마음속 밑바닥의 모래 위에 백팔 번뇌의 가지가지의 글자를 쓰고는 지우고 또 쓰고는 또 지웠습니다. 이튿날 아침 먼동이 환난의 하늘 위에 훤히 터올 때 친구들의 손을 잡고 내 하숙으로 가자 일으키며 나는 지옥에서 놓여나오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내 양심은 남은 듣지도 못할 가는 소리로 노래를 불렀습니다. 나는 터전 땅 밑에서 무슨 새싹이 삐죽이 올라오는 것같은 것을 느끼며 피난민 사이를 빠져나갔습니다.
아무도 이런 이야기를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50년간 어디서도 누구보고도 해본 일이 없습니다. 오늘이 처음입니다. 이게 진짜다! 불꽃 지옥 속에 앉아 밤새 바라보는데 사방이 다 불인데 내 하숙 이 있는 본향구 한 모퉁이임직한 한 곳만이 그 불꼬리가 끊어져 보였습니다. 그래 퍼뜩 밝자 덕일이와 그 동생 순일이와 또한 하숙에 있던 일본 친구 강두라는 사람을 데리고 우리 집으로 가자고 이끌고 나섰습니다. 길이 메어 옮겨설 수가 없었습니다. 모두들 빈 몸뿐으로, 말하자면 목숨 하나만을 들고 빠져나가고 있었습니다. 곳곳에서 주먹밥을 만들어 가는 사람에게 주고 있었습니다. 집에 가보니 과연 무사했습니다. 주인에게 간밤의 이야기를 하고 나서 이제 밥을 지어먹어야 할 참입니다. 쌀가게에 갔더니 벌써 쌀이 다 떨어지고 현미만을 겨우 구할 수 있었습니다. 현미 맛을 이때 첨으로 알았습니다. 백미보다 물을 더 받을 줄 알아 좀더 두노라고 했으나 어림이 없었습니다. 쌀은 아직 반이나 익었는데 물은 바짝 말랐고 밥이 솥뚜껑을 들치고 올라왔습니다. 그래 물을 다시 더 두고 다시 끓였더니 그 현미 알이 툭툭 튀어 한 알이 두 알만큼씩이나 됐습니다. 그것을 먹어보니 맛이 어찌 구수한지 흰밥으로는 아니 바꿀 것이었습니다.
앉았노라니 집 앞으로 사람들이 지나가며 외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시나징이 도둑질을 하니 주의들 하십쇼!” 하는 소리를 큰 목소리로 거듭거듭 외치며 돌아다니는 것입니다. 정회니 청년단이니 재향군인회니 하는 기관의 사람들이 하는 것입니다. 나는 조금 불쾌하게 생각했지만 그저 서로들 웃고만 말아버렸습니다. 그 시대에 시나징이란 말 일반으로 흔히 썼기 때문입니다. '시나징'이란 지나인의 일본 발음입니다. 지금은 참 세상이 달라졌습니다. 이것만 해도 민주주의의 발달입니다. 그때까지도 일본 사람은 물론, 우리까지도 지나라고 많이 불렀습니다. 업신여기고 배척하는 뜻으로 하는 말입니다. 나라와 나라, 민족과 민족, 계급과 계급, 단체와 단체 사이에서 서로 그런 말을 많이 썼습니다. 우리는 중국을 ‘되놈' 일본을 '왜놈'이라 불렀고, 중국은 우리를 ‘꺼우리' 일본을 ‘소귀자'라 불렀으며, 서양 사람들은 중국을 ‘차이나’ 혹은 '창'이라 일본을 ‘쨉’이라 했고 일본은 서양을 ‘게도'라 했습니다. 소귀자란 중국 사람이 서양 사람을 양귀자라는 대신 일본은 그것보다는 작은, 후배인, 앞잡이인 것이라는 뜻에서 하는 말이요 계도는 ‘털 돋은 외국 놈'이란 뜻입니다. 당은 일본이 옛날 당나라와 많이 교통하던 데서 일반으로 외국이란 뜻으로 쓰게 된 말입니다.
하여간 이런 모든 말로 자기는 서로 잘났노라 했고 남은 모두 못나고 나쁜 것들이라고 흉보고, 배척하고, 업신여기는 말로 불렀는데, 따지고 보면 이 죄는 국가주의, 더 자세히 말해서 정치주의에 있습니다. 권력을 숭배시키기 위해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사회적으로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임에서는 그런 것이 나오지 않습니다. 거기 어떤 몇몇이서 짜고 드는, 지배를 목적하는, 힘의 조직체가 생길 때 그런 것은 반드시 나오고 맙니다. 어떤 시킴을 받지 않은 민중은 살빛이 아무리 다르고 말과 풍속이 아무리 달라도 남을 배척하고 깔고 앉으려는 그런 일은 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옛날 사회에서는 손님, 낯선 사람을 잘 대접하는 것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아니하면 하늘의 벌을 받는, 미덕으로 돼 있었습니다. 옛날 사회일수록 인정의 사회였습니다. 인정이 박해진 것은 권력 .폭력을' 숭배하는 소위 근대국가가 발달하면서부터 였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일본에서 유교문화, 불교문화를 빼면 무엇이 그래 남겠습니까. 일본 사람이 문화다운 문화를 지을 줄 알게 된 것은 불교의 가르침, 유교의 가르침을 받음으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그러니 그 일본에 만일 공자가 오고 석가가 온다면 그래 ‘시나징' 이라 하고 ‘계도'라 하겠습니까? 절대로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일본이 감히 시나징이라고 하게 된 것은 청일전쟁의 싸움 하나 이겼기 때문이요, 이 싸움을 감히 건 것은 서양에서 근래에 총 만들고 대포 만드는 법 하나를 배웠기 때문입니다. 힘은 사람을 마치게 합니다. 쇠망치를 하나 얻어 들었다고 2천 년 인의예지에 대해 감히 시나징이라 했으니 차마 못할 일입니다. 차마 못할 일이건만 정치는 그것을 했습니다. 일본 사람이 한것 아닙니다. 정치가 한 것입니다. 근대국가가 한 것입니다. 시나징이 도둑질을 하다니, 시나징이 누구입니까? 시나징은 다 도둑입니까? 그저 도둑이 더러 나면 났지, 시나징이 도둑질을 한다고야 할 수 있습니까? 이치에 아니 맞는 말입니다. 그렇지만 그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이 국민지도, 사회봉사의 깃발을 들고 거리를 누비고 있습니다. 평상시에 일본 사람이 그런 일 하지 않을 것입니다. 큰 환란으로 겁에 질렸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지진이 아니라 인진입니다. 천재가 아니라 심재입니다. 인간성이 흔들리고 심리가 어지러워진 것입니다. 지금의 이 마음이라면 달려나가서라도 그렇지 않은 것을 풀어 일러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는 어느 마음도 다 “어떡하지!” 하는 겁에 질려 있었기 때문에 아무도 그럴 용기를 내지 못했습니다. 나도 그 시나징이라는 소리는 좀 불쾌하게 들렸지만 그저 가볍게 웃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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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고사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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近悅遠來(근열원래)
近(가까울 근) 悅(기쁠 열) 遠(멀 원) 來(올 래)
논어 자로(子路)편의 이야기. 춘추시대, 노(魯)나라의 공자(孔子)는 열국(列國)을 주유(周遊)하였다. 위(衛), 조(曹), 송(宋), 정(鄭), 채(蔡) 등의 나라를 돌다가 당시 초(楚)나라에 속해 있던 섭읍(葉邑)에 이르렀다. 이 당시 초(楚)나라에는 심제량(沈諸梁)이라는 대부(大夫)가 있었는데, 그의 봉지(封地)가 섭읍이었으므로, 스스로 섭공(葉公)이라 했다. 섭공은 공자를 보고, 그에게 정(政) 에 대해 가르침을 청했다. 공자는 이 물음에 대해 구체적인 방법은 언급하지 않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정(政)이란, 가까운 데서는 기뻐하고, 먼데서는 오는 것입니다(近者悅, 遠者來).
이는 정치를 잘 하면 인근 국가의 사람들이 그 혜택을 입게되어 기뻐하고, 먼 나라의 사람들도 정치 잘하는 것을 흠모하여 모여든다는 것을 뜻한다. 近悅遠來 란 좋은 정치의 덕(德)이 널리 미침을 비유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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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삶 속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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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이야기 1 - 정채봉, 류시화 엮음
2. 평범한 행복
용기와 단념 - 박찬순
완전한 소유는 오직 줌으로써 가능하다. 당신이 주지 못하는 것은 결국 당신을 소유해 버린다. - 앙드레 지드
아름답고 싶은 의지로 아름답게 되어 가는 여자, 지혜롭고 싶은 의지로 하루하루 자신의 교양을 닦아 가는 여자, 그래서 세련됨을 간직하는 여자, 내가 아는 여성 중에 K여사가 그런 분이다. K여사는 늘 자기의 소망을 이야기했는데, 그것은 이 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좋아할 만한 일을 발견하는 것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라고 했다. 말하자면 그녀는 이 두 가지 소망을 위해서는 어떤 희생도 거부하지 않을 만큼 열정적이었다.
그녀는 정말 열심히 살았다. 대학을 졸업하고는 직장에 들어갔는데, 남자 동료들이 놀랄 만큼 자기 일에 충실했다. 우리 나라 대부분의 직장이 그렇듯이, 그녀도 여성으로서 여러 가지 한계에 부딪혔지만 결코 거기서 물러나지 않았다. 두 번째 소망,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난다는 소망이 이루어졌을 때, 그녀는 또 자기의 개성과 인격을 여기에 다 바쳤다. 부모의 빗발치는 반대도 무릅쓰고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 단칸방에 살림을 차린다는 소식이었다.
상식의 기분으로 보면 참으로 영리하지 못한 일을 한 셈이었다. 3류 예식장에서 하객도 별로 없는 쓸쓸한 결혼식, 그러나 그런 결혼식이었기에 그녀는 더욱 돋보이고, 강인한 용기의 화신처럼 보였을 것이다. 벌써 그녀의 나이 마흔이 넘었다. 이 세상에선 훌륭하다는 것이 결코 보상받을 만한 일은 아닌 것인지, 그녀의 남편은 그동안 아내 아닌 다른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고 자식까지 있는 형편에 이혼이란 말을 꺼내게끔 되었다.
이때 보여 준 그녀의 용단, 이것이야말로 그녀다운 것이었다. 그녀는 깨끗이 단념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미 사랑은 자기한테서 멀리 달아나고 있는데 붙잡아 두는 것은 너무나 부질없고 비굴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문화방송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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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참 가슴 찡한 이야기 - 황지니
제1권
하늘나라에 교실을 짓자꾸나!
폴란드의 조그만 마을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독일군이 나타나지 않아 불안한 가운데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는 유태인 앞에 드디어 독일군이 나타났습니다. 독일군의 일부는 마을로 들어가고 나머지는 학교로 와서 학생 중에 드문드문 섞여 있는 유태인 어린이들을 끌어내려고 했습니다. 독일군의 모습을 본, 가슴에 별을 단 유태인 어린이들은 무서워서 선생님에게 달려가 매달렸습니다. 코르자크란 이름을 가진 선생님은 자기 앞으로 몰려온 유태인 어린이들을 두 팔로 꼭 안아 주었습니다. 선생님은 아무 죄도 없는 어린 아이들을 왜 잡아가느냐고 호통이라도 치고 싶었지만 짐승만도 못한 그들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트럭 한 대가 학교 운동장으로 들어오자 아이들은 선생님의 팔에 더욱 안타깝게 매달였습니다.
"무서워할 것 없단다.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다면 마음이 좀 편해질 거야."
독일군은 코르자크 선생님 곁에서 유태인 어린이들을 떼어놓으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코르자크 선생님은 군인을 막아서며, "가만 두시오. 나도 함께 가겠소!"라고 말했습니다.
"자, 우리 함께 가자. 선생님이 같이 가면 무섭지 않지?"
"네, 선생님. 하나도 무섭지 않아요."
코르자크 선생님은 아이들을 따라 트럭에 올랐습니다. 그 광경을 지켜본 독일군이 선생님을 끌어내리려 하자, "어떻게 내가 가르치던 사랑하는 이 어린이들만 죽음으로 보낼 수 있단 말이오" 하며 선생님도 아이들과 함께 강제 수용소로 끌려가 마침내 트레물렌카의 가스실 앞에 도착했습니다. 선생님은 아이들의 손을 꼬옥 잡고 앞장서서 가스실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자신은 유태인이 아닌데도 사랑하는 제자들의 두려움을 조금이라도 덜어 주기 위해서 함께 목숨을 버린 것입니다. 히틀러에게 학살된 동포들을 기념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세워진 기념관 뜰에는 겁에 질려 떨고 있는 사랑하는 제자들을 두 팔로 꼭 껴안고 있는 코르자크 선생님의 동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견고한 탑은 부서지지만 위대한 이름은 사라지지 않는다.
Strong towers decay, But a greatname shall never pass away. (P. 벤자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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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경제/경영/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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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벌써 절망합니까 - 정문술
벤처 중독
어쨌건 '트랜지스터 테스트 핸들러'로부터 '메모리 테스트 핸들러'까지의 숨 가쁜 성공이 결국 미래산업의 일으켰다. 그 이후로도 핸들러는 꾸준히 성능이 개선되었고, 신 모델도 계속 출시되었다. 아직 핸들러 기술에 있어 세계 최고라고는 어느 회사의 제품보다 월등하다고 자신할 수 잇다. 역시 문제는 가만히 있지 못하는 내 성질이었다. 핸들러로 자리를 잡았다 싶자 또 좀이 쑤셔왔고 위험을 겪고 싶어 안달이 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실로 '벤처 중독'이었다. 내가 도전할 만한 새로운 아이템이 없을까 고심하던 중에 어떤 사람이 날 찾아왔다. '테스터'에 미쳐 있는 장대훈이란 사람이었다. 반도체 분야는 크게 전공정과 후공정으로 나눌 수 있고, 우리의 주력제품인 테스트 핸들러는 후공정 중에서도 거의 막바지 공정(Final Process)에 사용된다. 핸들러는 항상 '테스터'라는 장비와 연결해서 사용해야만 한다. '핸들러'가 반도체를 성능에 따라 분류하는 장비라면, '테스터'는 말 그대로 반도체의 기본 기능을 시험하는 장비다. 칩에 순간적으로 전기신호를 보내고 되돌아오는 신호를 정밀하게 분석해서 각종 성능검사를 하는 기계라고 할 수 있다. 후공정 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이고 어려운 분야라고 할 수 있다.
장대훈은 '테스터'를 국산화시키겠다는 야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관심과 기술을 가지고 있지만 결정적으로 돈이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평소에 미래산업을 주시해왔고, 정문술이라면 같이 일해볼 만하지 않겠느냐는 판단이 섰던 모양이다. 나와 손잡고 테스터 국산화를 추진해보자는 제안을 해왔다. 나는 당연히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우리나라에서 테스터를 내가 해결하지 않으면 누가 하랴' 싶은 독선적 생각도 있었다. 어쨌거나 내가 찾고 있던 맞춤한 일거리가 나를 찾아왔던 것이다.
핸들러의 경우처럼 테스터를 밑바닥부터 시작할 수는 없었다. 이미 말했듯이 테스터를 만들기 위해서는 매우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알아본 바에 의하면 현재 테스터 생산업체들도 모두 수천만 달러에서 많게는 수억 달러의 개발비와 몇십 년의 개발기간을 거쳤다는 것이다. 스타트 라인만 균등하게 맞추어놓는다면 이후 업그레이드에는 누구보다도 자신이 있었다. 문제는 어떻게 그들의 노하우를 가져올 수 있는가 하는 점이었다. 테스터 업체로는 미국의 테라다인, 메가테스트, 슐럼버제, 그리고 일본의 어드밴테스트, 아시아 일렉트로닉, 안도 덴키 등이 있었다. 그 중에서 테라다인과 는 우리도 꽤 인연이 있는 편이었다. 우리가 처음 개발한 MR-3000 핸들러는 S사는 우리의 핸들러를 테라다인의 테스터와 붙여서 사용했다. 테라다인 기술자들이 S사를 둘러보고는 한국에 이런 훌륭한 핸들러 업체가 있는 줄을 몰랐다며 놀라워했다. 이후에 우리가 MR-5000이라는 메모리 테스트 핸들러까지 개발하자 테라다인에서는 더욱 미래산업에 관심을 가졌다. 장대훈과 나는 테라다인에 선을 대어보기로 결정했다. 그렇지 않아도 테라다인은 미래산업과 손잡고 싶어하는 눈치였기 때문이다.
테라다인은 테스터 기술로는 세게 최고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항상 일본의 어드밴테스트에 뒤쳐졌다. 이유는 간단했다. 어드밴테스트는 핸들러와 테스터를 모두 만드는 기술을 가졌고, 그래서 핸들러와 테스터를 모두 만드는 기술을 가졌고, 그래서 핸들러와 테스터를 결합시킨 이른바 '토탈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회사의 제품이다. 보니 테스터와 핸들러 사이의 호환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고, 일괄적인 A/S가 가능하다는 것이 장점이었다. 테라다인의 목표는 '타도 어드밴'이었다. 그들이 핸들러 업체인 미래산업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테라다인 사람들은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미래산업에 꼭 한 번씩은 들르는 터라 자리를 마련하는 것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한번은 테라다인의 수석 부사장으로 있는 조지 다벨로프가 미래산업을 찾아왔다. 좋은 기회였다. 장대훈과 나는 기술합작과 토탈 솔루션 개발에 관한 우리의 견해를 피력했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의 눈치만 보고 있던 조지 다벨로프는 당연히 환영했다. X라다인의 테스터와 미래산업의 핸들러가 뭉치면 '타도 어드밴'은 시간문제라며 좋아했다. 우리 역시 그들의 영업망과 시장을 타고 핸드러를 세계적으로 유통시킬 수 있었다. 조지 다벨로프의 표현대로 'Win-Win Game'이었다. 그러나 핸들러를 많이 팔 수 있다는 것도 좋은 일이긴 하지만, 나와 장대훈의 궁극적 목표는 당연히 테스터 기술을 보유하는 것이었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반드시 테스터를 국산화시키겠다는 욕심 말고는 사실 아무 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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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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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 - 피천득
용돈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돈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유쾌한 일이다. 이런 돈을 용돈이라고 한다. 나는 양복 호주머니에 내 용돈이 칠백원만 있으면 세상에 부러운 사람이 없다. 그러나 삼백원밖에 없을 때에는 불안해지고 이백원 이하로 내려갈 때에는 우울해진다. 이런 때에는 제분 회사 사장이 부러워진다.
주말이 되면 내 용돈에서 일주일 분 칠백원을 넣고 나간다. 다른 사람의 경우에 있어서는 술, 담배, 그리고 찻값이 용돈의 대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주초를 위하여 용돈을 쓰는 일은 거의 없다. 술은 공술이라도 한 잔도 못 먹고, 담배는 권하면 받아 무는 일이 있다. 찻집에는 가끔 간다. 용돈으로 물건을 사는 일은 없다.
어려서 전재산을 다 주고 값진 장난감 하나를 사고는 한 달동안 돈 고생을 한 일이 있다. 그후로는 용돈으로는 절대로 물건을 아니 사게 되었다. '아이스크림'을 잘 사 먹는다. 전에는 둘이서 두 잔씩 먹던 것을 요즈음은 한 잔씩 먹는다. 서영이는 아직도 두 잔 먹는 때가 있다. 영화나 음악회에 가기도 한다. 머리를 깎기도 한다. 용돈으로 머리를 깎는다는 것은 억울한 일이다. 그런데 나는 큰 호텔 이발소에서 이발을 한다. '그런데'가 아니라 '그래서' 사치스런 이발을 하는 것이다. 아무리 돈을 많이 쓰는 날이라도 칠백원을 다 쓰지는 않는다.
우리집에는 텔레비전이나 냉장고 같은 것이 없다. 그런 것을 사기에는 내 월급이 너무 적다. 월부로 살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월부로 물건을 사면 그만큼 월급이 줄어드는 셈이 된다. 나는 월급이 줄어드는 것을 가장 싫어한다. 월급이 줄어들면 내 용돈도 줄어들 것이다. 그런데 돈의 구매력이 줄어서 월급이 줄어든 것이라고들 한다. 내 용돈도 줄어들었을 것이다. '일단사 일표음(한 도시락 밥과 한 표주박 물)'으로 나는 도를 즐길 수는 없다. 나는 속인이므로 희랍 학자와 같이 자반 한 마리와 빵 한 덩어리로 진리를 탐구하기는 어렵다.
동천년로항장곡
매일생한불매향
오동은 천년 늙어도 항상 가락을 지니고,
매화는 일생 추워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
물론 마음의 자유를 천만금에는 아니 팔 것이다. 그러나 용돈과 얼마의 책값과 생활비를 벌기 위하여 마음의 자유를 잃을까 불안할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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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방황은 큰 사람을 낳는다 - 마 데바 와두다
20. 자기 이해
<그대가 남들한테서 보는 그것이 곧 그대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이다. 그대의 판단은 기실 그대 자신에게서 억제되고 거부된 그것의 그림자이다>
두 승려가 강을 건너고 있었다. 웬 젊고 아리따운 여인이 어쩔 줄 몰라 하며 망연히 서 있는 거였다. 그녀는, 강을 건너야 하는데 무서워서 그런다 하였다. 그래서 한 승려가 그녀를 안고 강을 건너갔다. 그걸 보고 다른 승려는 격노했다. 아무 말도 안 했지만 속으론 분노의 불길이 세차게 일었다. 금기가 아니던가! 승려라면 감히 여자에게 손대선 아니 되는데, 그건 고사하고 가슴에 안고 가다니. 강을 건너 얼마나 갔을까. 절에 도착하여 문 안으로 들어서자 노한 승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이봐, 아까 그 일을 스승님께 고해야겠어. 그건 금기란 말야! 고해야겠어>
말을 듣고 첫 번째 승려가 말했다.
<무슨 얘긴가? 뭐가 금기란 말인가?>
두 번째 승려가 말했다.
<어허, 자네 잊었나? 젊고 예쁜 여자를 안고 강을 건너지 않았어!>
첫 번째 승려가 웃으며 말했다.
<아항, 그랬지. 근데 강을 건넌 다음 그녀를 내려놓지 않았나. 여기서 십리는 될 걸 아마. 자넨 여기까지 그녀를 안고 왔군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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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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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남서부. 애리조나 주 페이지 인근에 있는 콜로라도 강.]
- 그림을 누르면 원본 크기로 보실 수 있습니다. - 위키백과 20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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