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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편지】: 제1000호
2020.6.17. (음 4.26. - 윤) / 발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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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오늘의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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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란 지도자들이 어려운 일을 기차게 해낸다는 것으로서가 아니라, 시민들이 예사일을 기차게 잘 해낸다는 것으로서 판가름이 난다. ― 존 가드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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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말글 / 한글바로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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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과 우리말
“무용 평론가가 된 뒤 집에서는 ‘무용’지물이 되었다”, “무용에 미치니 을지로 가구상점 거리를 지날 때 ‘무용’ 간판만 눈에 띄었다. 알고 보니 ‘사무용 가구’였다”, “경상도 사람은 춤을 어찌나 좋아하는지 침을 뱉고도 ‘춤’을 뱉었다 한다”, “전통은 케케묵은 것이 아니라 켜켜이 묵힌 것”, “싸움에서 용감하게 활약하여 공을 세운 ‘무용담’(武勇談)이 아니라 우리 춤으로 혀 놀리는 ‘무용담’(舞踊談)이다”. ‘펀(Pun, 언어유희)의 진수’라 해도 될 표현이다. 자신을 ‘사무’에 빠진 사람이라 일컫는 진옥섭의 ‘무용담’에 나오는 대목이다.
‘사무’(四-)는 무술(武), 무용(舞), 무당(巫), 없음(無)이란다. 이소룡 영화를 보고 무술에, ‘명무전’ 공연을 보고 무용에, 고수를 찾아 헤매다 무당(춤)에 눈을 떴고, 급기야 ‘무(無)의 경지’를 만나게 되었다는 얘기다. 두 시간 남짓 펼쳐낸 ‘강연 같은 공연, 공연 같은 강연’은 ‘사무’만 얘깃거리로 삼지 않았다. ‘벼슬은 양반의 것, 구실은 하급자의 것’ 따위의 우리말 표현을 톺아보게 했다. ‘벼슬은 구실보다 높은 직’이고 ‘구실은 관아의 임무’다. ‘벼슬아치’는 ‘관청에 나가서 나랏일을 맡아보는 사람’, ‘구실아치’는 ‘벼슬아치 밑에서 일을 보던 사람’(<표준국어대사전>)이며, 서리(胥吏) 같은 하급 행정직이나 사역직은 ‘구실’이라고 하여 ‘벼슬’과 구별한 것이다.(<브리태니커>)
표 값 단돈 5000원 내고 한판 놀다 나오니 시디(CD)도 거저 준다. ‘춤을 부르는 소리꾼’ 유금선 선생의 생전 실황 음반이다. 여든답지 않은 소리의 기개에 움찔한다. ‘소리꾼만 있고 귀명창이 없는 세상이 한탄스럽다’는 말은 허튼소리가 아니었다. ‘우리말 상실의 사회’에 뒷짐 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한, ‘우리 사회가 이렇게 된 것은 (우리)말을 잃었기 때문’이라는 지적엔 얼굴이 화끈거렸다. ‘우리말이 살아야 겨레 전통예술이 살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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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애와 각하
‘각하’가 부활했다. 여당 원내대표가 ‘대통령 각하’라 한 이후의 일이다. ‘군사독재 시대의 유물’이라는 비판에 ‘권위주의와 권위는 다른 것’이란 해명이 이어졌다. 폐하(황제)-전하(왕)-저하(왕세자/황태손)-합하(정일품/대원군)-각하(정승/왕세손)의 호칭 서열에 따르면 ‘각하는 하급 경칭이니 오히려 대통령의 격을 깎아내린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50대 이후에게 ‘각하’는 특정 대통령을 가리키는 고유명사처럼 남아 있지만, 사전 속 ‘각하’는 ‘특정한 고급 관료에 대한 경칭’일 뿐이다.(표준국어대사전)
‘각하는 대통령에게만 쓸 수 있다’는 문구를 기억한다. 1970년대 학교 게시판에서 본 ‘국가원수에 대한 예절’의 하나이다. “총무처에서 대통령에게는 반드시 ‘각하’라고 붙여서 부르기로 결정했다”(1966년 3월, ㄷ일보)는 기록을 보면, ‘각하=대통령’이란 인식은 박정희 전 대통령 때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부통령, 총리, 장관은 물론 군 고위 장교에게도 ‘각하’라 하던 경칭 문화를 대통령에게로 한정한 것이다. ‘각하’와 더불어 쓰임이 좁아진 표현이 ‘영부인’과 ‘영식’, ‘영애’이다. ‘남의 부인(딸/아들)을 높여 이르는 말’인 ‘영부인(영애/영식)’이 특정인을 지칭하는 표현이 된 것도 비슷한 시기일 것이다.
원래 말뜻을 살려내는 일은 어렵지 않다. 우리 이웃, 옆집 아저씨의 아내가 영부인이고 그 집 딸과 아들은 영애와 영식이다. 뒷집 아줌마가 ‘영식은 잘 지내지요?’ 인사하면 ‘그 댁 영애도 많이 컸던데요!’로 답하면 된다. 행정기관을 찾아간 민원인이 공무원에게 ‘국장 각하께 잘 부탁한다고 전해 주셔요’ 해도 ‘국가원수 모독죄’를 덮어씌우지 않는다. ‘부대 생활 돌봐 주셔 고맙다’는 편지를 ‘사단장 각하’에게 보내는 가족과 여자친구가 많아지는 것도 괜찮겠다. 정치인의 말 한마디에 따따부따하는 것보다 나은 방법 아닌가.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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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눔 → 우리나라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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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는 입을 다무네 - 기형도
걸어가면서도 나는 기억할 수 있네
그때 나의 노래 죄다 비극이었으나
단순한 여자들은 나를 둘러쌌네
행복한 난투극들은 모두 어디로 갔나
어리석었던 청춘을, 나는 욕하지 않으리
흰 길이 피어오르는 골목에 떠밀려
그는 갑자기 가랑비와 인파 속에 뒤섞인다.
그러나 그는 다른 사람들과 전혀 구별되지 않는다.
모든 세월이 떠돌이를 법으로 몰아냈으니
너무 많은 거리가 내 마음을 운반했구나
그는 천천히 얇고 검은 입술을 다문다.
가랑비는 조금씩 그의 머리카락을 적신다.
한마디로 입구 없는 삶이었지만
모든 것을 취소하고 싶었던 시절도 아득했다.
나를 괴롭힐 장면이 아직도 남아있을까?
모퉁이에서 그는 외투 깃을 만지작거린다.
누군가 나의 고백을 들어주었으면 좋으련만
그가 누구든 엄청난 추억을 나는 지불하리라.
그는 걸음을 멈춘다, 어느새 다 젖었다.
언제부턴가 내 얼굴은 까닭없이 눈을 찌푸리고
내 마음은 고통에게서 조용히 버림받았으니
여보게, 삶은 떠돌이들을 한 군데 쓸어담지 않는다.
그는 무슨 영화의 주제가처럼 가족도 없이 흘러온 것이다.
그의 입술은 마른 가랑잎, 모든 깨달음은 뒤늦은 것이니
따라가보면 축축한 등뒤로 이런 웅얼거림도 들린다.
어떠한 날씨도 이 거리를 바꾸지 못하리
검은 외투를 입은 중년 사내 혼자
가랑비와 인파 속을 걷고 있네
너무 먼 거리여서 표정은 알 수 없으나
강조된 것은 사내도 가랑비도 아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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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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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 - 함석헌
제2부
내가 겪은 관동대지진
지진이다!
만세 부르고 헤어진 후 못 만나고 있던 그를 5년 만에 여기서 만나 그런 이야기들을 하고 있는 동안에 정오가 거의 다 됐습니다. 그래 시계를 끄집어내 보며 일어서 가려고 하니 덕일이가 붙잡으며 점심때가 다 됐으니 점심을 먹고 가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앉을까 말까 망설이는 순간 갑자기 우르르 하고 진동이 왔습니다. 입에서마다 "지진이다!" 하고 외침이 나왔습니다. 위에서 말한 대로 일본서는 지진이 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누구나 가자마자 지진 온다고 뛰어나가면 비웃음 받으니 그러지 말고 침착해야 된다는 주의부터 받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웬만큼 흔들려도 다 나가지들 않습니다. 그래 우리도 첨엔 상당히 강하기 때문에 "지진이다!" 하면서도 나가려고는 아니했습니다. 그러나 웬걸, 조금 있다간 흔들흔들 또 조금 있다간 흔들흘들 점점 심하게 오는데 보통이 아닙니다. 순간 검이 번개같이 머리들을 스쳤습니다. "나가야 한다!" 입미다 서로 외치며 복도로 나와 층층대를 내려가려 하니 낡은 집이라, 계단이 온통 찌글찌글 금세 무너질 듯합니다. 황급히 층계를 달려 내려와 현관을 썩 나서니 지붕에서 떨어지는 기왓장이 비 오듯 합니다. 빈 곳으로 달려가려 하니 어찌 심히 흔들리는지 걸음을 옮겨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전신주를 바라보니 노대 만난 뱃대처럼 누웠다 일어났다 합니다.
조금 있다가 숨을 내쉴 만하면 또 흔들고 또 숨을 쉴 만하면 흔들고 사람들이 모두 눈이 휘둥그레 오도가도 못하고 벌벌 떨고만 있습니다. 조금 뜸해지는 것을 타서 사방을 바라보니 사람마다 집 앞에 서서 두 손을 싹싹 비비며 "오 가미사마, 오가미사마" 하고 부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부르며 살려 달라고 비는 겁니다. 나는 평소 그저 믿으면 믿었지 새삼 그러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광경을 보니 저것이 인간이로구나. 종교는 어쩔 수 없이 삶의 바닥이구나 하는 생각이 새로이 강해졌습니다. 조금 있노라니 사람들이 모두 이삿짐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첨에는 우리는 웬 영문인지를 몰랐습니다. 그러나 후에 들으니 지진이 심하면 반드시 화재가 난답니다. 그래서 그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일본은 지진국이니 만큼 그것은 경험에 의해 상식이 되어 있었습니다. 나는 지금 생각해봐도 알 수가 없습니다. 왜 그길로 곧 내 하숙집으로 돌아가려 하지 않았는지. 그들도 어서 가보란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그것이 그렇게 심한 재난인 줄은 몰라 심상하게 생각하고 급히 서둘지를 않았는지, 큰일 당했으니 차마 나는 내 생각을 해야 겠다는 마음을 낼 수 없어 그랬는지. 그 어느 것인지 혹은 그 둘 다인지. 아마 그 둘이 다 작용했다 해야 옳겠지만, 하여간 지금 생각하면 이상할 정도로 내 집으로 갈 생각을 아니하고 있었습니다.
대동지환이라는 말이 있습니다마는 환난은 확실히 사람을 하나로 묶습니다. 좋은 일이 있으면 뿔뿔이 제 몫을 가지고 헤어지지만 생가가 문제되는 어려움을 당하면 도리어 저만 피해보려는 생각은 아니합니다. 그것은 생명의 본성, 지상명령적인 지혜가 가르치는 일일 것입니다. 물론 내 발등의 불을 끄고야 남의 발등의 불 끈다는 말도 있습니다마는 아직 네 발등 내 발등 할만큼 튼 불이 아니니 그러지 정말 큰 불이어서 전체를 삼키는 정도면 각각 제 발등을 생각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면 문제가 환난이냐 기쁨이냐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작은 부분이냐 전체냐 하는 데 있다고 하는 것이 옳을지도 모릅니다. 환난만 아니라 기쁨도 아주 큰 기쁨이면 역시 사람을 하나로 만듭니다. 가령 예를 든다면 해방의 소식 같은 것입니다. 그런 때에는 아무리 욕심쟁이라도 저 혼자 축하하려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고 보면 참은 전체에만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삶도 전체가 사는 것이 참 삶이요 죽음도 전체가 죽는 것이 참 죽음입니다. 전체가 나타나기 전에 사람들은 참이 아닌 나에 기쁨 슬픔이 있는 듯해 혼자 그것을 당해보려 하지만 전체 그 자체가 스스로 나타날 때 그것이 참인 것이 번개가 동에서 번쩍 해서 서에까지 하나로 번쩍 하듯이 환할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어리석게 그것을 혼자 당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혜는 나를 부정하는데 있습니다. 그 사람은 큰 사건이 나타나기를 기대할 것 없이 날마다의 작은 일에서 벌서 전체인 참을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부분속에 전체를 항상 보고 시간 속에 영원을 끊임없이 보고있으면 화복의 구별, 생사의 대립이 없어집니다. 큰 생이 곧 큰 사요, 큰 사가 곧 큰 생입니다.
우리는 그때 알지 못하는 동안에 그 큼의 바닷가에 서고 있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저쪽에서 화공이 오르고 있었습니다. 후에야 안 일이지만 그때가 바로 정오 직전 모든 집에서 점심 준비를 하고 있던 때이므로 불을 많이 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강한 지진이 왔기 때문에 모두 집이 무너지고 치어 죽을 생각만 하고 미처 불을 끌 생각을 못하고, 그냥 놓고 달려나왔기 때문에 사방에서 불이 났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또 지진으로 수도관이 모두 끊어진 데가 많기 때문에 불 끌 물을 구할 수가 없어져서 더 심해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의 전 시가 모두 다 타버렸습니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지진이 어떤 것이지 모르는 우리는 불구경을 나갔습니다. 벌써 중심지인 신전구에서는 불이 훨훨 붙고있었습니다. 잠깐 보다가 돌아서는 동안 벌써 불티가 우리를 습격해옵니다. 그래 덕일네 하숙으로 돌아오니 벌써사람들이 다 짐을 내어놓고 바로 그 옆인 불인지 가로 피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 우리도 밧줄로 짐을 이층 창문으로 달아 내려서 그 못가로 나갔습니다. 나는 그때까지도 내 집으로 갈 생각을 못했습니다. 정말 차마 못가서 그랬던가?
불인지 못가의 하룻밤
해가 넘어가고 밤이 됐습니다. 사실 하늘에 해가 있는지도 몰랐고 하늘을 쳐다볼 생각도 못했습니다. 어둠이 내리덮었을 때 이제 밤이로구나 했을 뿐입니다. 이제 누구도 일이 어떻게 될지를 알 사람이 없습니다. 나라도 문명도 제도도 범도 다 날아나고 그저 얼크러져 모여 있는 인간의 한 무리가 절대의 자연에 직면하는 원시에 돌아가 있었습니다. 그날 밤의 그 광경은 말로 할 수가 없습니다. 사실은 그것을 바로 할 수있어야 말이요, 그것 하잔 것이 말의 목적이요, 그 속에서도 아니 죽고 살아남아 오늘가지 있는 것은 그것 하라고 시키시는 일인데 그것을 할 수가 없다니 부끄럽고 슬픈 일입니다. 장엄이라 할까 처참이라 할까, 처절이라 할까, 지옥.연옥이 있다면 그런 곳일까. 돈을 주고 사려 해도 살 수 없고 권력을 가지고 만들려 해도 만들 수 없고, 지혜로 찾아내려 해도 찾아낼 수 없는, 그야말로 천재일우의 기회라면 기회요 계시라면 계시입니다.
불인지란 상야공원 안에 있는 못입니다. 깊지도 않고 얕은 물인데 면적이 상당히 넓습니다. 몇천 평이나 되는지 그때의 인상으로는 만 평도 되지 않나 하고 보았습니다마는 꽤 넓은 못입니다. 그 옆에 상당히 넓은 공지가 있었습니다. 이제 지진에 내 쫓기우고 불길에 몰린 그 부근 일대의 사름들이 몇만 명인지 모르나 거기 다 몰린 것입니다. 어느 예술가도 이런 무대장치를 할 수는 없습니다. 시력이 가 닿을 수 있는 끝에 캄캄한 어둠의 장막이 내려 무한대의 원형극이 열려 있는데 거기 하늘에 닿는 불길과 연기와 구름으로 배경을 그렸습니다. 단번에 하늘을 핥아버리는 억만 길이나 되는 악마의 붉은 혓바닥, 땅을 갈기갈기 찢어버려 할퀴고 낚아채는, 피가 뚝뚝 흐르는 손톱 발톱, 그런 가운데서도 태연한 듯, 신출 귀몰하는 듯 엄숙히 굽어보다 도 히죽이 웃어보다 탄식하는 듯, 달래는 듯, 가지가지로 변화하는 천사의 얼굴 같은 구름송이, 거기다 바람소리와 폭발하는 소리와 인간의 아우성으로 음악을 아뢰고 있습니다. 그러는 밑에 이름도차마 못한다는 불인지 못가에 뒤에는 물로 배수진을 치고 앞에는 몰아치는 불길의 군대를 놓고 거기 인간의 거품이 끼어 생사의 숨가쁜 숨바꼭질을 하고 있습니다.
네로는 시를 짓기위해 로마 시에 불을 놓았다 하고 나도 그날 밤 그 자리에서 그 생각도 해봤습니다마는 그 불타는 로마의 광경은 어떠했는지 몰라도 내가 보던 그 불인지 가에서 봤던 광경은 고금에 다시 있을 수 없는. 왜 내 집으로 내빼어 죽어도 내 것을 안고 쥐고 죽자 하지는 않고 누가 붙잡는 것도 아닌 불인지 가의 목불인견의 그 자리를 못 떠나고 서성이다가 그 광경을 당했을까? 아마도 그것 하나를 꼭 보여주고 싶으셔서 하신 일 아닐까? 오늘까지 그 생각이 그날 밤의 그 구름기둥 그 아우성 처 럼 오가고있건만 아무 것도 붙잡은 것이 없습니다. 남은 길 가다 벼락 떨어져 친구가 죽는 것보고 시대를 건지는 큰 깨달음을 했다는데, 나는 종교가 나와도 위대한 종교가 나올 만하고, 철학이 나와도 깊은 철학이 나올 만하며, 시가 나오고 그림이 나오고 음악이 나와도 사람의 마음을 그냥은 아니 두도록 뒤흔드는 것이 나올 만한 것을 보았는데, 애 이러고만 있을까? 부끄럽습니다. 남에게는 몰라도 내게는 참 신기합니다. 모든 것이 꼭 짜인 각본대로된 것만 같습니다. 기거 모였던 사람이 몇만 명인지 모르나 그 사람이 살아난 것은 소방 펌프의 힘 때문이요, 그 사람들이 산 것은 나 하나 살리기 위해서요, 나를 살려둔 것은 증거할 것이 있어서 하신 것같이만 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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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고사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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捲土重來(권토중래)
捲(말 권) 土(흙 토) 重(거듭 중) 來(올 래)
당대(唐代) 시인 두목(杜牧:803-852)의 제오강정(題烏江亭)이라는 시.
초한(楚漢)이 천하를 다투던 때, 항우는 해하(垓下)에서 한나라의 포위를 빠져 나와 천신만고 끝에 오강(烏江)까지 퇴각하였다. 오강의 정장(亭長)은 항우를 위해 배를 한 척 준비해 놓고 그에게 강을 건너라고 했다. 그러난 항우는 쓴웃음을 지으며 거절했다. 그는 살아남은 20여명의 병사들과 목숨을 걸고 싸웠지만, 대세를 반전시키지 못하고 31년의 생애를 자결로 마쳤다. 항우가 죽은 지 1,000여 년이 지난 어느 날, 시인 두목은 패배의 수치를 참지 못하고, 훗날을 도모하지 않은 채 자결해 버린 항우를 애석히 여기며 시 한 수를 지었으니,
승패란 병가에서 기약할 수 없는 것이니, 수치를 삼키고 참는 것이 바로 남아로다. 강동의 자제 중에는 재능있고 뛰어난 이들이 많은데, 흙 먼지를 일으키며 다시 올 것은 알지 못 하였구나(捲土重來未可知).
捲土重來 란 실패 후 재기를 다짐함 을 비유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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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토중래(捲土重來) / 한 번 패했다가 세력을 회복해서 다시 쳐들어옴.
《出典》杜牧의 詩 '題烏江亭'
이 말은 당나라 말기의 시인 두목(杜牧 : 803-852)의 詩 <제오강정(題烏江亭)>에 나오는 마지막 구절이다.
승패는 병가도 기약할 수 없으니
수치를 싸고 부끄럼을 참음이 남아로다
강동의 자제 중에는 준재가 많으니
'권토중래'는 아직 알 수 없네
勝敗兵家不可期 包羞忍恥是男兒
江東子弟多豪傑 捲土重來未可知
오강(烏江 : 安徽省 內 所在)은 초패왕(楚覇王) 항우(項羽 : B.C 232-202)가 스스로 목을 쳐서 자결한 곳이다. 한왕(漢王) 유방(劉邦)과 해하(垓下 : 안휘성 내 소재)에서 펼친 '운명과 흥망을 건 한판 승부[乾坤一擲]'에서 패한 항우는 오강으로 도망가 정장(亭長)으로부터 "강동(江東)으로 돌아가 재기하라."는 권유를 받았다. 그러나 항우는 "8년 전(B.C 209) 강동의 8,000餘 子弟와 함께 떠난 내가 지금 혼자 '무슨 면목으로 강을 건너 강동으로 돌아가[無面渡江東]' 부형들을 대할 것인가?"라며 파란만장(波瀾萬丈)한 31년의 생애를 마쳤던 것이다.
항우가 죽은 지 1,000여 년이 지난 어느 날, 두목(杜牧)은 오강의 객사(客舍)에서 일세의 풍운아(風雲兒)―단순하고 격한 성격의 항우, 힘은 산을 뽑고 의기는 세상을 덮는 장사 항우, 사면초가(四面楚歌) 속에서 애인 우미인(虞美人)과 헤어질 때 보여준 인간적인 매력도 있는 항우―를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강동의 부형에 대한 부끄러움을 참으면 강동은 준재가 많은 곳이므로 권토중래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을 텐데도 그렇게 하지 않고 31세의 젊은 나이로 자결한 항우를 애석히 여기며 이 시를 읊었다. 이 시는 항우를 읊은 시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것이다.
【참 조】선즉제인(先則制人), 건곤일척(乾坤一擲), 사면초가(四面楚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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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토중래(捲土重來)
捲:걷을말 권. 土:흙 토. 重:무거울?거듭할 중. 來:올 래.
[원말] 권토중래(卷土重來)
[참조] 선즉제인(先則制人), 건곤일척(乾坤一擲), 사면초가(四面楚歌).
[출전] 두목(杜牧)의 시〈題烏江亭〉
흙먼지를 말아 일으키며 다시 쳐들어온다는 뜻으로, 한 번 실패한 사람이 세력을 회복해서 다시 공격(도전)해 온다는 말. 이 말은 당나라 말기의 시인 두목(杜牧:803~852)의 시〈제오강정(題烏江亭〉에 나오는 마지막 구절이다.
승패는 병가도 기약할 수 없으니 [勝敗兵家不可期(승패병가불가기)]
수치를 싸고 부끄럼을 참음이 남아로다 [包羞忍恥是男兒(포수인치시남아)]
강동의 자제 중에는 준재가 많으니 [江東子弟俊才多(강동자제준재다)]
‘권토중래’는 아직 알 수 없네 [捲土重來未可知(권토증래미가지)]
그러나 당송 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인 왕안석(王安石)은 ‘강동의 자제는 항우를 위해 권토중래하지 않을 것’이라고 읊었고, 사마천(司馬遷)도 그의 저서《사기(史記)》에서 ‘항우는 힘을 과신했다’고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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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삶 속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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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이야기 1 - 정채봉, 류시화 엮음
2. 평범한 행복
평범한 수수께끼 - 작자 미상
옛날 그리스에 유명한 애꾸눈 장군이 있었다. 장군은 죽기 전에 자기 초상화를 남기고 싶었다. 그래서 이름난 화가들을 불러 초상화를 부탁했다. 그러나 화가들이 그려낸 초상화를 보고 장군은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어떤 화가는 애꾸눈을 그대로 그렸고, 또 어떤 화가는 장군의 속마음을 짐작해 양쪽 모두 성한 눈을 그렸던 것이다. 장군은 애꾸눈의 자기 초상화도 못마땅했지만 성한 눈을 그린 것은 사실과 다르기 때문에 화를 냈다. 고민하고 있는 장군 앞에 아주 어리고 이름도 없는 화가가 장군의 초상화를 그려 보겠다고 나타났다. 장군은 미심쩍었지만 초상화를 남기고 싶은 마음에 허락했다. 그런데 이 무명 화가의 초상화를 보고 장군은 매우 흡족해 했다. 그 화가는 장군의 성한 눈 쪽의 옆모습을 그렸던 것이다. 그 무명 화가는 하나의 평범한 수수께끼를 푼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인생에는 여러 가지의 수수께끼가 있다. 그것들을 어떻게 풀어 나가는가 하는 데는 생활의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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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참 가슴 찡한 이야기 - 황지니
제1권
새장처럼 부서진 사랑
늙은 죄수가 있었습니다. 평생 감옥을 전전했기에 그에게는 가족이나 친척이 없었으며 고독만이 그의 유일한 친구였습니다. 어느 날 늙은 죄수는 감옥 창 밖에 날아온 참새 한 마리를 만나게 됩니다. 참새는 매일 죄수가 주는 빵부스러기를 쪼아 먹으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죄수로서 70 평생 처음 느끼는 행복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날이 갈수록 참새에게 정을 쏟은 죄수는 비로소 사랑에 눈을 뜹니다. 하지만 지상의 모든 행복이 그러하듯 불행의 여신은 질투의 비수를 꽂기 위해 죄수를 바다 깊숙한 섬으로 이감시킵니다. 참새를 두고 떠날 수 없는 늙은 죄수는 철사 부스러기를 주워다 조그만 조롱을 만들었습니다. 노인은 허술한 조롱을 소중히 가슴에 품고 배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죄수들의 밀고 당기는 혼잡 속에 아차 하는 순간 노인의 허술한 조롱이 부숴지고 말았습니다. 놀란 참새는 푸르르 날아올라갔으나 이내 수면으로 푹 떨어졌습니다. 참새가 조롱에서 빠져나와 날아가버리지 않을까 염려한 노인이 새의 꼬리를 잘랐기에 그 새는 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참새를 건져 달라는 부르짖음은 뱃고동소리에 삼켜지고 애타게 울부짖는 노인의 처절한 사연에는 아무도 귀를 기울여 주지 않았습니다. 찬란한 낙조가 어려 붉게 출렁이는 수면에 팽개쳐져 파닥거리는 작은 새를 늙은 죄수는 난간에 기댄 채 그저 안타깝게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이것은 프랑스 소설가 피에르로티의 "늙은 죄수의 사랑"이란 작품입니다. 이 소설은 노죄수의 쓰라린 고통을 목격한 간수가 친구에게 들려주는 형식으로 펼쳐지는데 이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친구는 "좋은 새를 구해서 그 가엾은 죄수에게 줘야겠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간수는 "소용없는 일이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새를 갖다 주더라도 늙은 죄수의 슬픔은 달랠 길이 없어"라고 단언합니다.
늙은 죄수에게는 그 참새가 아름다운 새냐 아니냐가 문제가 아니고 오직 사랑의 대상이었던 것입니다. 또 사랑이란 결코 다른 것으로 대치할 수 있는 성질의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다 마셔 버린 깡통처럼 언제든지 획 던져 버릴 수 있게 편리한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데 늙은 죄수에게 있어서 사랑의 알파와 오메가는 오직 참새뿐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어떤 아름다운 새를 준다 해도 그 마음에 뚫린 구멍을 메울 수도 치료할 수도 없었던 것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오직 한 길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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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경제/경영/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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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벌써 절망합니까 - 정문술
일일 현장근무
일주일 동안 그 야단을 피우고 나서야 우리는 겨우 '메모리 테스트 핸들러'라는 물건을 작동시킬 수 있게 되었다. 보면 볼수록 대단한 장비였다. 저자기술과 기계기술만 가지고 만들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열역학에서부터 로보틱스, 센서 활용광학, 위치제어, 정밀모터활용, 컴퓨터 프로그래밍까지 온갖 분야의 노하우가 복합적으로 총동원되다시피 한, 그야말로 하나의 완벽한 '작품'이었다. 우리가 누구인지조차 잊은 채, 넋을 잃고 핸들러의 움직이는 모습을 구경하느라 우리는 또 며칠을 그냥 보냈다.
문득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저런 괴물을 우리가 무슨 수로 만들 수 있을까 싶었던 것이다. 우리는 먼저 핸들러의 구조를 철저히 분석해서 특성상 몇 개의 분야로 나누고, 다시 각 분야마다 팀을 구성해서 제각각 연구에 돌입했다. DS 코리아 시절에 익혔던 기술들이 그제서야 진가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뭉쳐놓고 보면 무서웠지만 흩어놓고 보니 역시 '웨이퍼 검사장비'보다는 한 수 아래임이 분명했다. 다만 한 가지만은 우리로서는 너무나 낯선 분야라 별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핸들러는 반도체를 다양한 조건하에서 테스팅하게 되는데, 그 조건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매우 정밀한 온도조절장치가 필요했다. 예컨대, 반도체는 혹한의 추위에서도 사용되어야 하고, 매우 뜨거운 환경에서도 사용되어야 하기 때문에 다양한 온도에서 그 성능을 실험해보는 것이다.
그런데 정밀한 온도조절이란 것이 참으로 어려웠다. 공간의 넓이와 모양에 따라, 또 주변장치의 형태와 소재에 따라 온도는 항상 변하였다. 기본적인 열역학 공식을 이용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결국 우리는 무수한 실험을 통해서 겨우 그 문제를 해결하였다. 시간과 몸으로 때웠던 것이다. 지금은 컴퓨터 시뮬레이팅기법을 이용해서 많은 도움을 받고 있지만, 당시로서는 어쩔 수 없었던 무식한(?) 방법이었다. 테스팅 챔버의 온도조절장치 완성을 끝으로 핸들러는 겨우 제 모습을 갖추었다. 기계장치쪽은 거의 모방에 가까웠지만 나머지 것들은 거의 우리 기술로 만든 것이다. 눈으로 보고 따라할 수 있는 것은 기계장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우리는 당시에 사용되던 핸들러들의 장점들을 모자이크하기로 했다. 예컨대 전체적인 기계설비와 IC를 적재하는 로딩부분은 어드밴테스트의 제품을, 검사를 끝낸 IC를 성능에 따라 분류해주는 소팅(sorting)부분은 히다치의 제품을 모방하는 식이다. 물론 별다른 음모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문제가 안 풀릴 때마다 김두철을 생산현장에 보내었을 뿐이다.
우리는 우리가 개발한 '메모리 테스트 핸들러' 30대를 S사에 납품했다. 미래산업의 주력 모델인 'MS-5000'시리즈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아니나 다를까 또다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트랜지스터 테스트 핸들러' 때와 마찬가지로 엔지니어들이 죽어라고 뛰어다녔지만, 이번에는 기계의 개수도 너무 많았고 발생하는 에러의 대부분은 처음 접해보는 것이었다 나 역시 현장에 나가 있거나 사무실에 앉아 있거나 초조하고 민망하기는 마찬가지였다. S사측에서는 연일 항의전화가 빗발쳤다.
"우리더러 죽으라는 소립니까! 아시다시피 반도체는 시간이 생명 아니오! 당신네 물건들 때문에 다른 라인까지 다 서 있단 말요. 지금!"
"필요 없으니까 물건들 도로 다 가져가시오. 이러니까 엽전, 엽전, 하는 거 아뇨!'
"이게 그냥 단순한 문제가 아니란 말요! 법정에 가면 당신네들이 손해배상까지 해줘야 한다구!"
이런 경우에는 기회손실비용까지 우리가 변상해야 한다는 소리를 듣자 덜컥 겁이 났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기회손실비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우리 기계의 잘못으로 인해 발생한 전체공장의 시간당 손실비용을 우리가 물어줘야 한다는 뜻이었다. 뒤늦게 계약서를 훑어보니 저W고에서 요구만 한다면 꼼짝없이 혀 빼물고 죽어줘야 할 판이었다. 수십억 원에 달하는 변상비용을 지불할 능력이 당시의 우리에게 있을 턱이 없었다.
한 고비 넘겼다고 생각하면 또 한 고비가 찾아왔다. 마음은 다 급한데 도무지 이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생각다 못해 나는 S사에 일일 현장근무를 제안했다. 내가 공장에서 직접 일을 하면서 문제를 파악해보겠다는 얘기였다. 하루 동안 현장에 있어 보니 그들의 항의가 결코 과장이 아니었음을 금세 알게 되었다. 돌아가며 말썽을 부리는 우리 기계들 때문에 생산라인은 수시로 정지되었다. 현장감독 말로는 생산량이 말도 못하게 줄었다는 것이다. 현장직원들도 짜증이 날 만큼 나 있었다. 내가 보는 앞에서 일부러 기계를 걷어차며 지나가는 사람들까지 있었다.
일과가 끝나갈 즈음, 나는 공장장을 찾아가서 공장간부들에게 잠시 동안 발언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부탁했다. 공장장은 잔뜩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내 부탁을 들어주었다. 나는 여러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을 의식하며 입을 열었다.
"본의 아니게 불편을 끼쳐 들려서 죄송합니다. 오늘 현장에 와서 하루를 보내고 나니 비로소 문제의심각성을 절감했습니다. 어떻게든지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겠지만, 죄송합니다. 저로서도 지금은 뾰족한 방도가 없습니다. 장비 국산화는 저희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꼭 해야 할 일이고, 이런 어려움 들도 한 번쯤은 반드시 겪어야 할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 미래산업과 여러분들은 핸들러 국산화의 주역들입니다. 다만 경험이 짧다 보니 여러 가지 문제들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한 번에 기계 두 대씩을 저희 공장으로 가져가서 다시 만든다는 기분으로 수리하겠습니다. 그 대신 다른 기계 두 대를 임시로 가져다 놓겠습니다. 물론 이런 방법으로는 시간이 오래 걸리겠지만 어쩌겠습니까. 짜증이 나시더라도 조금만 더 참아주십시오. 공장이 정상 가동될 수 있을 때까지 사운을 걸고 노력하겠습니다."
그 이후로 현장이 투덜거림은 많이 줄어들었다. 그리고 우리는 약속대로 기계들을 모두 수리해주었다. 지루하고 힘든 작업이었지만, 그 덕분으로 다음 제품들의 에러 율은 현격히 줄어들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의 고난이 끝나 것은 아니었다. 'MR-5000'을 대충 잡아놓으니 이번에는 'MR-3000'을 비롯해서 일제 복제품, 개조했던 장비 등 비메모리 핸드러들이 한꺼번에 말썽을 부리기 시작했다. 고장이 빈번해지자 다시 비메모리 계열 생산라인이 현저히 느려졌다. 상황은 다시 험악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한 번 '일일 현장근무'를 신청했다. 현장의 상황을 내가 직접 확인하고, 장비 30여 대를 모두 새것으로 교환해줌으로써 겨우 상황이 수습되었다.
미래산업의 핸들러 사업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1990년, 미래산업을 창업한 지 꼬박 8년째였다. 문득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저런 괴물을 우리가 무슨 수로 만들 수 있을까 싶었던 것이다. 우리는 먼저 핸들러의 구조를 철저히 분석해서 특성상 몇 개의 분야로 나누고, 다시 각 분야마다 팀을 구성해서 제각각 연구에 돌입했다. 우리는 우리가 개발한 '메모리 테스트 핸들러' 30대를 S사에 납품했다. 미래산업의 주력 모델인 'MR-5000' 시리즈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아니나 다를까 또다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한 고비 넘겼다고 생각하면 또 한 고비가 찾아왔다. 마음은 다급한데 도무지 이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생각다 못해 나는 S사에 일일 현장근무를 제안했다. 장비 국산화는 저희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꼭 해야 할 일이고, 이런 어려움 들도 한 번쯤은 반드시 겪어야 할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 미래산업과 여러분들은 핸들러 국산화의 주역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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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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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 - 피천득
황포탄의 추석
월병과 노주, 호금을 배에 싣고 황포강 달놀이를 떠난 그룹도 있고, 파크 호텔이나 일품향에서 중추절 파티를 연 학생들도 있었다. 도무장으로 몰려간 패도 있었다. 텅 빈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방에 돌아와 책을 읽으려 하였으나,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어디를 가겠다는 계획도 없이 버스를 탄 것은 밤 아홉 시가 지나서였다. 가든 브리지 앞에서 내려서는 영화구경이라도 갈까 하다가 황포탄 공원으로 발을 옮겼다.
빈 벤치가 별로 없었으나 공원은 고요하였다. 명절이라서 그런지 중국 사람들은 눈에 띄지 않았다. 이 밤뿐 아니라 이 공원에 많이 오는 사람들은 유대인, 백계 러시아 사람, 서반아 사람, 인도인들이다. 실직자, 망명객 같은 대개가 불우한 사람들이다. 갑갑한 정자간에서 나온 사람들이다.
누런 황포강물도 달빛을 받아 서울 한강 같다. 선창마다 찬란하게 불을 켜고 입항하는 화륜선들이 있다. 문명을 싣고 오는 귀한 사절과도 같다. '브라스 밴드'를 연주하며 출항하는 호화선도 있다. 저 배가 고국에서 오는 배는 아닌가. 저 배는 그리로 가는 배가 아닌가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같은 달을 쳐다보면서 그들은 바이칼 호반으로, 갠지스 강변으로, 마드리드 거리로 제각기 흩어져서 기억을 밟고 있을지도 모른다. 친구와 작별하던 가을 짙은 카페, 달밤을 달리던 마차, 목숨을 걸고 몰래 넘던 국경, 그리고 나 같은 사람이 또 하나 있었다면 영창에 비친 소나무 그림자를 회상하였을 것이다. 과거는 언제나 행복이요, 고향은 어디나 낙원이다. 해관 시계가 자정을 알려도 벤치에서 일어나려는 사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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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방황은 큰 사람을 낳는다 - 마 데바 와두다
19. 한가운데에 있기
<가운데에 있으라. 남들의 주장이나 손끝에 좌지우지하지 말고 중심을 잡으라>
붓다 시대에, 아름답기로 유명한 한 매춘부가 붓다의 제자인 거지 승려를 흠모하게되었다. 마침 장마철이 되어서 승려들은 네 달 동안은 꼼짝없이 발이 묶이게 되었다. 그녀는 흠모하는 거지 승려에게 네 달 동안만이라도 자신의 집에 머물러 줄 것을 간절히 애원하였다. 해서 거지 승려는 말하기를,
<스승님께 여쭙고, 허락하시면 그리 하겠소>
그가 붓다를 뵙고 여쭙자. 승려들이 죄다 일어나 난리를 쳤다.
<아니 되오. 어떤 여자도 그대의 발끝조차 건드려서는 아니 되오. 붓다께서 말씀하셨소. 여자를 가까이 하지 말라, 또 여자가 가까이 오게 하지도 말라고. 그대의 소행은 분명 법을 어기는 것이오. 하물며 네 달 동안이나 여자와 함께 지내겠다니!>
그런데 붓다가 말하기를,
<어떤 여자도 가까이 하지 말며, 또 여자가 가까이 오게 하지도 말라고 했으되, 그건 그대들이 아직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허나 저 애한테 그법이 이젠 필요가 없느니, 내가 지켜본 바 그는 그대들과는 다르다> 하면서 붓다가 말했다.
<좋다. 그리 하여라>
참으로 엄청난 일이었다.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제자들은 모두 분노했고, 시기했다. 날마다 매춘부의 집에서 뭔 일이 있었다는 숱한 소문들이 쏟아져 나와 들끓었다. 넉 달 뒤 그가 매춘부와 함께 돌아오자, 붓다가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여인아, 내게 할 말이 있느냐?>
그녀가 말하기를,
<붓다시여, 부디 저를 받아 주시옵소서. 저는 당신의 제자를 유혹하려 했으나 그러질 못하였습니다. 난생 처음으로 전 실패하였답니다. 수많은 남자들을 능히 홀려 냈었습니다만 저이는 그럴 수 없었답니다. 저이는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게도 크나큰 욕망이 일었습니다. 어찌하면 저이처럼 굳게 중심을 잡을 수 있을까 하고요.> 그녀는 말을 이어갔다.
<저이는 늘 저와 함께 지냈죠. 저는 저이 앞에서 춤도 추고 노래도 불렀지요. 갖은 방법으로 유혹하였지만 저이는 산처럼 꼼짝도 않았어요. 저이의 마음에 티끌 한 점 끼는 것을 못 봤고, 저이의 눈에 욕망의 먼지 한 점 어리는 것 못 봤어요. 전 저이를 개종시키려 애썼어요. 그러나 도리어 저이가 저를 개종시켰지요. 한 마디 말도 안 했지만요. 저이가 절 여기로 데려온 게 아니랍니다. 제 스스로 온 거죠. 전 처음으로 사람의 존엄함이 뭔지를 알았습니다. 그걸 배우고 싶습니다>
그는 언제나 저의 길을 간다. 그러므로 이리저리 허둥대지 않는다. 그는 단지 자기 자신일 뿐이며, 자기 자신 속에 깊이 뿌리박아 한가운데에 있다. 그러므로 흩트림이 없이 어디서나 살 수 있다. 굳이 환경을 바꿀 게 없고, 몸가짐을 바꿀 게 없다. 외적 상황은 내적 상황을 따르는 것. 그러므로 외적 상황을 바꾼들 아무 소용 없는 것. 그건 스스로를 조롱하는 것. 진짜는 의식의 상태를 바꾸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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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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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Nelumbo nucifera), 남부 오스트레일리아 애들레이드 식물원]
- 그림을 누르면 원본 크기로 보실 수 있습니다. - 위키백과 20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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