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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편지】: 제997호
2020.6.11. (음 4.20. - 윤) / 발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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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오늘의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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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아무 일도 아니할 자유가 없는 사람은 정말 자유를 모르는 사람이다. ― 키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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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말글 / 한글바로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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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시간
“경제를 다시 세울 수 있는 마지막 ‘골든타임’이다”(대통령), “마지막 ‘골든타임’이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현실 인식에 전적으로…”(새누리당 대표), “개헌의 ‘골든타임’을 놓치면 낡은 정치는 지속될 것…”(새정치민주연합 비대위원장), “경제 회생의 ‘골든타임’이 되도록…”(같은 당 대변인). 대통령과 여야 대표의 지난주 국회 연설, 당 대변인 발언에 공통적으로 등장한 열쇳말은 ‘골든타임’이다.
‘골든타임’은 ‘인명을 구조하기 위한 초반 금쪽같은 시간’(한경 경제용어사전), ‘의학적으로 어떤 치료가 효과 있기 위해 행해져야 하는 제한시간’(위키백과)의 의미로 널리 쓰이지만, 예전부터 ‘청취율이나 시청률이 가장 높은 시간’(매스컴대사전, 시사상식사전 등)의 뜻으로 써온 표현이다. ‘골든타임’은 영어가 아니라 일본 조어로, ‘프라임 타임’(prime time)을 이르는 말이다. 요즘 정치권 등에서는 ‘시청률’이나 ‘사람 살리기 위한 시급함’보다는 ‘중요한 시기(때, 기회)’와 관련 깊게 쓰인다.
1999년 이전 네이버뉴스 검색 결과는 ‘골든타임’(189건)과 ‘골든아워’(354건), ‘황금시간’(3052건) 등으로 황금시간 쪽이 많았다. 요즘은 ‘골든타임’의 쓰임이 많다. 사용 빈도가 뒤집힌 것은 ‘사건·사고’에 관심이 많아진 세태 변화 때문일 것이다.
쓰임이 어떻든 ‘골든타임’은 금쪽같은 시간, 곧 ‘황금시간’이다. 국립국어원 ‘말다듬기 위원회’와 서울시 ‘국어 바르게쓰기 위원회’가 ‘골든타임’을 ‘황금시간’으로 새삼 다듬은 까닭이다. 올해 8월 이후 두 위원회의 ‘황금시간’을 다룬 뉴스는 각각 11건과 16건뿐이다. 대통령과 여야대표 연설의 ‘골든타임’은 사흘 동안 뉴스에 757건 등장한다. ‘20여건’ 대 ‘750여건’. ‘아래’에서 다듬어도 ‘위’에서 쓰지 않으면 널리 퍼지지 않는다. 아시겠지만, 국어기본법은 국회가 입법했고, 국립국어원장은 정부가 임명한다.
……………………………………………………………………………………………………………… 우리말 속 일본어
‘골든타임’은 ‘시청률이 높은 시간대’를 뜻하는 ‘프라임 타임’(prime time)을 일본에서 부르는 말에서 왔다. 지난주 짚어 본 내용이다. 이런 영어를 ‘재플리시’(Japlish) 또는 ‘쟁글리시’(Janglish)라 한다. 아이돌, 스킨십, 백미러, 사인펜, 오토바이, 라이브 하우스, 샌드백, 콘센트, 캠핑카, 아르바이트, 모닝콜…. 일본 위키백과 ‘와세이에이고’(和製英語) 항목에서 열거한 것의 일부이다. 아파트, 리모컨, 레미콘, 슈크림, 테마파크 따위도 일본에서 들어온 얼치기 외래어이다. 일본어가 우리말에 미친 영향은 외래어(외국어)에만 있는 게 아니다.
‘우리말 속 일본어’를 톺아 엮은 사전이 나왔다. 대통령, 헌법, 검사, 철학, 오방떡, 팔방미인, 모험, 전망, 사회, 연애 따위가 일본 한자를 음독한 것이라는 걸 새삼 일깨워주는 말광이다. 이참에 관련 정보를 사전에 반영하면 어떨까 싶다. ‘냄비’가 일본어 ‘나베’(なべ)에서, ‘몽타주’가 프랑스어(montage)에서 왔음을 알리는 것처럼 관련 낱말에 ‘우리말 속 일본어’임을 밝히는 것이다. 사전은 원어를 밝혀주는 구실도 하기 때문이다. 어떤 게 일본어에서 유래한 것인지 구별이 어려운 현실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사전을 엮어낸 이한섭 교수(고려대 일어일문학과)는 <한겨레> 인터뷰에서 ‘걱정스러운 것은 어떤 단어가 일본어에서 온 것인지 구별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라며 ‘영어나 중국어에서 온 말과 같이 외래어의 일부로 보아도 될 시점’이라고 했다. 외래어를 제대로 받아들여 쓰는 것은 언어문화를 풍성하게 가꾸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에서 온 말이니 무조건 쓰지 말자 하는 것은 소아병적 발상이다. 아, ‘소아병’(小兒病)도 일본어에서 온 것이다. 레닌이 1920년에 쓴 글을 일본어로 직역한 ‘공산주의에서의 좌익소아병’(1926년)에서 비롯한 것이니.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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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눔 → 우리나라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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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들이 뛰노는 바닷가에 - 강신애
말들이 뛰노는 바다에서
말들을 쫓는 젊은이를 사랑했네
바다는 흰 말들을 풀어놓고 철썩철썩 때리며
후미진 바위 깊숙이 말들을 몰아갔네
고삐를 빙빙 돌리며 나는 듯 달리는 젊은이를 사랑했네
고삐를 씌우고 말의 등에 올라탄 벌거벗은 소년을 사랑했네
햇빛 휘감아 하나 되어 달렸네
말들은 열 갈래 만 갈래 갈라지며 바다의 푸른 맥을 보여주었네
물속에 잠겼다 튀어 오르는
싱싱한 청어 두 마리
헉헉 노을 뱉으며
끝없이 달리는 말
젊은이는 고삐를 조여 말의 목을 비틀었네
말은 울고 날뛰고 다리를 꺾었네
말을 묻고 하얀 모래로 덮었네
바다와 흰 말들뿐인 해변에서
울부짖던 핏빛 아가리처럼
석양이 두 손을 붉게 물들였네
히힝거리며 말들이 달려와 말의 묘지를 핥고 갔네
히힝거리며 말들이 달려와 말의 묘지를 핥고 갔네
황금 물비늘 한 점이
혈관 속으로 새처럼 깃드는 시간
말의 무덤을 파냈을 때
말은 없고 모래 위 하얀 거품만 남아 있었네
말들이 뛰노는 바다를 바라보다
젊은이는 흩날리는 갈기를 향해 꿈꾸듯 걸어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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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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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 - 함석헌
제1부
씨알의 설움 (6/6)
설움
이것이 씨알의 설움이냐? 씨알의 처지가 아니냐? 씨알이란 곧 설움이냐? 설움이 곧 씨알이냐? 대하여경요량동, 만우회수구산중, 나라 일 이렇듯 기울어져 가는 집 같건만 버틸 놈이 없구나. 천만마리 황소를 들대어 끌어도 움쩍도 아니할 만큼 큰 나무가 있어야 하건만. 씨알아, 나는 아니로구나. 최외지간교원고, 요조단청호유공, 세상인심이 이렇게 땅을 쓰는 때에 거기 홀로 우뚝 서는 인격이 있어야겠는데 없구나. 텅 빈 사당간같이 엄숙하고 거룩한 마음이 있어야건만, 씨알아, 너는 아니지. 너는, 명명고고다열풍이라, 사나운 바람에 우는 잎새같이 압박적인 정치와 싸워올 줄도 모르지. 너는, 향엽종경숙난봉으로 향기를 멀리 날리는 꽃같이 세계적인 친구 동지를 부르는 예술을 지을 줄도 모르지.
이 나라의 민중아, 너는 씨알이지. 여물어 떨어져 땅에 들어가 썩는 씨알이지. 모든 뿌리, 모든 줄기, 모든 가지, 모든 잎, 모든 꽃이 네게서 나갔건만 하나도 너를 받드는 놈은 없지. 모든 꽃, 모든 잎, 모든가지, 모든 뿌리가 너 하나를 위해 있건만 너 될 대로 되는 날 곧 떨어져 땅 속으로 들어가 숨지. 너는 참 섧구나. 하지만 너는 씨알이다. 너는 앞선 영원의 총결산이요, 뒤에 올 영원의 맨 꼭지다. 설움은 네 허리를 묶는 띠요, 네 머리에 씌우는 관이다. 너는 작지만 씨알이다. 지나간 5천 년 역사가 네 속에 있다. 5천년만이냐, 5만 년 굴 속에 살던 시대부터의 모든 생각, 모든 행동, 눈물, 콧물, 한숨, 웃음이 다 통조림이 되어 네 안에 있다. 아니야, 5만 년만이겠나, 파충류시대, 아메바 시대, 양치류 시대,폭풍우 시대, 조산시대, 백열 시대, 허공에 소용돌이치던 가스 성운시대까지도, 그보다도 절대의 얼이 캄캄한 깊음을 암탉처럼 품고 앉았던 시대의 모든 운동이 다 네 속에 있다. 그럴때 너는 늘 설웠다.
너는 작지만 씨알이다. 이제 이 앞으로 무슨 시대와 나라와, 민족들과 문화가 나올지 누가 아느냐? 아브라함은 제 생식세포 속에서 이스라엘 열 두 지파와 모세와 다윗과 예수와 유대교와 기독교와 로마제국, 독일제국,프랑스혁명, 러시아혁명, 1차 세계대전, 2차 세계대전, 원자탄, 우주 로켓을 보고 있었다. 미래도 또 설운 역사일 것이다. 그러나 설움은 설움이다. 섧다 다하면 민중의 자궁 속에 새 시대의 아들이 설어진다. 고통은 영원한 얼의 수정작용이다. 너는 설움당하는 것이 좋다. 그래야 네 속이 알이 든다. 여문다. 민중이 영원의 얼로 수정이 돼야 미래의 역사가 있을 수 있다. 이 해가 다 간다. 이 잊지 못할 1959년 영원의 처녀의 가슴패기에 인간의 고통과 무지와 분노와 시기와 싸움과 애씀의 심벌인 마치와 로켓이 꽂힌 해, 그러나 그러면서도 인간의 역사가 우주시대로 들어간 해, 이 해도 다 간다. 설이 온다. 가는 역사가 설워서 설인가? 오는 역사는 일어설 것이 되어 설인가? 설은 섬이다. 겨울이 온다. '겨울이 만일 온다면' 으로 시작한 이 울음도 겨울이 왔으니 이젠 끊일 때가 왔다.
서풍이 분다. 서풍아, 불어라! 사나운 서풍아! 이번 대서양이 아니고 태평양의 수평이 깨져 네 오는 길을 연다. 셸리야, 살아나라! 살아나서 새로운 서풍의 노래를 불러라! 오, 사나운 서풍이여, 이 말라빠진 강산에 불어라! 불어서 저 염병 맞은 잎새들을 날리고, 이 씨알들을 날려 그 겨울 심장으로 보내라! 거기서 우리가 소리없이 울며 봄이 올 때까지 시체처럼 기다리리라. 서풍아, 너야말로 씨알의 글월이로구나. 하늘 고요에 동이 트고 닭이 운다. 붓을 놓고 호미를 잡자! 새날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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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고사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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開源節流(개원절류)
開(열 개) 源(근원 원) 節(절제할 절) 流(흐를 류)
춘추 전국시대, 조(趙)나라의 학자 순황(荀 )은 순자(荀子)를 저술하였다. 그는 부국(富國)편에서 국가의 강약과 빈부에 대해 설명하였다. 국가가 부강해지고자 한다면, 조정은 백성들을 사랑해야 하며, 그들로 하여금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할 수 있게 해야한다고 했다. 이렇게 하여 백성들은 적극적으로 생산에 임하며, 그 축적된 것이 증가함에 따라 국고(國庫)가 충실해지고, 국가는 곧 부강해진다고 하였다.
그러나 반대로 조정에서 생산은 돌보지 않고 무거운 세금만 부과하며 물자를 아끼지 않는다면, 백성들과 나라가 빈곤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특히 그는 이에 대한 군주의 의무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온 백성이 천시(天時)의 화기(和氣)를 얻고 사업에 차서를 얻으니 이는 재화의 본원이요, 차등을 두어 거둬들인 국고의 저장물은 재화의 지류(支流)이다. 그러므로 명철한 군주는 반드시 신중하게 화기를 기르고 그 지류를 절제하며, 재화의 원천을 더욱 개발하여야 한다(節其流, 開其源).
가계(家計)도 나라도 모두 힘들다. 가라앉은 분위기다. 더 일하고 덜 쓰는 수밖에 없다. 開源節流 란 재원을 늘리고 지출을 줄임 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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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삶 속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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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이야기 1 - 정채봉, 류시화 엮음
2. 평범한 행복
산타 할매 - 김기숙
마지막 남은 한 장의 달력을 바라보며 올해도 다 가는구나 하는 서글픔과 함께 12월 25일에 눈길이 머물자 새삼 지난해 크리스마스 때 일이 생각났다. 그러니까 유난히도 춥고 바람이 차가웠던 대구에서였다. 기숙사 안은 온통 겨울 방학, 크리스마스 계획으로 술렁대었다. 당시 간호학과 학생이던 나는 '이번 크리스마스를 어떻게 보낼까?' 하고 생각하면서 하모니카를 들고 뒷산에 올라갔다. 그때 문득 군부대 초소에서 근무하고 있는 초병을 보자 하나의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곧 시내로 나갔다. 다과점에 들러 도넛을 사고 홍차도 준비했다. 드디어 크리스마스 이브, 나는 커다란 보온병에 홍차를 끓여 넣고 조그만 그릇에 도넛을 담아, 지금은 전방 어느 후송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친구와 함께 일을 시작했다. 처음엔 총을 든 군인이 무서워서 초소 앞까지는 못 가고 근처에서 먼저 "메리 크리스마스!" 하고 소리를 치고서야 가까이 갈 수 있었다. 우리는 차를 따라 주고, 빵을 나눠 주었다. "수고하십니다!" 하는 우리의 합창에 반가워하는 군인들의 얼굴이 달빛에 비칠 때, 나는 기뻐서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다음 초소에서 그 다음으로, 우리는 신나게 다녔다. 어떤 군인 정신이 투철한 일병 아저씨는 "손들엇!" 하며 총을 들이대기도 했고, 그 바람에 우리는 놀라 보온병을 땅을 떨어뜨리기도 했다. 며칠 뒤 사령부 신문에 '어느 산타 할매, 초소를 방문하다!' 라는 기사가 실렸다. '그 산타 할매가 바로 나란 말이야.' 나는 몇 번이나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렸다. (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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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과학/예술/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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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레오 - 장 피에르 모르
제5장 - 거듭되는 승리
갈릴레오는 로마 대학의 천문학들, 즉 클라비우스와 예수회 소속의 천문학자들에게 환대를 받았다. 그들은 이미 (별들의 소식)의 발견을 인정했으며, 금성의 변화를 보고 경탄했다. 4월 19일, 교회이론가의 제1인자인 벨라르미네 추기경이 클라비우스에게 갈릴레오의 관찰에 대한 로마 대학의 공식 소견서를 요청했다. 클라비우스는 갈릴레오의 관찰에서 결론을 도출해 내지는 않았지만, 모든 관찰에 동의를 표하는 보고서를 그에게 보냈다.
승리자 갈릴레오:로마가 보내는 영광의 찬사
그의 발견은 그 시대 최고의 천문학과 종교의 권위자들에게 인정을 받은 셈이었다. 교황 바울로 5세는 그를 개인적으로 접견하여 당시의 관례와 달리 자기 앞에서 무릎을 꿇지 않게 하는 등 충분한 호의를 표시했다. 그리고 몇 주 후에는 로마 대학 전체가 갈릴레오 앞에 모여 공식적으로 그의 발견을 치하했다. 갈릴레오는 많은 로마의 지식인들을 만났는데, 저명한 지식인 체시 공은 자기가 창설한 린체이 아카데미의 여섯번째 회원이 되어 달라고 요청했다. 그 회원들은 새로운 과학적 발견에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 이들로 대학에 소속되어 있지 않았다. 날카로은 시선을 상징하는 살쾡이(린체이)라는 이름을 택한 것도 대학에 대한 독립을 내세우려는 의도였다. 갈릴레오는 이러한 제안을 영광으로 생각했고 몹시 기뻐한 나머지 즉시 수락했다. 그리하여 그는 당시로서는 자신의 사상을 가장 잘 이해하고 지지해줄 수 있는 사람들과 서신을 교환하게 되었다. 그 이후 그는 책 겉장마다 자기 이름 뒤에 '린체이'라고 기재했고, 린체이 아카데미의 문장을 인쇄해 넣었다. 모든 일은 순조로운 듯 보였고, 갈릴레오는 6월의 태양을 받으며 매우 즐겁게 피렌체로 돌아왔다.
그는 바로 그때에 벨라르미네 추기경이 자기에 대한 비밀 보고서를 종교재판소에 요청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달지 못하고 있었다. 11년 전에 로마에서 종교재판소는 별들은 또 다른 중심 항성이며 그 주위를 다른 생성들이 돌고 있다는 주장을 했다는 이유로 조르다노 브루노르 산 채로 화형시킨 적이 있었다. 그 재판을 지휘했던 인물이 바로 벨라르미네 추기경이었다.
'물에 뜨는 물체에 대한 논쟁':예상치 않은 분야에서 만난 큰 적
갈릴레오가 로마에서 승리를 거둔 후에 적들의 사기가 한풀 꺾였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사실은 전혀 다르다. 갈릴레오의 천문학적인 발견을 공격하기에는 좋은 시기가 아닌 것처럼 보였으므로 그들은 다른 영역에서 갈릴레오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 논쟁을 언급할 이유는 충분하다. 그 첫째 이유는 나중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들이 이 논쟁에 많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둘째로 이 논쟁은 갈릴레오와 아리스토텔레스파 사이의 대립이 천문학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임을 보여준다. 셋째로 우리는 여기서 물에 뜨는 물체라는 매우 순수한 주제에 대한 두 가지 형태의 논리 전개와 논증을 보게 된다.
1611년 9월의 어느 더운 날, 갈릴레오는 대고의 집에서 피사 대학의 여러 교수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중에는 엘치대학 총장과 로도비코 엘레 콜롬베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새로운 사상을 반대하는 사람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철저한 사람이었다(그는 갈릴레오를 '불쌍한 자'로 취급한 책을 이미 필사본의 형태로 돌린 바 있었다). 또한 귀빈들 가운데에는 로마를 방문중이던 두 명의 추기경이 있었는데, 그중 마페오 바르베리니는 봄에 로마에서 갈릴레오의 천문학 강연에도 참석한 적이 있었다. 아마도 날씨가 더워서 그랬는지, 대화는 얼음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갔고, 물에 뜨는 얼음의 특별한 성격에 대해서 이야기하게 되었다. 그러자 젤레 콜롬베와 그의 동료들은 그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설명을 언급했다. 얼음이 물에 뜬다면, 그것은 얼음이 판형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었다. 이러한 형태가 얼음에 물에 가라앉아 바닥으로 내려가는 것을 막는다. 이러한 저항이 없다면 얼음은 무거운 물체에 속하므로 가라앉을 것이다.
갈릴레오는 25년 전에 물에 뜨는 물체에 대해 연구를 한 적이 있었다. 그는 파두아에서 교수가 되기 전에 아르키메데스의 저작들을 공부하며, 물체를 물에 넣어 물체의 밀도를 측정하기 위하여 저울을 발명하기도 했다. 그러므로 그는 이 주제에 대해서는 할 이야기가 많았다. 얼음판을 힘을 가해 물의 바닥으로 밀어넣었을 때, 손을 놓자마자 얼음은 물 표면으로 다시 떠오르는 사실을 우선 주목해야 한다. 그러나 이 경우에 물의 저항은 얼음을 아래로 민다. 그러나 갈릴레오는 이러한 설명을 부정한다. 얼음이 물에 뜨는 것은 저항 때문도 형태 때문도 아니다. 구형의 얼음도 판형의 얼음과 마찬가지로 물에 잘 뜬다. 얼음이 물에 뜨는 것은 단지 얼음이 물보다 더 가볍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무거운 물체와 가벼운 물체 사이의 대립은 포기되어야 한다. '무겁다'든지 '가볍다'라는 말은 다른 것과의 관계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다. 한쪽에는 무거운 사물들이 존재하고 다른 쪽에는 가벼운 사물들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하나의 사물이 다른 사물보다 더 무거울 수 있을 뿐이다.
치열한 '전투':궁지에 몰린 피사의 교수들
논쟁은 극히 날카로웠다. 피사의 교수들은 대공앞에서 자신들이 선택한 분야에서 학문적 명성을 지키려고 노력했을 뿐이었다. 추기경들이 이 원시적인 논쟁의 증인이 되었다.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예상처럼 갈릴레오의 동료들은 아리스토텔레스를 지지한 반면, 마페오 바르베리니는 갈릴레오의 편에 섰다. 코시모 대공은 자기의 식탁이 과학혁명의 배경이 되는 것을 보고 기뻐서 갈릴레오에게 책을 한 권 쓰도록 요구했다. 코시모데 메디치에게 헌정된 (물에 뜨는 혹은 물 속에서 움직이는 물체에 관한 논쟁)은 1612년 5월에 출판되었다. 이탈리아어로 쓰인 그 책에는 망원경이나 특수 장치가 없이도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경험으로 가득 차 있었다. 갈릴레오는 이 책에서 적들의 모든 논거를 예상하고 하나씩 비판해 갔다. 그는 특별히 가벼운 물체인 공기는 물보다 800배 가벼운 것일 뿐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이 저서는 하나의 경이로 받아들여졌다.
물에 뜨는 물체에 대한 논쟁은 다양한 결과를 가져왔다. 피렌체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이 논쟁을 화제로 삼았고, 명문가 젊은이들은 갈릴레오에게서 수학을 배우려고 몰려들었다. 그리고 갈릴레오는 바르베리니 추기경과 친구가 되었다. 갈릴레오는 이 논쟁을 통해, 정당한 논쟁을 통해서는 자신을 대적할 수 없음을 적들에게 보여주었다. 델레 콜롬베와 그의 패거리들은 갈릴레오의 책에 대한 응답으로 애매한 소책자들을 여러 권 출판했지만 그들 자신, 그리고 다른 모든 이들도 천문학 논쟁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논쟁에서도 패배했음을 처절히 깨닫고 있었다.
갈릴레오를 옭아맬 마지막 수단:종교적인 논쟁의 장
당시 '잘못된 생각을 하는'자를 침묵시키는 가장 확실하고도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과학의 영역을 떠나서 교회의 개입을 촉발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서는 동맹자, 아니 공모자가 필요했는데 바로 종교인이었다. 여기에는 이미 많은 종교인이 등장했다. 이는 당시 이탈리아 세계에서 교회가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가를 증명해 준다. 갈릴레오의 베네치아 친구인 사르피가 있었고, 그 다음 클라비우스, 로마 대학의 예수회 동료들, 벨라르미네 추기경, 교황 바울로 5세, 바르베리니 추기경이 있었다. 이들은 모두 학식이 있는 사람들이었으며, 갈릴레오에게 호의적인 태도를 보였다(의심스러운 벨라르미네를 제외하고).
델레 콜롬베의 동맹자들은 전혀 다른 사람들이었다. 무식하고 상스럽고 공격적인 이들은 '신앙 수호대의 개'라고 자처하고 있었다. 그들은 페렌체에서 유명한 성 마르코 수도원을 소유하고 있는 도미니쿠스회(예수회와 경쟁하는 종단)의 수도사들이었다. 성 마르코 수도원에서 1621년 만성절에 수호대의 개들은 처음으로 행동을 개시했다. 로리니 신부는 여호수아가 태양을 멈추게 한 성서의 구정을 인용하여 천문학의 새로운 사상은 '성서에 위배된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사흘 뒤 로리니는 갈릴레오에게 다시 한번 '이 이페르니크의 사상'을 규탄하는 편지를 보냈다. 위험은 그다지 커보이지 않았고 갈릴레오는 친구들과 함께 웃어넘겼다. 당시 그는 태양의 흑점이라는 더욱 흥미로운 일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다.
태양의 흑점에 관한 새로운 논쟁
태양의 흑점을 관찰한 것은 갈릴레오가 처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한손에 철퇴를 들고 검 가죽을 걸친 미지의 천문학자였다. 사실 흑점 중 한 개는 가끔 육안으로는 볼 수 있을 만큼 컸다. 그러나 활발한 연구는 망원경이 발명된 후에야 시작되었다. 망원경을 이용하면 매우 작은 흑점들도 관찰할 수 있었다. 갈릴레오는 1610년부터 태양의 흑점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흑점은 많은 문제를 제기했고, 갈릴레오는 1612년 1월에 (태양의 흑점에 대한 편지)가 독일어로 출판될 때까지 자신의 이론을 출판하지 않고 있었다. 머지않아 이 책의 저자는 예수회 회원인 샤이너 신부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1611년 흑점을 관할하기 시작한 샤이너가 그것에 대한 결론을 제시한 그 저서에는 갈릴레오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내용, 아리스토텔레스적 세계를 구현하고자 하는 시도가 담겨 있었다. 샤이너에게 태양은 원래 움직이지 않는 완전한 천체였다. 따라서 태양에 변화하고 움직이는 흑점이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러므로 생성하고 이동하며 사라지는 것처럼 보이는 흑점은 단지 태양의 앞을 지나치는 소행성들의 그림자일 뿐이다. 갈릴레오는 우선 몇 편의 편지를 써서 이에 답했으며, 그후에는 (태양의 흑점에 관한 역사와 논증)이라는 책을 내어 1613년 3월에 출판했다. 그는 우선 흑점은 태양의 가장자리로 다가갈수록 점점 납작해진다는 사실을 지적했고, 이 사실에서 흑점은 태양 표면에 달라붙어 있는 매우 납작한 구름이라는 결론을 끌어냈다. 그리고 단면이 보이게 되는 가장자리 쪽에서 흑점은 작고 얇아져 거의 선처럼 된다.
흑점의 움직임을 살펴보면, 태양의 중심 근처에 있을 때 가장 빠른 것처럼 보인다. 이에 대한 갈릴레오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태양 전체는 균일한 속도로 자전하고 있다. 태양 표면의 한 점이 가장자리로 다가갈수록 그 점이 하루 동안 진행하는 거리를 우리는 더 비스듬한 각도에서 바라보게 되며, 그리하여 우리에게는 그 점이 더 늦게 진행하는 것처럼 보인다. 오늘날 우리는 태양의 흑점들이 태양의 표면에 달라붙어 있는 납작한 구름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음은 물론이다. 흑점은 표면이 더 차가운 지대이다. 그러나 그러한 점을 제외하면 갈릴레오의 주장은 전적으로 옳다. 그는 공식적인 천문학자들에게 가차 없이 두 가지 공격을 가하고 있다. 첫째는 '태양이 자전을 한다면 왜 지구는 자전을 할 수 없단 말인가?'하는 점이었다. 코페르니쿠스가 말한 것처럼 지구는 하루에 한바퀴 자전한다. 왜 그럴 수 없다는 말인가?'둘째는 다시 한번 하늘이 영원한 부동체가 아님을 보여준다. 가장 중요한 천체인 태양에서도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이론은 결국 인정을 받게 되고, 샤이너 자신도 힘들지만 이를 받아들여 20년 후에는 태양을 화산에서 흘러내린 불꽃의 바다로 그리게 된다. 태양은 더 이상 반들반들한 구가 아니다. 그러나 그사이에 이 새로운 논쟁이 이탈리아어로 출판되면서 갈릴레오에 대해 전보다 더욱 위험한 공격이 시작된다. 1613년 5월 코시모 데 메디치는 셋째 아들의 세례를 기념하는 성대한 예식을 열었다. 축제 내내 갈릴레오가 최근 발견한 별들을 장식한 목성 마차가 거리를 누비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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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은 모두 시계를 갖고 있다
7. 생물 시계의 정체 - 아직 밝혀지지 않은 생물 시계의 정체는 과연 무엇인가?
척추동물의 생물 시계
사람을 포함한 포유류의 생물 시계의 정체는 바퀴가 가진 시계가 밝혀지고 나서 2, 3년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알려지기 시작했다. 포유류는 왼쪽과 오른쪽으로 두 개의 눈을 갖고 있다. 그런데 뇌에서 나온 좌우의 시신경이 눈의 망막에까지 이르는 도중 교차하는 부분을 시신경 교차라고 한다. 시상하부(곤충으로 이야기하자면 뇌간부)라고 하는 생명의 유지를 위한 기본적인 중추와 붙어 있다. 이 부분에, 한 쌍의 둥글고 작은 신경 세포의 집단이 있다. 이것을 '시신경 교차 상핵'이라고 하는데, 이는 바퀴의 시신경엽에 해당된다. 포유류는 바로 이 부분에 생물 시계가 있다는 것이다. 포유류의 경우는 이 부분을 파괴하면 부신피질 호르몬의 분비가 나타내는 리듬이나, 송과선의 효소가 분비되는 리듬이 모두 사라져 버린다.
쥐의 경우에는 음식물을 먹는 리듬도, 물을 마시는 행동의 리듬도, 쳇바퀴를 도는 리듬도 모두 사라져 버린다. 그리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잠들고 깨어나는 리듬도 역시 사라져 버린다. 모든 활동의 리듬이 사라지고 불규칙적인 활동을 보이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포유류의 경우 빛의 수용체는 무엇일까? 그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것은 눈이다. 바깥 세상의 빛이 주는 정보는 눈의 시신경을 통해서 시신경 교차 상핵(생물 시계의 중심체)에 전달된다. 이 정보를 통해 시신경 교차 상핵은 시계로서의 작용을 하는 것이다. 시신경 교차 상핵(시계)에서 나온 정보는 다시 신경을 통해서 시상하부에 있는 수많은 생물 시계의 말단부로 전달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직접, 혹은 신경의 경로로, 혹은 호르몬의 경로로 몸의 이 구석 저 구석까지 명령을 내리는 것이다.
척추동물 중에서 비교적 하등한 동물인 개구리나 도마뱀 등은 포유류와 달리 눈을 잃어도 바깥 세상에서 오는 명암의 주기에 반응을 한다. 개구리나 도마뱀들에게 있어서는 생물 시계를 위한 빛의 수용체가 눈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데 이들의 몸에서 '송과선'이 있는 머리 부분의 피부를 까맣게 칠해 버리면 바깥 세상의 밝고 어두운 주기에 반응하지 않게 된다. 개구리나 도마뱀의 경우, 이들이 가진 빛의 수용체는 바로 송과선인 것이다. 그리고 과학자 중에는 바로 이 송과선이 빛의 수용체인 동시에 시계의 역할까지 맡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방의 생물 시계와 거의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다.
이제부터는 송과선에 대해 이야기하기로 하자. 사람의 송과선은 대뇌의 거의 한가운데에 해당되는 곳에 있다. 솔방울과 비슷한 모양으로 호르몬을 분비한다고 해서 송과선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다. 하등한 척추동물의 송과선은 긴 줄기 같은 것을 뻗치고 있는데, 그 줄기는 머리 꼭대기의 표면까지 뻗어 있다. 그리고 그 부분의 피부는 투명해서 빛을 느끼는 또 다른 눈이 되어 있다. 따라서 눈을 잃어도 바깥 세상의 빛의 주기에 따라 반응하는 것이다. 그러면 이제부터는 조류의 생물 시계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참새를 대상으로 해서 실험을 해 보았다. 참새의 송과선을 잘라내고 계속 주위를 어둡게 해 두었다. 그러자 며칠 안에 참새가 보이던 활동의 리듬이 사라져 버렸다.
다음번 실험에서는 활동의 리듬을 보이지 않게 된 참새의 몸 속에 다른 참새로부터 떼어낸 송과선을 이식해 주었다. 그러자 그 참새는 다시 활동의 리듬을 나타내게 되었다. 결국 이 실험을 통해 참새의 생물 시계는 송과선임을 알 수 있었다. 닭과 메추라기는 모두 꿩과의 새이다. 닭의 경우에는 참새와 마찬가지로 송과선에 생물 시계와 빛의 수용체가 모두 들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데 메추라기는 같은 꿩과의 새이지만 송과선이 아니라 시신경 교차 상핵에 시계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부분의 생물 시계가 계절적인 리듬을 나타내는 생식선의 증식을 명령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조류는 번식이나 철에 따른 이동, 태양 나침반의 기능 등에 관계하는 생물 시계의 중심체가 시신경 교차 상핵에 있는 것도 있고, 송과선에 있는 것도 있으며, 혹은 시신경 교차 상핵과 송과선 양쪽에 모두 있는 것도 있다고 하겠다.
여기서 일정한 결론을 얻을 수 있다. 조류는 그 종류에 따라 포유류처럼 고등한 생물 시계를 시신경 교차 상핵에 갖는 것도 있고, 하등한 척추동물처럼 송과선에 갖는 것도 있다. 또한 두 종류의 중간 단계에 있는 것도 있다. 결국 조류의 생물 시계는 하등한 척추동물과 같은 단계에서 고등한 포유류의 단계로 발전하는 도중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사람과 바퀴의 악수
여러분 중에서 바퀴를 좋아하는 친구는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사실 바퀴는 우리에게 해를 주는 벌레인데다가 생김새도 징그러운 느낌을 준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는 바퀴가 귀엽게 생겼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나, 싫어하는 사람이 훨씬 더 많다. 그러니 사람이 바퀴와 악수를 한다고 하면 깜짝 놀랄 것이다. 바퀴의 발이 사람과 악수를 할 만큼 크지도 않을 뿐더러 만일 그렇게 커다란 발을 가진 바퀴가 있다면 놀라서 도망을 가거나, 아니면 너무도 무서워서 얼어붙어 버릴 것이다. 또 우리는 바퀴를 하등한 동물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사람을 포함한 포유동물과 비교했을 때, 바퀴라는 동물은 아주 하등한 것으로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과연 정말로 바퀴를 포유류에 비해 하등한 동물이라 할 수 있을까요?"
이런 질문을 던지면 여러분은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그야, 물론이지요. 그 정도는 삼척동자도 다 알 거예요."
위에서 한 질문의 내용을 파악하려면 우리는 동물의 진화 과정에 대한 지식을 가져야만 한다. 지구가 세상에 태어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46억 년 전이다. 그리고 생명이 이 세상에 처음 모습을 나타낸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35억년 전이다. 지구는 46억년 전 탄생한 뒤, 지금까지 줄곧 변화해 왔다. 그리고 지구상의 생물도 변화하는 지구에서 더욱 잘 살아남을 수 있도록 변화해 왔다. 생물의 변화는 점진적으로 이루어졌다. 이렇게 생물이 점진적으로 발전해 온 것을 진화라고 한다. 처음에는 하나의 세포로 이루어진 작은 생명체였던 것이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여 사람과 같은 복잡한 구조를 가진 생물로 발달해 온 것이다. 현재 지구상에 살고 있는 모든 생물은 35억 년 동안 여러 생물이 진화해 온 결과이다. 현재 지구상에서 살고 있는 다양한 생물은 서로 비슷한 관계에 있는 것도 있고, 서로 아주 많이 다른 것도 있다. 이렇게 생물 서로가 비슷하거나 다른 것은 그 생물이 진화해 온 과정에서 서로 멀리 떨어져 있거나 가까이 붙어 있기 때문이다. 생물들 사이의 이런 가깝고 먼 관계를 조사하면 계통수라는 것을 그릴 수 있다. 계통수란 생물의 계통을 나타내 주는 나무라는 뜻이다.
어떤 생물이 이 나무의 뿌리에 가까이 있을수록 오래 전에 지구상에 태어난 하등한 생물이라는 뜻이 되고, 가지 끝으로 올라갈수록 가까운 과거에 생겨난 고등한 생물이라는 뜻이다. 전체 생물의 계통은 동물과 식물의 두 가지 방향으로 갈라진다. 동물이든 식물이든, 계통을 밝히는 일은 생물의 몸 구조가 보이는 여러 가지 기본적인 특징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 그 특징을 모두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동물의 경우를 예로 들어 몇 가지만 이야기해 보면, 몸의 대칭 관계라든가 중배엽의 유무, 체강이 있는가 없는가, 척추가 있는가 하는 등의 특징을 가지고 계통을 밝히고 있다.
동물 중에서 가장 하등한 동물은 뭐니뭐니해도 원생동물이다. 단 하나의 세포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러 세포로 이루어진 동물 중에서 가장 하등한 것은 중생동물이다. 중생동물은 많은 세포로 이루어져 있기는 하지만 기관이나 조직이 전혀 분화되어 있지 않은 아주 간단한 구조를 갖고 있다. 동물의 계통수는 그 위로 해면동물, 강장동물 등등으로 뻗어나가고 있다. 한데 식물의 계통수와 동물의 계통수에는 언뜻 보았을 때도 커다란 차이점이 나타나 있다. 식물의 경우는 계통수의 커다란 줄기가 하나로 뻗어 나가지만, 동물의 계통수는 두 줄기로 뻗어나가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물의 계통수는 영어의 Y자 모양을 하고 있다. 이는 동물이 두 갈래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는 것을 이야기해 준다. 이제는 직접 동물의 계통수를 살펴보도록 하자.
Y자 모양의 왼쪽에 있는 가지는 선구동물 그리고 오른쪽은 후구동물이라고 한다. 선구동물과 후구동물로 나뉘는 기준은 체강을 둘러싸는 중배엽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따라 갈라진다. 선구동물과 후구동물의 두 가지는 해파리나 히드라가 속하는 강장동물에서 갈라져 나간다. 그 각각의 줄기에서는 뿌리 쪽으로 내려갈수록 하등한 동물이고 가지 끝으로 올라갈수록 더욱 진화된 동물이다. 가지 끝으로 올라갈수록 모양이나 성질, 그리고 기능까지 모두 진화해 가는 것이다. 한데 주의할 것은 고등하고 하등한 관계를 정할 수 있는 것은 하나의 줄기에 있는 동물 사이에서뿐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림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왼쪽 줄기에서 진화의 꼭대기에 있는 동물은 곤충이고, 오른쪽 줄기에서 진화의 꼭대기에 있는 동물은 포유류이다. 따라서 이 두 동물 사이에서는 어느 것이 어느 것보다 더 고등하다, 혹은 하등하다는 이야기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포유류가 지구상에 나타난 것은 지금으로부터 6천만년 전이다. 그리고 사람이 나타난 것은 지금으로부터 백만년 전이다. 생명체가 35억년 전에 태어난 것을 생각해 보면 포유류, 그 중에서도 사람이 나타난 것은 아주 최근의 일인 것이다. 그렇다면 바퀴가 이 지구상에 등장한 것은 언제쯤일까? 대략 3억년 전이라고 알려져 있다. 바퀴는 3억년 전 지구상에 나타난 뒤로 거의 모습을 변화시키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러니 바퀴는 생물계의 놀라운 승자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모든 생물은 살아가면서 일정한 생물 시계를 갖고 있다. 한데 이 생물 시계의 구조나 기능은 종이 진화함에 따라 보다 발전된 양상을 띠게 되고, 보다 복잡한 것으로 되어간다. 바퀴의 생물 시계가 가진 구조는 이미 3억년 전에 완성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구상에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는 우리 사람이 가진 생물 시계는 바퀴의 것에 비해 엄청난 세월이 흐른 뒤에 만들어졌다.
그런데 Y자 모양의 계통수에서 진화해 나가는 두 정점에 있는 사람과 바퀴의 생물 시계를 비교했을 때, 사람의 시계가 바퀴의 시계와 다른 점은 시계의 말단부가 더 복잡하게 발달해 있다는 것뿐이다. 따라서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사람과 바퀴의 생물 시계가 가진 구조는 해부학적으로 거의 비슷한 것이다. 정말 놀라운 일이다. 이 책에서는 다루지 않았지만 사람과 바퀴는 호르몬을 분비하는 구조까지 꼭 닮아 있다. 여러분은 곤충이 애벌레에서 번데기로, 번데기에서 엄지벌레로 아주 놀랍게 변신해 간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모든 변태를 조절하는 것은 생리를 지배하고 있는 활성 펩티드이다. 사람의 경우에도 활성 펩티드가 생리 조절 작용을 맡고 있다. 그 종류와 작용, 기구까지 거의 비슷한 것이다. 생명이 있는 모든 것에 있어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생리의 기구는 단순하고 복잡하다는 식의 차이가 있다고는 해도, 근본적으로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적어도 후구동물의 제왕인 사람과 선구동물의 왕자인 바퀴는 생물 시계의 구조에서, 그리고 활성 펩티드의 측면에서, 공통적인 생리적 기반에 서 있는 것이다.
사람이 바퀴와 악수할 수 있다는 것은 이런 뜻에서 한 이야기이다. 물론 바퀴가 사람과 비슷한 생물 시계를 가진 진화한 동물이라고 해서 바퀴와 사이좋게 지낼 수는 없을 것이다. 진화되었든 되지 않았든 바퀴는 해로운 벌레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언젠가는 사람이 식물과도 악수할 날이 올 것이라고 하면, 너무 과장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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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경제/경영/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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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벌써 절망합니까 - 정문술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김두철이 그려온 설계도를 기본으로 하고 여기저기서 입수한 핸들러 관련 자료들을 참고로 해서 천신만고 끝에 드디어 1차분 설계도와 개발계획서를 작성했다. 나와 백정규는 이것을 들고 다짜고짜 부천의 S사로 찾아갔다. S사에서는 이미 핸들러 국한화를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설계도면을 가지고 불쑥 찾아갔으니 무척 반가웠던 모양이었다. 시간을 두고 진지하게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설계도와 개발계획서를 찬찬히 살펴보더니 그들도 매우 놀라워했다. '매거진'이나 만들던 회사의 기술이 이 정도였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래도 믿을 수가 없다는 투였다.
"믿어보십시오.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정 그러시다면, 헤드만이라도 만들어오시면 어떨까요."
헤드만이라도 만들어온다면 믿어주겠다는 이야기였다. 우리는 한 달이라는 기한을 정하고 곧바로 헤드모듈 제작에 들어갔다. 쉽지는 않았지만 회사가 사느냐 죽느냐 하는 상황이었던 만큼 우리는 사력을 다해 그 일에 매달렸다. 지금의 입장에서 본다면 매우 원시적인 형태였지만 아무튼 우리는 약속한 한 다 안에 헤드를 만들었다. 샘플을 검토해보더니 그들은 매우 만족스러워했다. 그러나 아무래도 전체 시제품이 만들어진 것을 봐야 거래를 시작할 수 있겠다며 다시 말을 바꿨다. 맥 빠지는 일이었지만 할 수 없었다. 우리는 다시 시제품 제작에 들어갔다. 완전한 무에서 유를 창조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입장으로서도 급하긴 마찬가지였다. 천신만고 끝에 드디어 장비가 만들어졌다. 우리 손으로 만든 최초의 핸들러였다. 물론 아직 완전한 제품은 아니었다. S사에 보여줄 불완전한 시제품일 뿐이었다. 약속한 6개월은 아직 넉넉히 남아 있었지만 우리로서는 당장 하루가 급할 지경이었다. 얼마나 급하게 만들었던지 차에 싣는 도중 다리받침이 건들거리는 것이 보였다. 엔지니어가 차 우에 올라타서 이동 중에 볼트를 조여야 했던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어쨌거나 우리는 프로토타입을 차에 싣고 S사를 찾아갔다.
그 지경이었으니 우리의 걱정이야 오죽했겠는가. 시험가동에 들어가자 나는 긴장으로 숨이 멎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감동스럽게도 테스트 결과는 매우 훌륭했다. 당시 S사에서 사용하고 있던 일본 태섹의 "TO-92 핸들러"보다 생산량이 오히려 훨씬 높게 나왔던 것이다 기쁘긴 했지만 나로서도 이해가 잘 안 되는 상황이었다. 하늘이 도운 덕분으로 우리는 그 자리에서 3대의 주문을 받을 수 있었다. 기술지원 차원에서 계약조거도 우리측에 매우 유리하게 떨어졌다. R들로서도 우리의 가능성을 보기 시작한 것이다. 미래산업은 오랜만에 활기를 되찾았다. 얼마 안 되는 주문이었지만 제대로 해낸다면 앞으로 얼마든지 시장은 확대될 수 있었다.
우리는 일본 업체들의 핸들러를 개조하거나 복제함으로써 모방 학습을 마친 뒤, 비(비)메모리 DIP타입 테스트 핸들러 개발에 착수했다. 나는 당시 홍릉에 있던 산업연구원과 KAIST를 들락거리면서 자료조사를 시작했다. 특히 미국과 독일, 일본의 데이터베이스들을 검색하면서 에어베어링, 정밀 서보 모터, 정밀 스태핑 모터, 고정밀 베어링 등등에 관한 논문과 제품 목록들을 조사하는 한편으로 기술 관련 문헌정보와 카탈로그, 기술잡지, 특허정보 등 도 검토했다. 핸들러를 개발하는 석 달 동안 나는 일주일에 3일 밤낮을 반드시 그곳에서 보냈다. 쉰이 넘은 사람이 하도 극성을 부려대니 산업연구원의 연구원들도 성심껏 도와주기 시작했다. 꼭 그렇지 않아도 당시의 산업연구원은 중소기업의 기술자원에 대한 열의가 대단했다. 그들의 도움으로 선진국의 핸들러 제품들을 분석하고, 면밀한 시장파악도 가능해졌다. 특히 산업연구원의 문인혁 책임연구원은 핸들러 국산화계획에 큰 관심을 가지고 그 이후로도 몇 년 동안 우리들에게 도움을 주었다.
나는 복잡하고 다양한 자료들을 정리해서 엔지니어들이 즉석에서 참조할 수 있도록 가져다주는 일을 반복했다. 엔지니어들이 핸들러를 개발하는 동안 나는 나름대로 외곽 지원업무를 수행했던 것이다. 그때의 내 심정은 과거시험을 준비하는 아들을 바라보는 어미의 그것이었다. 땀 흘리며 연구에 몰두하는 엔지니어들을 보면 한없이 안타까웠고, 조심스러웠으며, 고마웠다. 안팎으로 고생을 한 보람이 있어 우리는 마침내 핸들러 개발에 성공할 수 있었다. 한번에 IC 하나씩 로딩해서 테스팅하는 원시적인 장비였지만 그마저도 경험 없는 우리로서는 쉽지 않았다. 개발에 성공하고 나서 모델명을 붙일 때는 정말 감개무량했다. '미래'의 이니셜을 따서 'MS-3000' 이라고 이름 붙였다. 우리가 우리 손으로 개발한 최초의 고유모델이었다.
우리가 납품한 3대의 '트랜지스터 테스트 핸들러'는 한동안 무리 없이 잘 돌아갔다. 그러나 막상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하니 걷잡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경험의 문제였다. 기계는 어찌어찌 만들었으나 현장에서 오랫동안 테스트해볼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나와 우리 엔지니어들은 거의 현장으로 출근하다시피 했다. 돌아가는 기계를 계속 모니터링 하면서 문제가 생기면 그 자리에서 곧바로 분석과 수리에 들어갔다. 연구실에서는 도저히 생각지도 못했던 문제들이었고, 우리는 당황스러웠지만 그럭저럭 해결해나가고 있었다. 다행히 S사측에서는 국산화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적응 기려니 여기고 별 추궁을 하지 않았다. 고마운 노릇이었다.
우리의 성공을 목격함으로써 핸들러 국산화의 가능성을 믿게된 S사에서는 곧이어 일본 곡사이 덴키의 IC 테스트 핸들러 모델명 '504'의 기능분석과 복제작업을 우리에게 의뢰했다. 그것마저 성공하자 계속해서 태섹의 장비 몇 가지에 대해서도 복제 내지는 개조작업을 떠맡게 되었다. 우리는 무슨 일이든 하겠다고 덤볐고, S사 역시 우리에게 무슨 일이든 맡기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다시 일어서리라.'는 오기와 투지말고는 내게 정말 아무 것도 없었다. 헤드만이라도 만들어온다면 믿어주겠다는 이야기였다. 우리는 한달이라는 기한을 정하고 곧바로 헤드모듈 제작에 들어갔다. 쉽지는 않았지만 회사가 사느냐 죽느냐 하는 상황이었던 만큼 우리는 사력을 다해 그 일에 매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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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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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 - 피천득
전화
웬 전화가 다 있느냐고? 지금보다도 교통이 더 나쁘던 때 당인리로 나를 찾아왔던 제자들이 내가 없어 허탕을 치는 일이 있었다. 그후 그들이 우리집에 전화를 놓아주려고 동창들간에 돈을 모으고 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당황한 나는 급히 가설비를 마련하고 어떤 분의 호의로 전화를 놓게 되었다. 우리집 전화는 매우 한가하다. 하루에 두서너 번 또는 대여섯 번 전화가 오고 그만한 횟수의 전화를 걸게 된다. 내가 거는 전화나 내게 오는 전화는 '지금 눈이 오고 있습니다' 하는 그런 전화다. 실리적 목적이 있는 전화라면 의사 친구를 괴롭게 하는 전화진찰 정도다.
오늘도 신경통에 대하여 문의를 하였다. 그런데 아직 주사를 맞을 생각은 없다. 전화가 주는 혜택은 받으면서 전화를 미워하는 사람이 있다. 팬 아메리칸 여객기를 타고 앉아서 기계 문명을 저주하는 바라문 승려와 같은 사람이다. 물론 전화는 성가실 때가 많다. 한밤에 걸려오는 전화, 목욕할 때 걸려오는 전화, 독서삼매에 들어 있을 때 걸려오는 전화, 게다가 그것이 잘못 걸려온 전화라면 화가 아니 날 수 없다. 그러나 그 화는 금방 가신다. 불쾌한 상대가 아니라면 잘못 걸려온 전화라도 그다지 짜증나는 일은 아니다. 한번은 잘못 걸려온 전화를 받았는데, 참으로 명랑한 목소리였다. 그리고 "미안합니다" 하는 신선한 웃음소리는 갑자기 젊음을 느끼게 하였다. 나는 이 이름 모르는 여성에게 감사의 뜻을 전달하고 싶다.
갖은 괴로움을 견디면서도 서울을 떠나지 않는 이유의 하나는 친구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몇몇 사람 이외에는 서로 자주 만나지도 못하지만, 그래도 서울에서 살면 언제나 볼 수 있다는 가능성을 향유하고 있는 것이다. 다소 괴로움이 따르더라도 전화를 가짐은 불현듯 통사정을 하고 싶은 때, 목소리라도 들어보고 싶을 때, 이런 때를 위해서다. 전화는 걸지 않더라도 언제나 걸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점에서 그 가치가 더 크다. 전화가 있음으로써 내 집과 친구들 집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자못 든든할 때가 있다. 전선이 아니라도 정의 흐름은 언제 어느 데서고 닿을 수 있지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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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방황은 큰 사람을 낳는다 - 마 데바 와두다
16. 모방
<남의 흉내나 내고 있진 않은 지 살펴 보라. 남을 흉내내면 자기 속안의 진짜 씨앗은 살아날 수 없으니. 그대 의식의 칼로 베어라. 흉내내기를. 아무리 고통스럽다 해도 단칼에 베어라. 고통이 뼛속까지 사무치겠으나 그 베힘으로 그대 자신, 그대 진면목이 드러나리니>
구지 선사는 선문답으로 엄지손가락을 일으켜 세우는 것으로 유명하였다. 그런데 한 어린 학승이 선사를 흉내내어 누가 물으면 엄지손가락을 번쩍번쩍 일으켜 세우는 것이었다. 구지 선사가 그 얘기를 듣고 가봤더니 마침 녀석이 그 짓거리를 하고 있었다. 선사는 녀석의 팔목을 꽉 붙들고는 칼을 빼들어 엄지손가락을 싹뚝 잘라버렸다. 어린 학승은 아우성을 치며 달아나기 시작했다. 선사가 외쳤다.
<이놈, 게 섰거라!>
학승이 엄칫 서서 뒤돌아 보니 고통의 눈물 사이로 얼핏 스승이 보였는데, 엄지손가락을 번쩍 치켜 올려 보이고 있는 거였다. 학승이 저도 모르게 습관대로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리려는 찰나... 자기 손가락이 없음을 알아챘다. 학승은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깨쳤던 것이다.
스승은 손가락 하나라도 불필요한 행동을 결코 않는다. 구지 선사가 날이면 날마다 온종일 엄지손가락을 일으켜 세우곤 했던 게 아니다. 구지 선사는 선적인 물음에 답할 때만 그리했다. 왜? 그대의 모든 의문, 의혹들은 그대가 조각나 있고 찢겨져 있고 혼란 속에 있고 부조화 속에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 명상이란 무엇인가? 그건 그대를 통합하는 것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구지 선사에게 있어 설법이나 강의는 부차적이다. 그에게는 엄지손가락 치켜들기가 진짜 알맹이다. 구지 선사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이어라! 그러면 모든 의문이 플리리니" 한데 어린 학승이 무턱대고 선사를 흉내내기 시작했다. 당연하지만 그 흉내내기는 자기 자신을 알지 못할 엉뚱한 곳으로 데려갔다. 흉내내기란 아무 근거도 없는 망상같은 것이다. 그건 전혀 자기 자신에게서 일어나는 게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속안에 자신의 씨앗을 간직하고 있다. 그런데 남을 흉내내기 시작하면 그 씨앗은 죽음을 면치 못하게 된다.
흉내내기는 가차없이 베어야 한다. 여기서 엄지손가락은 바로 베어져야만 하는 흉내내기이다. 어린 학승은 아주 호된 맛을 봤을 것이다. 그 고통이 그 존재의 뿌리 밑까지 사무쳤을 것이다. 바로 그 사무치는 순간에 구지 선사는 외쳤다. "게 섰거라!"하고. 그러자 사무치던 고통이 순식간에 사라졌고... 스승이 엄지손가락을 치켜든 것을 본 제자는 자신도 모르게 제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려다가 처음으로 알아챘다. 자신이 곧 몸뚱아리가 아님을 제자는 눈 떠 알았다. 자신은 바로 영혼이며, 몸뚱아리는 한낱 영혼의 집임을. 그대는 속안의 빛이다. 램프가 아니라 불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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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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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느질》- 윌리엄 아돌프 보게로(1898)]
- 그림을 누르면 원본 크기로 보실 수 있습니다. - 위키백과 20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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