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 - 함석헌
제1부
겨울이 만일 온다면 (2/2)
나라를 건지는 용사의 공로는, 그가 어떻게 죽기로 싸워 쳐들어오는 대적을 물리쳤나 하는 것으로 결정되는 것이지, 결코 그가 싸움에 나가기 전 마을에서 하던 작은 행동의 잘잘못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반항, 항의, 생명의 바탕이 만일 자유에 있다면 그 자유를 구속하고 빼앗으려는 세력이 밖에서 오고, 말라붙으려는 제도.전통의 때가 안에서 끼려 할 때, 거기 대해 일어나 결러대는 정신이야말로 가장 귀한 도덕이라 할 수밖에 없다. resist, revolt, protest. 다 좋은 말이다. 만일 resist란 말이 없다면 나는 영어를 아니 배울 것이다. 누가 영국을 gentleman의 나라라 하는가? 그렇다, 영국은 과연 gentle 의 나라다. 점잖은, 온순한, 신사의 나라다. 그러나 영국 사람은 결코 코를 땅에 대는 종 같은 온순을 하는 백성이 아니다. 영국 역사는 옳게 말하면 gentle과 resist,곧 점잖음과 결러댐이 섞여 짜인 역사다.
마그나카르타가 무엇인가? 의회정치가 무엇인가? 스코틀랜드가 무엇인가? 퓨리턴이 무엇이며, 메이플라워가 무엇이며, 미국 독립이 무엇이며, 남북전쟁이 무언가? 다, 다 이 반항정신의 나타난 것 아닌가? 만일 크롬웰, 밀턴, 칼라일, 오코너가 없었던들 영국은 없었을 것이다. 워스워드보다는 브라우닝이 귀하고, 처칠은 잊는 때가 와도 버나드 쇼는 잊는 때가 올 수 없을 것이다. 영국 역사는 반항의 역사, 항의의 역사, 혁명의 역사다. 영국의 겉옷은 신사복 gentlemanship일 것이다. 그러나 그 속살은 resistance다. 북해의 물결처럼 결러댐이다. 셸리는 그 한 물결이다.
영국 역사만일까? 어느 역사는 반항, 항의의 역사 아닌가? 루소 아니라면 프랑스가 없었을 것이요, 루터가 아니하면 독일이 없었을 것이요, 에머슨.소로.휘트먼이 아니라면 미국은 없다. 20세기에 제일 큰 세계적 사건이 있다면 그것은 인도의 독립일 것이다. 3억의 민중이 200년 넘는 압박에서 칼에 피 하나 묻히지 않고 해방이 됐다. 그런 일이 이 다음은 몰라도 지금까지 있은 일이 없다. 그런데 그것이 어째서 나왔느냐 하면 간디의‘사티아그라하’에서 나왔다. ‘사티아그라하’는 악의 세력에 대하여 용감히 반항하고 싸우는 일이다. 간디에게 있어서는 가장 첫째 가는 죄악은 비겁이다. 사실 만일 스물다섯 살의 젊은 간디가 아프리카 조그마한 기차 정거장에서 백인 차장이 발길로 차는 대로 일등표를 가지고도 삼등칸으로 수굿수굿 갔더라면, 시골길 역마차에서 마부가 끌어내리는 대로 벌벌 떨고 내려갔더라면, 인도 3억의 자유는 없다.
그가 그 정거장 추운 밤, 오들오들 떨면서 일생 두고 인종차별이라는 인류의 부끄러운 죄악과 싸울 것을 결심했을 때, 이를 악물고 마차채를 붙들고 끌어내리려는 백인과 모가지가 빠지라고 놓지 않고 싸웠을 때, 인도 민족의 생존권이 보장이 됐다. 오늘도 서양 갔다오는 사람은 다 인도 사람의 자부심이란 굉장한 것이더라 하는데 아직도 손가락으로 밑을 닦는 인도 민족으로서 그런 제노라 내버티는 정신은 간디가 만일‘사루마다’바람으로 대영제국 황제 앞엘 가지 않았더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간디의 눈엔 인권의 자유, 존엄이 문제지, 황제니 체면이니 전통이니 그런 따위가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간디의 눈은 참의 눈이다. 그러므로 이겼다. 참은 반항한다. 결러댄다. 반항할 줄 모르는 백성은 망한다. 모르겠거든 거울을 대해 네 꼴을 보려무나! 평화정신 그러나 내가 반항을 좋아한다면 또 그만큼 못지않게 순종, 온건, 평화도 좋아한다. 반항은 내가 후천적으로 의식적으로, 뜻으로, 사상으로 하는 것인지 몰라도, 평화는 내 선천적으로, 바탕으로, 버릇으로, 감정으로 된 대로 하는 것이다.
나는 타고나기를 순종으로, 온순으로 났다. 인간 세상에 나서부터 나는 우리 집안에서 싸우는 걸 보지 못하고 자란 사람이다. 나는 언제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가 자기네끼리 혹은 근처의 남과 싸우는 것을 본 기억이 없다. 아버지 어머니가 다투는 것을 본 일도 없고 남과 시비하는 것을 본 일도 없다. 가난이야 물론 가난한 농사꾼이지만 그야말로 평화의 가정에서 자라났다. 나도 누구하고 쌈이나 다툼을 해본 일이 별로 없다. 그러므로 누구에세 매 하나 맞아본 일이 없다. 말썽 없는 내게다 손을 대어 매를 때린 영광은 저 제국주의 일본 경찰과 공산주의 북한 정부에게 돌린다. 그리고 나를 괴롭힌 이들 중에는 민주주의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경찰도 한몫끼어 있다. 어려서부터 착하단 말을 들은 일은 있어도 사납다, 모질다 하는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다. 겁 많고 부끄럼 많아 사람 많은 데는 나가지고 못했고 얼굴을 못 들었고 말을 못했다.
절을 시킬 때 그것처럼 어려운 것은 없었다. 절할 경우를 될수록 피했다, 정말 교만해 그런 것은 아닌데 그렇게 안 훈장 따위도 있었다. 어려서 연설을 하라는데 어쩔 줄을 몰랐다. 평소에 놀 땐 제가 뭔지를 내가 잘 아는 동무들이 다 나가 제법 이야기를 하는데 나는 두 다리가 떨려서 일어서지도 못하고 그만 땅에 엎디어버렸다. 그런데 그 내가 이젠 욕 잘한다, 험구라 하는 말을 듣게 되었으니 무슨 일일까? 누가 그렇게 만들었을까? 내가 resist를 좋아한다 그랬지. 그러나 내가 영어라고 처음 얻어들은 말은 이상하게도 그와는 반대되는 gentleman이다. 그러니 그도 알 수 없는 이상한 일 아닌가? 나는 생각할수록 그것이 무슨 운명의 장난같이, 하나님이 일부러 꾸민 창세놀음같이 보여서 못견디겠다. 하기야 영어가 내 사람 노릇에 무슨 관계가 있으리오마는 그 것은 내게 있어서는 세계를 내다보는 창문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영어 학자 사이토가 “하늘나라의 말은 아마 영어일 것”이라고 했지만 내게는 정말 부족하나마 영어는 정신나라의 국어다. 그것은 그렇고, 내가 gentleman이라는 영어를 처음 듣게 된 이야기는 이렇다.
내가 난 것이 1901년이요, 난 곳이 우리나라 맨 서북 끄트머리 평안북도 용천에서도 바닷가니 그때 거기 영어고 무어고 알았을 리가 없다. 그런데 그때 내 집안 형 되는 이에 함석은이라는 이가 있어서 일본 동경에 유학을 하고 있었다. 내가 여남은 살 되던 때 이야기다. 그때 서울은 또 몰라도 그런 시골서 일본 유학이란 놀라운 일이다. 그러므로 그가 혹 방학에 집에 돌아오는 때면 온 문중은 말할 것도 없고 온 동리가 나가 마중을 할 지경이었다. 그런데 그가 언제 방학에 왔을 때 동네의 애 어른이 다 모인 데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엇다. 그때는 일어나려던 민족이 갓 망한 때인지라 모여만 앉으면 그저 적개심에서 나오는 이야기뿐이었다. 옛날에는 우리나라가 일본보다 앞섰다는 둥, 서산대사.사명당이 사람 가죽 300장을 받아왔다는 둥, 일본 관리가 어느 미국 선교사한테꿈쩍을 못했다는 둥, 이런 따위 이야기였다. 그가 그때 동경의 선물로 이야기를 하는 중에 지금 내 기억에 남아있는 것은 이승만 박사의 무슨 일화였다.
그때 이승만 박사라면 민족의 자랑거리로 여길이만큼 알았다. 그런데 그때 그가 말한 이야기의 내용은 지금 다 잊어버려 알 수가 없고 다만 ‘젠트맨’이라는 한 마디가 남아 있을 뿐이다. 미국 어느 공원에서 청년 이승만 박사가 연설을 했다든가 했는데, 어떤 미국 사람이 퍽 동정을 한다 할까, 감복한다 할까, 그때 들은 느낌으로는, 어쨌거나 그러한 태도로 와서 보고, “젠트맨, 당신이 어느 나라 사람이냐?”운운하고 말을 했다는 것이다. 그 ‘젠트맨’이란 말은 그때 퍽 이상하게 들렸기 때문에 그러면서도 타고난 수줍음에 묻지도 못하고 말았기 때문에 지금도 기억이 깊이 있지만, 그 것은 물론 이제 와 생각하면 내가 ‘젠틀맨’의 발음을 잘못 들어서 그렇게 된 것이었다. 오랫동안 그 ‘젠트맨’이 무슨 소린가 하고 궁금했었다. 그 이야기를 하던 그는 그 후 대학을 졸업하고 돌아와 평양 숭덕학교에 선생으로 조금 있다가 3.1운동을 맞이하게 되었다.
평안남북도 청년운동의 책임을 맡았었고, 사실 평양의 학생들을 모아 3.1운동 때 활동을 하게 일을 만든 것은 그였다. 그 후 안동으로 피하여 몇 해를 있다가 일본 군인의 습격을 몇 차례 받아 죽을 뻔하다가 부상당하고 잡혀 신의주 감옥에 복역하고 나와 폐병으로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때에 그 눈물을 섞어서 ‘젠트맨’하며 이야기를 하던 그 입 맵시를 내가 지금도 기억하건만 그는 없다. 반항 투쟁하던 그는 없고 ‘젠트맨’은 남아 있다. 그때의 그 젠트맨 이승만 박사가 대통령이 될 줄은 참 몰랐고, 그 대통령과 이 서울에서 살 줄은 나도 그때의 그 어린아이로는 꿈도 못 꾸었다. 그렇게 영어에서 가장 먼저 들은 말은 내 천성답게 젠틀인데, 온순인데, 무슨 까닭으로 내 맘은 오늘 resist를 좋아하게 됐을까? 앞으로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젠틀맨이 될 것 같지는 않고, 점점 더 resist 하고 revolt하고 repel하고 protest해야만 될 듯이 보이니! 그런데 또 알 수 없는 것이 있다.
당년의 젠틀맨 이박사를 머리로 삼는 우리 정부는 무력주의요, 통치주의요, 구속주의인데, 이 서풍에 끼어 반항정신 좋아하는 나는 도리어 평화정신, 세계주의, 빈전론을 부르짖고 싶으니! 영국 역사가 그랬던 것같이 미국 역사, 인도 역사가 그랬던 것같이, 우리 역사는 평화와 반항의 두 정신으로 섞어 짜지 못하나? gentle은 받아들고 resist는 골라든 나로 서는 그래야만 될 것같이만 보이는데. 죄악을 정말 이기는 참 반항은 평화정신으로만, 비폭력으로만 될것 아닌가? 모든 사람이 다 자유로 온전한 발달을 할 수 있는 참평화, 창조적인 평화는 죄악의 세력에 대해 한 몸을 내놓고 날쌔게, 끈덕지게 결러대서만 될 것 아닌가? 남은 몰라도 나는 gentle과 revolt의 두 바람이 마주쳐 돌아가는 회오리바람을 탄 사람이다. 반항은 하지만 미워하진 말자, 싸우기는 하지만 주먹질은 말자. 모순인가? 모순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모순이 무서울 것 없지 않나? 삶은 모순인데. 모순이란 옛말은, 한 사람이 창도 만들어 팔고 방패도 만들어 파는 데서 나왔다 한다. 창을 들고는 내가 만든 창은 못 뚫을 방패가 없다 하고, 방패를 들고는 내가 만든 방패는 어떤 창을 가지고도 못 뚫는다 했기 때문에, 묻는 자가 가서 “그럼 네 창으로 네 방패를 치면 어떠냐?”하니 대답을 못해 그래서로 맞지 않는 말을 모순이라 한다지.
그 사람이 대답은 못한 대신 살았을 것이다. 살자니 둘 다 팔았지. 이 창만 가지면 된다는 사람들, 창을 맘껏 쓰고는 누구와 살려나? 창을 팔아먹을수록 방패를 만들어야 하지 않나? 칼은 죽이지 말잔 칼이지 죽이잔 칼이 아니다. 주먹은 쥐지 말잔 주먹이지 쥐잔 주먹이 아니다. 주먹을 쥐면 힘이지만, 사실 그 힘은 쥐지 말고 펴서 열 손가락을 놀려서만 써지는 것이다. 손을 펴서 서로 잡으면 살지만 주먹을 쥐면 아버지 아들 새도 서로 죽임이다. 안는 팔, 이끄는 손은 쥔 주먹으로는 아니된다.
모순, 무서울 것 없다. 나는 그냥 회오리바람을 타고 갈 것이다. 회오리바람이 무서운 것은 그 변두리에 있는 놈이지, 회오리바람의 중심엔 하나님의 보좌가 있다더라. 그러게 그대들은 보지 않았나, 회오리바람의 중심이 하늘에 통하는 것을 용이 오른다 하지 않았던가? 나는 저 상한 갈대도 꺾지 않고 끄물거리는 등잔도 불지 않으면서, 누구를 칠 듯이 채찍을 만들어 성전에서 장사꾼을 내몰며 “형제보고 어리석은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에 간다” 하면서, 한 나라의 임금보고는 ‘여우’라고 하는, 그래 그 결과 십자가에 달린 저 모순의 사람 중의 모순의 사람이 좋더라.
금년도 겨울이 닥쳐온다. 20세기도 50대를 지나고 있다. 내 머리에도 얼음 폭포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겨울이 아닌가? 겨울이다. 겨울이 온다. 겨울이 왔다. 해마다 오는 겨울이건만 이 어리석은 인생들이 처음 당하기나 하는 것처럼 벌벌 떨고 갈팡질팡하지 않나? 겨울 준비는 됐나?김장을 해놓고 장작을 사서 더미면 겨울 준비는 다 됐을까? 역사에 오는 겨울, 맘에 오는 겨울을 어찌하리오? 셸리는 어디 갔나? 젠틀맨은 무엇을 하고 있나? 정말 젠틀맨은 헨리 파트리크 때와 마찬가지로 ‘평화, 평화’하기만 하겠나? 비겁이 평화일까? 폭력이 정말 이김일까? 그렇다. 서풍만 한번 불면 공중에 흩날리는 잎새 모양으로 ‘누르테, 검은테, 헤멀끔, 불그스름, 염병 맞어’ 새 시대의 폭풍에 쫓겨가는 무리, 그러나 또 저희도 모르게 그러면서도 새 역사의 씨를 뿌리는 무리 앞에 서풍 노래밖에 무슨 노래를 부르리오.
그럼 나는 셸리와 아울러 나의 만가를 부르련다. 예언의 나팔을 불련다. 브라우닝도 와서 같이 참여하라. “가장 좋은 것은 아직도 아니 왔다!” 나는 저 숲처럼 네 거문고로 만들려무나. 내 잎새가 그 잎새같이 떨어지기로서 뭐냐? 힘있는 네 하모니의 부르짖음은 그 둘 속에서 깊은 가을 소리를 뽑아내지 않겠느냐?
슬프기는 하건만 녹아드는 듯한 갈 노래.
무서운 영아 네가 나려무나!
이 부시대는 자야 시든 잎을 날려
다시 살려내듯 내 죽은 사상을 누리기에 몰아쳐주려무나.
그리하여 이 부르는 노래로 인하여.
꺼지지 않는 아궁이에서 재와 불꽃을 날리듯이
내 말을 인류 속에 흩어주려무나!
내 입술을 통해 저 잠자는 땅 위에
예언의 나팔을 불어주려무나! 오 바람아!
겨울이 만일 온다면 봄이 어찌 멀었으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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