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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편지】: 제989호
2020.6.3. (음 4.13. - 윤) / 발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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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오늘의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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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젊었을 때 나는 똑똑한 사람들을 훌륭한 인간으로 알았다. 이제 나이가 들어 나는 친절한 사람들이야말로 훌륭한 인간임을 안다. - 아브라함 헤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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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말글 / 한글바로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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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로인
“소리 없는 항의가 퍼져나갔다. ‘볼만하다 해서 갔더니 칼질 장면만 나오더라’는 볼멘소리였다.” 2007년 일부 관객의 반응을 전한 영화 관계자의 말이다. 같은 때 개봉한 ‘색계’를 ‘식객’으로 잘못 알고 관람한 이들이 제법 되었던 모양이다. 이 영화로 세계적인 스타가 된 탕웨이가 한국 감독과 결혼한다는 소식이 나왔다. 매체들은 ‘한·중 정상회담’을 머리기사로 다루지만 인터넷은 ‘한·중 겹사돈’ 소식으로 뜨겁다. 한국 누리꾼이 ‘(중국 배우 가오쯔치와 결혼하는) 채림을 보내고, 탕웨이를 맞는다’는 글을 올리자 중국 ‘왕민( 民, netizen)’은 ‘전지현이나 송혜교라도 보내라’라며 응수했다고 한다.
‘영화 만추의 김태용 감독과 그의 히로인 중국 배우 탕웨이가…’(ㅁ 방송) 둘의 결혼 소식을 전한 ‘앵커 멘트’이다. ‘감독과 그의 히로인’이란 표현이 왠지 영화적으로 다가오지만 여주인공은 ‘히로인’이 아닌 ‘헤로인’이어야 한다. 남자 주인공은 ‘히어로(hero)’, 여자 주인공은 ‘헤로인(heroine)’이다.(고려대한국어대사전) “‘여걸, 여장부’라는 뜻의 영어 ‘heroine[h rouin]’을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적으면 ‘헤로인’이다”.(국립국어원 누리집)
‘헤로인’ 자리에 ‘히로인’이 널리 쓰이는 까닭은 무엇일까. “마약(헤로인, heroin)과 발음이 같아서 꺼리는 게 아닐까”, “‘히어로’이니 ‘히로인’으로 미루어 짐작한 것”, “일본의 만화, 소설, 애니메이션 등에 자주 등장하는 ‘여주인공(히로인 ヒロイン)’의 영향일 것이다. 일본에서는 마약의 한 종류를 ‘헤로인(ヘロイン)’으로 구별해 쓴다” 따위일 것이다. “‘헤로인’이 맞는 줄 몰랐다”처럼 싱거운 답도 빼놓을 수 없다. 뉴스 검색 결과는 여주인공의 뜻으로 ‘히로인’(1270건)이 ‘헤로인’(5건)보다 훨씬 많이 쓰이고 있음을 보여준다.(구글 검색) 여주인공 ‘헤로인’의 자리, 어떻게 찾아 줄 수 있을까.
……………………………………………………………………………………………………………… 슈퍼세이브
피파 월드컵이 끝났다. 한 달에 걸쳐 펼쳐진 대회의 마지막 경기는 유럽 대표 독일과 남미 대표 아르헨티나의 매치업(맞대결/대진)이었다. 디펜딩 챔피언(전대회우승팀/직전우승팀) 스페인은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4강전에 출전할 수 없다”는 브라질 팀닥터(팀전담의사/팀전속의사/팀주치의)의 진단에 네이마르는 베이스캠프(주훈련장/근거지)를 떠나야 했다. 그래서일까, ‘영원한 우승후보’는 잘 만든 세트피스(맞춤전술/각본전술)로 4강에 오른 독일에 7점이나 내주면서 무릎을 꿇었다. 이번 월드컵은 골문을 든든히 지킨 수문장의 활약이 두드러진 대회이기도 했다. 16강전에서 4강전까지 14경기 가운데 7경기의 최우수선수가 골키퍼였다. 나이지리아 수문장 에니에아마처럼 펀칭(쳐내기) 실수로 땅을 쳐야 했던 수문장도 있었다.
런던올림픽 때는 통했던 홍명보 감독의 4-2-3-1 전술은 3-5-2, 5-3-2, 4-3-3 등의 포메이션(대형/진형)을 유연하게 적용하는 선진 축구를 감당할 수 없었다.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이 16강에 오르지 못해 ‘남의 월드컵’이란 소리를 듣기도 한 월드컵. 손흥민 선수는 귀국 인터뷰에서 “정말 아쉬운 월드컵이었다. 코칭스태프(코치진)와 팬들도 같으리라 생각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관련 기사를 그러모아 월드컵의 대강을 돌아봤다. 괄호 안의 표현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조별리그 경기가 한창이던 지난달 말 ‘일반 국민이 쉽게 의미를 알 수 있고 축구에 더 관심을 가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는 뜻을 담아 국립국어원이 다듬어 내놓은 축구용어다. 여기에 보탰으면 좋았을 용어가 있다. 축구 중계·뉴스에 등장이 잦아진 ‘슈퍼세이브’이다. 기왕에 잘 써오던 ‘(골키퍼) 선방’ 대신 이 말을 쓰는 까닭? ‘외래어(외국어)가 더 전문적으로 들린다’는 엇나간 인식 때문일 것이다.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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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눔 → 우리나라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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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옳다 - 이동재
아내가 옳다!
젊어선 세상의 정의가 공자나 맹자
예수나 부처의 말씀에 있는 줄 알았다
조금 더 젊었을 땐 마르크스나 프로이트에게 있는 줄 알았고
한창 땐 레닌이나 모택동 체 게바라
루카치 마르쿠제 아드르노 벤야민 라깡이나 지젝
자유주의이니 자본주의, 사회주의니 공산주의
구조주의나 후기구조주의 리얼리즘 혹은 모더니즘
하다못해 신자유주의가 옳은 줄 알았다
독수공방, 아내가 외롭게 지새우는 긴 밤
그래도 세상의 정의는 바깥에 있는 줄 알았다
거리에서 술집에서 책상 앞에서 헤매던 시절
세상의 옳고 그름이 그 어디쯤에 있는 줄 알았다
마지못해 내는 학회지나 창비나 문지 같은 잡지에 숭고한 뭔가가 있다거나
요사스런 사설私設邪說로 가득찬 신문지 쪼가리 속에
찾아야 할 진실이 있다고 진정으로 믿은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세상의 진리가 그 어디쯤에 서성이고 있을 줄 알았다
허나 찍히고 짤리고 미끄러지고 터지고 뭉개져
돌아와 식탁 앞에 앉은 어느 저녁
아내는 옳았다
아내가 옳다, 아내가 옳다
아내가 항상 옳다
라고 수없이 되뇌어 보는 중년의 어떤 나,
아내가 역시 옳다, 아내는 여전히 옳다, 무조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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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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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 - 함석헌
제1부
38선을 넘나들어 (4/4)
그거 하느님 말씀 아닌가? 하나님 말씀 이야기가 났으니 말이지, 그 다음 또 하나 내가 들은 하나님 말씀은, 지난해「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는 글 때문에 경찰에 갔을 때 들은 것이다. 심문하는 형사가 마주 앉더니 첫말이 “뭐 그래, 정부비판이고 뭐고 영웅심에 했지? 대통령이라도 하나 할 것 같아?”했다. 그 소리를 들을 때, 저야 무슨 뜻으로 했거나 또 저희 하는 일을 내가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것은 역시 내게 주시는 하나님의 책망이었다. 그러지 않아도 늘 말을 하고 글을 쓸 때마다 스스로 영웅심에서나 아닌가? 미운 맘에서나 아닌가? 반성을 아니하지 못했는데, 그 말을 들으니 가슴이 뜨끔했고, 내 마음이 그대로 하나님의 자리 앞 거울에 말갛게 비쳐 있음을 느꼈다. 그래 속으로 곧 “아멘!”했다.
그러나 제일 견딜 수 없는 것은 집과 땅을 빼앗기고 쫓겨나는 일이 아니었다. 땅과 집이 없는 경우에는 빌어먹으면 그만이요 빌어도 못 먹으면 죽어도 그만이지만 두고두고 밀정질을 해오라는 데는 참견딜 수 없었다. 본래 놓아줄 때에 조건이, 한 열흘에 한 번씩 보안서에를 나가야 한다는 것이요, 갈 때는 밀정질을 해오라는 것이었다. 처음의 몇 번은 없다 없다로 견디었으나 늘 그대로 갈 수는 도저히 없었다.이제니 말이지만 나중엔 그때 위원으로 있던 백영엽 목사의 행동을 감시하라는 것이었다. 이젠 이 이상 더 있을 수가 없다. 있다면 또 들어가 갇히고 시베리아라도 갈 각오를 해야 한다. 사실 견디는 대로 견디다가 닥쳐오는 운명대로 당하는 것이 옳단 생각도 있었으나, 그때에 내 혼엔 그만한 실력이 없었다. 소련 군인의 총부리가 집중겨냥을 하는 데서는 평안했던 마음이 살아나니 불안하였다. 그래 부득이 38선을 넘을 생각을 했다. 그러나 역시 하나님의 발길이 차기 전에 이루지 못했다. 그러는 동안에 박천서, 박승방 형이 왔다. 나를 끌고 38선을 넘으려는 것이 그가 온 목적이었다. 떠나자니 이젠 집도 재산도 다 없어진 가족, 더구나 나를 단 하나 기둥으로 믿는 늙은 어머니를 놓고 떠날 수도 없고, 있자니 내일 모레는 보안서원이 올 터이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맘이었다.
평상에 온순 공손 그대로였던 박은 단연 결정적이었다. 그래 떠나기로 했다. 그때 나는 동리 안에서도 거의 출입의 자유가 없었으므로 평양 김일성 대학에 취직운동을 나간다 하고 떠났다. 문간에서 “내 생각은 말고 가”하는 어머니를 그것이 마지막일 줄 알았다면 한 번 더나 돌아보았을 것을. 이럴 줄을 모르고 잠깐이겠지 하는 생각에 그냥 왔다. 그것이 마지막 들은 음성이었다. 평양역에 내리니 형사가 꼭 붙잡지 않나? 다 틀렸구나 했다. 묻기 시작을 했다. 물으면 다 나올 터이요, 나오면 그만이다. 그러는데 그놈의 동무가 하나 와서 술을 먹으러 가자는 것이다. 이 형사는 술을 마시러 가자니 나를 어떻게 할 수 없고, 나를 조사하자니 술을 못 마시겠고, 한참 망설이더니 나더러는 이따가 김일성 대학으로 알아볼 터이니 가라 하고 내보냈다. 술이 이겼다. 그리하여 간신히 사냥개 턱을 벗어났다.
한 주일을 있으면서 형편을 본 후 최태사 형이 일체 준비를 하여 주었으므로 박승방 형과 둘이서 버스로 해주를 향해 떠났다. 도중에 몇 번을 조사하는데 웬일인지 한 번도 검문을 받지 않았다. 저녁에 해주에 닿았다. 또 한 문을 넘었다. 하루를 박진서 씨 집에서 묵은 후 안내자를 얻어 해가 진 후 어둡기를 기다려 정말 운명의 선을 넘는 길을 떠났다. 셋이 다 잠잠, 발소리만 자박자박. 이제나 이제나 하는 시간이 스스로 죽이는 숨결에 다 스러지고 새로 한시가 되어갔다. 저 집이 정말 마지막 보초막이라고 귀에 대고 해주는 소리를 듣고 등잔불이 빨갛게 비친 방문 앞을 뛰지도 않고 슬쩍 지났다. 개도 아니 짖었다. 돌아보지도 않고 언덕을 내려서 밭 가운데 오더니 안내자가 “인제 다요, 나는 갑니다“ 하고는 돌아섰다.
달이 밝았다. 둘이 솔숲 속에 엎디어 기도를 하고, 있는 기운을 다 놓아 찬송을 한참 한 후 또다시 걸었다. 청단에 오니 날이 훤하게 밝았다. 1947년 3월 17일. 나는 인제 어머니도 아내도 동생도 아들도 딸도 집도 재산도 책도 다 없구나. 다 버리고 나왔다. 내가 버렸나? 공산당이 빼앗았나? 하나님이 벗겨 주셨나? 생사의 선을 넘어 나는 밝아오는 새날을 맞으러 친구와 둘이 손을 잡고 섰었다. 그때 가지고 넘어온 것은 입은 옷 한 벌 밖에, 성경 한 권과 갇혔다 나온 후 지은 노래를 몇 수 적은 노트가 있을 뿐이었다. 나는 38선을 넘어왔다. 인제 또다시 넘어가야 한다. 꿈을 꾸면 지금도 여전히 거기 사는 내 고향을 가야 한다. 고향을 잃고 떠도는 임시 살림, 살림이 아니다. 절반이라도 살까? 솔로몬 앞에 송사하던 계집 모양으로 절반이라도 잘라 가지려 했으나 절반은 산 것이 아니더라. 링컨의 말이 옳지. 하나되면 선다. 갈라지면 거꾸러진다.
밤에 몰래 넘어온 것은 비겁이었다. 대낮에 버젓이 넘어가야지. 죽음의 무서움을 등에 지고 넘었던 이 선을 이 번에는 생명의 영광을 가슴에 안고 넘어야 한다. 자유 찾아왔던 선, 정말 자유 얻었으면 자유로 넘겠지. 있는 것을 빼앗기고 울며 넘었던 선을 몸까지 바치는 기쁨으로 넘자. 올 때는 목숨이 문제였느나 갈 때는 혼이 문제다. 혼은 해방돼서만 뚫어지는 선이다. 올 때는 친구에 끌려 단둘이 왔으나, 갈 때는 모든 사람이 손을 잡고 가야 한다. 하나님의 발길에 채어 넘어본 길, 우리 발로 앞서 가며 님의 오실 길을 닦아 놓자.빈 들에 한길을 내자. 그 길이 만국 백성이
님 앞에 선물을 가지고 오는 길일 것이다.
아시아 큰 길거리 꽃동산 열어놓고,
서편 형, 동편 아우 다 끌어 손목 쥐고,
세 목이 한데 어울려서 울어보면 어떠리.
열어라! 열자! 마음을 열면 하늘이 열린다.
하늘이 열리면 땅이 열린다. (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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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고사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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諱疾忌醫(휘질기의)
諱(꺼릴 휘) 疾(병 질) 忌(꺼릴 기) 醫(치료할 의)
송나라 주돈이의 주자통서(周子通書)에 나오는 이야기. 춘추시대, 채(蔡)나라에 편작(扁鵲)이라는 유명한 의원이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채나라 환공(桓公)에게 대왕께서는 병이 나셨는데, 그 병은 피부에 있습니다. 지금 치료하시지 않으면 심해질 것입니다 라고 말했다. 이에 채환공은 병이 없다면서 치료를 거절했다. 열흘 후, 편작은 채환공을 알현하고 그에게 병이 살 속까지 퍼져서 서둘러 치료하지 않으면 심각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환공이 이를 무시하며 몹시 불쾌해했다.
다시 열흘이 지나자, 편작은 채환공을 찾아가 병이 이미 내장에 이르렀으니, 지금 치료하지 않으면 위험하게 됩니다 라고 했다. 그러나 환공은 여전히 이를 무시하며 화를 냈다. 열흘 후, 편작은 환공을 찾아가 병이 이미 골수에 이르러 치료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닷새 후, 채환공은 온몸에 고통을 느끼며 결국 죽고 말았다.
諱疾忌醫 란 자신의 결점을 감추고 고치려 하지 않음 을 비유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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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삶 속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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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이야기 1 - 정채봉, 류시화 엮음
2. 평범한 행복
제자의 가르침 - 최정현
지난 5월은 여러 가지 행사로 유달리 바쁜 달이었다. 평소에도 별로 건강하지 못했던 나는 과로한 탓인지, 학생들의 매스 게임 연습을 보고 있던 어느 날 드디어 심한 두통과 빈혈이 일어나 일찍 집으로 돌아오지 않을 수 없었다. 자리에 누워서도 이것저것 학교 일만 걱정이 되어, 아들을 불러 놓고 몇 가지 내용을 학교에 전하라고 이르는데 전화 벨이 울렸다. 30년 전에 가르친 제자의 전화였다. 학교에 전화를 하니 편찮으시다 하여 걱정이 돼 걸었다는 것이었다. 전화를 끊은 지 한 시간도 안 지나 누가 찾아왔다. 전화를 걸었던 제자였다. 목소리만 듣다 얼굴을 대하니 더욱 반가웠으나, 한편 아픈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미안하기도 했다. 제자는 내 딸에게 부엌 좀 안내하라고 했다. 왜 그러냐고 하니까 가만히 누워 계시기만 하라는 것이었다.
이 생각 저 생각 옛날의 제자 모습을 머리에 그리며 누워 있자니 지나온 세월이 꿈만 같고, 제자가 저토록 중년 부인이 되었으니 나도 이제 정말 늙었구나 하는 쓸쓸한 느낌이 들었다. 그때 제가가 상을 차려 들여 오는 것이 아닌가.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북어국이었다. 뜨거운 김이 얼굴에 닿는 순간 나는 콧등이 시큰해졌다. 제자도 돌아가고 그녀의 정성 덕분인지 나의 건강도 빨리 회복되었다. 며칠 후, 새벽같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서 나가 보니 바로 그 제자였다.
"오늘이 선생님 생신이시죠?"
나는 말문이 막혔다. 해마다 맞는 생일이지만 아침 일찍 출근해야 하는 나에게 생일다운 아침이 특별히 있을 수 없었기에 모두 잊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날 아침 우리 가족은 제자가 준비해 온 음식으로 즐거운 잔치를 벌였다. 어느 날보다 부푼 가슴을 안고 대문을 나서려는데 아들딸들이 대문 밖까지 나와서 배웅을 했다.
"어머니, 안녕히 다녀오세요."
전에는 없던 일이었다. 분명히 내 아들딸들은 그 제자의 성의에 감화를 받은 모양이었다. 붐비는 차 속이었지만 내게는 새로운 용기가 샘솟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온 나의 길이 그래도 보람찬 것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나의 제자는 자식들에게만 교훈을 준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뭔가 가르침을 준 셈이다. (서울여중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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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이글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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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은 모두 시계를 갖고 있다
제5장 생물 시계의 작용
생물 시계의 출발점
알, 애벌레, 번데기의 시기를 거치면서, 계속 빛이 한 점도 들지 않는 캄캄한 환경에서 자란 초파리의 번데기들은 어떨까? 계속되는 어둠 속에서 자란 초파리의 우화는 어느 특별한 시간에 집중되지 않는다. 하루 종일 계속 조금씩 조금씩 엄지벌레가 되어 나오는 것이다. 그렇다면 캄캄한 어둠 속에서는 생물 시계가 멈춰 버리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실험 대상이 된 초파리의 번데기는 수천 마리나 되었다. 그런데 이 각각의 개체가 가진 시계는 처음부터 조금씩 조금씩 차이가 나면서 가고 있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는 생물 시계가 없는 것처럼 뿔뿔이 시간을 달리해 우화한 것뿐이다. 암흑 속에서도 생물 시계가 가고 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실험을 통해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어야만 한다. 그래서 실험을 해 보았다.
계속되는 어둠 속에서 살아온 초파리의 번데기들에게 잠시 동안 조명을 비춰 주었다. 그러자 번데기들이 우화하는 시간이 24시간을 주기로 하는 리듬을 갖게 되었다. 게다가 번데기 때가 아니라 알이나 에벌레 시기에 조명을 비추어도 우화의 리듬이 생겨났다. 조명을 그리 오래 비출 필요도 없었다. 심지어 1초의 1000분의 1이라는 짧은 순간 조명을 비추어도 우화의 24시간 리듬을 살려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잠깐 동안의 조명에 의해 모든 초파리의 새끼들이 가진 생물 시계가 시간을 맞출 수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생물 시계가 시각을 맞출 수 있도록 해 주는 요소는 빛 뿐만이 아니었다. 단 한 번의 온도 자극으로도 24시간 리듬이 개시되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척추동물이 태어나자마자 그 즉시 분명한 활동의 리듬을 나타내 보인다. 닭을 예로 들어 보자. 닭은 알에서 부화한 직후, 즉 갓 깨어난 병아리일 때부터 주기적인 활동을 나타낸다. 새나 도마뱀은 알의 시기에서부터 계속 한 점 불빛도 없는 암흑 속에서 키워도, 알에서 깨나자마자 서커디언 리듬을 나타낸다. 그러면 우리 사람의 경우는 어떤가? 갓 태어난 아기는 하루 온종일 먹고 자고 먹고 자고 하는 일만을 반복한다. 하지만 생후 6주가 지난 다음부터는 잠들고 깨어나는 리듬을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생후 15주 후가 되면 잠들고 깨어나는 리듬이 확실히 정해진다.
어떤 곤충의 경우에는, 우화하는 리듬이 어미 곤충이 받은 빛의 주기에 의해 결정된다고 한다. 생물 시계의 리듬이 곤충의 난소를 통해서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달된다는 것이다. 식물에서도, 동물에서도, 생물 시계의 주기는 각 개체의 고유한 길이를 갖고 있다. 하지만 그 주기는 앞에서 예를 들었던 들쥐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항상 밝게 해 둔다든가 항상 어둡게 해 둔 조건에 놓이기 전에 주어진 명암의 조건에 의해 영향을 받게 된다. 생물 시계의 주기는 명암의 조건 뿐만 아니라 나이에 따라서도 변화할 수 있다. 햄스터나 들쥐를 대상으로 해서 나이에 따라 자유 진행 리듬의 주기는 어떻게 변화하는가가 조사되었다. 다양한 나이의 햄스터와 들쥐를 인공적인 밤과 낮 속에서 살게 하다가 갑자기 항상적인 어둠 속으로 옮겼다. 그리고 자유 진행 리듬의 주기를 재 보았다. 결과는 나이가 많을수록 주기가 짧은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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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경제/경영/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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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벌써 절망합니까 - 정문술
다시 시작하는 사회적응 훈련
풍전기공에서 손을 뗌과 동시에 나는 또 다른 창업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얼떨결에 속아서 입문한 경영의 세계였지만, 실패했다고 해서 그대로 힘없이 포기할 수는 없었다. 공직에서도 쫓겨난 마당에 새롭게 뛰어든 세계에서도 다시 한 번 쫓겨나야 한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적어도 '이런 모습의 회사는 되지 말아야 한다'는 개념만은 확실하게 서 있었다. 잠시 공백기를 갖기로 했다. 공직생활의 안일함과 순진함을 완전히 벗지 못한 상태로 재 창업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다시 '사회적응 훈련'을 해야 했다. '공직은 옷과 같다. 옷은 벗으면 그뿐이다. 현재 나에게는 아무 것도 없다'는 각오를 해야 했다. 양복을 골라도 짙은 색깔의 옷만 고른다든지, 친구들과 음식점엘 가도 으레 접대 받던 게 몸에 밴 탓에 먼저 계산하는 것에도 익숙지 않았다. 아랫사람에게 시키던 버릇 때문에 지시하고 관리하는 것에만 능한 것도 문제였다. 집에 있는 동안에도 가급적 아내나 아이들에게 심부름을 시키지 않고 필요한 모든 것을 직접 해결하는 훈련을 했다. 그러는 한편으로 나는 부지런히 머리를 돌렸다. 새로운 창업을 위해서였다.
풍전기공을 정리하면서 백정규를 포함한 공고출신 엔지니어 네 사람과 공장 수위 아저씨에게 나는 분명히 말했다. 조금만 시간을 주면 반드시 다시 시작할 테니 힘들겠지만 어디서고 버티고만 있어 달라고, 뻔뻔한 부탁이었지만 그들은 눈물을 글썽이며 내 손을 굳게 잡아주었다. 실패는 했을망정 나를 분명한 오너로 인정해주는 그들이 눈물겹게 고마웠다. 아직 내게는 퇴직금 2천만 원이 남아 있었고, 공무원 시절부터 틈틈이 사 모았다. 값나가는 그림도 몇 점 있었다. 집을 담보로 하면 대출도 어느 정도 가능할 것이었다. 문제는 사업 아이템이었다. 금형 기술에는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금형 사업은 기술 자부심 외에는 아무 것도 우리에게 남겨주지 않았다. 풍전기공 시절에 내가 당해야 했던 어처구니없는 일들을 생각하면 하늘이 무너진다 하더라도 금형 사업을 다시 시작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요즘은 뭐가 된다더라'식의 풍문에는 더욱이 관심이 없었다. 나는 원래 유행이란 것을 믿지 않는 성격이었다. 넥타이고 양복이고 간에 나는 웬만하면 버리지 않고 모두 간수해두는 버릇이 있었다. 유행은 계속 돌고 도는 것이고, 예전에 사용하던 넥타이와 양복을 십년 후면 여보란 듯이 다시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유행한다'는 식의 이야기가 나돌 정도라면 그 사업은 이미 가망이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미래지향적이고 경쟁자가 적은 분야를 택해야 했다. 물론 우리가 가진 기술력을 토대로 할 수 있는 사업이어야 했다. 어려운 문제였다. 나를 반기는 사람이 없더라도 발로 뛰면서 연구할 필요가 있었다. 나는 공무원 시절에 공식, 비공식적으로 알고 지냈던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밥과 술을 내는 대가로 잡다한 정보들을 수집했다. 그 동안에 친구들 사업하는 것도 틈틈이 도와주면서 경험을 쌓았다. 한동안은 증권객장에 출근하다시피 나가면서 증권의 흐름과 원리에 대해서도 배워두었다. '주(주식)님, 저를 구원해 주시옵소서'를 외치는 다양한 사람들과 사귀면서 그들의 경험들도 제법 많이 훔쳤다. 자칫 느슨해지기 쉬운 일상이었지만 와신상담(와신상담)의 고사를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체질을 바꾸고 새로운 아이템을 고민하는 동안 2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결론은 반도체였다. 기계기술에서 첨단전자분야로 갑자기 점프하려는 생각은 아니었다. 그럴 능력도 없었다. 다만 내게는 어떤 회귀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젊은 시절 내내 나를 사로잡았던 호기심과 열정이 안정된 직장생활을 거치면서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느낌이었다. 이제 막 세상에 튀어나온 사회초년생이나 다름없는 처지였다. 그렇다면 사회 초년생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 무엇일까를 생각했다. 패기, 열정, 낭만, 모험심, 승부근성, 호기심, 저돌성...역시 이런 것들이 아니겠는가. 어차피 신이 아닌 이상 지나치게 재고 추측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 정작 험한 세상을 돌파해내기 위해서는 젊은이의 뜨거운 가슴이 필요한 것이다. 풍전기공의 쓰라린 경험은 오히려 묻어두었던 진짜 나를 자극하게 일깨워주었다. 낯선 곳으로 끝도 없이 뛰어들었던 나, 그 덕분에 항상 동료들보다 조금이라도 앞서 나갈 수 있었던 나를 되찾고 싶어졌다.
[자칫 느슨해지기 쉬운 일상이었지만 와신상담(와신상담)의 고사를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체질을 바꾸고 새로운 아이템을 고민하는 동안 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결론은 반도체였다. 사회 초년생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 무엇일까를 생각했다. 패기, 열정, 낭만, 모험심, 승부근성, 호기심, 저돌성... 역시 이런 것들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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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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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
- 그림을 누르면 원본 크기로 보실 수 있습니다. - 위키백과 2008.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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