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 - 함석헌
제1부
나라는 망하고 (1/2)
일본놀이
"나는 일본이다. 너는 아라사(러시아)야."
"아냐, 내가 일본 할래."
뒤로 땋아늘인 텁수룩한 머리에다 옥수수 잎을 뜯어 두 끝을 마주 매어 군인 모자를 만들어 쓰고 수숫대를 다듬어 좌우 양허리에 칼을 찬 마을의 어린이들이 모여 서로 편을 짜가지고 전쟁놀이를 하는 것이었다. 그것을 우리는 '일본놀이'라 불렀다. 대가리가 좀 두둑두둑한 놈들은 대장이랍시고, 작은 것들은 시키는 대로 졸병이 되어 서로 칼을 휘둘러 찌르고 때리고 한창 열이 날 때는 앞집 처마가 결말이 나는지 뒷집 빨래가 녹아나는지 그것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따라가고 쫓기고 아우성을 치며 노는 데 해가 가는 줄을 모른다. 본래 정말 싸움은 아니고 놀기로 한다는, 말없여 하는 약속 밑에 시작한 전쟁인지라, 한참 놀다가 맥이 빠지고 배가 고프면 강화회의 아닌 강화회담이 언뜻 성립이 되어 "자, 우리 이젠 밥 먹고 놀자." 어느 누가 하나 외치면 곧 헤어져 네 집이나 내 집이나 다를 것 없이 꼭 같이 가난한 초가삼간 속으로 들어가 식은 조밥이라도 퍼먹 든지, 그렇지 않으면, 뒷산에 딸기 사냥을 가거나 혹은 앞뜰에 물장난을 치러 몰려 나간다.
그러나 어떤 때는 그 중 어떤 놈이 혹은 모르고, 혹은 일부러, 저쪽을 너무 사납게 앙크러진 생각으로 때려서 그만 진짜 싸움이 벌어지는 일도 종종 있다. 여럿이 들러붙어 뜯어말리면 한 놈은 분한 김에 씩씩거리며 두꺼비처럼 배만 불룩거리고 있고, 한 놈은 엉엉 울고 집으로 돌아가 한창 재미있던 ‘일본놀이’는 멋없이 흐지부지, 서로 슬몃슬몃 헤어져 버리고 만다. 울며 간 아이의 어머니나 할머니가 대범한 성격이면 일 없지만 좀 신경질적인 경우에는 “아, 너는 어떡헐라고 그러니, 응, 남의 아이를 콧집을 터치고” 하고 말썽을 하고 나오게 되고, 그러면 또 이쪽 집에서 대답을 하고, 그래 마을 안에 ‘일본놀이’ 아닌 이웃 싸움이 일어나게 된다. 그러다가도 하늘에 별이 반짝반짝 나오게 되면 스르르 헤어져 돌아가 대문도 없는 집 속에서 제각기 잠을 자고 밝은 아침이면 “오늘 우리 저 방석 배미 좀 갈아야겠는데 소 좀 아니 빌려줄라오?” 하고 온다. 그런 평화의 사점에 오늘도 해는 떳다 지고 내일도 해는 떴다 진다, 그러는 동안에 코흘리개는 총각이 되고 총각은 어른이 된다. 이것이 내가 자라나던 때의 모습이다.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여러 가지 생각이 난다. 나는 대체 왜 ‘일본놀이’로 인생을 시작하게 되었을까? 물론 그것은 그때의 러일전쟁 구경을 했기 때문이다. 내가 나기 일곱 해전에 청일전쟁이 있었는데, 국경인 우리 고장은 자연 그 난리를 겪었다. 그때에 갓 결흔한 우리 아버지 어머니는 피난을 하여 철산 가두섬으로 갔더니 ‘되놈'이 거기 먼저 왔더라는 거며, 집에 남아있던 할아버지는 소작농에게 소 한 짝을 먹였는데도 군량 짐 실으라고 강제 명령하여 짐 싣고 선천까지 가니 청군이 소마저 빼앗고 쫓아보내, 할아버지가 울며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어머니 무릎에서 들었다. 그런데 그 전쟁이 있은 지 10년 만에 또다시 러일전쟁이 터졌다.
그때의 아라사는 우리 집서 30리요, 몇 해 후에는 내 고힘이 되는 용암포에 와 있었다. 용암포가 그때는 물이 깊어 큰 군함이 들어올 수 있었으므로 아라사는 겉으로는 목재 회사를 한답시고 속으로는 거기를 군항으로 만들어 블라디보스토크와 아울러 동양을 경영하는 근거지로 할 배짱이었으므로, 거기다 시설을 굉장히 하기 시작하다가 그 때문에 같은 미끼를 서로 다투려는 일본과 충돌이 되어 그 전쟁이 일어난 것이었다. 그때 일본군은 전쟁이 터지자 용암포에 있는 아라사를 내몰려고 우리 사는 사점의 남쪽 끝인 곽곶이에 상륙을 했다. 그것이 내가 네 살 때. 이번엔 피난을 갈 수도 없고 꼬박 앉아서 겪었다. 내 어린 기억에 우리 집 사랑방에도 일본 군인이 꽉 차서 밤에 나가보면 노래하는 놈, 우는 놈, 가지가지 모양으로 뒤떠들던 것이 생각난다.
일본은 그때 우리나라를 먹을 경영을 하던 때이므로 되도록 민심을 잃지 않으려 애썼던 듯, 군인의 행패는 이제와서 생각해도 그리 심하지 않은 편이었다. 그래도 일본이 닭 치러 나온다 하면 그 가없고 어리석은 백성들이 닭 감추느라고 야단하던 것이 눈에 선하다. 나라를 못 감춘 백성이 닭은 어디다 감춘다고! 또 이런 일도 있었다. 하루는 군인놈들이 여자를 찾아 나왔다. 손바닥만한 섬 안에 어딜 갈까? 처녀 색시가 온통 이 집으로 피해 몰렸다 저 집으로 몰렸다 하다가 나중에 마을 끝의 우리 종조부님네에 모두 몰려버렸다. 짐승들은 사정없이 꺼림없이 다가들었다. 마을의 사내들이란 다 겁을 집어먹고 제 아내, 제 딸이 욕보는 것을 이제 눈에 볼 작정이다. 문득 손목을 붙잡히는 여자의 앙칼진 소리가 났다. 그러는 순간 “이놈아!” 하는 고함소리와 함께 몽둥이가 올라갔다. 질겁을 한 군인놈들은 도망을 하고 여자들은 그야말로 위기일발에서 살아났다. 그 사내가 우리 할아버지였더라는 것은 그때 소년으로 옆에서 보았던 내 당숙이 후년에 하는 이야기였다. 할아버지가 언제 누구와 큰 소리로 다투거나 싸우는 것을 나는 본 일이 없다. 글자는 하나도 모르는 이였다. 옆에서 보다 못해 참을 수 없어 돼지우리 살장 을 뽑아들고 달려들었다는 것이요. 그것을 보자 여러 사람들이 와 하고 달려들자 도둑놈들은 도망쳤다는 것이다. 돼지우리 살장으로 일본 군인을 다 잡을 듯해서 그랬을까? 이길 자신이 있어 그랬을까? 그 할아버지의 무덤은 지금 내가 공산당 앞에 말도 못하고 쫓 겨나온 우리 집 뒤 늙은 참배나무 아래 우리 아버지가 묻어드린 채 그냥 있을까? 마소에 밟혀 찾을 수도 없어졌을까? 이것이 어떻게 된 나라인가? 자라나는 제 자손으로 하여금 ‘일본 놀이’를 하며 자라나게 하는 나라! 번번이 제 나라를 남의 전쟁터로 내주는 나라, 청. 일, 러. 일, 미. 소, 해방이 될 때까지 나는 우리나라 군인은 본 일이 없다. 그러나 지금 우리 군인은 정말 우리 군인다운 군인이었으면!
오늘의 어린이는 골목 골목에서 무슨 놀이를 하나? '미국놀이’ 할까? '공산당놀이’일까? 그렇지 않으면 서울 복판에서 대낮에 하는 것을 본 대로 '가죽잠바놀이’를 할까? 아이들은 영웅심이다, 국민적 영웅 없이 교육을 할 수는 없다. 아이들에게는 민족이고 도덕이고 그 판단을 할 겨를이 없이, 그저 으뜸가는 거면 거기다 온몸, 맘을 다 바쳐 흉내를 내고 싶은 것이요, 그러는 동안에 그렇게 된다. 일본 앞에 청국도 꿈쩍 못하고 아라사도 꿈쩍 못하는 것을 봤으니 ‘나는 일본이다'. 미국이 이기면 ‘나는 미국이다’요, 가죽잠바가 이기면 ‘나는 가죽잠바다'일 것이다. 서부 활극을 본 아이들이 골목에서 그것을 실현하지 않던가? 사대주의, 특권의식이 왜 생기는지 아나? 어릴 때를 지도하는 국민적 영웅이 없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세가 교육을 했고, 그리스는 호머,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가 교육을 했으며, 미국은 워싱턴, 제퍼슨, 프랭클린, 링컨, 에머슨, 에디슨이 교육을 하고 있다. 영웅이라니 긴 칼에 깜찍한 꾀를 가지고 날을 휘두르는 자로 생각 말라. 언제나 정의와 참을, 위해 씩씩하게 싸우는 자가 참 영웅이다. 주자의 말대로,
돈 벼슬에 아니 넘고 가난에도 즐거우니
사내자식 이만하면 영웅답다 안 하겠나.
아무것도 보여주는 건 없고, 본 것이라고는 일본이 코 큰 아라사를 여지없이 때려부순 것이니 '일본놀이'를 할 수밖에 없었고 무슨 뜻인지는 알지도 못하며 ‘니뽕 갓다 니뽕 갓다 로시아 마께다’를 듣는 대로 부른 것이요, ‘일본놀이’를 하고 자랐으니 수굿수굿 일본의 식민지 노릇을 할 수밖에 없지 않았나?
일자진
그렇게 참혹하게 몇 번 전쟁을 겪고도 아이들보고 자라거든 이 다음은 그런 일이 없도록 하라 일러주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고, 지나가면 그것을 한 개 운명 팔자로만 돌리고, 그저 멍청하게 사는 듯싶었다. 정신이 있는 백성인지 없는 백성인지 오늘도 지나가며 길가에 노는 어린이를 보면 한심한 생각 금할 수 없다. 그렇게 많은 동포가 죽는 걸 보고도, 그렇게 많은 사람을 죽여보고도 아이들이 전쟁놀이 하는 것이 끔찍해 보이지도 않아 총 사주고 칼 사주며 해라 해라 하니, 생각이 있는가 없는가? 그 심장들은 강철 심장인가? 흙 심장이 돼 그런가? 고기맛을 한번 본 다음에는 더 먹기만 하려는 맹수의 심장인가? 또 이상한 것은 “나는 일본이다” “너는 아라사야” 하는데 한 놈도 “그래 나는 한국이다” 하고 나선 놈은 하나도 없었으니, 용천 바닷가 감탕물을 먹은 놈들이 돼 그런가? 서울 백사지에 자란 양반엔 있었던가? 더구나 전쟁놀이만 했지 한 놈도 그 중간에 우뚝 일어서 두 팔을 쪽 벌리고 “그만들 둬라!" 하는 놈은 없었으니, 싸움 구경만 히러 온 백성인가? 그런 이야기하면 생각나는 것은 ‘아랫방 작은놈’이다. 아랫방이란 것은 가난해 서당지기 노릇을 하며 아랫방에 살았기 때문이요, 크도록 이름도 없어 작은놈으로 불렸다. 집이 가난해 두부장사해 겨우 풀칠을 해가고, 아들 둘이 다 서른이 넘어 마흔이 돼 오도록 장가도 못 가고 머리를 땋아늘인 채 턱에는 시커멓게 수염이 났다, 남의 집에 머슴살이 가라면 “어머니를 버리고 남의 집살이를 어찌 하느냐” 호미로 문지방을 긁으며 울고 평생에 날마다 바닷가를 돌아 밀물에 떠들어온 무엇을 주워다 먹을지언정 언제 남의 집에 빌러가는 법이 없는데, 형제가 다 그렇지만 그 작은놈이 더욱 그러하였다. 못생겼다고 아이들이 들러붙어 놀려주면 “얘, 이거 싸움이냐? 갈갬 이냐? 싸움이면 그만두자" 하는 것이었다. 물론 보통 말로 하면 못나서 그 모양이었을 것이지만, 그것을 업신여길 아무것도 없다. 그것이 하늘 백성이 아닐까? 하늘 백성이 땅에 오면 그렇게 뵈지 않을까? 못났거나 잘났거나 나는 오늘 그리운 것이 “얘, 싸움이면 그만두자” 하는 사람이다. ‘작은놈은 이제 어찌 됐을까? 살았다면 여든이 됐을 것이다. 공산당도 아마 '작은놈’은 해치지 못했을 것이다. 작은놈이 큰 놈이지.
웃을 일은 작은놈만이 아니다. 사점 백성이 온통 다 '작은놈’이다. 이랬다는 것이다. 일본군이 곽곶이에 상륙을 한다 하자 이 평화의 마을에는 큰 야단이 일어났다, 어떻게 할까? 나라가 온통 ‘작은놈’인 판에 국경수비고 군대고 있었을 리가 없고, 골이란 것은 거기서 오십 리, 지금 말로 경찰이고 뭐고 그런 것이 있을 리도 없다. 그야말로 태고시절의 자치가 있을 뿐이다. 호수가 한 칠십 되는데 모여 의논한 결과 일본군이 올라오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으로 막나?.놀라지 말라, 맨주먹으로 막는다는 것이다. 아니, 주먹으로가 아니라 몸으로 막기로 했다는 것이다. 동민이 총출동을 하여 곽곶이에 나가 서로 손을 잡고 일자로 앉아 죽어도 아니 움직이기로 결의를 했다, 그러면 감히 못들어올 것이라는 의견이었다는 것이다. 그래 그 결의대로 나갔다. 생각해보라, 황해 바다의 흐린 물결이 아우성을 치고 들이미는 그 위에 남의 나라를 한 입에 삼키려는 늑대 같은 일본군이 총칼을 겨누어 쥐고 배를 타고 개미떼같이 밀려드는데 어석더석 그 총칼보다 못지않게 날카로운 바위 끝에는 그 거품을 맞아가며 눈을 딱 감고 이를 악물고 이제나저제나하고 앉았는 백여 명 되는 흰 옷 입은양 같은 사람들! 이것이 웃을 일인가, 울 일인가? 무릎을 꿇고 예배를 할 것인가? 물론 그것으로 됐을 리가 없다. 총 소리가 한 방 두 방 나자 그만 다 도망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후에 와서는 누가 먼저 일어섰느니 누가 먼저 도망했느니 웃음 삼아 서로 흉보고 이야기들 하지만 웃을 일이 아니다.
평화는 결코 비겁은 아니다.
충성이 아무리 있어도 조직 없이는 아니된다.
용맹이 아무리 있어도 훈련이 없이는 아니된다.
도망을 하고 산 것이 반드시 산 것 아니리라. 백여 명 사람이 정말 꼼짝않고 앉아 죽었다 해봐. 일본군은 들어올 수 있었을 것인가? 들어왔다손, 전쟁을 해 이겼다손, 그 이김이 이김으로 끝났을까? 우리가 전쟁터를 인심좋이 내준 대신 인천만에서 종이 되고 마는 그런 결과가 왔을 것인가? 역사에서는 알지도 못하는 이 조그마한 할 사실에서 나는, 이 백성에게 간디 하나가 없어 걱정이지, 있기만 하면 진리파지운동이 될 수 있는 바탕은 넉넉히 있는 것을 본다. 이 어리석은 사점 백성이 그때 스스로 그 싸움을 불렀던 대로 ‘일자진'만 쳐보라! 그것을 감히 뚫을 어떤 침략자가 있나?
씨알을 뛰어 일자진을 쳐라!
가르쳐라! 바보도 아니요, 정신 없어서도 아니다. 가르치지 않은 것만이 죄다.
살자는 꿈틀거림
일본놀이는 그만두고 서당에를 다녀야 했다. (천자)와 (언역)은 집에서 다 읽고 서당에선 (명심보감)을 배웠다. (명심보감)을 다 떼자 삼천재 서당은 변해 덕일학교가 됐다. 이젠 초등 소학, 유년필독, 사민필지, 산술, 역사, 지리 그런 것들을 배워가야 한다. 단군이 나오고 기자가 나오고 역사, 동명왕, 을지문덕, 강감찬. 이순신, 임경업이 나온다. 세계가 홱 변했다. 외양 살림은 그전과 다를 것 없이 역시 선생님이 초달을 들고 있고 책상도 없는 방에 앉아 하루 온종일 있다가 저녁 해가 성망재 , 마루턱에 걸리는 것을 보고 가라 하고 봐 보내야 가지만 속은 참 달라졌다. 아침에 찬송 기도하고, 하나님을 믿어야 하고, 천황씨 지황씨는 어디로 가고 우리나라가 있는 것을 알게 됐다.
머리를 깎았다. 아홉 살이 될 때까지 집안 어른들의 말은 별로 거슬러본 일이 없고 작고 크고간 물어보지 않고 한 일이 별로 없는 내가 그것만은 웬일인지 하루 학교에서 하잔 대로 내 뜻대로 머리를 박박 깎고 갔다. 아무래도 그것만은 해야 옳은 것 같고 맘대로 하고 가도 알아주실 것 같은 생각에서였다. 그렇기에 한날 같이 깎은 동무의 아버지가 아들 죽인다고 학교에 와서 자식 내놓으라 하며 식칼로 마루를 쳐서 그 칼자리가 몇 해가 지나도록 아니 없어질이만큼 되는 것을 보고도 나는 땀이 든든했다. 과연 집에서는 아무말이 없었고 다만 할머니가 “아이 그 좋은 머리를!” 하고 좀 아까워하였다. 밤에는 야학을 했다. 수염이 시커멓게 난 사람들이 모여, 가가 거 겨 하며 글을 읽고, 처음으로 보는 아라비아 숫자를 써 산술을 배운다. 방에는 등불 대신 아주 밝은 양등을 켠다. 체조를 한다고 노란 수건으로 머리를 동이고 방망이 같은 상투를 흔들흔들하며 팔다리를 놀려 하나 둘 셋 넷 한다. 한 주일에 한 번씩 동리 청년이 모여 연설회를 한다. 편을 갈라 가지고 서로 토론해 이기고 지고를 결단한다. 제목이란 대개 ‘남자 교육이 먼저냐, 여자 교육이 먼저냐’ ‘필검이 쟁공이라' ‘골수구가 반소피개명이라' 이런 따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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