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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편지】:
제957호
2014.12.28. (음 4.4) / 발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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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wmaster@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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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자 등 텍스트가 물음표(?)로 보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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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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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오늘의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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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을 이해한다는 것은 단순히 안다는 것과 크게 다르다. - 찰스 케터링(美 실업인,
1876~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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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말글 / 한글바로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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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쿨제라블
대한민국 학원은 휴일에도 쉬지 않는다. 직장인이 숨 돌릴 시간에
적잖은 학생들은 학원에 가야 하는 것이다. 지난 주말 학원 다녀온 중학생 딸이 상기된 표정으로 ‘아빠, 그거 봤어?’ 한다. 학원에서 벗들과
함께 본 동영상이 꽤나 인상적이었던 모양이다. ‘레밀리터리블’을 패러디한 ‘레스쿨제라블’이다. ‘거금 120만원’을 들여 한 달 반 만에
만들었다는 작품이 예사롭지 않은 까닭은 그들의 눈높이에 맞춰 “흥미와 극적인 재미를 위하여 가상으로 연출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레미제라블>의 ‘룩 다운’(Look Down)을 ‘야자! 야자!’로 개사해 사실상 ‘타율’인
‘야자’(야간자율학습)의 실상을 드러내며 시작하는 이 작품에서 여고생 판틴 양은 ‘1등급의 꿈’이 사라진 안타까움을 노래하고(I Dreamed
a Dream), 장발장 군은 선도부원 자베르와 맞서 “(만난 지) 100일 안 된 여자친구와 헤어질 형편”임을 호소한다(The
Confrontation). 재치가 엿보이는 합창 “레드(Red) 빨간 펜 줄치고, 블랙(Black) 핵심요약 정리…”(Red &
Black)에 이어, “해도 해도 너무하는 대한민국 입시전쟁/ 하지만 곧 봄이 와”(Do You Hear The People Sing)가 교정에
울려 퍼지며 작품은 끝난다.
“지도교사 없이 청소년들이 만든” 기특하고 대견한 작품에 아쉬움이 없지는 않다. 자막 실수가 눈에
띄어서이다. ‘그녀의 며리(머리) 핀’, ‘졸업하기길(하길) 기원하며’ 같은 단순 오타에서 생긴 잘못이 그렇다. ‘답지 보고 했잖아/ 남몰래
배껴(베껴) 왔잖아’, ‘돌아가길 바래(바라)’, ‘완전히 삐졌습니다(삐쳤습니다)’처럼 규범에 어긋난 게 또한 그러하다. 교사 감수를 거친
영어자막처럼 한글자막에도 신경 썼으면 금상첨화였겠다. ‘동영상 조회수 30만 넘으면 즉흥공연’을 약속한 학생들의 뜻은 곧 이뤄질 것 같다.
즉흥공연에 맞춰 ‘자막 실수’ 바로잡은 개정판을 기대해 본다.
나발질
나팔은 나팔이고 나발은
나발이다. 원말의 한자 ‘라(喇, 나팔 라), 팔(叭, 입 벌릴 팔)’은 하나지만 두음법칙에 따른 형태가 ‘나팔’이고 이 말소리가 변한 게
‘나발’이다. ‘관악기의 하나’인 나팔은 ‘끝이 나팔꽃 모양으로 된 금관악기를 통틀어 이르는 말’로 ‘옛 관악기인 나발’을 가리키기도
한다.(표준국어대사전) 북한에서는 ‘(반드시 악기가 아니어도) 소리가 크게 울려 나오게 만든 기구’도 나팔이라고 한다.(한민족 언어정보화
누리집) 나발은 ‘놋쇠로 만든 긴 대롱같이 만든 악기’이지만 악기가 아닌 것을 이를 때 쓰기도 한다. 나팔과 나발은 뿌리는 같지만 뜻과 쓰임이
다른 것이다.
‘나발’에는 ‘지껄이거나 떠들어대는 입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란 뜻도 있다. ‘개나발’은 사리에 맞지 아니하는
헛소리나 쓸데없는 소리를 낮잡아 이르는 말이고, ‘병나발’은 (나발 불듯이) 병째로 들이켜 마시는 것이다. ‘죽나발’은 숟가락으로 떠먹지 않고
그릇을 들고 훌훌 죽을 마시는 것을 낮잡아 이르는 북한말이다. ‘나발질’은 무슨 뜻일까. 어제치 여러 매체에서 ‘괴뢰역적들이 개성공업지구가
간신히 유지되는 것에 대해 나발질(헛소리)을 하며…’라는 내용의 북한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 대변인 담화를 전하며 ‘나발질’을 괄호로 묶어
‘헛소리’로 풀었다.
지난달 30일 북한이 발표한 담화문에 ‘나발’이 들어간 문장은 세 개였다. ‘헛나발을 불어대며…, 모략 나발을
불어대는 것이야말로…, 나발질을 하며…’이다. 북한말 ‘헛나발’은 ‘허튼소리를 속되게 이르는 말, 사실보다 터무니없이 과장하여 말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니 ‘헛소리’와 비슷한 표현이다. ‘나발질’은 표제어로 오르지 않은 말로, 비하하는 뜻을 더하는 접미사 ‘-질’이 붙은 ‘나발+질’의
형태로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위 담화문에 ‘가소롭기 그지없는 망발질…, 존엄을 모독하는 망발질…’처럼 ‘-질’이 두 차례 더 등장하는 것을
보면 그렇다.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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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우리나라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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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스탠드 - 허혜정
이 아름다운
스탠드는 우리가 고른 것이다 작은 유리구슬을 당기기만 하면 부드러운 빛이 퍼진다 텅스텐 필라멘트처럼 위태롭게 깜빡이며 잠옷
위로 흐린 그늘을 만드는 빛 벽 위에 어슴프레 번져가는 그림자의 금 하나의 시공간에 엄연히 두 개의 삶으로 분리되어 있는 것
하긴 어떻게 두 사람이 다 만족하는 사랑이 있는가 나날의 타협으로 쌓아올린 흐린 유리성 두 개의 상처를 이어 붙인 솔기처럼
하나의 행은 끝없이 이어진다 밤의 불빛 속으로 다가오는 피로한 얼굴 한 사람은 곯아떨어지고 한 사람은 깨어 있는 침대
이상한 슬픔이 몰려오고 갑자기 섬뜩하도록 차가운 정적 집이 텅 빌 때 느껴지는 그러한 정적 사랑. 누가 그 처음의 뜨거움을
말할 수 있겠는가 서서히 식어가며 함께 누워 있는 욕조처럼 편안해지는 것 그리고 창백한 타일 위에 고여 있는 물방울처럼
싸늘하게 말라가는 외로움 사랑을 끝내기는 힘든 일이다 어쨌든 인정해야 한다 나는 이상한 그늘 아래 있다
영원할 것만 같은 생활 그렇게 사실적인 그렇게 정확한 마시고 먹고 대화하는 식탁의 그 침대의 그 불빛의 그
외로움의 그늘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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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명상/지혜/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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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위한 닭고기 스프 2 -
잭 캔필드&마크 빅터 한센
실패라고? 천만에. 잠깐 멈춘 것뿐이야.
캘리포니아에 있는 내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오면 방 한켠에 복고풍의 아름다운 스페인제 타일에다 아홉 개의 가죽 의자를 갖춘 소다수 판매대를 구경하게 될 것이다. 옛날에 흔히 약국에
설치되어 있던 것과 같은 것이다. 물론 사무실에 그런 것을 설치했으니 의아하게 여길 것이다. 하지만 그 가죽 의자들이 말을 할 수 있다면, 내가
인생에서 희망을 잃고 완전히 포기했던 그날의 일을 들려 줄 것이다.
때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의 불경기 시절이었다.
일자리를 구하기가 무척 힘들었다. 내 남편 카우보이 보브는 남에게서 빌린 돈으로 소규모의 드라 이 크리닝 사업을 인수했다. 우리에게는 귀여운 두
아이와 연립주택 한 채, 자동 차 한 대, 그리고 다달이 내야 하는 할부금들이 있었다. 그런데 보브의 사업이 무너졌다. 우리는 다른 건 둘째치고
집세를 낼 돈마저 없었다. 나는 특별한 재능도 없었고, 기술을 배운 적도 없었으며 대학 졸업장도 없었 다. 내 자신에 대해 별로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고 살았던 것이다. 그런데 문득 오래 전 내게 작은 능력이 있음을 일깨워 준 어떤 사람이 생각났다. 그분은 내가 다닌 알함브라
고등학교의 영어 선생님이셨다. 그 여선생님은 내 게 신문 편집에 관한 일을 맡기면서 나를 학교 신문의 광고부와 특집부 부장으 로 임명하셨다.
그러면서 내게 말씀하셨다. "넌 이 일에 충분한 재능을 갖고 있다 자신감을 가져도 돼 ." 그 일이 기억나면서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일 우리 지역에서 발행되는 주간 신문의 광고난 기사 작성을 내가 맡는다 면 집세 정도는 벌 수 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나는 차도
없었고. 아이 봐 줄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다 낡은 유모차 에 아이를 둘씩이나 태우고 집을 나섰다. 아이들 등받이엔 큰 베개를 대 주었다.
걸핏하면 유모차 바퀴가 빠졌다 그럴 때마다 나는 신발굽으로 쳐서 도로 집어넣 었다. 나는 내 아이들을 내가 어렸을 때 종종 그랬던 것처럼 집없는
아이들로 만들진 않겠다고 굳은 결심을 했다.
그러나 신문사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내게 줄 일자리가 없었다. 어디 나
불경기였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한 가지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만일 신문의 광고난 전체를 내가 도매 가격으로 사서 다시 광고주들에게 소매
가격으로 팔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나는 생각해 냈다. 신문사측에선 그 자리에서 내 아이디어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훗날 들은 얘기 지만, 그들은
마음 속으로 내가 일주일도 못 가서 구닥다리 유모차를 끌고 힘들 게 시골길을 오가는 일을 포기하고 말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들은 틀렸다. 신문 광고난 판매 아이디어는 적중했다. 집세를 낼 충분한 돈이 벌렸으며, 남는 돈으로 카우보이 보브가 골라 준 중고차도 한 대
구입했다. 그리고 오후 세 시에서 다섯시까지 아이들을 돌봐 줄 여고생도 한 명 구했다. 시계가 세시를 알 리면 나는 신문 견본을 움켜쥐고 약속
장소로 부리나케 달려가곤 했다.
그러던 어느 비 오는 날 오후, 신문을 펼쳐 든 나는 내가 계약해 놓은 광고들 이 하나도 실려
있지 않은 것을 발견했다. 광고주들이 일방적으로 신문사측에 해약을 해 버렸던 것이다. 이유를 묻자 그들은 대답했다. 그 지역 상공회의소 회
장이며 렉솔 약국의 주인인 루벤 알만 씨가 내 광고난에 광고를 게재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알만 씨의 약국은 그 도시에서 가장 사업이 잘
되는 곳이 었다. 그러니 다른 사업자들은 그의 판단을 중요하게 여길 수밖에 없었다. 광고주들은 말했다. "알만 회장이 당신의 광고난에
광고를 하지 않는 것은 그 광고난에 문제가 있기 때문임에 틀림없소."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 네 페이지의 광고가 우리집 집세와
관계가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한 번 더 알만 씨를 만나 얘기해 봐야지. 모두가 알만 씨를 좋아하고 존경 하니까 틀림없이 내 청을 들어주실
거야.' 전에도 여러 번 그와 대화를 시도했지만 그럴 때마다 그는 나를 만나 주려고 도 하지 않았다. 전화를 걸 때마다 그는 항상
외출중이거나 전화를 받을 수 없 는 상태였다. 만일 그가 내 광고난에 광고를 싣는다면 도시의 다른 상인들도 따 라서 싣게 되리라는 건
분명했다. 나는 이번에는 전화를 걸지 않고 직접 렉솔 약국으로 찾아갔다. 내가 약국 안으로 들어갔을 때 루벤 알만 씨는 뒤켠의 조제실에서 무슨
일인가를 하고 있었 다. 나는 최대한으로 멋진 미소를 지으면서 내 아이들의 초록색 크레용으로 표 시한 소중한 나의 광고난을 펼쳐 들었다. 나는
알만 씨에게 말했다, "알만 회장님, 모두가 회장님의 의견을 존중합니다. 다른 상인들에게 회장님 의 의견을 말해 줄 수 있도록 잠시 제가 하는
일에 대해 들어 주시겠어요?" 그 순간 그의 입술 양 끝이 아래로 일그러졌다. 그는 한마디의 말도 없이 강 력하게 고개를 저으며 매우 부정적인
제스처로 거부 표시를 했다. 내 상처 입은 가슴이 또다시 철렁 하고 밑바닥으로 내려앉았다. 그 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아 마 모두가 그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갑자기 모든 의지가 내게서 빠져나갔다. 나는 가까스로 약국 옆에 있는 오래 된 소다수 판매대 앞으로 걸어갔다. 도저히 집까지
차를 운전하고 갈 힘이 없었 다. 뭘 사 마시고 싶은 생각조차 없었다. 하지만 공짜로 소다수 판대매 앞에 앉 아 있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내가
가진 마지막 10센트를 꺼내 체리 콜라를 주 문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절망적인 생각이 밀려왔다. 내가 어렸을 때 매번 그랬 던 것처럼 내
아이들도 이제 집 없는 아이들이 돼야만 하는가? 신문반 선생님의 판단이 틀리신 걸까? 어쩌면 그 여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은 단순한 착각이었는지 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때였다. 어떤 부드러운 목소리가 내가 앉아 있는 소다수 판매대 옆에서
말 을 건네 왔다.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나는 고개를 들었다. 어떤 은발 머리의 노부인이 동정심 가득한 얼굴로 나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나는 눈물을 흘리면서 내 사정 이야기를 노부인에게 털어놓 았다 그런 다음 맨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모두가 존경하는 알만 씨는 내가
하는 일에 대해 듣고 싶어하지도 않는걸요." 그러자 노부인이 말했다. "어디 나한테 그 광고난을 좀 보여 줘 봐요." 그녀는 표시가 된 신문
광고난을 손에 들고 세심하게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 다. 다 읽고 난 그녀는 의자에서 일어나 약국 조제실을 향해 돌아서더니 길 저 편에서도 들릴
만큼 큰 소리로 명령하듯이 말하는 것이었다. "루벤 알만! 당신 이리 좀 와요?" 그 노부인이 바로 루벤 알만 씨의 부인이었던 것이다. 알만
씨가 다가오자 노부인은 당장 내 광고난에 광고를 게재하라고 말했다. 그러자 알만 씨의 입이 아까와는 반대 방향으로 올라가며 큰 미소를
지었다. 그 다음에 노부인은 나를 실망시킨 상인들 네 명의 이름을 물었다. 그녀는 직접 전화기로 가서 그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고는
나를 한 번 껴안아 주면서 그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으니 서둘러 가서 다시 광고 계약을 맺으라고 말했다. 루벤 알만 씨와 비비안 알만 노부부는 그
후 우리 가족의 가까운 친구가 되었 으며, 물론 꾸준한 광고 고객이 되어 주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루벤 알만 씨는 누구의 부탁도 거절하지
못하는 호인이었다. 그래서 참다 못한 부인이 그 에게 더 이상 어떤 광고 계약도 하지 말라고 다짐을 받아 냈던 것이다. 알만 씨 가 그날 그런
식으로 나를 냉정하게 대한 것은 다만 아내 비비안 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만일 내가 그런 사실을 미리 알았더라면 나는 애초부터 알만 씨
부인과 대화 를 시도했을 것이다. 소다수 판매대 앞에서의 그 만남은 내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되었다. 내 광고 사업은 날로 번창해서 그 후 네
개의 사무실과 285명의 직원, 그리고 4천 군데가 넘는 광고주를 확보하기에 이르렀다.
훗날 알만 씨가 구식 약국을 현대식으로
바꾸고 소다수 판매대를 없앨 계획을 세웠을 때, 내 남편 보브가 그것을 샀다가 내 사무실 한켠에 멋지게 설치해 주 었다. 만일 당신이 이곳
캘리포니아에 온다면 나와 함께 그 소다수 판매대 의자에 앉아서 얘기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당신에게 체리 콜라를 대접하면서 결 코
포기하지 말 것을, 도움의 손길은 언제나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가까운 곳에 있다는 걸 말해 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또 말할 것이다. 당신이
만일 중요한 인물과 대화할 수 없다면 더 많은 정보를 찾으라고 그래서 다른 길을 시도해 보라고. 당신을 위해 대화를 시도해 줄 제삼자를
찾으라고.
그런 다음 마지막으로 나는 당신에게 매리엇 호텔의 빌 매리엇이 말한 다음의 멋진 문장을 들려 줄
것이다.
실패라고? 난 그런 걸 만난 적이 없다. 난 다만 잠간 멈췄던 것일 뿐이다. - 도티 월터스
창조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 난 다음과 같은 것들을 기다린다.
1. 뛰어난 영감 2. 주위 사람들의
허락 3. 누군가의 따뜻한 격려 4. 누군가 타다 주는 커피 5. 내 차례 6. 다른 사람이 잘 닦아 놓은
길 7. 몇 가지 규칙 8. 나를 변화시켜 줄 사람 9. 방해받지 않는 널찍한 길 10. 설욕의 기회 11.
뛰어넘기 쉬운 낮은 장해물 12. 더 많은 시간 13. 중요한 인간 관계의 개선, 또는 그 관계의 마무리, 또는 새로운 관계의 시
작 14. 내가 원하는 제대로 된 사람 15. 내게 새로운 기회를 안겨 줄 어떤 큰 천재지변 16. 적당한
시기 17. 나를 대신해 희생해 줄 사람 18. 자식들의 독립된 생활 19. 주가 지수 1500이상 20. 평화로운
분위기의 정착 21. 서로간의 동의 22. 더 나은 시기가 왔다는 판단 23. 점성학적으로 더 좋은 시점 24.
젊음의 회복 25. 사전 예측 26. 사회를 개혁할 수 있는 위치 27. 훌륭한 전직 대통령이 다시 대통령에
당선되기 28. 내 자유대로 행동할 수 있는 나이 29. 내일 30. 행운의 카드 31. 건강 종합 진단
결과 32. 좋은 친구들과의 만남 33. 더 튼튼한 방어벽 34. 다음 학기 35. 졸업 후 36. 소파를
갉아먹는 고양이의 버릇을 고치고 난 뒤 37. 위험 부담이 사라진 뒤 38. 옆집에서 짖어 대는 개가 동네를 떠나기만 하면 39. 삼촌이
군대를 마치고 집에 돌아올 때 40. 나를 발견하고 내 재능을 인정해 줄 사람 41. 더 적절한 대비책 42. 투자비의
하향 조정 43. 여러 쓸모없는 법 조항들의 철폐 44. 부모님이 돌아가시면(농담!) 45. 에이즈의 완전한
퇴치 46. 내가 이해할 수 없거나 인정할 수 없는 일들이 모두 사라졌을 때 47. 전쟁의 완전한 종식 48. 옛 사랑과의
대화 49. 내 곁에서 나를 지켜봐 줄 사람 50. 분명한 지시 사항 51. 더 효과적인 산아 제한 방법 52.
남녀 평등 헌법 수정안의 통과 53. 가난, 불평등, 폭력, 사기, 무능력, 전염병, 범죄. 모욕적인 발언 등이 완전 히 사라질
때 54. 경쟁 상대의 특허권 취소 55. 어릴 적 애인이 돌아오기를 56. 부하 직원이 더 많은 경력을 쌓게 되었을
때 57. 내 아집이 좀더 사라지게 될 때 58. 기회가 무르익었다는 판단이 섰을 때 59. 새 신용카드의
발급 60. 피아노 조율 61. 이 만남이 끝난 뒤 62. 어음 결재 63. 실업 수당으로 받은 수표의
현금화 64. 봄 65. 세탁소에서 양복을 찾아오고 나서 66. 자신감 회복 67. 하늘로부터의 계시 68.
이혼한 아내와 자식들의 생활비를 더 이상 보내 줄 필요가 없게 될 때 69. 실패로 끝난 내 첫 번째 노력 속에 담긴 반짝이는 천재성을 누군가
인정 해 주고, 박수를 쳐 주고, 내가 안심하고 두번째 시도를 할 수 있도록 든든히 보 상을 해 줄 때 70. 허리 통증과 위 아픈 곳이
사라질 때 71. 은행에서의 빠른 일처리 72. 바람이 선선해졌을 때 73. 내 아이들이 좀더 철이 들고, 부모 말에
복종하고, 스스로 제 할 일을 하 게 될 때 74. 다음 계절 75. 용기를 불어넣어 줄 어떤 사람 76. 논리적으로
합당하다는 판단 77. 다음 기회 78. 햇빛을 가리고 서 있는 사람이 비켜 줄 때 79. 내 배가 항구에 들어올
때 80. 더 마음에 드는 냄새 제거제 81. 학위 논문을 끝낸 뒤 82. 잘 써지는 펜 83. 외상값
지불 84. 가출한 아내의 귀가 85. 의사의 허락 86. 아버지의 승낙 87. 목사님의 축복 88. 법률
상담가가 오케이 싸인 89. 아침 90. 혼란스런 시기의 마감 91. 능숙한 장부 관리 기술 92. 담배를 피우고
싶은 충동이 완전히 사라졌을 때 93. 가격의 상승 94. 가격의 하락 95. 가격의 안정 96. 할아버지의 부동산
정리 97. 아들의 학교 졸업, 아들의 결혼, 아들의 첫 아이 출산 98. 어떤 암시 99. 당신이 먼저 시작할
때
창조적인 삶을 살기 위해 나는 이 모든 것들을 기다렸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 는 사이에 어느새 기회를 다 놓치고 늙어버리고
말았다. - 데이빗 B. 캠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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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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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의 과학 -
이야마 히로유키, 옮긴이: 이정임
아이스킬로스의
비극 (2/2)
우연의 원의
여기에서 잠시 언어의 뜻을 탐색해보자. 우연과 낙하와 충돌 사이에 특히 긴밀한
관계가 존재하는 것이 확실해지기 때문이다. 영어에서 우연을 의미하는 찬스는 민중 라틴어 카덴티아에서 파생된 고프랑스어 챈스를 그 어원으로
하는데, 카덴티아의 동사형 카도(부정형은 카데레)는 원래 '떨어진다' 또는 '강하한다'를 의미하고 있다 또 이 단어를 보면 생각나는 단어가
있는데, 음악회에서 솔리스트가 실력을 자랑하는 카덴차(화려한 무반주 악구)도 본래는 '하강'을 의미하지만 그 의미가 바뀌어 '리듬감 넘치는
율동적인 부분'을 가리키게 되었다. 또 콘티젠시도 우연이나 우발성을 의미하는데, 그 유래는 라틴어 콘티젠티아에서 찾을 수 있다. 이것들은
흥미진진하게도 같은 라틴어 동사 콘티고(부정형은 콘티그레)로 '접촉한다' '충돌한다'라는 의미가 있다. 독일어의 경우가 가장 본래의 뜻이 남아
있다고 할 수 있다. 우연을 나타내는 독일어는 주펠이기 때문이다.(주펠른은 낙하를 의미한다.) 이것은 라틴어로 '우연히 만나다'를 나타내는
인시도(부정형은 인시드레)를 그대로 번역한 형태로 되어 있다. 물론 인시도는 '추락한다'라는 의미도 있다. 계속해서 말하면 명사형의
인시덴티아에는 '돌비'라는 의미도 있다고 한다. 프랑스어의 해사드는 조금 이해하기 어렵지만 카드레에서 카서스를 거쳐 성립되었다고 한다.
중간형으로서 체서스였던 것이 씨음이 탈락해서 해사스가 된 것일까? 안타깝게도 이 점은 확증할 수 없다. 또 '로벨 불어사전'에서는 별도의
원어설이 소개되고 있다. 주사위를 의미하는 민중 아라비아어의 아즈-자르에서 스페인어 아자아(주사위 도박에서 나쁜 패)를 거쳐 해자드로 변화했다고
말하는 것이다. 왜 주사위인가 하면, 고아라비아어의 자하아가 꽂을 나타내고, 거기에서 파생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꽃무늬 주사위가 있었던
것같다.
다시 영어로 되돌아가서 '사건'을 인시던트라고 말하고, 두 가지 사건이 '우연의 일치'를 이루는 것을 코인시던트라고
쓰는데, 이것도 또 '우연히'를 의미하는 라틴어 인카데레에서 생겨난 것이다. 그리이스어에 대해서는 우연에 관한 개념 분석을 맨처음
체계적으로 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제2권 4-6장)에서 그 용례를 엿볼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연을 주로 두 가지 카테고리로
분류하고 있다. 예를들면 '연회에서 징수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유로 채무자한테 가서 가끔 징수할 수 있다'라고 할 경우 이런 종류의 우연을
듀케라고 부른다.('우연'이라고 번역되어 있다) 한편 '삼각대가 혼자서 떨어졌다'라든가 '돌이 떨여져 사람을 쳤다'는 경우와 같이 인격을
지니지 않은 자연물의 낙하와 같은 사건을 아우토마톤이라고 한다.('자기우발'이라고 번역되어 있다) 이 듀케는 운명의 여신이기고 하며,
로마신화에서는 포르튜나라고도 불린다. 여기에서 행운을 나타내는 포툰이 나왔다. 듀케의 동사형에 '당첨되다'라는 의미가 있다는 것을 덧붙여 두자.
또 한가지 아우토마톤은 그대로 음역된 형태로 영어의 오토메이션으로 바뀌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이상학'중에 습베베코스라는
개념을 도입해 두고 있는데, 이것은 독립된 두 가지 것이 우연하게 부대적으로 구비하고 있는 상황을 가리키는데 사용되엇다. 습베베코스를 라틴어화한
것이 엑시던스이다. 동사형인 엑시드(부정형은 엑시데레)는 '낙하한다' '발생한다'나 '만난다'는 의미가 있다. 이렇게 서구의 우연에 관련된
단어를 조사해보면 어느 단어라도 '낙하'나 '충돌'과 인연이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조사하는 김에
한자에 대해서도 약간 다루어볼 필요가 있다. '우'는 '가끔' 이라고 훈으로 읽는 습관이 있는데 '우수'와 같이 하나 하나가 만사서 둘이
되듯이 서로 마주 보거나 나란히 하는 것이 본래 의미이다. 배우자는 남녀가 나란히 있거나 또는 만나는 것에서 유래된 것이다. 또
'우감'이나 '우성' 등이 '상념이 문득 떠오르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동양권에서는 낙하 현상과의 관련은 희박하고 오히려
'부상'하는 이미지를 동반하고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눈먼 거북이가 바다속에서 떠올라오는 이야기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왕충이 쓴
'논형'(제3권 물예편)에 이런 용례가 있다. 유자논왈 '천지고생인'. 비언망야. 부천자생야, 유부부합기, 자즉자생야, 부부합기,
비당시욕득생자, 정욕동이합, 합이생자야. ("천지는 특정한 목적이 있어서 인간을 만들었다."라고 유자는 말했지만 그것은 거짓이다. 천지가
음양의 기를 반응시켰기 때문에 인간은 가끔 저절로 생겨난 것이다. 남녀가 욕망의 흐름에 따라 기를 합쳤기 때문에 자식이 그 결과로서 저절로
생겨나게 된 것이다) 여기에서는 우연의 형태로서 우와 자가 나열되어 있는데,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듀케=아우토마톤의 이분법과 기묘하게도 부합하고
있는 것이 매우 흥미롭다. 원래 '자'의 용례는 노장사상의 핵심인 무위자연의 개념을 포함한 경우가 많아 정확하게는 아우토마톤의 원래 뜻과
일치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저절로 생겨났다고 해도 단 한가지 원인도 없는 상태를 말하는지, 그렇지 않으면 그 자체에 갖고 있는 원인이나 원리에
의해 생겨났는 것인지 해석이 나누어진다. 그렇지만 일부러 왕충의 예를 든 데는 이유가 있다. 당시는 아직 생식의 신비가 해명되지 않았기 때문에
남녀의 화합이 결국 정자와 난자와의 만남을 의미한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지만, 인간존재의 본질에 있어서 그 탄생 형태를 취하고 있다는 점과,
그 우연이 궁극적으로는 다른 유전자끼리의 충돌 형태를 취하고 있다는 점이 앞으로의 이야기 흐름에 따라 중요하기 때문이다.
어의
분석의 마지막으로 일본어에서는 '우연'이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를 검토해보자. 먼저 말해두면 이제까지 유럽어에서 본 것과 같은 우연을 낙하나
충돌로 보는 경향이 일본어에서는 거의 보여지지 않는다. '우'를 '가끔'이라고 읽듯이 우연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일본어의 표현은 '가끔'이나
'이따금' 또는 '어쩌다'라는 부사를 파행하는 '가끔'이라는 명사이다. 이 언어의 어원에 대해서는 주로 다음 세 가지를 들고 있다. 1.
잠깐동안 2. 오랫동안 3. -틈, -사이
'일본국어대사전'에는 그 외에도 또 다른 학설이 소개되어 있는데, 위의 세 가지
모두 시간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고, 특히 간과 간사이가 벌어져 있다는 것, 즉 시간 간격이 크다는 것을 가리키고 있다는 점에서도
공통적이다. 한 번 일어나서부터 다음에 일어날 때까지의 시간이 길게 벌어져 있어서 드문 사건을 말한다는 것이 보통인데, 이 '드문'이라는
말도 또 '대언해'에서는 '간유'의 약어로 되어 있어 사건이 발생하는 빈도가 적은 것을 의미하고 있다. 한편 드문 일은 '전혀 없다'라고도
말하는데, 이것은 별도의 계통에 속해 있다. 보통 '좀처럼'라고 쓰는 것에서 '많지 않고 드물게'라고 해석하지만, '속어고'에 의하면 고어의
'공연히'가 어원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공연히'는 근거나 이유가 없다는 의미로 쓰기도 한다. 즉 겪은 경험이나 사건에 원인이 될 만한 것을
발견하지 못한 경우에 이용되던 말이 빈도가 적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변용된 것이다. 이와 같이 일본어의 우연 개념은 주로 발생하는 경우가 적거나,
아예 없거나, 또는 확률이 낮은 것을 가리키고 있다. 이제까지 본 다른 문화권의 방식과는 꽤 차이가 나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한가지
잊어서는 안되는 야마토 말이 있다. '일포사전'에도 베쿠레우아라는 가어(와카에서 잘 쓰이는 말씨)로 기재되어 있는 '와쿠라바'라는 말이다.
가장 잘 사용한 용례는 다음 야마카미의 '빈궁문답가'의 한 절인 것이다.
추운 밤 나보다도 가난한 부모는 얼마나 굶주리고
추울까. 처자는 얼마나 기원하며 울까. 이런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너의 세상은 지나간다. 천지는 넓다. 하지만 나에게는 넓지 않다. 일월은
밝으나 나에게는 비추지 않는다. 모두에게 그럴까. 아니 나에게만 그렇다. 하필이면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 나도 남만큼 할 수 있는 데도,
면으로 만든 옷도 없이 누더기만 어깨에 걸치고 찬바람 부는 해성들 사이를 혼자서 걸어가야만 하는가.
남의 일이라고 해도 몇
번씩 읽으면 가슴이 죄어올만큼 안타까운 노래이다. 하지만 예를 들어 후세에 '혹시라도 찾아주는 사람이 있다면 스마노우라에 모시오(옛날 해조에
바닷물을 적셔 염분을 함유시킨 다음 그것을 태워서 물에 풀고 그 웃물을 끓여서 만든 소금)을 얻어서 극진히 대접할텐데"라고 읊었을 때에는 이미
잃어버리고 있는 또 한가지 우연의 의미가 감추어져 있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후자의 와쿠라바의 용도는 '좀처럼 사람이 올 것
같지도 않지만 만약 가끔 방문하는 사람이 있으면'이라는 의미로 빈도가 적은 것을 나타내는 용례인 것에 반해, 전자에는 '가끔 인간이 태어나 이런
가난한 생활을 하지만 다른 인생도 있지 않을까'하는 한탄이 있다. 의복도 없이 추위를 참으며 먹을 것도 곤궁한 나의 생활은 수많은 인생
가운데서 우연하게도 선택되어진 것으로 새나 벌레나 본래 다른 생도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자문자답하고 있다. 다른 것들에도 당연히 있는 존재의
선택지를 취급하는 방법은 동물전체를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 또는 인간 삶의 귀천의 차이만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인지에 따라 달라진다. 윤회전생
끝에 행복인지 불행인지 가끔 인간으로 태어난 자의 내일에 희망이 없고 괴로운 인생이 선택되어진 것을 작가가 한탄하고 있다면 거기에는 이중의
가능성이 가정되어 었다고 할 수 있겠다.
카프카 '변신'의 주인공 그레골 자무자와 비교해 보면 그 이중성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자무자는 어느날 아침 일어나보니 이유도 알 수 없이 독충으로 변해버린 자신을 발견하다. 예를 들어 그 생활이 가난하지 않을지라도 역시
'하필이면 벌레가 되다니'라고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고 있는데, 같은 벌레 중에서도 왜 독충이었을까? 등을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 벌레가
되었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불행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다른 경우도 있을 수 있다'라는 우연의 의미를 노랫말에서 찾아낸 것은 쿠키
슈우조우였다. 쿠키는 우연 개념을 분석하면서 독자적으로 분류 체계화한 저서 '우연성의 문제' 중에서 이런 류의 우연을 '이접적 우연'이라고
부르고 있다. 앞으로는 이렇게 부르기로 하겠다. 그런데 '와쿠라바'란 무엇일까? '병엽'이라고 쓰듯이, 원래는 질병이나 벌레에 먹힌 마른 잎을
말한다. 여름에 단풍진 것같이 보이는 썩은 잎을 말한다. '와쿠라바'는 '와쿠루하'가 변형된 것이라고도 하고, '와(어린
잎)쿠라우(벌레먹다)'에서 생긴 말이라고도 한다. 두 가지 모두 후세에 '해후'라고 쓸 정도로 만남이 드문 것을 의미하게 된 것이다. 마침내
긴 어의 해석 작업을 끝낼 수 있게 되었다. 이 장에서는 아이스킬로스의 비극을 시작으로 우연의 본래의 뜻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낙하'에 대해
알아보고, 거기에서 '다른 사상의 계열의 교차'로서 '충돌'이 관련된 사정을 관찰했다. 그러나 그냥 보기에는 원인이 확실치 않아 불가사의한
현상도 그 속에서는 '신의 개입'이 있을 수 있다는 것도 지적했다. 또한 우연 개념 중에 우연의 빈도 해석이라고도 할 수 있는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우연도 알게 되었다. 야마카미의 문답가에서 볼 수 있듯이 '수많은 후보 중에서 하필 선택되었다"라는 의미의 이접적 우연의 존재도 인정하게
되었다.
우연과 의미
여기에서 또다시 원의의 낙하로 되돌아가 그로부터 다른 의미 성분이 생길 수 있는
국면을 또 몇 가지 생각해 보자. 낙하체는 수평축에서 운동 또는 정지하고 있는 물체와 반드시 충돌하는 운명에 있다. 이 광경을 공간좌표 중에서
수직축을 시계방향으로 90도 회전 시키면 낙하는 공간에서의 이차원적인 교차를 수평면 위에서의 일차원적인 충돌로 바꿀 수 있다. 인생에서 인간의
만남이나 물체간의 사고도 이 형식을 갖고 있다. 우선 대머리에 관한 대화 중에서 작가 자신이 등장하는 창작 작품의 한 절을 살펴보자. 어느 날
소세끼는 출판사인 히로부미관으로 향했다. 거기에서 구상이 점점 무르익고 있던 소설 '도련님'에 대해서 잡담을 나누었다. 그리고 돌아오던 길에
쿄토제국대학으로 가는 우에다를 배웅하기 위해 신바시역에 서 있었다. "어, 저 사람은?" 소세키는 의외의 커플을 목격했다. 그것은 모리다
소우헤이가 짝사랑으로 고민하는 상대인 히라츠카 아키꼬와 이쥬잉 가케아키였다... "구니기다씨, 전 결심했습니다. 모든 성적인 죄를 후회하기
때문에 이제부터 이카호 온천에 가겠습니다." "그러나...그것은." 토쿠토미 켄지로우와 돗포구니기 다데츠오는 가끔 왕래가 있었지만, 극도의
조울증인 토쿠토미는 곤혹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는 구니기다에게 스스로의 악덕에 지친 듯이 고백하면서 머물 곳을 알려주지 않았다...(여기에서
소세끼는 인파로 혼잡한 복도에서 어느 청년과 부딪쳐 보자기의 책들이 바닥 여기저기에 떨어졌다. 어느 청년 장교가 달려와 책을 줍는 일을
도와주었다) 역사는 때로는 극적인 연출을 좋아한다. 그날 오후, 신바시역 중앙 광장 지붕 아래에서 수많은 역사적인 인물이 본인들은 모른 채 한
곳에서 만나고 있었다. 소세끼가 부칮친 인물은 안중근이라는 조선 청년으로 수년 후 하얼빈에서 이토오 히로부미에게 총탄을 쏜 지사였다. 또
소세끼의 책을 주워준 젊은 육군 소위의 이름은 도조 히데키라고 했다. 명치 38년 섣달 그믐날의 혼잡 가운데에서 발생한 일이었다. 야마다
가제타로우를 생각나게 하는 화려한 멤버가 세그룹이나 같은 날 같은 장소에 모였다. 물론 이것이 사실인지를 확인하려는 것도 아니고, 그럴 필요도
없다. 오히려 이와 같은 만남이 독자의 흥미를 끄는 이유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마지막 광장에서의 접촉에 대해 초점을
모아보자.
혼잡한 가운데 사람과 사람이 부딪치는 것은 일상중에 다반사이다. 상대가 보자기를 떨어뜨린 것도 있을 수 있고, 그
속에서 책이 쏟아져 나오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만큼의 조건만으로도 서로 독립된 인생을 살고 있는 복수의 인간이 평면상의 한 점에서
예기치 못한 해후를 한 것이기 때문에 우연한 사건이라고도 해도 이의는 없을 것이다. 단 그다지 커다란 우연이라고 느낄 수 없는 이야기이다보면
크지 않은 우연에 다른 우연이 새롭게 부대적으로 첨가됨으로써 우리들의 흥미를 돋구게 된다. 안중근과 도조와 소세끼가 한 점에서 만났다는 것
때문에 더욱 그렇다. 세키가와씨의 창작으로 덧붙여진 이 우연은 이제까지는 언급하지 않은 형태의 것이다. 나는 이 새로운 타입의 우연을 '의미
부여에 의한 우연'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모노크롬 펜으로 그려진 우연한 충돌에 당사자를 각각 다른 장소에서 들어 알고 있던 독자가 각양각색의
색채가 칠해 나누어 놓은 것이다. 요시츠네가 칭키스칸이 되어 활약하거나 셰익스피어의 정체가 프란시스 베이컨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그 진위는
차치하더라도 재미있다고 느낄 수 있는 것은, 의미 부여에 의한 우연이 작용한 것임에 틀림없다. 최근 화제가 되었던 오스트레일리아의 언어학자
바바라 시링의 저서 '예수의 미스테리'를 읽고 죽었다 살아났다는 나사로가 열혈당 시몬이었다는 것을 듣고 충격을 받았던 것도 역시 같은 우연의
작용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쿠키 슈우조우가 예로 들고 있는 '의미 부여에 의한 우연'(쿠키 자신은 목적적,적극적 우연이라고 분류하고 있다)
중에서도 재미있는 걸작을 소개하겠다.
무적함대 이소래이의 함장으로부터 초대받아 19일 오사카에 입항중의 순양함 이소래이를 방문해
야마다 함장을 비롯한 젊은 사관들의 환대에 감격한 제일영화사의 스타 야마다 이소래이는... 기념 촬영한 확대 사진을 걸어두고 영원히 이 기록을
기념하였다. 이 경우 우리들은 여배우는 알고 있어도 함장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른다. 소세끼의 충돌 사건 정도로 유명인이 모여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함대의 명칭과 순양함의 이름이 여배우의 예명과 일치한다는 것에 이야기의 재미가 있다. 사람을 치어 죽인 차의 등록번호가
1564(히토고로시:사람을 죽인다는 뜻)여서 신물의 기사거리가 된 사고가 있었는데, 더욱이 운전한 사람이 셰익스피어(1564년생)를 애독하였다면
의미 부여 효과는 더욱 커지고, 사람은 그 불가사의한 인연으로 놀랄 것이다. 그 사람이 다이쇼 15년 6월 4일생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같은
자동차 사고라도 다음에 말할 충돌사고는 다른 의미를 갖는다. 스스로의 힘으로 난치병인 교원병(피부와 근육이 붙거나, 근육과 뼈가 이어져 붙거나,
세표와 혈관 사이가 메워지거나 하는 병의 총칭)으로부터 기적적으로 회복된 미국의 의료 저널리스트 엔. 카즌즈의 글을 한 번 보도록
하자.
슈바이처 병원에서의 생활은 젊은 의사나 간호사들에게 있어서 결코 간단한 일은 아니었다. 슈바이처 박사는 그것을 잘 알고
있어서 그들의 정신에 양분을 보급하는 것을 자신의 업무로 여겼다. 직원 회식 때 슈바이처는 언제나 식탁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한 두 가지씩
늘어놓았다. 식사 때 큰소리로 웃는 것은 매우 중요한 메뉴 코스로 되어 있었다. 직원들이 그의 유모어의 묘미로 생기를 되찾는 것을 보고 매우
기뻐했다. 예를 들어 어느 날 식사 시간에 슈바이처 박사는 직원들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여러분도 알고 있듯이 병원에서 75마일
이내에는 자동차가 두 대밖에 없는데 오늘 오후 불가피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그 두 대가 충돌한 것입니다. 우리들은 두 운전수의 찰과상을
치료했습니다. 기계 만지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차를 치료해도 좋습니다." 카즌즈는 나이 90을 바라보는 만년의 슈바이처를 취재하고
있었다. 이것은 밀림 속의 랑바레네 병원에서의 에피소드 중하나이다. 카즌즈는, 창조력이 풍부한 인간은 특별한 유모어 감각을 갖고 있어
마음속으로부터 웃길 수 있는 사람으로 그 웃음의 힘에 의해 육체도 치유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렇게 믿고 하루 2시간 이상 계속 웃어
교원병을 치료한 불굴의 사람이기도 하다.
이 일화가 재미있는 이유도 역시 우연과 관련되어 있다. 자동차끼리의 충돌은 이미
말했듯이 흔히 있는 우연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랑바레네촌 부근에 단 두 대밖에 없는 것이라고 하면 사정은 달라진다. 오랜 시간을 두고 겨우
한 번 일어날까 말까한 사고이기 때문에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흥미를 갖게 한다. 거기에는 확률의 산정이 관여되어 있다. 우리들은 확률이 극히
낮은 현상에 대해 우연을 느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유모어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서 웃음과 창조성과의 밀접한 관계를 우연의 이종 결합에
따라 설명하고자 한 사람이 아사 케스트라였다는 것을 말해 둘 필요가 있다. 우연은 때에 따라서 창조력을 인간에게 부여한다고 그는 생각했다. 이
점에 관해서는 뒤에서 검토하기도 하자.
늙은 아이스틸로스의 대머리에 거북이가 떨어진 이야기는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굴절되어,
동서문헌에 실린 낙하와 충돌과 관련된 여러 가지 우연의 양상을 살펴보게 했다. 원의인 '낙하'를 비롯해 '교차'나 '충돌'과 만난 우리들은
인격신의 개입을 인정함으로 우연의 아주 깊은 곳에서 '신의'를 느낄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어의를 따져 들어감으로써 원의의 보편성이 명백해짐과
동시에 '드문 일'로서의 우연, 즉 확률이 낮은 사건으로서의 우연의 존재가 해명되는 한편, 인간 존재 그 자체를 우연이라고 달관하는
'와쿠라바(병든 잎)'의 우연, 이접적 우연도 알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에 의해, 흔히 볼 수 있는 우연을 좀 더
특별한 것으로 보는 것도 지적했다. 다음 장 부터는 필연적 과정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는 자연과학 세계에 발을 내딛어 거기에도 이러한 여러 가지
우연적인 요소가 그 효력을 발휘하고 있는 광경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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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고사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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芒刺在背(망극재배) 芒(까끄라기 망) 刺(가시 자) 在(있을 재) 背(등
배)
한서(漢書) 곽광( 光)전의 이야기다. 서한(西漢)시기. 기원전 87년, 한무제가 세상을 떠나자, 여덟살 된 아들이
소제(昭帝)로서 제위를 계승하였다. 공신의 후손인 대장군 곽광은 한무제의 뜻을 받들어 황제을 보좌하며 국정에 관여하였다. 한소제가 21세로
죽자, 곽광은 한무제의 손자인 창읍왕(昌邑王) 유하(劉賀)를 제위에 앉혔다. 그런데 그는 음란하고 놀기만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국정에는 관심이
없었다. 이에 곽광은 유하를 폐하고, 한무제의 증손자인 유순(劉詢)을 제위에 앉혔다.
새로 제위를 계승한 한선제(漢宣帝) 유순은
국권(國權)을 주무르는 곽광을 몹시 두려워하였다. 한선제가 선조의 사당에 제사를 지내러 갈 때, 곽광은 직접 수레를 몰고 그를 모셨다. 한선제는
기골이 장대하고 날카로운 눈에 엄한 표정을 한 곽광을 보며, 수레 안에서 마치 등에 가시가 박힌 것처럼(若有芒刺在背) 참기 어려운 모습으로 떨고
있었다. 기원전 68년, 곽광이 죽자, 한선제는 비로소 이러한 느낌을 갖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芒刺在背(A thorn in
the flesh)란 몹시 불안한 상태 를 비유한 말이다. 경제 대란에다 정치 대란이라는 말이 나돈다. 시원찮은(?) 리더 덕분에 국민들은 늘
바늘방석에 앉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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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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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디자서전. 시민의 불복종 - 간디
/ 함석헌 역
제2편
26. 두가지 열망
나는 이날까지 나만큼 영국 헌법에 대해 충성을 지켜 온 사람을
보지 못했다. 그렇게 충성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밑에 진리에 대한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나는 지금 와서야 알게 되었다. 나는 한번도
충성을 겉으로만 할 수는 없었다. 또 그 점은 어떤 도덕에 대해서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내가 나탈에 있을 때는 어떤 회합엘 가더라도 국가를
반드시 부르곤 했는데, 그럴 때는 나도 같이 부르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영국 통치에 잘못이 있는 것을 몰라서가 아니라, 그것은 전체적으로 볼
때 받아들일 만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영국의 통치는 전체적으로 볼 때 피통치자에게 해택을 주는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내가
남아프리카에서 보았던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은 영국 전통에는 아주 반대되는 것이라고 그때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다만 일시적인
것이요, 국지적인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나는 국왕에 대한 충성에 있어서 영국인에게 지지 않으려고 했다. 나는 영국 국가의 곡조를
끈기를 가지고 배웠고 그것을 부르는 때면 나도 같이 불렀다. 충성심을 표시해야 할 경우엔 소란스럽게 하거나 형식적으로 하지 않고 언제나 기꺼이
참여했다. 일생에 한번도 이 충성을 이용해 본 일이 없고, 이것을 수단으로 내 개인적인 이익을 얻으려 해본 일도 없었다. 나는 그것을 의리적인
심정에서 많이 한 것이기 때문에 어떤 보수를 바라며 한 적이 없다. 내가 인도에 도착했을 때는 빅토리아 여왕 즉위 60주년 기념 경축회의 준비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나는 이 경축을 위한 라지코트 준비 위원회에 참가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나는 그것을 수락은 했으나 그것이 거의 허식을
위한 것이 아닐까 의심스러웠다. 사실 나는 거기에서 많은 협잡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적잖이 마음이 괴로워서, 그 위원회에 그냥 남아 있을 것이냐
말 것이냐에 대해 스스로 생각해 보았으나 결국 내 맡은 일이나 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남아 있기로 결정했다.
경축 계획의 하나는
나무를 심는 일이었다. 많은 사람이 그것을 그저 형식적으로, 또한 관리들에게 잘 보이려고 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나무를 심는 것은 강제가
아니고 하나의 권장에 불과한 것이니, 하려거든 진심으로 하거나 그렇지 않거든 차라리 안하는 것이 좋다고 누누히 설명을 했으나 그들은 내 생각을
비웃기만 하는 듯했다. 나는 내게 배당된 나무는 정성으로 심었고 주의해 물을 주고 손질을 해 주었다고 기억한다. 나는 또 집 아이들에게 국가를
가르쳐 주었다. 또 지방 직업학교 학생들에게도 가르쳐 준 기억이 있으나 그것이 60주년 경축때였는재 아니면 영국왕 에드워드 7세가 이도 황제로
즉위할 때였는지는 잊어 버렸다. 그러나 그 후 그 국가의 가사가 내 마음에 맞지 않게 되기 시작했다. 아힘사에 대한 내 생각이 점점 깊어감에
따라 나는 생각하고 말하는 데 더욱 조심을 하게 되었다. 국가 가사에 있는,
나라의 대적을 흩어 버리고 그들을 모두
멸망시키자. 그 정치를 뒤엎어 버리고 그 간악한 흉계를 꺾어 버리자.
라는 구절들이 나의 아힘사의 정신에
거슬리었다. 내 소감을 부드 박사에게 말했더니 그도 동감이라 하고, 아힘사의 신자가 그런 구절을 부르는 것은 옳지 못한 일이라고 했다. 이른바
적이라고 해서 어떻게 간악하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 또 적이기 때문에 반드시 그들이 잘못이라 할 수 있을까? 다만 하느님께 대해서만 우리는
정의를 간구할 수 있다. 부드 박사는 내 감정을 전적으로 지지해 주었고, 자기의 성회를 위해 새 성가를 지었다. 부드 바사에 관해서는 뒤에 더
말하기로 겠다.
충성심과 한가지로 간호의 소지도 내 천성 속에 깊이 뿌리박고 있다. 나는 친구거나 모르는 사람이거나 남을 간호해
주기를 좋아한다. 라지코트에서 남아프리카에 관한 팜플렛으로 분주한 동안 나는 봄베이에 잠깐 다녀온 일이 있었다. 그 문제에 관하여서 도시에서
집회르 조직함으로써 여론을 일으키자는 것이 내 계획이었는데 그 첫째 도시로 택한 것이 봄베이였다. 나는 우선 라나데 판사를 만났는데, 그는 내
말을 주의해 듣고 나서 페로제샤 메타 경을 만나 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조언을 해주었다. 그 다음 만난 바드루딘 지 판사도 역시 같은 조언을
해주었다. 그는 말했다. 라나데 판사나 나는 당신을 크게 도와 줄 수 없습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우리는 공적인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처지가
못됩니다. 그렇지만 하시는 일에 동정은 합니다. 가장 힘있게 당신을 도울 수 있는 분은 페로제샤 메타 경입니다.
나는 진심으로
페로제사 메타 경을 만나고 싶었다. 그러나 이 두 선배되는 분들이 다같이 나더러 그의 지도에 따라서 하라고 조언해 주었다는 사실이 페로제샤 경이
민중에게 얼마나 막대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가를 내게 잘 알려 주었다. 얼마 후 나는 그를 만났다. 그 앞에 가면 두려워지리라는 것은 미리
각오하고 있었다. 나는 그가 공중으로 부터 받고 있는 칭호를 들어 알고 있었으며 내가 봄베이의 사자 무관의 왕 을 보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왕은 나를 위압하지는 않았다. 그는 늙은 아버지가 장성한 아들을 만나는 것처럼 나를 만나 주었다. 우리의 회견은 그의 방에서
이루어졌는데, 그의 주위에는 그의 친구와 추종자들이 둘러 있었다. 그들 중에는 와차씨와 카마씨가 있었는데, 나는 그들에게 소개되었다. 와차에
대해서는 이미 들은 바 있었다. 그는 페로제샤 경의 오른팔로 알려져 있었고, 비르찬드 간디씨는 그가 위대한 통계학자라고 내게 말해준 일이
있었다. 와차는 나를 보고 간디 씨, 다시 만나야 하겠습니다. 라고 말했다. 이 소개들은 2분도 걸리지 않았다. 페로제샤 경은 내 말을
주의깊게 들었다. 나는 그에게 라나데와 지 두 판사를 만난 이야기를 했다. 그는 말하기를, 간디 씨, 내가 당신을 도와 드려야 겠고, 여기서
공개집회를 열어야 겠소. 하고는 비서 문쉬씨를 향해서 집회 날짜를 결정하라고 했다. 의논이 끝난 다음 그는 작별인사를 하고 집회 전날 다시
자기에게 와보라고 했다. 이 회견으로 나의 두려움은 사라졌고 나는 기뻐서 집으로 돌아왔다.
이번에 봄베이에 머무르는 동안 나는
나의 매부를 찾았다. 그는 거기서 병으로 누워 있었다. 그는 재산이 있는 사람도 아니었고 누님(그의아내)은 그를 잘 간호할 만하지도 못했다.
그의 병은 매우 중하였으므로 나는 라지코트로 가자고 했다. 그가 승낙했으므로 나는 누님과 그의 남편을 데리고 라지코트로 왔다. 병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오래 끌었다. 나는 매부를 내 방에 들게 하고 밤낮으로 그와 같이 있었다. 밤에도 한동안은 깨어 있어야 했고, 그를 간호하면서
남아프리카의 몇 가지 일을 끝내야 했다. 환자는 결국 세상을 떠나고 말았지만, 그의 마지막 날까지 그를 간호할 수 있었다는 것이 나에게는 큰
위로가 되었다.
간호하기를 좋아하는 버릇은 차차 하나의 열정으로 까지 되어 버려 때로는 내일을 소홀히 하기까지 할 정도였다.
어떤때는 내 아내뿐만 아니라 온 집안 식구를 그 일에 끌어들이기까지 했다. 그런 봉사는 즐거운 마음으로 하지 않아서는 의미가 없다. 그것을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나 여론이 무서워서 하게 되면 그것은 그 사람을 쭈그러뜨리고 정신을 망가뜨리는 일이 되어 버린다. 기쁨이 없이 하는 봉사는
봉사하는 사람에게도 봉사받는 사람에게도 아무 도움이 못된다. 그 대신 기쁜 정신으로 한 봉사 앞에서는 모든 쾌락과 소유가 다
무색해진다.
27. 봄베이 집회
매부가 죽은 바로 이튿날, 나는 공개집회 때문에 봄베이로 가야 했다. 연설을
구상할 시간의 여유조차 없었다. 밤낮으로 여러 날을 불안한 마음으로 간호를 하고 나니 나는 완전히 지쳐 버렸고 목도 쉬어 버렸다. 그러나 오직
하느님만을 믿고 봄베이로 갔다. 연설 원고를 쓸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페로제샤 경의 지시대로 나는 집회 전날 오후 다섯 시에 그의 사무실을
방문했다. 간디 씨, 연설 준비 됐소? 그는 물었다. 못했습니다. 나는 두려워 떨며 말했다. 그냥 즉흥적으로
해보렵니다. 봄베이에서는 그렇게 해서는 안되오. 보도가 잘 되지 않소. 그렇기 때문에 이 모임을 유익하게 하려면, 연설문은 꼭 써야
하고, 그것을 내일 해뜨기 전까지 인쇄해 놓아야 하오. 그럴 수 있겠지요? 나는 좀 불안해졌으나, 그렇게 해보겠다고
했다. 그러면 말씀하시오. 몇 시에 문쉬 군이 원고 가지러 가면 되겠소? 오늘 밤 열한시면 되겠습니다. 다음날
집회에 나가 보고서야 나는 페로제샤 경의 조언이 현명한 것임을 알았다. 집회는 코와스지 예항기르 학원 강당에서 열렸다. 페로제샤 경이 집회에서
말을 할 때면 대부분이 그의 말을 듣고자 몰려드는 학생들로 구성된 청중으로 꽉 차서 장내에는 입추의 여지도 없다는 말을 나는 들었었다. 이것이
내 생애에서 처음으로 겪는 집회였다. 나의 목소리는 불과 몇 사람에게 밖에는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연설문을 읽기 시작하자 떨리기
시작했다. 페로제샤 경은 나를 격려해 주느라고, 자꾸 크게, 더 크게 라고 말해 주었지만, 나는 힘을 더 얻기는 고사하고 갈수록 점점 더 내
목소리를 작아지게만 해주는 듯했다.
내 오랜 친구인 케샤브라오 데슈판데가 나를 구해 주려고 나왔다. 나는 내 연설문은 그에게
넘겨 주었다. 그의 목소리는 꼭 알맞은 정도였다. 그러나 청중은 들으려 하지 않았다. 강당은 와차, 와차 하는 소리로 떠나갈 듯했다. 그래서
와차 씨가 올라가 그 연설문을 읽었는데, 결과는 너무나 놀라웠다. 청중은 완전히 조용해져서 연설에 귀를 기울였고, 다만 간간이 필요한 때면
박수나 또는 더럽다 고 소리지르면서 들었다. 나는 기뻤다. 이 집회로 인하여 나는 데슈판데와 한 파르시 친구로부터 열렬한 동정을 얻었다. 그
파르시 친구의 이름을 밝히고 싶지 않다. 그는 지금 정부의 고관으로 있기 때문이다. 두 분이 다 나와 함께 남아프리카로 가기로 결심했다고 했다.
그러나 그 파르시 친구는 결혼을 하려던 참이었기 때문에 당시에 소사건 법원 판사로 있던 쿠르셋지 씨가 그를 설득하여 그 결심을 깨뜨리게 하고
말았다. 그는 결혼을 하느냐 남아프리카로 가느냐 그 둘 중에서 어느 하나를 택하여야 했는데 결혼하는 쪽을 택하였다. 그러나 파르시 루스톰지가 그
깨어진 결심에 대한 보상을 해 주었다. 여러 파르시 자매들(배화교주)이 지금 몸을 바쳐서 카디*1 사업을 하고 있으면서, 그 결심을 좌절시킨
것을 도왔던 부인에 대한 보상을 하고 있다. 그랬기 때문에 나는 그 부부를 기꺼이 용서해 드렸다. 데슈판데는 결혼의 유혹은 없었지만 역시 오지
못하고 말았다. 지금 그는 자기가 어긴 약속에 대해 충분한 보상을 하고 있다. 남아프리카로 돌아가는 도중 잔지바르에서 나는 지 집안의
한사람을 만났는데 그도 와서 나를 돕겠다고 하고는 오지 않았다. 압바스 지가 그의 죄를 속죄하고 있다. 그와 같이 해서 변호사를 남아프리카로
이끌어 보려던 나의 세번에 걸친 노력은 다 열매를 맺지 못하고 말았다.
이것과 관련해서 나는 페스톤지 파드샤씨를 기억한다. 나는
영국 유학 당시부터 그와는 친하게 지내왔다. 그를 맨 처음 만난 것은 런던의 어느 채식 식당에서였다. 나는 그의 형인 바르조르지 파드샤 씨를
기인이라는 소문을 들어 알고 있었는데, 그를 본 일은 없고, 다만 친구들이 그를 괴상한 사람이라고 하는 소리만 들었다. 그는 말이 불쌍하여
마차를 타지 않고, 놀라운 기억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학위를 거부했고, 또한 독립 정신이 강했고, 파르시 사람이면서도 채식주의자였다.*2
페스톤지는 그런 소문은 돌고 있지 않았지만, 그의 박학은 런던에서도 유명했다. 우리 둘 사이의 공통점은 채식주의에 있었지 학문에서는 아니었다.
그 점에서는 나는 도저히 그의 옆에도 갈 수 없었다. 나는 그를 봄베이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는 고등법원 서기장이었다. 내가 그를 만났을
때 그는 고등 구자라트어 사전 편찬에 열중하고 있었다. 나는 내 친구치고 나의 남아프리카 사업에 대한 협조를 얻기 위해 찾아가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페스톤지 파드샤는 도와 주기를 거절할 뿐만 아니라 나에게 다시는 남아프리카에 가지 말라고까지 충고를
했다.
나는 당신을 도울 수 없소, 그뿐만 아니라 나는 당신만한 사람이 남아프리카에 가는 것조차 반대하오. 우리 나라에 할
일이 없단 말이오? 자, 보시오, 우리나라 말만 해도 해야 할 일이 적지 않소. 나는 과학적인 말들을 찾아내야해요. 그러나 그것은 우리 일의 한
부분밖에 되지 않아요. 이 나라의 빈곤을 생각해 보시오. 물론 남아프리카에 있는 동포는 고난중에 있지요. 하지만 나는 당신 같은 분이 그것
때문에 희생되는 것을 원치는 않소. 우선 여기서 자치를 쟁취하는 것부터 하고 봅시다. 그러면 거기 있는 동포를 자동적으로 돕게 됩니다. 내가
당신을 설득시킬 수 없는 것은 잘 압니다. 그러나 나는 당신 같은 부류의 분들에게 당신과 운명을 같이 하라고 하는 것은 권할 수 없소.
나는 이 조언을 좋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이로 인하여 페스톤지를 한층 더 돋보게 되었다. 나는 그의 애국심과 모국어에 대한
사랑에 감동되었다. 이 일로 인해 우리는 서로 더 가까워졌다. 나는 그의 견해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남아프리카에서의 내 일을
내던지기는 고사하고 결심을 한층 더 굳게 했다. 애국자라면 모국에 대한 어떤 종류의 봉사라도 그것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기타의 말씀이
나에게는 분명하고 힘을 주는 것이었다.
끝으로, 이것이 가장 좋은 길이니, 잘 하지 못하더라도 제 일을 하는 것이 남의 일을 잘
하는 것보다 나으리라. 의무를 다하다 죽는 것은 나쁜 것은 없으나 남의 길을 찾는 자는 항상 헤매느니라.
*1. Khadi :
Khaddar라고도 한다. 인도 사람의 손으로 짠 무명옷. *2. 배화교는 본래 리나에서 조로아스터의 가르침으로 일어났는데 7세기에
이슬람교의 박해를 피해 인도로 들어와서 퍼지게 되었다. 그들은 육식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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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나눔 → 삶 속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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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이야기 1 - 정채봉, 류시화 엮음
1
가족
어머니와 보신탕 - 하근찬
나는 보신탕을 먹는다. 그러나 혹시 어머니 앞에서 보신탕 이야기가 나오면
시치미를 뚝 떼고 전혀 안 먹는 체한다. 어머니는 독실한 불교 신자이시다. 매일 아침 염주를 헤아리며 염불을 하신다. 그리고 낮으로는 심심하면
관음경을 읽으신다. 절에 자주 가시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렇게 부처님에 대한 신심이 두터운 어머니께서 내가 개고기를 먹는다는 걸 아시면
큰일이다. 불교에 있어서 개고기는 절대 금기인 것이다. 한 번은 내가 취중에 "아, 그놈의 보신탕 맛 좋더라" 하고 입 밖에 냈던
모양이다. 어머니의 노기는 대단하셨다. 노기라기보다 슬픔이라고 하는 게 옳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맨날 운수가 없는 것이며, 지금까지
집 한 칸 장만하지 못한 것이 다 왜 그런지 아느냐며, 집 없는 것까지 보신탕 탓으로 돌리시는 것이었다. 그런 일이 있는 뒤부터
나는 어머니 앞에선 보신탕 배격주의자인 것처럼 시치미를 뗀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내게 처음으로 개고기를 먹인 사람이 다름아닌 어머니라는
사실이다. 어머니가 손수 개고기를 솥에 고아서 먹으라고 주셨던 것이다. 벌써 20년 전의 일이다. 국민 방위군에 나갔다가 돌아온 나는 반병신이
되어 있었다. 국민 방위군은 1.4후퇴 때 조직된 반군 반민의, 말하자면 예비 군대였다. 일명 '보따리 부대'라고도 했었다. 제각기 이불
보따리를 짊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국민 방위군에 나갔다가 나는 팔 하나를 전혀 못 쓰는 불구자 비슷한 상태가 되어 귀향했다. 다친 일이
없는데도, 어떻게 된 셈인지 팔 하나가 전혀 말을 듣지 않았다. 그냥 밑으로 가만히 내리고만 있어도 쩌릿쩌릿하고 뻐근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새끼를 주워 가지고 붕대처럼 묶어 팔을 목에 걸고 집으로 돌아왔던 것이다. 다친 일이 없다면 그건 영양 부족 탓이라는 게 이웃
사람들의 말이었다. 그런 데는 무엇보다도 개고기가 최고라고 했다. 아닌게아니라 나는 팔 하나를 못 쓸 뿐 아니라, 여윌 대로 여위어서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그 말을 듣고 어머니는 서슴없이 개 한 마리를 사시는 것이었다. 그때 역시 어머니는 독실한 불교 신도이셨다. 보신탕을
먹을 때마다 나는 그때 일이 생각난다. 그것을 먹고 희한하게도 팔의 기능을 회복했으며, 몰골도 차츰 사람같이 되어 갔다. 어머니께서 지금은
보신탕이라고 하면 질겁을 하시지만, 만일 자식들 가운데 누가 중병에라도 걸려서 그 병에는 개고기가 최고라고 한다면 20년 전 그때와 마찬가지로
거침없이 또 개고기를 구하러 나서실 것이다. "관세음보살!" 하면서 말이다. 모성은 이렇게 신심에 앞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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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실 →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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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날에 저녁이 오듯이 - 홍윤숙
지친 이가 지친
이들에게 보내는 편지
우리말에 개미 쳇바퀴 돌 듯이라는 말이 있다. 꼭 같은 일, 변화없는 일을 되풀이하여 반복한다는 뜻으로
지루하고 답답하고 암담함을 내포하는 말이다. 살아도 살아도 벗어날 수 없는 가난, 해도 해도 끝이 안 나는 일, 성과 없는 결과, 앞이 보이지
안고 희망도 없을 때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삶에 지치고 좌절감에 빠진다. 그러나 생각하면 그 개미 쳇바퀴 돌듯 하는 삶일지라도 거기 돌발적인
불행만 없다면 그래도 행복하고 다행안 일이다. 무사 안온하고 가족들 건강하며 아침, 저녁 얼굴을 볼 수만 있다면 그나마 복된 삶이라 하겠다.
우리 주변엔 그렇게 평화롭게 사는 사람도 많지만 불행에 직면한 사람도 얼마든지 있다. 딸 하나를 키워 출가시키고 허망에 빠진 어머니도 있고 아들
하나를 외국으로 보내놓고 주야로 울먹이는 어머니도 보았다. 그래도 살아 있음은 다행안 일이다.
20여 년 귀하게 길러 대학생이
된 아들을 산에서 추락사로 잃어버린 어머니를 나는 알고 있다. 열심히 파출부로 나가 근근히 벌어서 아들을 대학까지 넣은 그녀에게 아들은 삶의
전부였다. 남편도 없는 홀어미로서 아들마저 잃어버린 그녀는 한때 아들을 따라 죽을 생각까지도 했었다. "지쳤다든가 슬프다든가 생각할 때는 아직
마음의 여유가 있을 때입니다. 정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이나 절망 앞에선 어떠한 생각도 말도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저 죽고만 싶었습니다."
띄엄띄엄 술회하던 그녀의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사실 마음속에서 이것은 시련이라든가 나는 지쳤다라든가 생각할 수 있음은 그만큼 마음의 여유가
아직 있을 때인지도 모른다. 그 충격과 절망에서 얼마만큼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그녀는 시련의 의미를 생각하게 되었고 다시 살아갈 보람을 찾게
되었다. 그녀는 어느 고아원에서 고아들을 보살피는 일에 자신의 삶을 바치기로 결심했다고 들었다. 이같이 극단적인 사례가 아니고도 우리는
살아가면서 몇 번씩 벽에 부딪쳐 더는 일어설 힘조차 없을 만큼 기진맥진해버리는 일이 적지 않다. 열심히 살면 살수록 그리고 진실하게 살면 살수록
그런 벽에 부딪치는 강도도 크고 그때마다 느끼는 만신창이의 절망감도 크다. 따지고 보면 의식주 해결되고 별로 부족함이 없이 이른바 세속적인
행복의 조건을 갖춘 사람 가운데서도 그러한 삶에 대한 위기는 예외가 아니다.
앞서도 말했듯이 적당히 인생을 헤엄치듯 요령과
술수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닌 이상, 적어도 자기 삶에 책임을 지고 이마에 땀 흘리며 열심히 사는 이상엔 가다가 벽에 부딪치기도 하고 삶에 지쳐
주저앉을 때도 있게 마련이다. 열심히 뛴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피곤하고 헐떡거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산을 올라갔다 내려온 사람은
편안히 산 아래서 쉬고 있던 사람보다 다리가 아프게 마련이다. 요컨대 지친다는 것, 삶의 막다른 골목에 부딪쳐 지쳐 쓰려진다는 것은 그만큼
남보다 열심히 살았다는 증거이며 그렇게 열심히 살았건만 그 성과나 대가가 너무 적고 눈에 보이지 않는 데서 오는 허탈이며 좌절감일 것이다.
솔직히 말하여 나는 이러한 삶의핍진, 허탈, 좌절감을 수도 없이 겪으며 살아왔다. 지금도 나의 속 구석구석 숨어 있는 깊이 모를 허망감이 잠시
한눈만 팔아도 나를 압도하고 쓰러뜨리고 만다. 더욱이 나이를 먹으면서 체험하는 이 막막한 위기감은 그대로 깊은 허망감과 맞물려 끝도 모를
나락으로 끌고 간다. 특별한 병명도 없이 야금야금 좀먹어 들어가는 건강, 심신의 핍진, 아침이 되어도 자리를 털고 일어나 설 수 없는 무력감,
한번 누우면 그대로 나락으로 떨어져 내리는 듯한 탈진감... 별수 없이 내가 지쳤구나 하는 것을 가슴 떨리게 느낀다. 이렇게 끝나가는가 생각하면
무서워지기도 한다. 인간의 고독 중에 가장 큰 것은 노쇠와 죽음이다. 나는 바로 그 노쇠와 죽음을 관념이 아닌 실체로 느끼고 생각해야 할 나이에
이르렀다.
내 앞의 아이들은 다 떠나서 내 손이 필요 없이 나를 잊어버리고 살 만큼 자신들의 삶에 골몰하고 있다. 나는 누구를
위해서 따뜻한 식탁을 준비하고 내의를 챙겨야 할 일도 없다. 저녁이 와도 대문을 열어놓고 기다릴 사람도 없고, 나갔다 들어와도 방문을 열고
반기는 사람 하나 없다. 이 집안에 차 있는 것은 죽음 같은 고요와 적막뿐이다. 나는 그 적막과 고독 속에 조금씩 말라가는 은화식물처럼 잎이
마르고 뿌리가 말라간다. 식욕부진, 소화불량, 불면증에 시달리며 인생의 마지막 고개를 응시하고 있다. 지쳐 허덕이는, 쓰러질 듯 가라앉은 자신의
황폐한 모습을 지켜본다. 글 한 줄 써지지 않는 무력감으로 넘어져 있는 핍진한 영혼의 둥우리를 들여다본다. 이대로 무너질 것인가, 이렇게
끝나는 것일까, 암담한 나락 끝에서 안간힘 쓰는 나는 그러나 다음 순간 가슴 밑바닥에서 울려오는 하나의 목소리를 듣는다. '바보야, 일어나라.
이렇게 쓰러질 수는 없다. 자신을 구하는 건 오직 자신뿐이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다 비슷한 좌절을 딛고 살아가는 것, 너만이라고 엄살 부리지
마, 응석 부리지마.' 순간 나는 놀란다. 정녕 나는 누군가에게 응석을 부리고 있는 것일까. 그러나 내 응석을 받아줄 아무도 없다. 그렇다면
나는 나 자신에게 응석을 부리고 엄살을 떠는 것이다. 결국은 스스로 다시 일어나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 그렇게나마 마음의 비명을 질러보는
것이다. 기진맥진한 나를 나 자신에게 던져 버리는 것이다.
포기는 응석이다. 나는 내 마음 안의 응석-포기하려는 무기력과 싸워야
한다. '자기와의 싸움',이 세상에서 가장 크고 힘든 싸움은 바로 자기와의 싸움이다. 자신 안에 좀먹는 일체의 무기력, 허망, 나태, 좌절감
그 모든 내부의 병과의 싸움이다. 스물세 살에 열병을 앓고 청각을 잃은 여인이 있다. 그녀는 가르치던 교단을 떠나야 했고 몇 해 후엔 사랑하던
남편이 자식을 데리고 떠나버렸다. 죽음 그대로의 배신과 절망과 좌절 속에서 그녀에게 남은 것은 오직 하나 '자신과의 싸움'뿐이었다. 사느냐
죽느냐의 기로에서 치러낸 그녀의 눈물겨운 싸움은 마침내 하느님께 귀의하고 다시 일어서는 힘을 얻었다.'그대 피어라 하시기에'필 수밖에 없는
하느님의 깊은 뜻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고, 그래서 몸으로 우는 사과나무, 그대 피어라 하시기에 등 주옥 같은 수필집을 펴내기에 이르렀다. 그녀는
자기 내부의 어떠한 응석과도 타협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이 바로 시작이다.'라고 한다. 그녀에게 모든
것은 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끝이 새로운 시작을 마련한 것이다. 내가 지금 겪는 이 죽음 같은 심신의 탈진과 허망감도 내 인생의 한 고비를
마무리하는 끝이다. 그리고 그 끝은 새로운 시작을 촉구하는 하나의 시금석이 될 것이다. 나는 이 시금석으로 삶의 걸림돌을 딛고 넘어야 한다.
"모든 시련은 하느님의 사랑의 얼굴이다."라고 했듯이 생의 그같은 걸림돌을 우리에게 더 큰 삶의 의미, 삶의 깊이를 알게 하시기 위한 하느님
사랑의 계획이신지도 모른다. 그 위험 신호 앞에서 잠시 자신을 돌아보며 새 힘을 기르도록 타이르시는 무언의 말씀인지도 모른다. 무거운 짐 당신께
맡기고 그 샘물가에 잊었던 물맛 다시 맛보게 하시려는 사랑의 큰 뜻.
인간이 자신의 병을 혼자서 고치려 함은 잘못이다. 신체의
병에 의사가 필요하듯이 정신의 병에도 자신을 던져 믿고 의지할 의지처가 필요하다. 하여 나는 날마다 내 하느님께 매달려 이 허망과 좌절로부터
나를 구하소서, 새로운 시작을 마련할 힘 주소서 빌고 청한다. 지친 삶을 위한 약을 그밖에 나는 알지 못한다. 나 자신에게 타이르는 자기와의
싸움과 하느님께 매달리는 길 이외엔.
우물이 깊으면 수량도 풍부하다 급행열차로 서둘러 달려온 서쪽 베타니아 마을에선 때마침
짧은 겨울해가 지고 있었다. ...중략... 급행열차로 서둘러 달려와도 그 마을의 일몰엔 변함이 없고 다만 천천히 걸어온 이보다 쓸쓸한 일몰의
시간이 좀 길 뿐이다.(졸작"급행열차로"에서) 또 한 해를 헐떡이며 숨차게, 마치 급행열차로 달려온 것 같은 나날이다. 그렇게 달려온 저녁
마을엔 낯선 찬바람과 어둠이 줄지어 늘어서 지친 나그네의 마음을 더욱 쓸쓸하게 하고, 문득 발을 멈추고 돌아다보면 무수히 지나온 이름 모를
간이역들이 노을 속에 아름답게 떠오른다. 그곳은 해바라기, 달리아 등 원색의 꽃들이 눈부시게 피어 있던, 그러나 내릴 수 없었던 미지의
땅들이다. 그 내려보지 못한 미지의 지나쳐온 간이역들에 어쩌면 정작 내가 원하던, 해바라기, 달리아 같은 기쁨과 행복이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나는 급행열차를 타고 너무도 서둘러 바삐 달려왔기 때문에 정작 귀중한 것들을 잃어버리고 온 것은 아닐까. 그런 상실감에 잠기는
것도 바로 이 계절이다. 사람의 일생이란 한 가닥 외길이어서 날마다, 싫어도 앞으로만 가야 하게 되어 있고 다시 뒤돌아서 갈 수 없는 길이다.
우리는 그 길을 지나쳐놓고서야 아, 그때 그 일을 왜 하지 않았던가, 또는 왜 그런 짓을 했을까 하고 뉘우쳐보지만 소용이 없다. 인생이란 결코,
뒤돌아서 놓친 꽃을 다시 꺾으러 갈 수 있는 소풍길이 아니기 때문이다.
"두 갈래 길이 내 앞에 있었다. 그 중 한 길을 나는
걸어갔고 나머지 한 길, 걸어보지 못한 길이 내 마음속에 아쉽게 남아 있다." 는 누군가의 시도 있지만 한 번밖에 없는 삶이기에 우리는 지상의
모든 길을 남김없이 걸어보고 싶은, 후회 없는 삶을 살고 싶은 것인지 모른다. 생각하면 나의 인생은 이미 끝나가고 있다. 이제 나는 내 가족,
친지, 이웃들에게 무엇을 남기고 갈 수 있을까. 어떤 모습 어떤 추억을 그들의 기억 속에 그리게 할 수 있을까. 되도록 깨끗하고 기품 있고
따뜻한 추억으로 남아 있고 싶다는 생각을 나는 언제부터인가 하고 있다. 이제 내가 쓰는 원고지 한 장이라도 더 깨끗하게 더 정성들여 써야 하고,
남에게 건네는 말 한마디에도 더 깊이 더 진실하게 닿을 수 있도록 생각하고 말을 고르리라. 결코 추하지 말고 의연해라, 외롭더라도 입으로
외로움을 말하지 말고 속으로 혼자 다스려라, 오는 이는 반가이 맞이하고 가는 이는 미련 두지 말고 잊어버려라, 세상사에 애착을 두지 말고 물질에
욕심 내지 말고 정에 집착하지 말고 남의 소문에 관심 두지 말고 초연해라, 담담해라, 너그러워라. 이렇게 자신에게 타이르고 타이르지만 역시
그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고 자주 실수를 반복하며 후회를 남긴다. 다만 그런 마음가짐이라도 날마다 잊지 않고 자신에게 부과하고 있다는 작은 결의
하나를 소중이 여길 뿐이다.
인간의 모습은 사람 '인'자가 보여주듯이 두 다리로 대지를 딛고서 있는 모습이지 결코 땅 위에
누웠거나 쓰러져 있는 모습이 아니다. 여성의 경우 특히 누구를 사랑하거나 결혼을 해버리면 그날부터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남자에게 의지하고
매달려버리는 것이 아닌지. 적어도 우리들 어머니 시대의 여성상은 그래왔던 것이다. 전적인 의뢰심과 기댐으로 남자에게 자신의 전 중량을
맡겨버렸었다. 그러나 그러한 중량이 상대방에게 얼마나 큰 부담인가를 생각하지 못하고 오직 그 길만이 부덕이고 여성의 길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때문에 그 부담에 못 견디어 싫증이 난 남편들이 잠시 받쳐주던 어깨를 슬적 빼기라도 하면 그 순간에 여성은 보기 흉하게 무너져 버리고 마는
것이다. 의지하고 기대며 전적으로 매달리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사실은 자신의 두 다리로 자신의 무게를 지탱하고 서 있는 긴장감과 의연함 속에
여성의 아름다움이 있는 것을 오늘의 여성들은 지혜롭게 터득하고 있는 것 같다. 존재로서의 자기를 확립하고 작으나마 독자적 세계를 가꾸어나가는 삶
가운데 그 사람만의 개성적 아름다움이 생겨날 것이다. 가령 갈색 양복을 입을 때 같은 색 계통의 머플러, 핸드백, 구두 등을 갖추어 차려
입는다. 그렇게 짙은 색 계통의 농담을 알맞게 배합하는 데 패션의 아름다운 조화가 있는 것을 대개는 알고 있다. 그러나 그렇게 외적으로는 세련된
감각을 보이면서도 정작 그 사람의 살아 있는 아름다움, 눈동자의 빛과 반짝이는 눈의 정기가 없다면 아마도 인형을 보듯 삭막할 것이다. 눈의
아름다움이란 아이섀도나 마스카라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닦아서 우러나는 빛이니 그 사람이 지닌 인격과 개성의 표현이다. 하루아침에 화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랜 정신 연마의 소산이다. 결국 보석이나 치장은 여성을 근사하게 보이게 할지는 모르나 아름답게 만들지는 못한다. 사람을
아름답게 하는 것은 돈으로 살 수 없는 마음의 보석이라는 상식적인 말이 고금을 통한 진리인 것이다.
어떤 기회에 알게 된
성프란치스코 수도회의 한 신부님이 계시다. 그분은 지난해까지 큰 수도회의 원장으로 계셨으나 지금은 새로운 보직을 맡아 가신 곳이 경동시장 안에
있는 수도원 운영의 자선 무료식당이다. 말하자면 신부님은 식당의 주인인 셈이다. 말이 주인일 뿐 하루 150명씩 가난한 행려자들에게 손수 쌀을
씻고 밥을 지어 나르는 주방장인 것이다. 한 수도원의 원장으로 있을 때는 장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고, 이제 한 밥집의 일꾼이 되어서는 또
일꾼으로서의 모든 허드렛일을 맡아 최선을 다하며 사시는 그 신부님의 모습은 티 하나 없이 맑은 옥처럼 깨끗해 보였다. 속에서 우러나는 잔잔한
기품이 마치 성자를 보는 듯한 숙연함을 느끼게도 했다. 아, 이런 숨은 등불들이 있어 이 세계가 아직은 살아 있고 희망이 남아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름다움이란 발로 그런 것, 외형이나 겉모습에 좌우되지 않고 내면에 간직한 꿋꿋한 신념에 의하여 어디서나 자신을 남김없이
바쳐가는 삶, 그런 삶에서 은은히 울려 나오는 인격의 향기이고 빛깔이구나 실감하기도 했다. 세상 사람들 같으면 한 수도원의 원장에서 시장 바닥의
밥집 주인으로 전락이 되었다면 좌천이다. 모욕이다, 법석을 떨 일일지 모른다. 아무리 수도자라 해도 인간이다. 깨끗하고 편하고 권위 있는 것이
나쁠 것은 없다. 다만 그런 가시적인 것에 삶의 가치를 두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의 길을 따라 이 사회의 소금이 되고자 하는 드높은 정신이 그의
삶을 그처럼 아름답고 활기차게 만드는 것이리라.
언젠가 한국에 내한한 적이 있는 인도의 마더 데레사 수녀를 사진과 텔레비젼
화면에서 보면서 나는 그 수녀님의 너무도 초라하고 주름진 모습에 놀랐었다. 그것은 이른바 우리가 말하는 여성적 미라는 개념과는 인연이 먼 처참할
만큼 늙고 상한 모습이었다. 그럼에도 그녀가 인류의 가장 깊은 병, 천연두도 암도 아니면서 암처럼 무너져 가는 병, 거리에 버려진 수많은 병든
육신의 고독한 영혼을 어머니처럼 따뜻이 가슴에 버려진 수많은 병든 육신의 고독한 영혼을 어머니처럼 따뜻이 가슴에 품어 안아 희망을 주고 용기를
주어 눈감게 한 위대한 사랑의 아름다운 손을 지녔던 것이다. 태어나 단 한 번도 자신의 '존재의 축복'을 인정받지 못한 불쌍한 사람들, 이
세상에 있으나 없으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 고독한 사람들이 마더 데레사의 손을 잡고 "감사합니다."하고 눈물을 지으며 숨을 거둔다는 이야기, 그
짧은 감사의 말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목마름을 풀 수 있었던 기쁨의 표현이 아닐까 생각한다. 요컨대 앞서의 요한 신부나 마더 데레사
수녀는 우리가 상상도 못 할 깊고 무한량한 우물 같은 것을, 다른 말로 하면 사랑을 그 내부에 간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하여 그 깊은
우물에서 끊임없이 퍼 올리는 물로 자신은 물론 이웃까지 넉넉히 적셔줌으로써 그들을 대하는 모든 이들에게 살아가는 기쁨을 나누어주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 말하기를 현대는 '기쁨 지향'의 시대가 아니라 '즐거움 지향'의 시대라고 한다. 즐거움이란 자신의 쾌감, 쾌락을
중심으로 하는 데 비해 기쁨에는 무엇인가 타자에게 영향을 미치는 성질이 있는 것 같다. 가령 즐거움은 돈을 투자하면 얼마든지 살 수가 있다.
쇼핑, 외식, 낚시, 수영 등 모두가 즐거움의 대상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모두가 자본을 필요로 하며 자기 혼자의 낙으로 끝나고 만다. 그러나
기쁨은 아무런 자본 없이 혼자 마음속에서 싹터 나와 훈훈하게 이웃에게까지 미치는 힘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자기 마음속에서 빵의
누룩처럼 소리 없이 발효해서 부풀어 이윽고 빵이 되고, 그것을 나누어 주위의 사람에게 함께 먹게 하는 그런 힘이 있는 것이다. 참 기쁨이란 저
수도회의 요한 신부님이나 인도의 마더 데레사 수녀 님처럼 자신의 우물 안에서 퍼 올려 끊임없이 이웃을 적셔주는 그같은 사랑의 삶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인지 모른다. 우리가 항용 말하는 마음의 기쁨이란, 고작 마르기 쉬운 얕은 샘에서 어쩌다 한 모금 퍼 올려 자신의 목도 못다 축이고 마는
빈약하기 그지없는 것이다. 하여 또 다른 기쁨을 찾아 헤매지만 대개는 얄팍한 즐거움 정도로 끝나 버리고 다시 목말라하는 어리석음을 어쩌지
못한다.
우물이 깊어야 수량이 풍부하다. 어떤 우물을 내 안에 파야 깊고 풍성한 우물이 될까. 다시 말하여 어떻게 살아야 마르지
않는 수량 같은 기쁨, 영속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을까. 이것이 나의 평생의 숙제이고 나의 삶의 목적이었다. 그러나 이 나이를 살고도 나는 아직
그 해답을 얻지 못하였다. 말로는 비단같이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깊은 우물 같은 삶이란 이런저런 것이라고... 문제는 행동으로 옮기는 실천이
뒤따르지 않는 것이다. 앞서 말한 요한 신부나 마더 데레사 수녀의 삶은 누구나 흉내낼 수 있는 삶이 아니다. 특별한 소명을 받은 이들의 특별한
삶이다. 결국 그 밖의 범속한 인간들은 범속한 삶 가운데, 지극히 범속한 작은 기쁨의 조각들로 잠시 목 축이다 다시 새로운 목마름에 시달리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렇게 체념하며 살아왔다. 굳이 내가 나 자신을 위로한다면 그나마 피상적이고 감각적인 '즐거움 지향'의 삶에서 되도록
'기쁨 지향'의 삶을 살아보려고 애써 왔다고나 말할 수 있을까. 비근한 이야기로, 쓴다는 일 하나도 단순한 즐거움 때문이라면 결코 할 짓이
아니다. 그렇게 고통이 따르기 때문이다. 정신에 충일하는 기쁨을 얻고 싶기에 그 고통들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이지. 그러나 그런 것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공허를 평생 앓으며 살아왔다. 진실로 이제라도 사람이라 여인에게 하신 예수의 말씀,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물을 마시고
싶다. 아니 그런 우물 하나 내안에 파고 싶다. 내 안에서 넘쳐 나와 이웃에게까지 나눌 수 있는 우물을. 그런 기적 같은 힘이 주어지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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