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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편지】: 제952호
2013.3.28 (음2.17) / 발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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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wmaster@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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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자 등 텍스트가 물음표(?)로 보이는 경우 누리집에 오셔서 확인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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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오늘의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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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성이 어리석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는다. 전능하신 하느님이 남자와 어울리게 만드셨기 때문에. - 조지 엘리어트(英 소설가, 1819-18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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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말글 / 한글바로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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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로주점을 추억하며
광어와 우럭은 물론이고 숭어와 병어도 회 떠서 먹을 수 있는 곳, 동태전과 해물버섯완자전 따위의 갖가지 저냐를 먹을 수 있는 곳, 꼬막과 생골뱅이를 맛보며 바다 내음을 느낄 수 있는 곳, 멧돼지와 메추리, 군참새(참새구이)를 꼬치구이로 차려내는 흔치 않은 곳. 거기는 ‘김씨가 30여년 전 빈털터리로 상경해 손수레 꼬치장사로 돈 모아 20년 전 작은 가게를 차려 600명이 앉을 수 있는 큰 업소로 키워낸 곳’이었다.(ㄱ신문) 말 그대로 ‘육해공’을 싼값에 푸짐하게 먹을 수 있어 주머니 가벼운 이들의 발길이 잦던 그 집 차림표를 다시 들여다보니 ‘그때’ 먹고 마시던 것들이 새삼스럽다.
차림표에 적혀 있는 ‘쭈꾸미’, ‘꼼장어’, ‘오돌뼈’는 주꾸미, 곰장어(먹장어), 오도독뼈로 사전에 올라 있는 낱말이다. ‘모래집’의 사전 뜻풀이는 ‘1. 모래를 이용하여 지은 작은 집. 2. 사형 주조(모래로 만든 거푸집)의 일부분이 깨어지며 주물 안에 끼어들어서 생긴 결함. 3. 양수가 들어 있는 태아를 둘러싼 얇은 막(양막)’이니 모래주머니 또는 닭똥집(닭의 모래주머니를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 하는 게 규범에 맞는다.(표준국어대사전) ‘정종’(正宗, 마사무네), ‘가이바시라’(貝柱)는 일본어에서 온 말이기에 청주, 조개관자(패주)로 다듬은 표현이다.(국립국어원)
영화감독인 후배 등과 어우러진 어느 날, 그 자리에서 만난 당시 전공의 과정을 밟던 이가 보낸 문자메시지 ‘우리가 처음 만난 게 그곳이었는데 거기가 불타 사라지다니…’ 한 줄이 그 집 차림표를 찾아보게 해주었다. 불현듯(불을 켜서 불이 일어나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갑자기 어떠한 생각이 걷잡을 수 없이 일어나는 모양) 그때 기억이 떠오른다. 지금은 전문의가 된 그와 대작했던 거기는 목로(널빤지로 좁고 기다랗게 만든 상)를 앞에 두고 정담 나누는 목로주점이었다. 그 집은 지난 일요일 밤 불에 타 사라졌다.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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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우리나라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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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산에 와서 - 나태주
세상에 그 흔한 눈물 세상에 그 많은 이별들을 내 모두 졸업하게 되는 날 산으로 다시 와 정정한 소나무 아래 터를 잡고 둥그런 무덤으로 누워 억새풀이나 기르며 솔바람 소리나 들으며 앉아 있으리.
멧새며 소쩍새 같은 것들이 와서 울어주는 곳, 그들의 애인들꺼정 데불고 와서 지저귀는 햇볕이 천년을 느을 고르게 비추는 곳쯤에 와서 밤마다 내리는 이슬과 서리를 마다하지 않으리. 길길이 쌓이는 壯雪을 또한 탓하지 않으리.
내 이승에서 빚진 마음들을 모두 갚게 되는 날, 너를 사랑하는 마음까지 백발로 졸업하게 되는 날 갈꽃 핀 등성이 너머 네가 웃으며 내게 온다 해도 하낫도 마음 설레일 것 없고 하낫도 네게 들려줄 얘기 이제 내게 없으니 너를 안다고도 또 모른다고도 숫제 말하지 않으리.
그 세상에 흔한 이별이며 눈물, 그리고 밤마다 오는 불면들을 내 모두 졸업하게 되는 날, 산에 다시 와서 싱그런 나무들 옆에 또 한 그루 나무로 서서 하늘의 천둥이며 번개들을 이웃하여 떼강물로 울음 우는 벌레들의 밤을 싫다하지 않으리. 푸르디푸른 솔바람 소리나 외우고 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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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명상/지혜/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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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위한 닭고기 스프 2 - 잭 캔필드&마크 빅터 한센
1. 꿈을 이루기 위한 스프
어떤 답장
한 남자가 휴가를 떠나기로 한 미국 중서부 도시의 작은 호텔에 편지를 보냈 다.
저는 이번 휴가 때 저희집 개는 훈련이 잘 되었고, 절대로 말썽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제가 밤에 그 개를 호텔방 안에서 데리고 갈수 있도록 부디 허락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자 호텔 주인으로부터 금방 답장이 왔다. 답장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 었다.
나는 이 호텔을 수년 동안 운영해 왔소. 그 동안 나는 수건이나 잠옷, 가운, 컵이나 심지어 벽에 걸린 그림까지 훔쳐가는 개를 한번도 본적이 없소. 한밤중에 술이 취해서 행패를 부리는 개를 쫓아내야 했던 적도 없소. 또 숙박 비를 내지 않고 몰래 달아나는 개를 본 적도 없소. 아무 걱정 하지 마시오. 당신의 개는 언제든지 우리 호텔에 대환영이오. 그리고 당신의 개가 당신의 인품을 보증한다면, 당신 역시 우리 호텔에 환영이오.
칼 알브레히트 / 론 젠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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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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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인 유전자 - 리처드 도킨스
제9장 - 암수의 다툼 (3/3)
어류의 이기적 행동 그러나 암컷보다도 수컷이 실제로 많은 노력을 자식의 보호에 쏟는 동물도 있다. 이와 같이 아비가 자식 때문에 헌신하는 예는 새와 포유류에서는 극히 드물지만 어류에서는 흔히 볼 수 있다. 이것은 도대체 왜 그럴까? 이것은 유전자의 이기성 이론으로서는 하나의 난제이고 나도 오랫동안 이 문제로 고심해 왔다. 그러나 최근 칼라일(T.R. Carlisle)양이 교묘한 해답을 나에게 개인 교수해 주었다. 그녀는 전술한 트라이버스의 '참혹한 속박'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다음과 같이 생각하고 있다.
"대부분의 어류는 교미를 하는 대신에 그냥 생식 세포를 물 속에 방출한다. 수정은 배우자의 체내에서 일어나지 않고 물 속에서 이루어진다. 유성 생식이 처음 출현했을 때에도 아마 이것과 비슷했을 것이다. 새, 포유류 그리고 파충류 같은 육상 동물은 이런 형태로 체외 수정을 할 수 없다. 그들의 생식 세포는 매우 건조해지기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컷의 운동 능력을 가진 정자가 암컷의 젖어 있는 체내로 주입된다." 이상은 다만 사실의 확인일 뿐이다. 칼라일 양의 아이디어는 이제 부터이다. "교미 후 육상 동물의 암컷은 얼마 동안 체내에 배를 가지고 있게 된다. 만일 암컷이 교미 직후에 수정란을 낳는다고 해도 수컷에게는 여전히 도망쳐서 암컷을 트라이버스의 '참혹한 속박'에 빠뜨리기에 충분한 시간이 주어져 있다. 즉, 수컷에게는 암컷의 선택을 마감하고 먼저 암컷을 버리는 결단을 내릴 기회가 필연적으로 제공되는 것이다. 아이를 버려 죽게 할 것인가, 아니면 머물러서 양육을 할 것인가의 결단을 모두 암컷에게 떠밀어 버린다. 그러므로 육상 동물의 자식 보호에는 아비보다 어미에게 기회가 많은 것이다."
그러나 물고기를 위시한 다른 수생 동물에서는 사정이 아주 다르다. 수컷이 암컷의 체내에 정자를 주입하지 않는다면 암컷이 '자식을 뱃속에 품고' 혼자 남아 있을 필요성은 없게 된다. 수정이 막 끝난 알을 상대에게 맡기고 급하게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암수 모두에게 가능하다. 그러나 이때에 종종 수컷이 버림받는 경우가 되는 이유가 한 가지 있다. 어느쪽이 먼저 생식 세포를 방출하는가를 가지고 진화적인 다툼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먼저 생식 세포를 방출한 개체는 수정된 배를 상대에게 떠맡길 수 있는 점에서 유리하나 동시에 배우자가 자칫하면 계속해서 구혼에 응하여 주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위험을 범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는 수컷쪽이 위험이 크다. 그냥 정자가 난자보다 가벼워서 확산이 쉽다는 것만을 고려해도 그리 말할 수 있다. 암컷은 수컷이 아직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알을 빨리 방출했다고 해도 큰 문제는 없다. 알은 비교적 크고 무거워서 잠시 동안은 한덩어리가 되어 거기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물고기의 암컷은 먼저 산란하는 '위험'을 범할 가능성이 있다. 물고기의 수컷은 이 위험에 도전하지 않는다. 수컷이 서둘러 정자를 방출해 버리면 암컷이 방출하기전에 정자가 흩어져 버리고 말 것이다. 그러면 암컷은 산란을 하지 않는다. 왜냐면 알을 낳아도 아무런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확산 문제 때문에 수컷은 우선 암컷이 산란하기를 기다려 그 후에 알에게 정자를 뿌리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덕분에 암컷은 실로 귀중한 몇 조간을 손에 넣을 수 있다. 그 사이에 몸을 감추고 난자를 수컷에게 떠맡겨서 수컷을 트라이버스의 딜레마에 빠뜨릴 수 있다. 그래서 이 이론은 수컷에 의한 자식의 보호가 왜 몰 속에서는 보통으로 보이고 건조한 육상에서는 보기 드문지를 솜씨좋게 설명하고 있다.
훌륭한 수컷을 선택하는 전략 물고기 이야기는 그만하고 암컷이 사용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주요한 전략, 즉 훌륭한 수컷을 선택하는 전략을 거론하기로 하자. 이 방책을 이용하고 있는 종에서는 암컷이 자기 새끼의 아비에게 원조를 받을 것을 실질적으로 포기하고 있고 그 대신에 좋은 유전자를 얻기에 전력을 쏟고 있다. 여기서도 또 암컷의 무기는 교미를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암컷들은 상대에게 함부로 교미를 허락하지는 않는다. 암컷들은 수컷과 교미하기 전에 모든 주의를 집중하여 상대를 선별하려고 한다. 수컷 중에는 분명히 남보다 좋은 유전자를 많이 가진 개체가 있다. 유전자는 자식의 생존에 이익을 도모함에 틀림없다. 외관상의 단서를 가지고 암컷이 어떤 방법으로 수컷이 지닌 좋은 유전자를 검출할 수가 있다면 암컷은 자기의 유전자에 아비의 양질인 유전자를 결합시킴으로써 자기의 유전자를 유리하게 할 수 있다. 제3장에서 말한 조정 경기 팀의 비유로 설명한다면 암컷은 나쁜 선수와 함께 하여 자신의 유전자가 질질 끌려가는 것을 최소화할 수 있다. 암컷은 자기의 유전자로서 유리한 조정 팀 동료를 선정할 수 있다. 선택 기준이 되는 정보를 대부분의 암컷이 고유한 결과 어떤 수컷이 최고인가 하는 점에서 거의 모든 암컷이 같은 결론에 도달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므로 극히 소수의 운 좋은 수컷이 대부분의 교미에 관여하는 결과가 될지도 모른다. 개개의 암컷에 대해 수컷이 제공해야만 할 것은 다소 값싼 정자에 불과하므로 수컷은 그 일을 쉽게 할 수 있다. 바다코끼리와 풍조에서는 이와 같은 일이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암컷은 극히 소수의 수컷에게만 모든 수컷이 열망하는 이상적인 이기적 착취 전략의 행사를 허락하고 있으며, 동시에 그 호강이 최량의 수컷에게만 허용되도록 항상 주의하고 있다.
암컷이 찾는 수컷-생존 능력의 증거 그러면 다른 증거란 도대체 어떤 것일까? 여러 가지의 가능성이 있다. 아마도 강한 근육은 먹이를 포획하는 능력의 증거가 될 것이고, 긴 다리는 포식자로부터 도망치는 능력의 증거일지도 모른다. 이들의 특성은 자식 모두에게 유용한 성질일 것이다. 그래서 암컷은 자기의 유전자에 그와 같은 특성을 결합하는 것으로 자기의 유전자를 유리하게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이러한 논의를 진행함에 있어서는 어쨌든 암컷이 완전히 충실한 표시 또는 표지에 따라 수컷을 선택하고 있는 것으로 상상할 필요가 있다. 즉, 그 표시는 수컷의 체내에 있는 우량한 유전자의 증명이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매우 재미있는 문제가 생기게 된다. 이 문제는 다윈도 느꼈고 피셔도 명료하게 소개하고 있다. 수컷이 서로 경쟁하여 암컷으로부터 훌륭한 수컷으로 지명을 받으려고 하는 사회에 있어서 어미가 자기의 유전자에 대해 할 수 있는 최선책의 하나는 자식을 매력적이고 훌륭한 수컷으로 성장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성체가 됐을 때에 집단 속에서 대부분의 하렘을 독점하는 소수의 행운을 잡은 수컷의 일원에 들어갈 수 있는 자식을 확실히 만들어 내면 암컷이 획득할 수 있는 손자 수는 엄청나게 많아질 것이다. 이 결과 다음과 같은 일이 생긴다. 즉, 암컷의 눈으로 볼 때에 수컷이 갖춰야 할 가장 바람직한 성질의 하나는 단적으로 성적 매력 바로 그 자체이다. 특히 매력적인 훌륭한 수컷과 교미한 암컷이 낳은 자식은 다음 세대의 암컷들에 대해서도 매력적인 수컷이 될 가능성이 높고, 따라서 이 자식들은 어미에게 많은 손자를 갖도록 할 석이다. 물론 처음에는 암컷도 큰 몸체와 같은 분명히 유익한 성질을 기준으로 하여 수컷을 선별하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일단 그 종의 기준이 동종의 암컷들 사이에서 매력적인 것으로 널리 받아들이게 된다면 그들의 성질은 단순히 매력적이라는 것만의 이유로 자연 선택에 있어서 유리함을 계속 유지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풍조 수컷의 꼬리와 같은 사치스러움은 어떤 종류의 불안정하고 일방적인 과정을 거쳐 진화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 옛날 풍조의 암컷은 보통보다 조금 긴 꼬리를 가진 수컷을 바람직한 성질의 소유자로 보고 선택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아마도 튼튼하고 건강한 체격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수컷의 꼬리가 짧은 것은 비타민 부족의 표시였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먹이 획득 능력이 빈약한 증거다. 혹은 아마도 짧은 꼬리를 가진 수컷은 포식자로부터 도망치는 것이 서툴러서 그 때문에 꼬리를 잘려 먹혔을지도 모른다. 여기서는 따로 짧은 꼬리 그 자체가 유전된다고 가정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주의하라. 단순히 짧은 꼬리가 어떤 유전적 열세의 하나의 지표로 되어 있다고 가정하면 그것으로 족하다. 어쨌든 이유가 무엇이든 풍조의 선조였던 오래 전의 암컷은 평균보다 긴 꼬리를 가진 수컷을 선택적으로 찾아다녔다고 가정하자. 수컷의 꼬리 길이의 자연적 변이에 '어딘가' 유전적 배경이 있었다면 집단 속의 수컷의 꼬리의 평균 길이는 암컷의 상기의 선택에 의해 길어졌음에 틀림없다. 암컷이 따르는 규칙은 단순하다. 모든 수컷을 보아서 가장 긴 꼬리를 가진 개체를 선택하면 된다. 이 규칙에서 벗어난 암컷은 불리하게 됐다. 게다가 너무 긴 꼬리가 수컷에게는 실제로 부담이 됐다고 해도 이 사정은 더더욱 들어맞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꼬리가 긴 자식을 낳을 수 없었던 암컷들로부터는 매력적이라고 판정 될 수 있는 자식을 낳을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여성의 의상이나 미국의 자동차 디자인과 같이 보다 긴 꼬리를 가지는 경향은 이렇게 시작되어 자기 스스로 세를 늘린 것이다. 꼬리가 너무 기괴한 길이에 달해 결국 그 때문에 명백한 불리함이 성적 매력이라는 유리함을 압도하기 시작할 때야 이 경향이 겨우 정지하게 됐다.
핸디캡 원리 이것은 간단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생각이고 다윈이 '성 선택'이라는 이름으로 이 방법을 제창한 이래 부단히 회의주의자의 주목으로 표적으로 되어 왔다. '여우님, 여우님' 이론의 제창자로서 소개된 자하비도 성 선택의 설명을 불신하는 자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그 대신 '핸디 캡 원리'라는 어처구니없고 비뚤어진 생각을 주장하고 있다. 그는 우선 다음의 점을 지적한다. 암컷이 수컷 중에서 우량 유전자를 가진 놈을 선별하려고 하는 것 자체가 실은 수컷에 의한 사기 행위에 길을 터 주게 된다는 것이다. 강한 근육은 암컷에게 선택의 대상으로 에누리없이 좋은 성질일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렇다면 덧대서 부풀게 한 어깨처럼 전혀 실질적이 아닌 모조 근육이 수컷에게 발달하지 말라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수컷으로서 진짜 근육을 발달시키는 것보다 가짜를 만드는 것이 쉽다면 성 선택은 가짜 근육을 만드는 유전자에게 유리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오래 지속되지는 못한다. 대항적인 선택의 작용으로 머지않아 이 속임수를 간파할 능력이 암컷에게 진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수컷이 성적인 거짓 선전을 해도 최종적으로는 암컷에게 발각되고 만다는 것이 자하비의 기본 전제이다. 그러므로 그는 다음의 결론을 내린다. 즉, 참으로 성공하는 수컷은 거짓 선전을 하지 않고 오히려 거짓이 없다는 것을 상대가 즉시 알도록 표시하는 수컷임에 틀림없다는 것이다. 가령 강한 근육이 문제라면 간단히 시각적으로만 강하게 보이는 근육을 과시하는 수컷은 곧 암컷에게 탐지되고 말 것이다. 이에 대해 실제로 무거운 물체를 들어올리는 등 보라는 듯이 행동하므로 강력한 근육의 소유자임을 증명해 보이는 수컷이 암컷의 신용을 쟁취할 수 있을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자하비는 훌륭한 수컷이란 단지 우수한 수컷으로 보이도록 하는 것만으로는 안 되고 진짜 우수한 수컷이어야만 한다고 믿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회의적인 암컷에게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따라서 과시 행동은 진짜로 훌륭한 수컷에게만 가능할 수 있도록 진화될 것이다.
여기까지 이야기는 매우 좋다고 본다. 자하비의 이론은 앞으로 계속되는 부분이 걸림돌이 된다. 풍조와 공작새의 꼬리, 사슴의 거대한 뿔들을 비롯하여 성적으로 선택된 형질은 그 소유자에게 핸디캡을 주는 것같이 보여서 지금까지는 역설적인 존재라고 간주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런데 자하비는 이들 형질이 정확히 그것들이 핸디캡이 되기 때문에 진화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길고 거추장스러운 꼬리를 가진 수컷의 새는 실은 암컷에 대해 이런 꼬리를 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살아 남아 있을 정도로 완강하고 훌륭한 수컷이다라고 선전하고 있다고 한다. 두 남자가 달음박질하는 것을 여자가 지켜 보았다고 상상해보자. 양자가 동시에 결승선에 도달할 때, 한 남자는 석탄을 넣은 자루를 등에 지고 뛰었다고 하면 그 여자는 당연히 짐을 진 남자가 실제로 발이 빠르다고 결론지을 것임에 틀림없다. 나는 자하비 이론을 불신한다. 더욱이 나의 회의에 대해서는 내가 처음으로 이 이론을 들었을 때만큼 확고한 자신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이론을 들었을 때 나는 그 생각의 논리적인 결론은 발도 하나, 눈도 하나밖에 없는 수컷이 진화해야만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스라엘 출신의 자하비는 즉석에서 이와 샅이 답하였다. "우리 나라 최고의 장군 중 한 사람은 애꾸눈이다." 그럼에도 부구하고 핸디캡 이론에 근본적인 모순이 포함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하는 문제는 아직도 남아 있다. 남일 핸디캡이 진짜라면 -이론의 본질상 핸디캡은 진짜가 아니면 곤란한데- 그것은 암컷을 매혹할 수 있는 것 같은 확실함으로 자손에 대해서 불리함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 핸디캡이 딸에게 전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핸디캡 이론을 유전자의 말로 바꿔 말하면 다음과 같다. 수컷에게 긴 꼬리와 같은 핸디캡을 발달시키는 유전자는 암컷이 그 핸디캡을 갖고 있는 수컷을 선택함으로써 유전자 풀 속에서 점점 불어난다. 암컷이 핸디캡을 가진 수컷을 뽑는 것은 암컷에게 그와 같은 선택을 하게 하는 유전자가 유전자 풀 속에서 빈도 증가가 일어나는가? 핸디캡을 짊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체에 이르는 수컷은 그 밖의 형질에 관해서는 좋은 유전자를 갖고 있음에 틀림없고, 따라서 핸디캡을 가진 수컷을 좋아하는 암컷은 자동적으로 다른 면에서 좋은 유전자를 가진 수컷을 선택한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 우수한 '다른' 유전자는 새끼들의 몸에 유리하게 작용하여 살아 남은 아이들이 핸디캡 그 자체의 유전자와 같이 암컷에게 핸디캡을 가진 수컷을 선택하게 하는 유전자를 증식시킨다는 것이다. 가령 핸디캡을 만들어 내는 유전자가 아들에게만 효력을 나타내는 한편 핸디캡을 만들어 내는 유전자가 아들에게만 효력을 나타내는 한편 핸디캡을 가진 개체에 대한 성적인 호감을 촉구하는 유전자가 암컷에게만 영향을 주게 된다면 이 이론도 혹시 유효할지 모른다. 그러나 말로서만 공식화되어 있는 한에서는 이 이론이 유효한지 아닌지 분명하게 말할 수 없다. 이와 같은 이론이 어느 정도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지를 더 잘 검토하려면 수학 모델로 표현해 볼 필요가 있다. 현재까지는 핸디캡 원리를 유효한 모델로 하려고 하는 수리 유전학자들의 시도는 모두 실패로 끝났다. 이것들은 그것이 유효한 원리가 아니기 때문인지도 모르고, 또는 도전한 수리 유전학자가 충분히 총명하지 못해서인지도 모른다. 그들 중에는 메이나드-스미스도 포함된다.
내게는 어딘지 전자의 가능성이 타당한 것처럼 여겨진다. 일부러 자기에게 핸디캡을 붙이는 흉내를 내지 않고 다른 방법으로 다른 수컷에 대한 우위를 과시한다고 하면 그러한 방법으로 수컷이 자기의 유전자적 성공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예컨대 하렘을 만들고 그것을 유지하는 바다코끼리는 암컷을 향해 심미적인 매력을 과시함으로써 그것을 달성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렘에 침입하려고 하는 수컷을 모두 물리친다는 단순한 수단에 따르고 있다. 하렘의 소유자는 지금까지도 싸워 이기고 하렘 소유자의 자리를 계속 지켜왔다는 명백한 사실만 해도 그 지위를 노리는 침입자들과의 싸움에서 이후에도 이긴다는 예견이 있다. 침입자는 승산이 적다. 비록 이길 수 있는 힘이 있어도 지금까지 패해 왔다는 이유로 하렘 소유자와만 교미하는 암컷은 많은 별볼일 없는 독신 건달 수컷 중에서 되풀이 등장하는 도전자를 격퇴할 만한 완강한 수컷에게 자기의 유전자를 결연시키는 것이 된다. 아비가 보여 준 하렘 소유 능력은 운이 좋으면 어미의 자식에게도 유전할 것이다. 더더욱 바다코끼리의 암컷에게는 실제로는 별로 선택의 자유는 없다. 암컷이 하렘을 이탈하려고 한다면 그 소유자가 그 암컷을 혼내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싸움에 이기는 수컷을 배우자로 하므로 암컷은 자기의 유전자를 유리하게 한다는 원칙에 변함은 없다. 이미 본대로 암컷이 그 배우자로서 세력권 소유자나 높은 순위를 점하는 수컷을 선호하는 예는 얼마든지 있다.
두 성간의 차이 이 장의 지금까지의 내용을 요약해 보자. 동물계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다른 번식 시스템, 예를 들면 일부일처제, 난혼, 하렘제 등은 모두 암수 사이의 이해 대립의 산물로서 이해할 수가 있다. 암수 어떤 개체도 그 생애에 있어서 번식상의 전체 성적을 최대화하는 것을 바라고 있다. 정자와 난자의 크기 및 수에서 볼 수 있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기 때문에 수컷에게는 일반적으로 난혼과 자식 보호의 결여 경향이 보인다. 이에 대항하는 대책으로서 암컷에게는 두 가지 대표적인 전략을 볼 수 있다. 그 하나는 내가 훌륭한 수컷을 뽑는 전략이고 한 것, 또 하나는 가정의 행복을 우선으로 하는 수컷을 뽑는 전략이라고 하는 것이다. 암컷이 이들 두 대항책의 어느 것을 취하는 경향을 나타내든, 또 수컷이 그것에 어떻게 대응하든, 어느 것도 종을 둘러싼 생태학적인 상황이 결정할 것이다. 물론 실제로는 위 두 전략의 모든 중간형이 보이고, 이미 말한 대로 아비가 어미보다 열심히 자식의 보호에 임하는 예도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특정 동물종의 세부 사항은 관여하지 않는다. 따라서 어떤 종이 어떻게 어떤 번식 시스템을 나타내고 다른 시스템은 나타내지 않는가라는 요인론은 다루지 않겠다. 그 대신에 일반적으로 수컷과 암컷 사이에서 널리 관찰되는 다른 점을 들어서 그것들이 어떻게 해석되는지 생각하기로 하자. 이 때문에 두 성간에 조금의 차이밖에 볼 수 없는 종, 즉 일반적으로 암컷이 가정의 행복을 우선으로 하는 수컷을 택하는 전략을 좋아하는 종은 더 강조하지 않기로 한다.
암수의 색채 수컷이 성적으로 매력적이고 화려한 색채를 나타내는 반면에 암컷은 좀 충충한 색채를 나타내는 경향이 있다. 암수 어느 개체도 포식자에게 먹히기는 싫어한다. 그러면 두 성 모두 단조로운 색채를 나타내는 방향으로 어떤 진화적 압력을 받고 있을 것이다. 선명한 색체는 배우자와 같이 포식자도 유인하기 때문이다. 유전자의 말로 말하면 우중충한 색채를 나타내게 하는 유전자보다 선명한 색채를 나타내는 유전자 포식자로부터 생명을 잃을 가능성이 높다. 한편 다음 세대로 전해질 가능성이라면 우중충한 색채를 띠게 하는 유전자가 선명한 색채를 띠게 하는 유전자보다 아마 덜할지도 모른다. 색이 우중충한 개체는 배우자를 유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두 개의 서로 대립하는 선택압을 볼 수 있다. 즉, 포식자는 유전자 풀에서 선명한 색채의 유전자를 제거하는 경향이 있고, 성적 파트너는 충충한 색채를 띠게 하는 유전자를 제거하는 경향을 보인다. 많은 다른 경우와 같이 유능한 생존 기계는 대립하는 선택압의 타협의 산물로 생각된다. 여기서 흥미가 있는 것은 수컷으로서의 최적 타협점이 암컷과 다르다는 것이다. 이는 수컷이 큰 위험을 걸로 큰 벌이를 노리는 도박꾼적 존재라고 보는 우리의 견해와도 완전히 합치하고 있다. 암컷이 만드는 난자 한 개에 대응하는 수컷이 만드는 정자는 막대한 수에 달하므로 개체군 속의 정자의 수는 난자를 휠씬 높아진다. 즉, 난자는 상대적으로 귀중한 자윈 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암컷은 수컷의 경우만큼 성적 매력이 강하지 못해도 난자의 수정을 보증할 수 있다. 한 마리의 수컷이 극히 많은 암컷에게 자식을 낳게 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화려한 꼬리가 포식자를 유인하거나 덤불에 걸리거나 해서 단명해지더라도 수컷은 죽을 때까지 막대한 수의 자식을 볼지도 모른다. 그런데 성적 매력이 없는 충충한 색채의 수컷은 암컷만큼 오래 살지는 몰라도 자식을 거의 갖지 못하고 자기의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 전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만약 세계를 손에 넣어도 불사신의 유전자를 잃어버리면 수컷에게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배우자 선택시의 행동 두 성 사이에 널리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차이는 누구를 배우자로 뽑는가에 대해 암컷이 수컷보다 신중하다는 것이다. 암수를 불문하고 신중함이 필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다른 종 개체와의 교미를 피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교잡은 여러 이유에서 불리하다. 사람과 양 사이의 교미와 같이 교미의 결과가 배형성을 이루지 못하고 손실도 별로 많지 않은 예도 있다. 그러나 말과 당나귀와 같은 가까운 종간에 교잡이 생기면 그 불이익은 적어도 암컷의 파트너에 있어서는 매우 클 수 있다. 교잡의 결과 노새의 배가 형성되 가능성이 있고, 그렇게 되면 그 배는 11개월에 걸쳐 당나귀의 자궁을 차지하게 된다. 노새 때문에 당나귀는 전체의 보호 투자 중의 매우 많은 양이 지출되고 만다. 태반을 통하여 흡수되는 먹이나 후에 우유로 흡수되는 것 뿐만이 아니라 가장 중대한 손실은 다른 자식을 키우는 데 싸야 할 시간으로 소비되는 보호 투자이다. 성체에 이른 노새는 번식 불능이다. 아마 말과 당나귀의 염색체는 매우 닮아서 서로 협동하여 수우하고 완강한 노새의 몸을 만들 수는 있으나 감수 분열에서 적절한 공동 작업을 수행할 정도로는 닮지 않았다. 정확한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어미가 노새를 키우기 위해 지불한 적지 않은 투자 그 자체는 어미의 유전자 입장에서 보면 완전히 낭비가 되는 것이다. 암말은 교미의 상대가 말이 아닌 당나귀가 되지 않도록 매우 주의해야만 한다. 유전자의 언어로 말하면 다음과 같다. 말의 체내에서 "몸아, 네가 암컷이거든 상대가 말이거나 당나귀이거나 어쨌든 나이가 많은 수컷과 교미하라." 등의 지령을 내리고 유전자는 즉시 노새라는 주머니 속에 갇히고 마는 처지가 된다. 더욱이 이 노새를 위한 보호 투자의 결과, 번식 가능한 망아지를 키우는데 필요로 하는 어미의 능력은 다소 감소하게 된다. 한편 다른 수컷은 비록 다른 종의 개체와 교미해도 잃는 것은 적다. 물론 그 때문에 수컷이 아무런 이익도 받지 못하는 것은 암컷의 경우와 같을지라도 배우자의 선택에 있어서 수컷이 신중하지 못하다는 것은 예상할 수 있다. 이 점에 관한 관찰은 모두 이 예상이 들어맞았다.
암수의 성 선택 유형 같은 종의 개체 사이에 있어서도 배우자 선택을 신중히 해야 할 이유가 여러 가지 있다. 예를 들면 종잔 교잡과 같이 크나큰 유전적 손실을 낳기 쉽다. 이것은 근친 상간에 의해 치사성 또는 반치사성의 열성 유전자의 작용이 표면에 나타나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여기서도 또한 암컷이 입는 손실은 수컷보다 크다. 어느 자식에 대해서건 암컷이 수컷보다 큰 투자를 하기 때문이다. 근친 상간의 터부가 존재하는 곳에서는 암컷이 수컷보다 엄격히 이 터부를 지키려고 할 것이라고 예상된다. 근친 상간 관계에 있는 개체 중에 적극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연상의 개체라고 가정하면 근친 상간적 결합은 수컷이 암컷보다 연상의 경우일 때가 그 반대의 경우보다 많다고 생각된다. 예를 들면 아비와 딸 사이의 근친 상간이 어미와 아들 사이의 근친 상간의 빈도보다 높고 남매간의 근친 상간의 빈도가 중간 정도로 될 것이다. 일반적으로 수컷이 암컷에 비해 상대를 가리지 않고 교미하는 경향이 강하다. 암컷은 한정된 난자를 비교적 느린 속도로 생성하기 때문에 다른 수컷과 공연히 많은 교미를 거듭해도 이익은 아무것도 없다. 한편 수컷은 매일 막대한 수의 정자를 만들 수가 있으므로 상대를 가릴필요 없이 많은 교미를 해서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지나친 교미는 약간의 신간과 에너지 손실을 제하면 실제로는 암컷에게도 대단한 대가가 아닐지 모른다. 반면에 암컷에게 있어 그것은 아무런 적극적 이익에 관련되지 않는다. 한편 수컷에게는 이제 더 이상 많은 암컷과 교미를 거듭하지 않아도 좋다는 한계는 없다. 수컷에게 있어 과잉이라는 말은 의미가 없다.
인간의 성 선택 나는 지금까지 인간에 대해서 확실하게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장에서 거론한 바와 같은 진화론적 논의에 대해 생각할 때 우리가 속하는 인간이라는 종과 우리의 개인적 경험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수컷이 장기간에 걸쳐 성실함을 어떤 식으로 증명해 보일 때까지 순결을 지키려는 암컷의 생각은 잘 알려진 감정에 호소할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여성이 훌륭한 남성을 고르는 전략이 아닌 가정의 행복을 우선으로 하는 남성을 택하는 전략을 채택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실 대부분의 인간 사회는 일부일처제를 취하고 있다. 우리가 속한 사회에서도 부모의 보호 투자는 어느 것이든 크고 분명히 불균형하지 않다. 확실히 모친은 아이를 위해 부친보다 더 직접적인 일을 한다. 그러나 부친도 아이에게 주는 물질적 자원을 얻기 위해 간접적이나 열심히 일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난혼적인 사회도 있고 하렘제에 기초한 사회도 많다. 이 놀랄 만한 다양성은 인간의 생활 양식이 아닌 오히려 문화에 의해 주로 결정됨을 시사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남성에게는 일반적으로 난혼적 경향이 있고 여성에게는 일부일처제적인 경향이 있다고 한다. 진화론적 입장에서 이 예상이 맞을 수 있다. 특별한 사회에 있어서 이 두 가지 경향 중 어느 것이 남을 압도하는지는 문화적 상황의 세부적인 것에 의존한다. 이것은 다른 동물에 있어서 그것이 바로 생태학적 세부 사항에 의존하는 것과 같다.
인간의 성의 선전 행위 우리가 소속하고 있는 사회의 양상 중에 결정적으로 차격적인 것의 하나는 두 성의 선전 행위에 관한 일이다. 이미 본 바와 같이 성 차이가 존재할 때에는 진화론적 입장에서 다음과 같은 것이 강하게 예상된다. 즉, 자기를 과시하는 것은 남성이고 여성은 충충한 색채를 나타내게 될 것이다. 그런데 현대 서구인은 이 점에 관해서 의심없이 예외적인 존재이다. 물론 화려하게 치장하는 남성과 우중충하게 꾸민 여성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평균적으로 보면 우리의 사회에 있어서 공작의 꼬리에 상당하는 것을 과시하고 있는 것은 여성이지 남성은 아니다. 여성은 얼굴에 화장을 하고 가짜 속눈썹을 붙인다. 배우와 동성연애자를 제외하면 일반적으로 남성은 그런 짓을 하지 않는다. 여성은 자신의 용모에 매우 관심을 가지고 있고, 신문과 잡지가 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남성용 잡지는 남자의 성적 매력 문제로 그렇게 열중하지 않는다. 자기의 의상이나 용모에 이상하게 관심이 있는 남성은 남성끼리뿐만 아니라 여성에게도 경원시되기 쉽다. 이야기 중에 여성이 화제가 될 때에는 대개 정해진 그녀의 성적 매력이나 그것의 부족함에 대하여 언급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말 상대가 여성이든 남성이든 간에 변함없다. 남성이 화제에 오를 때에 사용되는 형용사는 성과는 관계가 없는 것이 더 많을 것 같다.
이런 사실에 직면하면 생물학자는 그가 보아온 인간 사회는 실은 여성이 남성을 가지고 경쟁하는 사회이고 그 역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풍조의 경우에 암컷이 충충한 색채를 나타내는 것은 그 암컷이 수컷을 가지고 경쟁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라고 우리는 생각했다. 암컷이 유인술이 좋아서 신중하게 수컷을 고를 여유가 있으므로 수컷이 맑고 화려한 색채를 나타낸다. 풍조 암컷의 유인술이 좋은 것은 난자가 정자보다 희소한 자원이기 때문이다. 현대 서구인은 어떻게 된 것인가? 실제로 남성은 상대가 애써 찾는 성, 파는 사랑 마음대로인 성, 즉 신중하게 배우자를 선택할 수 있는 측의 성으로 되고 만 것일까? 만일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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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고사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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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頭著糞(불두저분) 佛(부처 불) 頭(머리 두) 著(붙을 저) 糞(똥 분)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여회선사(如會禪師)편의 이야기. 송(宋)나라 때, 최(崔)씨 성을 가진 한 사나이가 하루는 절에 갔다가, 참새들이 불상의 머리에 똥 싸놓은 것를 보게 되었다(鳥雀于佛頭上放糞). 그는 절의 주지가 너무 나태하다는 생각이 들어 크게 화를 내며 주지에게 말했다.
이런 참새들에게도 불성(佛性)이 있소? 주지는 이 사람의 의도를 잘 알고 대답했다. 물론 있지요. 최씨 사나이는 주지의 이런 대답을 듣고, 그가 어떤 식으로 변명할 것인지 궁금하여 다시 질문을 하였다. 참새에게 불성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지요? 참새에게 불성이 있다면 어떻게 부처의 머리에 똥을 쌀 수 있겠소? 주지는 웃으면서 대답하였다. 참새가 불상에 똥을 싼 것은 바로 부처가 자비하여 살생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참새들이 독수리의 머리에 가서 똥을 싸지 않는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그 사나이는 그저 웃을 수 밖에 없었다.
佛頭著糞이란 경멸이나 모욕을 당함 을 비유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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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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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디자서전. 시민의 불복종 - 간디 / 함석헌 역
제2편
19. 나탈 인도 국민회의
전에도 그랬지만 그 후에도 변호사로서의 업무는 내게는 부업적인 것으로 남아있었다. 나탈에 머무르는 것을 당당한 심정으로 하려면 공공사업에 전력을 하지않으면 안되었다. 선거권 박탈 법안에 대한 탄원서의 발송은 그 자체만 가지고는부족했다. 식민지 담당 국무장관에게 어떤 인상을 주려면 계속적인 시위운동이 필요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상설기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되었다. 그래서 나는 셰드 압둘라와 또 그밖의 친구들과 상의하여 영구적인 성격을 가지는 공공단체를 조직하기로 결정하였다. 새로 조직된 단체에 붙일 명칭을 찾아내기에 나는 상당히 고심하였다. 그것은 어떤 특정 당파와 관련을 지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의회라는 명칭이 영국 보수당에게는 평이 좋지 못한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인도 국민의회는 바로 인도의 생명이다. 나는 그것을 나탈에서 일반화시키고 싶었다. 그 명칭을 택하기를 꺼리는 것이 어쩐지 비겁한 듯이 보였다. 그랬기 때문에 나는 내 이유를 충분히 설명한 다음 그 단체를 나탈 인도 국민의회라고 명명할 것을 제의하여서 드이더 5월22일에 나탈 인도 국민의회가 발족을 보게 되었다.
그날 다다 압둘라의 그 널따란 방은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거기 참석했던 모든 사람이 열광적인 박수로써 그 의회를 찬성했다. 규약은 간단했고 입회 부담은 무거웠다. 매월 5실링씩 내는 사람만이 회원이 될 수 있었다. 넉넉하게 사는 사람들은 될수록 많이 내도록 권유했다. 압둘라 셰드가 매월 2파운드로 그명단의 선두에 섰고 다른 두 친구가 역시 같은 액수로 기입했다. 나도 회비 내는데서 빠져서는 안된다고 생각해서 매월 1파운드를 적었다. 그것은 나로서는 적은 액수가 아니었다. 그러나 나도 내 할일을 하자는 생각만 있다면 반드시 힘에 겨운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하느님은 나를 도와 주셨다. 그와같이 하여서 우리는 매달 1파운드를 내겠다는 상당수의 회원을 얻었다. 매달 10실링을 적은 사람의 수는 더 많았다. 이밖에 찬조금도 들어온 것이 있어서 고맙게 받았다. 경험에 비추어 보면 회비를 내라고 해서 첫마디에 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더반 밖에 사는 회원을 번번히 찾아가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다. 첫 수간의 열의도 후에는 식는 법이다. 더반에 사는 사람들조차도 독촉을 몹시 해야 냈다.
내가 간사였으니 회비 받는 것은 내 책임이었다. 마침내 나는 서기 한사람을 매일 회비 징수에 온종일 내세우지 않으면 안되는 형편에 이르렀다. 그 사람도 진력이 나기에 이르고 보니, 나는 이제 이것을 바로잡으려면 회비 납부를 매월로가 아니라 매년으로 고치고, 그것도 엄격하게 선불을 하지 않아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회의를 열었다. 모든 사람이 다 회비를 달마다 내지 말고 1년에 한번 내기로 하고, 최저액을 3파운드로 하자는 제의에 찬성했다. 그렇게 하여서 회비 징수는 퍽 쉽게 되었다. 나는 첫 출발에서부터 공공사업은 빚을 지고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다른 일은 다 그렇지 않을는지 몰라도 금전에 관해서만은 누구든 약속을 그대로 믿어서는 안된다. 나는 이때까지 자기 입으로 내겠다고 한 회비를 곧 내는 사람을 본 일이 없는데, 나탈 인도인들도 그 법칙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그래서 수중에 자금이 없이는 사업을 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나탈 인도 국민의회는 빚을 진 일이 없었다.
나의 협력자들은 회원을 이끌어들이는 데 비상한 열성을 보여 주었다. 그것은 그들에게 흥미있는 일이기도 했지만, 또 동시에 한없이 귀한 경험이었다. 대단히 많은 사람들이 즐거워서 회비를 현금으로 들고들 나섰다. 내륙지방 먼 거리에 있는 촌락에서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았다. 사람들은 공공의 일이 어떤 성질의 것인지를 모르고 있었다. 그래도 유력한 상인들의 호의로 아주 벽지에까지 초대를 받아서 갔다. 그러한 여행중에 한번은 아주 애먹은 일이 있었다. 우리는 찾아간 주인에게 6파운드의 찬조는 기대하고 있었는데, 그는 세상없어도 3파운드 이상은 할 수 없다고 거절을 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만일 그에게서 그 액수만 받고 만다면, 다른 사람들도 다 그 본을 뜰 터이니, 그러면 우리의 모금운동은 실패로 끝나고 마는 것이다. 밤은 이미 깊었고, 우리는 시장했다. 그렇지만 우리가 받아내려고 마음먹었던 액수를 받지도 못하고 밥을 어떻게 먹겠는가? 아무리 권유를 해도 소용이 없었다. 주인은 철석같아 보였다. 그 읍내의 다른 상인들도 그에게 알아듣도록 설명을 해주며, 우리는 모두 다 밤을 꼬박 새웠다. 그도 우리도 꼭같이 한치도 물러서지 않기로 결심을 했다. 우리 협력자들은 거의 다 화가 치밀었지만, 그래도 잘 참았다. 드디어 동이 훤히 틀때에 가서 주인은 마침내 양보를 하여 6파운드를 내주고 우리에게 식사를 차려 내왔다. 이것이 통가트에서 생긴 일인데, 그 영향은 북해안의 스탠저, 구석지방의 찰스타운에까지 미쳤다. 이것 때문에 우리 모금사업은 도리어 촉진되었다.
그러나 자금 모으는 것만이 할일은 아니었다. 그보다도 나는 벌써 오래 전부터 필요 이상의 돈을 수중에 가지고 있어서는 안된다는 철칙을 배워 가지고 있었다. 회의는 보통 매달 한번, 필요한 때면 매주마다 열리곤 했다. 전 회의의 회의록을 읽고, 온갖 문제를 토론했다. 사람들은 공식 토론에 참여해 본 경험이 없었고, 말을 간단하고 요령있게 할 줄도 몰랐다. 사람마다 일어나서 말하기를 주저했다. 나는 회의 진행의 규칙을 설명해 주었고, 그러면 그들은 잘 지켰다. 그들은 그것이 자기네에게 교육이 되는 것을 깨달았고, 전에 청중앞에서 말해 본 일이 도무지 없던 사람들이 곧 공사에 관해 공식적으로 생각하고 말할 줄을 알게 되었다. 공공의 일에 있어서는 사소한 비용이 때로는 거액에 달하게 되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영수증도 인쇄를 하지 않기로 했었다. 사무실에 등사기를 하나 두고 영수증과 보고서는 그것으로 찍어냈다. 이런 것들을 인쇄로 한 것은 회의 재정이 넉넉해지고 회원수와 사업이 늘어난 후부터였다. 그러한 절약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이건만 어떤 조직체에 있어서는 언제나 그것이 그대로 지켜지지 않는다. 내가 이러한 조그만, 그러나 차차 자라가는 기관의 사소한 일들을 이렇게 세세히 이야기하는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다. 사람들은 자기가 낸 돈의 영수증을 받을 생각을 별로 하지 않지만, 우리는 언제나 영수증을 꼭 받도록 하라고 주장했다. 이와 같이 한푼 한푼을 꼭꼭 기록했기 때문에, 나는 지금도 1894년도 인도 국민의회의 기록속에 그 금전출납 장부를 그대로 내놓을 수 있게 보존하였다. 장부를 세밀히 기록하는 것이 어떤 기관에서나 필수조건이다. 장부 기록이 없으면 오해를 산다. 분명하게 기록된 장부 없이 진실을 깨끗히 지키라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 의회의 또 한가지 특색은 식민지 출생의 교육받은 인도인에 대한 봉사였다. 의회의 주재로 식민지 출생 인도인 교육협회가 창립되었다. 회원은 주로 이들 교육받은 청년들이었고, 거의 명색뿐인 회비를 냈다. 협회는 이들의 요구와 불만은 발표하게 하고, 그들에게 사상을 고취하며, 인도 상인들과 접촉을 갖게 하고, 또 인도인 사회를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그 일이었다. 회원들은 정기적으로 모여서 여러가지 문제에 관해 의견을 발표하거나 신문을 읽거나 했다. 또 이 협회에는 조그만 도서관도 설치되었다.
의회의 셋째 특색은 선전이었다. 그것은 남아프리카와 영국에 있는 영국인과 인도 국내에 있는 인도인들에게 나탈의 실정을 알려 주는 일이었다. 그 목적을 위해 나는 두개의 소책자를 썼다. 첫째는 남아프리카에 있는 모든 영국인에 대한 호소(An Appeal to Every Briton in South Africa)였는데, 내용은 나탈 인도인의 일반 상태를 실증을 들어 가면서 서술한 것이었다. 둘째는 제목을 인도인 선거전 - 하나의 호소(Indian Franchise - An Appeal)'이라 했는데, 내용은 나탈에 있는 인도인의 선거권의 역사를 시례와 숫자로써 간략히 설명한 것이었다. 나는 이 소책자들을 쓰는데 상당한 공력과 연구를 들여서 했는데, 그렇게 한 보람이 있어서 이것은 널리 배포되었다. 이 모든 활동의 결과로 남아프리카에서 수많은 인도인 친구를 얻게 되었고, 인도 각계각층에서 활발한 동정을 얻기에 이르렀다. 또한 남아프리카의 인도인 앞에 하나의 분명한 행동 노선을 제시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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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동서고전/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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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지중해 신화와 전설 - 홍사석
제12장 지하계에서 벌받는 자들
1. 시큐온 시큐온(Sicyon)은 코린트 만에 면한 펠로폰네소스 시큐오니아 주의 수도로 현재는 바실리코라 한다. 그리스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되고 이름난 고장이며 첫 군주는 아이갈레오스로 이름 외에는 알려진 것이 없다. 시큐온을 중흥시킨 인물은 그 후손 시큐온으로, 아테네 왕 에렉테우스의 손자라 하며 따라서 다이달로스와는 형제간이 된다. 다른 설에는 마라톤의 아들이며 코린토스와 형제간이라고도 한다. 시큐온이 통치할 때 이곳은 크게 번영하여 전 펠로폰네소스를 시큐오니아라고도 하였다. 한참 후에는 아가멤논이 영주가 되고 그 후 헤라클리다이의 수중으로 넘어갔다. 기원전 251년에는 아라토스의 영도로 아카이아 동맹에 가담하여 강대국이 되었다. 밀, 포도주와 올리브의 집산지이며 철광으로도 유명하였고 뛰어난 인물들을 배출하였는데 조각가 폴류클레이토스도 이 고장 출신이다. 후에 이 곳 주민들은 점차 방탕해지고 사치에 흘러 '시큐오니아의 신발'이라는 것이 매우 인기품으로 알려졌는데 이는 나약해진 시민의 일면을 엿보게 해준다.
2. 코린토스 코린토스(Corinthus:코린트)는 그리스의 북부지역 테살리아와 남부지역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잇는 좁은 지대(코린토스 협부)에 위치한 도시국가이다. 남북을 이은 육로와 동서의 해양(에게해와 이오니아해)에서 배를 육로로 연계하는 연수육로(Portage) 지점에 위치하여 교역의 중심지로서 한때 큰 번영을 누렸다. 원래 지명은 에퓨라, 그 후 비마리스(Bimaris : bi+mare 즉 둘+바다의 의미)라 불렸다. 시큐온의 통치 시대에 크게 번영하여 반도 전체를 시큐오니아라고도 하였다. 이 나라의 왕 에포페오스의 왕자 마라톤은 에포페오스의 학정이 심하므로 아티카로 가서 도시를 건설하고 그 이름을 마라톤이라 하였다. 후에 에포페오스가 사망하자 고향으로 돌아와 왕권을 계승하고 두 아들 시큐온과 코린토스에게 나라를 나누어 주었다. 두 아들은 각각 도시를 건설하고 자신들의 이름을 붙여 시큐온과 코린토스라 하였다. 일설에는 코린토스가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죽자 그 나라 사람들은 메데이아를 불러들였다고 한다. 그러나 다른 설에 따르면, 코린토스는 메가레오스의 딸 코르게와 결혼하여 아들을 두었지만 반란이 일어나 부자 모두 살해당하고 고르게는 절망에 빠져 호수에 투신 자살하였다고 한다. 그 후 이 호수는 고르고피스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반란은 시슈포스가 나서서 진압하여 원수를 갚고 코린토스를 지배하였다고 전한다. 코린토스 사람들은 코린토스를 제우스의 아들이라 하지만, 다른 그리스 사람들은 과장된 주장이라고 코웃음치며 '코린토스는 제우스의 아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웃음거리로 삼았다. 테세우스가 퇴치한 악당 시니스는 코린토스의 딸 슬레아가 낳은 아들이다.
역사시대에 와서도 강력한 부국으로 팽창을 계속한 코린토스는 기원전 733년 시칠리아의 슈라쿠세에 식민도시를 건설하고, 티몰레오네 같은 폭군참주는 반강제로 신도시로 파천시켰다. 기원전 779년까지는 영주가 지배하였고 그 후 프류타네스라는 고위 행정관료가 통치를 맡았다. 기원전 394년, 코린토스 지역에서 아테네.테베.코린토스.아르기베스가 연합하여 라케다이몬(스파르타)에 대항하는 전투가 벌어졌다(코린토스 전쟁). 이 전투에서 스파르타 왕 아게실라오스는 아테네와 보이오티아 연합군을 격파하여 큰 성과를 올렸으면서도 코린토스의 공략에 반대하고 "그리스인들은 서로 싸워 파멸할 것이 아니라 팽창하는 페르시아 세력에 대처해야 하는데 이에 대비하는 병력 투입은 하려 하지 않는다"며 개탄하였다. 그의 정적들은 '절름발이가 스파르타를 통치한다'는 옛 예언을 상기하고 절름발이 왕 아게실라오스에게 지대한 관심을 가졌다. 아게실라오스는 대페르시아전에서 만 명 이상의 페르시아군을 섬멸시키는 성과를 올린 뛰어난 전략가였다. 코린토스는 기원전 146년 로마의 뭄미우스 공략으로 파괴되어 완전히 불타버렸다. 이 때의 화제로 녹아내린 모든 금속이 서로 섞이면서 값나가는 합금으로 변하였는데 이를 코린티움 아이스라 하였다. 장인들은 그 후 동에 소량의 금을 섞어 제품을 만드는 야금기술을 발전시켰는데 광택이 찬란한 코린토스 황동으로 소문이 나 매우 비싼 값에 팔렸다.
유명한 아프로디테 신전이 있는 이 도시에는 음탕한 여인들이 돌아다니며 웃음을 팔았는데 대가가 어찌나 비쌌던지 애인 한량들이 대부분 빈털터리가 되었다고 전한다. 이 점에서는 레스보스 사람들과 상통하는 데가 있다. 기원전 1세기 카이사르가 코린토스의 재건을 지원하여 도시는 종전의 영화를 되찾고 인구 60만의 도시로 발전하였다. 네로 황제는 코린토스 협부에 운하를 개착하고자 손수 금도끼로 기공식까지 하고 공사를 진행하였으나 중단되었고, 2천년이 지난 현대에 와서야 비로소 완공되었다. 건축학상 코린트식 신전 기둥장식은 매우 화려하여 도리스식이나 이오니아식과는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3. 시슈포스 시슈포스(Sisyphus)는 극히 현명하고 가장 신중한 인간으로 알려져 있다. 아이올로스와 에나레테의 아들로서 아타마스 및 살모네우스와는 동기간이며, 아틀라스의 딸 메로페와 결혼하여 여러 아이들을 두었다. 에퓨라(코린트 시의 옛 이름)를 건설하였는데 이 때 멜리케르테스(이노의 아들)의 시체를 발견하자 영예로운 장례를 치르고 매장해 주었다. 이노는 멜리케르테스를 안고 이스트모스의 바다에 투신하였으며 아들은 바다의 신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시슈포스는 그 영혼을 기리는 행사로 이스트미아 경기를 시작하였다(기원전 1326). 시슈포스는 동기인 살모네우스를 증오하여 그를 처치하기로 마음먹고 아폴론의 신탁을 받아보니 조카딸과 동침하라는 것이었다. 결국 시슈포스는 살모네우스의 딸이자 그의 친조카딸인 튜로와 사랑을 하고 그로부터 쌍둥이 아들을 갖게 되었다.그러나 신탁의 내용을 알게 된 튜로는 두 아이를 어릴 때 살해하고 말았다. 시슈포스는 코린토스의 왕권을 쟁취하였는데 마술에 능한 메데이아가 갑자기 이 지역을 떠나면서 정권을 장악한 것으로 보인다. 시슈포스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일화가 전하는데 하나같이 현명하고 온갖 계략으로 가득찬 이야기들이다. 예컨대 인근의 소를 도둑질하는 것쯤 식은 죽기 먹기로 알던 희대의 도둑 아아톨류코스가 시슈포스는 자신이 소유하는 소의 발굽에 '아우톨류코스가 훔쳤다'라고 적은 작은 서판을 달아 놓아, 잃은 소를 다시 되찾고 소도둑도 종식시켰다. 또한 아우톨류코스의 딸인 안티클레이아의 혼인날이 다가왔을 때는 이 처녀의 침실에 침입하여 겁탈하고 소도둑질에 대한 보복을 하였다. 안티클레이아는 이로 인해 라이르테스가 아닌 시슈포스의 아이를 임신하게 되었고 거기에서 태어난 아이가 바로 오듀세우스였다. 다른 전설작가에 따르면 아우 톨류코스 자신이 스스로 딸을 시집보내기 전에 시슈포스와 자유롭게 연애하도록 하였는데, 자신보다 더 영악한 손자를 갖기 위해서 그랬다고 한다.
한 번은 시슈포스가 코린토스 성채의 망루에서 제우스가 개울의 요정 아이기나를 납치해 가는 것을 보았다. 아이기나는 강신 아소포스와 요정 메토페의 달로 제우스가 그녀를 데리고 필리온토스에서 아이노이 섬으로 가던 길에 코린토스를 거치게 된 것이다. 얼마 후 아소포스가 뒤쫓아와 시슈포스에게 딸을 납치한 자를 알려 달라고 하였다. 시슈포스가 코린토스 언덕에 있는 샘에서 물이 나오게 해주면 알려 주겠다는 조건을 내걸었고, 이에 아소포스가 샘물을 솟아나게 하니 이 셈이 바로 피레네 샘이다. 시슈포스가 일러바친 것을 알게 된 제우스는 화가 나서 죽음의 정령 타나토스를 보내 그를 하데스의 나라로 보냈다. 그러나 지극히 교활한 시슈포스는 타나토스를 교묘히 속여 꽁꽁 묶은 뒤 토굴 속에 가두어 버렸다. 이 때문에 인간이 죽지 않는 변고가 일어나게 됭고 이에 걱정이 된 신들은 아레스를 파견하여 타나토스를 찾아 풀어놓게 하였다. 풀려난 타나토스는 시슈포스를 다시 명계로 끌고 갔으나 시슈포스는 미리 처 메로페에게 자신의 장례를 지내지 말도록 지시해 두었다. 이에 따라 메로페는 남편이 죽었는데도 매장하지 않고 공양도 올리지 않았다. 이렇게 되자 하데스는 화를 냈지만 별 도리 없이 시슈포스가 다시 지상에 가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담담히 지상으로 나와 코린토스로 돌아온 시슈포스는 하데스의 명령을 무시하며 예전과 마찬가지로 삶을 지속, 장수하다가 생을 마쳤다. 그는 오랫동안 이스트모스에서 패왕으로 군림한 후 그 고장에 매장되었고, 글라우코스(벨레로폰의 아비), 아르뉴티온(포코스의 아비), 테르산드로스 및 할모스라는 네 아들을 두었다.
신들조차 어찌할 수 없게 만들어 체면을 손상시킨 시슈포스는 사후 타르타로스에서 가혹한 벌을 받게 되는데 그 죄목은 여러 가지였다. 우선 지상에서 인근 나라를 악랄하게 파괴.약탈하고 주민을 돌로 눌러 잔인하게 죽이고 그 밖에도 혹독한 고문을 가한 죄, 제우스의 아이기나 납치를 딸의 아비에게 폭로한 죄, 하데스의 명령을 거역한 불경죄 등이었다. 그래서 그는 지옥 타르타로스에서 언덕 위로 큰 바윗돌을 영원히 밀어 올려야 하는 형벌을 받았다. 바윗돌을 겨우 꼭대기까지 밀어올리면 번번히 다시 굴러 떨어졌기 때문에 이 작업을 되풀이해야 했던 것이다.
익시온 익시온(Ixion)은 테살리아의 왕이며 라피테스족가지 지배하였다. 플레규아스와 페리멜레의 아들이라 하며 코로니스의 오라비가 된다. 그러나 작가에 따라서는 아레스, 아이틴, 안티온, 레온테오스, 혹은 파시온의 아들이라고도 한다. 데이오네오스의 딸 디아와 결혼하고 장인에게 값진 예물을 올리겠다고 철석같이 약속을 하였다. 그러나 약속을 이행할 의사가 없음을 알아차린 데이오네오스는 익시온의 말을 대신 끌고 가버렸다. 이에 익시온은 말을 빼앗긴 분을 감추고 우호를 가장하여 장인을 자신의 나라 수도 라리사의 축제에 초청하였다. 그리고는 데오오네오스가 도착하자 미리 땅을 파고 장작과 타오르는 목탄을 채워놓은 깊은 굴 속으로 밀어 넣어 태워 죽었다. 게다가 종교적 모임에 참석한 그 밖의 가족까지도 몽땅 죽여 버렸다. 이러한 살인 후에는 반드시 속죄가 행해져야 했으나 모두 극도의 공포와 경악에 휩싸여 익시온을 위한 속죄의 제의를 거부하고 그와의 접촉도 피하며 멸시하였다.
제우스 신은 난처한 처지에 빠진 익시온을 불쌍히 여겨 올림포스의 만찬에 초대하고 신들에게 그를 소개하였다. 이러한 제우스의 처사에 응당 보은의 마음을 갖고 근신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익시온은 도리어 오만하고 욕정에 사로잡혀 헤라를 유혹, 겁탈하려 하였다. 일설에는 헤라가 익시온의 연정을 원했다고도 하나 대부분은 이를 부정한다. 익시온이 정조를 범하려 한 것을 헤라는 제우스에게 알렸고, 제우스는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하여 구름을 헤라와 닮게 만들어 익시온이 헤라와 만나자고 한 곳에 이끌어다 놓았다. 이 덫에 걸려든 익시온은 구름의 영상을 헤라로 알고 포옹 교합하였다. 이에 구름의 여신 네펠레(아타마스의 첫 왕비가 구름으로 변신하였다고 한다)가 수태하여 켄타우로스가 태어나고 이 켄타우로스가 펠리온 산의 암컷 야생마와 교합하여 켄타우로스족이 생겼다 하며, 혹 켄타우로스족은 네펠레의 아이라는 설도 있다. 어쨌든 신성 모독죄를 확인한 제우스는 익시온을 천공에서 내쫓고 헤라를 유혹한 죄로 벼락을 쳐서 타르타로스에 내던져 버렸다. 그리고 헤르메스를 시켜 익시온을 지옥에서 최고의 흉악범을 처벌하는 곳으로 끌고 가 화염에 싸인 수레바퀴에 묶여 영구히 돌게 하는 고통을 받게 하였다.
탄탈로스 탄탈로스(Tantalus)는 제우스와 플루토(크로노스 혹은 아틀라스의 딸)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며 시퓰로스 산에서 프리지아 혹은 리디아를 지배하였다. 탄탈로스는 엄청난 부자로 신들도 그를 좋아하여 신들의 잔치에 늘 초대되었다. 그는 아틀라스의 딸(7명의 딸을 플레이아데스라 함) 디오네와 결혼하였는데, 하신 파크롤로스의 딸인 에우류아나사도 아내라 한다. 다른 설에는 암피다마스와 스테로페의 딸 클류티아(다른 플레이아데스의 한 처녀)라고도 한다. 탄탈로스는 니오베와 펠롭스라는 두 아이를 두었는데, 브로테아스, 타슐로스를 비롯한 다른 아이들이 있다는 설도 있다. 후손으로 탄탈리데스, 튜에스테스, 아트레우스가 있고 아가멤논과 메넬라오스 가게도 그 후손이라 한다. 시문에서는 탄탈로스가 지옥에 유폐되어 갈증과 배고픔을 면치 못하는 영겁의 벌을 받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즉 물이 턱에 차는 못에 갇혀 있으나 목이 말라 마시려 하면 물이 빠져 버리고, 머리 위에 잘 익은 과일이 잔뜩 달린 가지가 늘어져 있으나 손만 뻗치면 바람이 가지를 멀리 이동시켜 먹을 수 없게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또 다른 신화에서는 머리 위에 거대한 돌이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처럼 달려 있어 시시각각으로 압사의 공포에 시달리며 한시도 그 공포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무슨 죄일까? 여기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크레타에 있는 제우스 신전에서 기르고 있는 제우스가 매우 아끼는 개를 훔쳤기 때문이라 한다. 또 한 설에서는 천상의 잔치에 참석할 때 식탁에서 넥타르와 암브로시아를 훔쳐 지상의 인간에게 나누어 주었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더 끔찍스런 원인은 신들이 프리지아에 가는 길에 탄탈로스 집에 들렀는데 신의 신통력을 시험한다고 하여 자신의 아들 펠롭스를 죽여 신의 음식으로 제공하는 잔인성과 불경죄를 저질렀기 때문이라 한다. 또 다른 설에서는 가뉴메데스를 납치하여 극히 비정상적인 음탕한 행동을 하였기 때문이라 한다. 그러나 탄탈로스에 대해서는 사후에 받은 벌로 유명하고 생전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없다.
다나오스의 딸들 아르고스 왕 다나오스(Danaus)의 딸 50명을 다나이데스라 한다. 아라비아를 통치하던 숙부 아이귭토스(다나오스의 쌍둥이 형제)는 이집트를 정복한 후 다나오스가 통치하는 리비아에 아들 50명을 보낼 터이니 조카딸과 혼인을 시키자고 제의하였다. 다나오스는 이 제의를 자신의 왕국을 빼앗으려는 책략으로 보고 또한 신탁에서도 사위의 손에 죽임을 당할 것이라 하였으므로 딸들을 데리고 아테나 여신의 도움을 받아 건조한 큰 배로 아르고스로 향하였다. 아르고스는 선조 이오의 출신지였다. 도중에 로도스의 섬 린도스에 기항하여 아테나 여신에게 감사의 뜻으로 신전을 봉헌하였다. 이어 아르고스에 도착한 그는 이오의 후손임을 내세워 왕권의 양위를 요구하였다. 그런데 이 곳에서는 수호신 자리를 놓고 헤라에게 패한 포세이돈이 화가 나서 아르고스 주민을 저주하고 모든 개울을 말려 버려 고통이 계속되고 있었다. 한데 마침 아르골리드(수도는 아르고스)에 와서 머물던 다나오스의 딸 50명 중 아뮤모네가 포세이돈과 사랑을 하게 되었고, 포세이돈은 저주를 풀어 개울물을 다시 흐르게 하였다. 아르고스인은 집회를 열어 결국 다나오스에게 왕권을 넘겼다.
그런데 아이귭토스의 아들 50명이 신부를 찾아 다시 아르고스까지 와서 청혼을 하니 별 수 없이 각자 신부를 정하게 하였다. 그러나 낭자들은 미리 아비로부터 단검을 건네받고 신혼 첫날밤 동침하는 신랑을 찔러 죽이라는 엄한 밀지를 받았다. 명령은 어김없이 이행되어 딸들은 신랑을 살해하고 피묻은 머리를 내보였다. 그러나 장녀인 휴페름네스트라만은 자신의 처녀성을 존중하는 신랑 륜게오스를 사랑하여 아비의 비밀지령을 털어놓고 신랑을 도피시켰다. 명령을 거역한 장녀는 아비의 엄한 신문을 받았으나 시민들이 그녀에게 죄가 없다고 주장하는 바람에 결국 영예의 무죄판결을 받았다. 석방된 그녀는 신념의 여신에게 감사하여 사당을 봉납하였다. 다나오스는 륜케오스를 사위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왕위를 계승케 하였다. 그리고 나머지 49명의 자매는 제우스 명에 따라 헤르메스와 아테나에 의해 속죄하고 아르고스 젊은이들에게 시집을 보내기로 하였다. 그러나 아비가 많은 지참금과 선물을 내걸었음에도 살인 경력을 가진 처녀들에게 선뜻 장가들겠다고 나서는 남자가 없었다. 궁리 끝에 도보 경기를 열어 우승한 젊은이에게 딸의 선택권을 주었고 마침내 모든 딸이 출가하여 그로부터 많은 후손이 생기니 다나오스족이라 일컫게 되었다.
다른 전설에 의하면 다나오스의 딸들은 사후 하데스 나라 타르타로스에 가서 살인죄에 대한 벌로 영원히 채워지지 않는 구멍난 물독을 채우는 형벌을 받게 되었다 한다. 다만 아뮤모네만은 처벌 대상에서 제외되었는데, 가뭄에 허덕이는 아르고스 시로 물을 길어 나르고 이것을 본 포세이돈이 사랑을 느껴 데려갔기 때문이다. 또한 다나이데스가 신혼 초야에 신랑의 머리를 베어 레르나 늪에 던졌는데 그 곳에는 헤라클레스가 퇴치한 50두 괴물인 물뱀(헤라클레스의 두 번째 노역 참조)이 서식하였으며 히드라 독소는 그 후에도 계속 인간에게 고통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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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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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2 - 류시화
인디아 어록 1. 눈에 눈물이 없으면 그 영혼에는 무지개가 없다.
대단한 것 자정이 넘어 폭우가 퍼붓는 남인도 마드라스 공항에 내린 나는 릭샤를 타고 호텔로 향했다. 릭샤에 창문이 없었기 때문에 비가 안으로 들이쳐 나는 속옷까지 젖고 말았다. 인도 여행 중에 그런 폭우를 만난 것도 처음이었다. 나는 릭샤 운전하는 늙은 인도인에게, 정말 대단한 비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가 말했다. "낫씽 스페셜! 인생에 대단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네."
단순한 지혜 "단순한 지혜를 추구하라. 지혜에도 복잡한 지혜가 있고 단순한 지혜가 있는데, 무엇보다 단순한 지혜를 가져야 한다. 예를 들어 어떻게 하면 깨달음에 이르는가를 연구하는 것은 복잡한 지혜지만 자신이 이미 완전한 존재임을 믿는 것은 단순한 지혜다. 단순한 것이 최고의 것이다." 북인도 럭나우 출신의 큰 스승 푼자 바바는 나를 포함한 일단의 서양인 여행자들에게 그렇게 충고했다.
순례자의 물병 "성지 순례자의 물병은 성지를 모두 순례했지만 전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물병으로 남아 있다. 세속적인 마음을 가진 사람도 이와 같은 것이다." 북인도의 대표적인 힌두교 성지 리시케시에서 만난 한 힌두 노인은 물병을 들고 걸어가는 내게 라마크리슈나의 말을 상기시켰다.
열 다섯 살의 질문 "당신이 시를 쓴다니까 묻겠는데, 당신은 시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깨달았는가? 만일 깨달았다면 그것을 시로써 어떻게 표현하겠는가?" 서부 라자스탄 행 '초특급' 열차 안에서 만난 열 다섯 살의 당돌한 소년이 내게 던진 질문이다.
어느 장님의 자기 주장 "스무 살 때 난 스스로 결심했다. 진리를 깨닫기 전에는 결코 눈을 뜨지 않겠다고. 그래서 지난 40 년 동안 한번도 눈을 뜨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진리를 깨달았다. 세상을 구경하라고 신이 내게 두 눈을 주셨음을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눈을 떴는데, 그 순간 햇빛 때문에 두 눈이 멀어버렸다. 그래서 이렇게 구걸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불타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장소 보드가야에서 만난 한 거지는 자신이 장님이 된 사연을 그렇게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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