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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편지】: 제950호
2013.3.18 (음2.7) / 발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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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wmaster@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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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오늘의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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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가끔 속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 로렌스 J.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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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말글 / 한글바로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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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떨림
“험상궂게 생긴 무리들이 도끼를 휘두르며 쫓아왔다. 잡히면 죽는다는 생각에 죽을힘을 다해 내뺐다. 어딘지 모를 어둠 속을 달아나다 끝내 누군가 휘두른 도끼에 찍히고 말았다. 순간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 같았다. 그래도 멈추지 않고 눈앞에 보이는 빛을 향해 도망쳤다. 환한 빛의 세상에 문을 넘어서는 순간 울음소리가 들렸다. 소리에 놀라 눈을 뜨니 내가 죽은 줄 알고 통곡하는 식구들이 보였다. 나를 잡으려던 무리들은 저승사자였음에 틀림없다. 도끼 찍힌 자리에는 진짜 흉터가 생겼다. 빛의 세상으로 넘어오지 않았으면 나는 죽었을 것이다.” 연탄가스에 중독되어 죽을 고비를 넘긴 한집안 어른의 경험담이다. 믿거나 말거나, 그는 임사 체험을 한 것이다.
임사(근사)체험 연구가 활발해지고 있다. 한국죽음학회 이사를 맡고 있는 정현채 교수(서울대 의대 내과)는 임사체험 사례가 늘어나는 까닭을 ‘죽을 뻔’한 사람을 살리는 의학 발달 덕분으로 풀이한다. ‘죽을 뻔’한 사람을 살리는 응급처치는 이제 전문 의료진만의 몫은 아니다. 심폐소생술과 ‘자동제세동기’(AED) 이용은 일반인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공호흡법으로 널리 알려진 심폐소생술은 심장과 폐(심폐)를 살려내는(소생) 것이라는 것을 명칭으로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자동제세동기’는 무엇에 쓰는 물건인가.
‘세동’은 ‘잔떨림’(細動), ‘제세동’(除-)은 ‘잔떨림 제거’이니(표준국어대사전) ‘제세동기’는 ‘잔떨림제거장치’가 된다. 이름만으로는 쓸모를 헤아리기 어려운 이름이다. 엊그제 <한겨레>는 이 장비를 “자동심장충격기(심장제세동기)가 배치된…심장충격기 작동법을 음성과 영상으로 안내하며…”처럼 ‘(자동)심장충격기’로 다루었다. ‘부정맥을 바로잡기 위해 심장에 강한 전류를 순간적으로 보내는 장비’이니 ‘잔떨림제거장치’(제세동기)보다 직관적인 이름이다. 말 다듬기의 참뜻은 언중이 알기 쉽게 하는 쪽으로 순화하는 것이다.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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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우리나라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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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 - 김영승
부부간에 키스가 있어야 하는데, 우리 부부는 키스가 없다. 옛날엔 많은 여자들과 키스를 해서 그런지, 下體만 집어넣고 그저 고진감래 겠거니 생각한다.
결혼 지 어언 8년차, 나는 단 한 번도 아내와 키스를 해본 적이 없다. 무슨 놈의 주둥아리가 그저 먹고 중얼중얼 기도나 하는 주둥아린 도대체가 '철毋流聲'*이다.
"아, 키스나 성교합니다으∼" 트림하듯, 옛날 채권 장수마냥, 그렇게 가방 하나 들고 걸어다닐까 굴뚝청소하는 사람처럼, 아, 뚫어~ '징'하나 들고 이 골목 저 골목 역시 옛날 아이스 께끼 장수처럼 꽝꽝 얼어붙은 겨울밤
메밀묵 장수처럼 찹쌀떡 장수처럼
"아저씨, 성교 한 번 해주세요" 드르륵 드르륵 창문을 열고 여자들은 말하리라
"2人分요…" 돈을 건네며 발을 동동 구르리라
그런데… 그런데 그까짓 키스 안 하고 살면 안 되냐 내가 언제부터 키스를 하고 살았다고 무슨 키스키스, 이 늦은 밤, 아니 새벽 주접을 떨고 있느냐
그렇다면 cunninlingus?
釋某 스님은 守口庵이라는 암자에 기거하고 있었는데 가서 보니까 어쩌면 내 房도 守口庵
입을 벌리면 獅子吼같은 天地間의 형형색색 萬뢰가 短調의 和音을 이룬다.
버스를 기다리는데 무슨 화장품 가방 같은 네모난 가방을 든 독일군 여장교 같은 복장의 글래머가 음험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입을 벌리고 싶어서일까
하긴…
똥개들이 길거리에서 흘레나 붙을 일이지 서로 키스를 하고 자빠졌다면 그건 또 얼마나 징그러운 일인가
雜種 개 한 쌍이 거꾸로 붙어 이리 갔다가 저리 갔다가 결국 길을 건너간다
아주 '莊嚴'해 보였다.
* '철毋流聲' 물을 빨아 마실 때에 목구멍을 지나가는 소리를 내지 아니함 - 박지원 <양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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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명상/지혜/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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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위한 닭고기 스프 2 - 잭 캔필드&마크 빅터 한센
1. 꿈을 이루기 위한 스프
멋진 여행
가장 중요한 질문은 당신 자신이 스스로의 모험에 대해 진정으로 긍정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 조셉 캠벨
삶이 하나의 여행이며 그 여행엔 종착역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들은 너 무 늙었다고 해서 결코 그 여행을 멈추지 않는다. 플로렌스 브룩스는 64세에 평화 봉사단의 일원이 되었다. 글래디스 클래피스는 박사학위를 따기 위해 82세임에도 불구하고 아이오와 대 학의 기숙사에 들어갔다. 또한 에드 스티트는 87세에 뉴저지에 있는 교양 대학 에서 학사과정을 밟았다. 에드는 그것이 노인병을 예방해 주고, 두뇌에 활력을 준다고 했다. 그 중에서도 워싱턴 주의 타코마에 사는 월트 존스만큼 여러 해 동안 내게 깊은 인상을 준 인물도 아마 없을 것이다. 월트 존스는 세 번째 아내와 결혼해서 52년 동안 함께 살았다. 아내가 세상을 떠나자 누군가 월트 존스에게, 그토록 오랫동안 함께 지낸 친 구를 잃어서 얼마나 가슴 아프냐고 물었다. 그러자 월트는 대답했다. "물론 가슴 아프고말고. 하지만 그것 역시 최선의 결과가 아니겠소?" 질문한 사람이 의아해서 물었다. "왜 그렇게 말씀하시죠?" 월트가 설명했다. "난 이제 와서 내 아내의 훌륭한 성격에 대해 험담을 하거나 부정적인 얘기 를 하려는 건 결코 아니오. 하지만 아내는 지난 10년동안 날 집 안에만 갇혀 지 내게 했소." 무슨 사연인가를 묻자 월터가 말했다. "그 여자는 아무것도 하려고 하지 않았소. 언제나 집 안에 틀어박혀 꼼짝도 하지 않으려고 했단 말이오. 10년 전에 내가 94세가 되었을 때, 난 아내에게 불 평을 했소. 우리가 보는 것이라곤 맨날 아름다운 북태평양 해변뿐이라고. 그랬더니 아내는 무슨 의도로 그런 말을 하는 거냐고 물었소. 난 솔직히 말했 지. 홈카(주방시설과 침대가 갖추어진 레저용 차)를 한 대 사서 미국 48개 주를 돌아 다녔으면 하는 생각이라고. 그러면서 난, 당신은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소. 아내가 한마디로 잘라서 말하더군. "당신 정신 나갔어요, 월트?" 내가 물었지. "왜 그런 말을 하지?" 아내는 말했소. "그러다가 강도라도 만나면 어쩔려구요? 우린 장의사도 없는 곳에서 죽고 말 거예요." 아내는 또 "운전은 누가 하구요?" 하고 묻더군. 그래서 내가 말했지. "물론 내가 하지, 램비." 그랬더니 아내가 뭐라고 소리쳤는지 아시오? "당신은 우리 두 사람 다 몰살시킬 작정이군요." 자, 이제 왜 내가 집 안에만 갇혀 지낼 수 밖에 없었는지 이해하겠소?" 월트 존스는 이어서 말했다. "나는 무대에서 퇴장을 하기 전에 시간의 모래밭 위에 발자국을 남기고 싶 소. 엉덩이를 깔고 앉아만 있으면 시간의 모래밭 위에 발자국을 남길 수 있지 않겠소? 당신이 모래밭 위에 엉덩이 자국만을 남길 생각이 아니라면 말이오." 누군가 월트 존스에게 또 물었다. "이제 그런 아내가 세상을 떠났으니, 당신은 앞으로 뭘 할 계획입니까?" 월트가 말했다. "내가 무얼 할 계획이냐구? 난 그 늙은 소녀를 땅 속에 묻은 뒤에 곧바로 홈 카를 한 대 샀소. 올해가 1976년이니까 미국 독립전쟁 2백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이제부터 48개주를 여행할 계획이오." 월트 존스는 그 해에 골동품과 기념품 판매를 하며 미국 43개 주를 여행했다. 여행도중에 길에서 차를 태워 달라는 사람은 없었느냐고 묻자 그는 말했다. "절대로 태워 주지 않았지. 많은 친구들이 겨우 몇푼 뜯어 내자고 곤봉으로 뒷머리를 후려치거든. 또 사고라도 나면 치료비를 물어 내라고 소송을 걸어 괴 롭히거든." 홈카를 사기 몇 달 전, 그러니까 아내를 땅에 묻고 나서 여섯달 쯤 되었을 때, 하루는 월트 존스가 매력적으로 생긴 62세의 여성을 옆자리에 태우고 차를 몰고 지나가는 것이 사람들의 눈에 띄었다. 누군가 그에게 말했다. "월트씨?" "왜 그러쇼?" "옆자리에 태우고 가던 그 영성은 누굽니까? 당신의 새 여자 친구인가요?" 그 말에 월트 존스가 대답했다. "그렇소. 그런 여자요." "그런 여자라니요?" "새로 생긴 내 여자 친구란 말이오." "여자 친구라구요? 월트, 당신은 세 번이나 결혼을 했고, 이제 나이가 104세 나 되었어요. 그 여자는 당신보다 마흔 살이나 젊어요." 월트 존스가 말했다. "난 최근에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소. 홈카에서 남자 혼자 생활할 수 없다는 것이오." "물론 그 점은 충분히 이해해요. 월트. 지금까지 오랜 세월동안 곁에 동반자 가 있어 왔으니 누군가 이야기라도 나눌 상대가 그립겠지요." 그러자 월트 존스는 주저없이 말했다. "난 거시기도 그립단 말이오." "거시기라니요? 남녀간의 그것에 대해 말하는 건가요?" 월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거요." "월트." "왜 그러쇼?" "인생을 살다 보면 어느 시점에선 그것이 자연적으로 떨어져 나가게 되는 거 아닐까요?" 월트 존스는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되물었다. "섹스에 대해서 말하는 거요?" "그래요." 월트는 다시 물었다. "그건 왜 그렇소?" 상대방이 친절하게 설명했다. "그런 종류의 육체적인 기운 소모는 나이 든 사람의 건강에 치명적일 수 있 으니까요." 월트 존스는 그 말에 대해 잠시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그 여자가 죽으면 죽으라지 뭐. 난들 어쩌겠소?" 1978년에 두 자리 숫자의 인플레가 미국 전역을 강타했다. 월트는 콘도미니엄 개발에 거액을 투자하기 시작했다. 안전한 은행에 넣어 두었던 돈을 꺼내 콘도 개발에 투자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묻는 질문에 월트는 대답했다. "당신은 듣지 못했소? 지금은 인플레 시기예요. 이럴 때는 부동산에 돈을 투 자해야만 이득을 얻을 수 있고, 몇 년 지나 정말로 필요할 때 꺼내 쓸 수 있는 것이오." 1980년에 그는 워싱턴 주의 피어스 카운티에 있는 많은 부동산을 팔았다. 많은 이들은 월트가 드디어 죽을 때가 가까워 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월트는 친구 들을 불러 자기가 죽을 때가 된 것이 아니라 자금이 필요해 부동산을 되판 것이 라고 설명했다. "난 어떤 사업에 투자하기로 했는데 30년 계약을 맺었소. 앞으로 나는 138세가 될 때까지 매달 4천달러의 배당금을 받게 될 것이오." 얼트 존스는 110세의 생일에 텔레비젼의 자니 카슨 쇼에 출연했다. 월트는 흰 수염에 검은 모자를 쓴 멋진 차림으로 무대 위로 걸어나왔다. 마치 얼마 전에 작고한 육군 대령 샌더스의 모습을 연상시켰다. 자니 카슨이 말했다. "이렇게 모시게 되어서 기쁨니다. 월트 씨." 월트 존스가 대답했다. "110세가 되면 어디에 있으나 기쁘지요, 자니 씨." 자니 카슨이 놀라서 되물었다. "110세라구료?" "그렇소. 백하고도 열 살이오." "1백10세라구요?" 그러자 월트 존스가 말했다. "아니 왜 그러시오, 자니 씨? 그 나이에 벌써 귀가 먹은 거요? 그게 내 나이 란 말이오. 그게 뭐 놀랄 일이라고 그러시오?" 자니 카슨이 말했다. "놀랄 일은 당시 나이가 내 나이의 두 배에서 꼭 사흘이 모자란다는 것입니 다." 그것은 정말 놀랄 만한 일이다. 백 살에다 열 살을 더 살았는데 아직도 푸른 젊음을 유지하고 있고, 인간으로서 성장해 가고 있다면 말이다. 월트 존스는 시 청자들에게 인사를 하고 나서 자니 카슨을 향해 말했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자기의 생일을 잊어먹는 경향이 있소. 또한 해 마다 달력을 넘기면서 한숨 짓곤 하지요. 달력의 날짜 때문에 절망에 빠지는 사 람들을 보시오. 그들은 이렇게 말하잖소. 오 하느님, 내가 벌써 서른 살이라니요! 청춘이 다 지나갔으니 난 정말 슬퍼요. 오 세상에, 내가 벌써 마흔 살이라니! 직 장에선 벌써부터 날 밀어 내려고 관을 주문했어. 아, 난 이제 쉰 살이 되었구나. 반 세기를 살았어. 사람들이 벌써 내게 거미줄 친 조화를 보내려고 하고 있어." 월트 존스는 자니 카슨에게 말했다. "자니 씨, 누가 당신더러 65세가 되면 죽는다고 말합니까? 75세가 넘었는데 도 젊었을 때보다 훨씬 즐겁게 사는 친구들을 난 많이 알고 있소. 난 몇 해 전 콘도 개발에 약간 투자를 한 덕분에 105세가 되었을 때 젊었던 시절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벌었소. 내가 절망에 대한 정의를 말해도 되겠소, 자니 씨?" "어서 말 해보세요, 월트 씨." 월트 존스가 말했다. "자기의 생일을 잊어버리는 것이오." 월트 존스의 이 이야기가 우리 삶에 많은 성장과 깨우침을 주리라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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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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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인 유전자 - 리처드 도킨스
제9장 - 암수의 다툼 (1/3)
배우자간의 대립
유전자의 50%를 서로 공유하고 있는 부모 자식 사이에도 이해의 대립이 있는데 하물며 서로 혈연 관계가 없는 배우자 사이의 다툼은 얼마나 격렬할 것인가? 배우자가 공유하고 있는 것이라면 같은 자식에 대해 서로 똑같이 50%의 유전자를 투자하고 있다는 것뿐이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그들의 자식들에게 투자한 50%의 유전자의 복리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 서로 협력하여 자녀를 양육하는 것은 양자 모두에게 어느정도 유리한 셈이 된다. 그러나 만일 배우자의 한쪽이 각각의 자식에 대해 공평한 할당량 이하로 귀중한 자원의 투자를 끝낼 수 있다고 하면 그 배우자에게는 유리하다. 왜냐하면 이로 인해 다른 배우자를 얻어 새로운 새끼를 낳는 쪽으로 투자가 증가하므로 자기 유전자를 보다 많은 자손에게 전달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배우자는 상대에게 더 많은 투자를 강요하기 위해 서로 착취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상적으로 말하면 개체라는 것은 가능한 한 많은 이성과 교미하고 자식 양육은 모두 상대에게 떠맡겨지기를 '바라고'있다는 것이다(이것은 생리적 기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럴 가능성이 확실히 있음직하다는 말이다). 앞으로 보게 되듯이 동물 중에는 주로 수컷이 그와 같은 습성을 나타낸다. 그러나 그 밖의 동물에서는 암수가 동등하게 양육의 부담을 진다. 성적인 협력을 상호 불신과 상호착취의 관계로서 파악하고 그 관계를 특히 강조한 사람은 트라이버스였다. 동물 행동학자에게 있어 이러한 관점은 비교적 새로운 것이다. 우리 동물 행동학자는 성행위, 교미 그리고 이에 선행하는 구애 행동 등은 상호 이익 또는 종의 이익을 위해 수행되는 본질적으로 협동적인 모험이라고 생각하는 데 습관화되었던 것이다.
암수의 근본적인 성질
첫 번째 기본 윈칙으로 돌아와 암수의 근본적인 성질을 생각해 보자. 3장에서 우리는 기본적인 비대칭성을 강조하지 않은 채로 성을 논했다. 우리는 어떤 동물이 수컷이라고 불리고 어떤 동물이 암컷이라고 불리는 것을 단순히 받아들이고 이들 말이 본래 무슨 의미를 갖는지는 불문에 부치고 있다. 그러면 수컷의 본질이란 대체 무엇일까? 근본적으로 암컷을 정의하는 성질이란 무엇일까? 포유류인 우리는 페니스의 존재, 임신, 특수한 젖샘에 의한 수유, 염색체의 모양 등의 여러 특성의 총계에 의해 두 성이 정의되는 것으로 본다. 어떤 개체의 성을 판정하기 위한 이들의 기준은 포유류에 관해서는 어느 것이나 다 좋다. 그러나 위한 이들의 기준은 포유류에 관해서는 어느 것이나 다 좋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동식물을 대상으로 하면 상기의 기준은 옷을 입는 경향을 가지고 남녀 판정의 기준을 삼는 것과 같이 더 이상은 믿을 수 없다. 예를 들면 개구리 같은 것은 암수 어느쪽도 페니스가 없다. 그렇다면 암수란 말에는 일반적인 의미가 없다는 것일까? 결국에 가서 그것들은 단순한 부호에 불과하고 말 것인가? 만일 개구리를 기재할 경우 그것들이 필요없다면 이들의 말을 마음대로 표기해도 좋은지. 만일 바란다면 개구리에 대해 '성1'과 '성2'라는 등의 명칭을 제멋대로 붙여서 성을 둘로 나눌 수 있다. 그러나 동식물을 통하여 수컷을 수컷, 암컷을 암컷이라고 부르는 데 사용할 수 있는 기본적인 특징이 하나 있다. 수컷의 성세포, 즉 배우자(gamete)는 암컷의 배우자에 비해 매우 작고 그 수가 많다는 것이 그 특징이다. 이 점은 동식물 어느 것을 취급할 때도 해당된다. 대형의 성세포를 가지고 있는 개체의 한 그룹을 편리하게 암컷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다른 그룹은 편리하게 수컷이라고 부르기로 하는데, 이쪽은 소형의 성세포를 가지고 있다. 양자의 차이는 파충류와 조류에서 특히 뚜렷하다. 이들 동물에게는 발육하는 새끼에게 몇 주 동안에 걸쳐 충분한 먹이를 공급할 만큼의 영양분이 적당한 크기의 개개의 난세포에 갖추어져 있다. 알이 현미경적 크기밖에 안 되는 사람에 있어서도 난세포는 정자보다 훨씬 크다. 나중에 밝혀질 것이나 다른 모든 성차는 이 하나의 기본적 차이에서 파생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동형 배우자의 접합
예컨대 곰팡이에서 발견되는 것처럼 어떤 윈시적인 생물에서는 다른 종류의 유성 생식을 볼 수 있으나 암수는 존재하지 않는다. 동형 배우자 접합(isogamy)으로 알려진 이 시스템에서는 개체를 암수로 구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어느 개체도 다른 임의의 개체와 교배된다. 정자와 난자라는 두 종류의 배우자는 볼 수 없고, 성세포는 모두 같으며, 동형 배우자라고 불린다. 감수 분열에 의해 만들어진 동형 배우자의 융합에 의해 새로운 개체가 형성된다. A,B,C라는 세 개의 동형 배우자가 있으며 A는 B, C중 어느 것 하고도, 또 B는 A, 중 어느 것과도 융합할 수 있다. 정상적인 유성 시스템에서는 이 같은 식을 상상할 수도 없다. A가 정자이고 이것이 B 또는 C와 융합이 가능하면 B와 C는 난자일 것이고 B와 C의 융합은 불가능하다. 동형 배우자가 융합할 경우, 새로운 개체에 기여하는 두 배우자의 유전자가 동수인 것은 물론 두 배우자가 기여하는 음식물 비축량도 같다. 정자와 난자의 경우도 유전자의 기여수는 같다. 그러나 음식물 비축에 대해서는 난자의 기여도가 정자를 훨씬 능가한다. 남자와 여자의 경우 실제로 정자의 기여는 전혀 없다. 정자의 관심은 유전자를 가급적 빨리 난자로 운반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따라서 수컷이 자식에 대해 투자한 자원량은 임신 시점에서 공평한 분담량, 즉 50%보다 훨씬 적다. 개개의 정자는 아주 작아서 수컷은 매일 막대한 수의 정자를 만들 수 있다. 이것은 따로따로 암컷을 상대할 경우 수컷이 단시간 내에 많은 수의 새끼를 만드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것도 개개의 배가 수정할 때 어미로부터 충분한 먹이를 받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게 된다. 배에 대한 영양분 공급의 필요에 의해 암컷이 만들 수 있는 아이의 수는 일정한 한도가 있는 반면에 수컷이 만들 수 있는 아이의 수에는 실질적인 제한이 없다. 수컷이 암컷을 상대로 한 착취의 출발점은 여기에 있다.
성의 전략
파커(G.A. Parker)등은 동형 접합의 상태를 근원으로 하여 이로부터 상기와 같은 비대칭성이 어떻게 진화할 수 있었는가를 설명하고 있다. 모든 성세포가 쉽게 융합할 수 있고 또한 거의 같은 크기를 갖고 있던 기대에서도 그 중에는 다른 세포보다 좀더 큰 성세포가 있었음에 틀림없다. 큰 동형 배우자는 평균 크기가 다른 배우자에 비해 어떤 점에서 유리했다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이런 배는 출발에서부터 남보다 다량의 먹이 공급을 얻을 수 있어서 유리한 출발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보다 큰 배우자를 낳는 방향으로 진화가 이루어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거기에는 하나의 함정이 있다. 엄밀한 의미에서 필요 이상으로 큰 동형 배우자가 진화하면 그것을 이기적으로 이용하는 길이 열리게 됐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평균 이하의 작은 배우자를 만드는 개체는, 만일 그들의 작은 배우자를 확실히 큰 배우자와 융합시킬 수 있다면 유리한 성과를 올릴 수 있었을 것이다. 작은 배우자의 운동성을 길러 적극적으로 큰 배우자를 탐색할 수 있게 하면 양자의 융합을 확실하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작아서 활발히 운동하는 배우자를 만드는 개체의 유리한 점은 그에 의해 많은 배우자의 생산을 가능케하고, 따라서 새끼의 수를 증가시키는 데 있다. 자연 선택은 대형의 배우자를 융합 상대로 활발하게 찾아다니는 소형의 배우자에게 유리하게 작용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동떨어진 성의 '전략'의 진화를 상상할 수 있다. 우선 대량 투자 전략이나 또는 '정직한' 전략이 있었다. 이 전략은 투자량이 적고 착취적인 전략의 진화에 스스로 길을 열게 했다. 일단 두 전략의 분리가 시작되면 이 경향은 일방적으로 추진됐을 것이다. 중간 크기의 배우자를 만드는 전략은 큰 배우자 또는 작은 배우자를 만드는 더 극단적인 전략에 끼어들지 못하기 때문에 선택상 불리하게 됐다. 착취적인 전략의 배우자는 점점 소형으로 되어 민첩한 운동성을 가진 배우자로 진화되어 갔다. 정직한 전략이 만들어 내는 배우자는 착취적인 배우자의 투자량이 점점 축소되어 가는 것을 메우기 위해서 계속 대형화하는 방향으로 진화했고, 착취인 배우자 쪽은 항상 적극적으로 대형 배우자를 추구함으로써 후자는 결국 운동성을 잃고 말았다. 개개의 정직한 배우자는 다른 정직한 배우자와의 융합을 '좋아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착취적인 배우자를 배척하려는 선택압이 그 장해를 극복하려는 착취인 배우자에 대한 선택압보다 더 약했던 것이다. 즉, 착취적인 배우자는 그 수가 많았기 때문에 이 진화의 싸움에서 이겨 살아 남았다. 그래서 정직한 배우자는 난자로 되고 착취적인 배우자는 정자로 되었다.
이로 볼 때 수컷은 가치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또 '종의 이익'이라는 단순한 입장을 취하면 수컷은 암컷보다 수가 적어질 것으로 예상하기 쉽다. 이론적으로는 한 마리의 수컷은 100마리 정도의 하렘을 상대할 수 있을 만큼 정자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동물 집단 중에서 암컷의 수는 수컷의 100배정도 있어도 가당하다는 것이 된다. 다른 것도에서 이것을 표현하면 종에 따라 수컷은 더욱 '소모적'이고 암컷은 더욱 '가치 있는' 존재이다. 종 전체라는 관점에서 보면 상기의 견해는 물론 완전히 타당하다. 여기서 조금 극단적인 실례를 들어 보기로 하자. 바다코끼리에 관한 연구에 의하면 관찰된 모든 교미 예의 88%는 경우 4%의 수컷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한다. 이 예뿐만 아니라 다른 예에 있어서도 아마 전생애 동안 교미의 기회가 없었을 독신 수컷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이들 독신 수컷도 다른 점에서는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고 개체군의 먹이 자원을 먹을 때의 왕성함은 그들도 다른 놈들에게 결코 지지 않는다. '종의 이익'이란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놀랄 만한 낭비이다. 독신 수컷들은 사회의 기생자로 간주되기 쉽다. 그러나 비록 수컷 중에서 실제로 번식에 참여하는 놈이 전체의 극히 일부에 불과할 때도 암수의 수는 같아지는 경향이 있다. 여기에도 그룹 선택 이론이 궁지에 몰리게 되는 또 하나의 예가 생긴다. 그러나 유전자의 이기성 이론에 따르면 이것도 무난히 해결된다. 상기와 같은 경우에도 암수의 수가 같아진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설명한 사람은 피셔였다.
부모의 성 선택 전략
암수가 각각 얼마나 많이 태어나느냐 하는 문제는 부모의 전략이 가진 문제의 특수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자기 유전자의 생존을 최대화하려고 하는 부모에게 최적의 아이 수는 얼마인가라는 문제는 앞에서 이미 말했는데 그것과 똑같이 우리는 최적의 성비에 대해서도 논할 수 있다. 귀중한 유전자를 아들에게 맡기는 것이 이익인가 아니면 딸에게 맡기는 것이 이익인가? 한 어미가 자신이 갖고 있는 자원을 몽땅 아들에게 투자해 버리고 딸에게 나누어 줄 것이 없다고 가정했을 때와 경쟁자의 어미가 모든 것을 땅에게 투자했을 때를 비교하면 과연 누가 미래의 유전자 풀에 더 큰 공헌을 할 것인가? 아들에 대한 투자를 중히 여기는 유전자와 딸에 대한 투자를 중히 여기는 유전자 중 어느쪽이 증가 할 것인가? 피셔의 결론에 의하면 정상 조건하에서의 최적 성비는 50;50이 된다고 한다. 어째서 이와 같이 되는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성결정의 메커니즘을 조금은 알 필요가 있다. 포유류의 경우 성은 유전적으로 다음과 같이 결정된다. 모든 난자는 암수 어느쪽으로도 발달할 수 있다. 성을 결정하는 염색체를 주는 쪽은 정자쪽이다. 수컷이 만드는 정자의 반은 딸을 만드는 X정자이고 나머지 반은 아들을 만드는 Y정자이다. 어떤 정자도 같은 외관을 하고 있다. 양자는 하나의 염색체를 달리하고 있을 뿐이다. 딸만 만들게 하려는 유전자는 수컷이 X정자만을 만들도록 노력함으로써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어미에게 딸만을 낳게 하려는 유전자는 어미가 Y정자를 선택적으로 죽이는 물질을 분비하거나 아들이 될 태아를 유산하도록 노력함으로로써 그 목적을 달성할 것이다. 우리의 과제는 진화적으로 안정된 전략(ESS)에 상당하는 것을 성비에 관한 전략에서 발견하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전략이란 표현은 공격성을 다루었던 장에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단순한 비유로서 생각하기 바란다. 개체가 문자대로 아이의 성별을 선택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위에서 말한 것처럼 어쨌든 한쪽 성별의 아이를 만들도록 작용하는 유전자를 상정하는 것은 가능하다. 지금 가령 한쪽으로 기운 성비의 출현을 재촉하는 유전자가 존재한다고 하자. 이 같은 유전 유전자가 같은 성비의 출현을 재촉하는 대립 유전자보다 유전자 풀 속에서 다수가 될 가능성이 있는 것일까?
진자 운동
위에서 언급한 바다코끼리에게 거의 딸만을 만들도록 하는 돌연변이 유전자가 생겼다고 가정해 보자. 개체군 속에 수컷이 모자라는 일은 없기 때문에 암컷들은 무난히 배우자를 골라낼 수 있다. 그래서 암컷의 생산을 촉구하는 문제의 유전자는 증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에 따라 집단의 성비는 암컷이 많아지는 경향으로 될 것이다. 먼저 말한 대로 가령 암컷이 매우 많아진다고 해도 그것이 필요로 하는 정자는 극히 소수의 수컷으로도 넉넉히 감당하므로 종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보는 한은 상기의 변화는 좋은 일일 것이다. 그러므로 단순히 생각하면 암컷의 생산을 촉구하는 유전자는 계속 증가해서 결국은 성비가 매우 편중되어 조금 남은 수컷이 전력으로 노력하여 암컷과 교미해 체력이 다 소모되고 마는 사태가 생긴다고 예측할 법도 하다. 그러나 여기서 조금 견해를 바꿔서 수컷을 만드는 극히 소수의 바다코끼리가 막대한 유전적 이익을 향수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 주기 바란다. 수컷에게 투자하는 개체는 수백 마리에 달하는 바다코끼리의 조부모가 될 가능성을 충분히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암컷을 전문으로 낳는 개체는 아마도 확실히 몇 마리의 손자를 확보하게 된다. 그러나 수컷 만들기를 전문으로 하는 개체가 누릴 수 있는 절대적인 유전적 가능성에 비하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수컷을 낳게 하는 유전자는 점차로 증가하는 경향을 보이며 진자는 반대 방향으로 흔들리게 된다. 이를 진자의 운동으로 설명한 것은 설명을 간단히 하기 위해서이다. 실제로 암컷의 수가 수컷을 압도할 만큼 진자가 크게 흔들릴 수는 없다. 성비가 편중됨과 동시에 수컷을 만들려고 하는 압력이 재차 그것을 되돌려 놓기 때문이다. 암수를 동수로 낳는 전략은 진화적으로 안정된 전략이다. 이 전략에서 벗어나는 유전자는 손해를 입게 되기 때문이다.
제한적인 성 유전자 효과
지금까지 나는 아들과 딸의 수로 이야기해 왔다. 이것은 이야기를 단순하게 하기 위해서인데 좀더 엄밀한 논의를 하려면 부모에 의한 보호 투자의 양이라는 척도로 다루어져야 한다. 이 양에는 먹이와 그 밖의 부모가 자식에게 줄 수 있는 모든 자원이 포함되는데, 그 계량법은 앞 장에서 논한 방 있다. 결론을 말하면 부모는 아들과 딸에게 동량의 '투자'를 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수적으로도 동수의 아들과 딸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들과 딸에 대한 투자 자원량이 불균등한 경우에는 편중된 성비도 진화적으로 안정될 수 있다. 바다코끼리의 예를 들면 암컷의 3배 정도로 하고 그 대신 각각의 수컷에게는 암컷의 3배 정도의 먹이와 그 밖의 자원을 투자하여 그를 막강한 수컷으로 키우는 방책이 안정된 전략이라고 할 것이다. 먹이를 많이 주어서 수컷을 크고 강하게 키움으로써 어미는 자기의 새끼가 하렘이라는 더없는 상품을 획득할 수 있는 기회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특수한 예이다. 수컷에 대한 투자량은 각각의 암컷에 대한 투자량과 거의 동일한 것이 보통이고 따라서 수로 본 성비도 1:1이다. 그러므로 평균적 유전자는 여러 세대를 경화하는 사이에 경과 시간의 약 반을 수컷의 몸, 나머지 반을 암컷의 몸 속에서 지낸 셈이 된다. 유전자의 효과 중에는 한쪽의 성에서만 발현되는 것이 있는데, 이를 '제한적인 성 유전자 효과'라고 한다. 페니스의 길이를 지배하는 유전자라는 것이 있다면 이것은 수컷에게서만이 아닌 암컷의 몸에도 역시 있으며, 거기서는 전혀 다른 효과를 나타내는지도 모른다. 긴 페니스를 가진 성질이 어미로부터 유전되어도 이상할 것이 없다.
생물체-이기적인 유전자들에 의해 프로그램된 기계
암수의 어떤 몸 속에 들어 있든 간에 유전자는 거기서 주어진 기회를 최대한으로 활용할 것이다. 어떠한 기회가 주어지는지는 암수의 어떤 몸에 들어 있는지의 여하에 따라 어느 정도 달라질 것이다. 편리한 근사법으로 다시 한 번 개개의 생물체는 이기적인 기계이고 그 모든 유전자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가정하자. 이기적 기계로서 그 종의 최선책은 자기가 수컷인가 암컷인가에 따라 아주 달라질 수 있다. 간결히 하기 위해 개체에 의식적인 목표가 있는 것같이 상정하는 방법을 여기서도 사용하기로 하자. 전과 같이 이것은 그저 비유에 지나지 않음을 분명히 염두에 두기 바란다. 실제로 생물체는 이기적인 유전자들에 의해 맹목적으로 프로그램된 기계이다. 이 장의 처음의 화제였던 짝짓는 쌍의 문제로 되돌아가자. 암수 어느 것이나 이기적 기계로서 동수의 수컷과 암컷을 '바랄' 것이다. 이점가지는 양자의 이해가 일치한다. 그들에게 불일치가 생기는 것은 기르는 수고를 누가 하느냐는 점이다. 어느 개체이든지 간에 생존하는 자식의 수를 가능한 한 늘리려고 한다. 어떤 자식에 대한 투자량을 줄일 수만 있다면 그만큼 어미가 가질 수 있는 자식의 수는 증가한다. 이 바람직한 사태를 만들어 내는 데 이용되는 명백한 수단은 배우자가 어떤 자식에게도 그 공평한 분담량 이상의 투자를 하도록 노력하여 자기는 그 사이에 다른 파트너와 새로운 자식을 얻는다는 수법이다. 이 전략은 암수 어느쪽이든 바람직한 일이다. 암컷이 이것을 실현하는 것은 수컷에 비해 매우 어렵다. 암컷은 대형이고 영양은 많이 가진 난자의 모양으로 처음부터 수컷보다 많은 투자를 하고 있고, 이 때문에 수태시에 있어서 이미 어미는 어느 자식에 대해서도 아비보다 더 깊이 '전념하고'있다. 이 자식들이 죽을 경우 어미는 아비보다 많은 것을 잃는 입장에 있다. 또 죽은 자식 대신에 '장래'에 새로운 자식을 하나 키운다 해도 잃은 자시고가 같은 단계까지 그것을 키우기 위해 어미가 투자해야 할 양은 아비의 투자량보다 많을 것이다. 어미가 자식을 아비에게 맡기고 다른 수컷을 찾아 도망치는 전술을 취하면 아비편에서도 자식을 버린다는 식으로 보복한다. 더욱이 자식을 버릴 경우 수컷이 입는 손실은 암컷에 비해 적다. 그러므로 적어도 자식이 아직 어린 시기에 배우자의 유기가 일어날 경우, 아비가 어미를 버리는 것은 보통이지만 어미가 아비를 버리는 것은 드물다. 이와 같이 암컷은 처음뿐만이 아닌 자식의 생장의 전기간에 걸쳐서 수컷 이상의 투자를 한다고 예상된다. 예컨대 포유류의 경우 자기 체내에서 태아를 키우는 것도 암컷이고, 태어난 자식에게 젖을 주는 것도 암컷이며, 자식의 양육과 보호의 부담을 지는 것도 암컷이다. 암컷이란 착취당하는 성이고 난자가 정자보다 크다는 사실이 착취를 낳게 한 기본적인 진화적 근거이다.
어미에 의한 독자적인 자식 양육
물론 아비가 근면하고 충실하게 자식을 돌봐 주는 동물이 많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동물의 경우에도 자식에 대한 투자를 조금 덜하고 다른 암컷과 다시 여분의 자식을 만들게 하는 진화적 압력이 어느 정도 수컷에게 작용하고 있는 것은 정상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즉, 상대의 대립 유전자의 지시보다 조금이라도 빨리 배우자를 버리고 다른 암컷을 쫓아붙도록 수컷을 유도하는 유전자 쪽이 유전자 풀 속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 진화적 압력이 실제로 어느 정도의 강도를 나타내는가는 종에 따라 크게 다르다. 뉴기니아에 사는 풍조처럼 암컷이 수컷의 원조를 안 받고 단독으로 새끼를 양육하는 예는 흔히 있다. 한편 세발갈매기와 같이 충실한 일부일처의 짝을 이루어 암수가 협력하여 새끼 기르기에 임하는 모범적인 예도 있다. 후자와 같은 경우에는 무언가 진화적인 반대 압력이 작용해 왔다고 생각해야겠다. 즉, 배우자의 노동을 착취하는 전략에는 이익과 동시에 비해 더 크게 작용한다. 어쨋든 처자를 버리는 것이 수컷으로서 유리하게 되는 것은 암컷이 단독으로 자식 양육에 성공할 가능성이 어느 정도 존재할 때에 한하는 것이다.
버림받은 암컷의 행동
트라이버스는 배우자에게 버림받은 암컷이 그 후 어떤 행동을 취할 수 있는가를 고찰하고 있다. 어미로서 가장 유리한 수단은 다른 수컷을 속여서 그에게 자기의 자식을 친자라고 '여기도록'하여 양육하도록 시키는 것이다. 자식이 아직 뱃속에 있을 때라면 이 방법도 그리 어렵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물론 이 자식은 어미의 유전자의 반을 계승하고 있으나 속기 쉬운 양부의 유전자는 일절 받지 않았다. 자연 선택에 있어서 수컷이 이처럼 쉽게 속는다면 매우 불리하다. 실제로 자연 선택은 새로운 배우자를 취한 직후, 의붓자식일 가능성이 있는 자식은 모두 죽여 버리는 방법을 쓰는 수컷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소위 'Bruce 효과'는 이것에 의해 설명될 가능성이 큰 것이다. 이 효과는 쥐에서 알려진 것으로 수컷이 분비하는 어떤 화학 물질을 임신 중의 암컷이 맡으면 유산을 일으키는 수가 있다는 형상이다. 암컷이 유산을 하는 경우는 이전의 배우자의 것과는 틀린 냄새를 맡았을 때에 한하고 있다. 수컷의 쥐는 이 방법으로 의붓자식일 가능성이 있는 태아를 죽이고 새로운 암컷이 자신의 구애에 응해 주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아울러 아드리는 이 Bruce 효과를 개체군 조절의 메커니즘의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다. 사자에서도 유사한 예가 알려져 있다. 무리에 수사자가 새로이 끼게 되면 그는 거기에 있는 새끼를 모두 죽여 버리는 수가 있다고 한다. 아마도 그 새끼들이 그 자신의 새끼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수컷은 의붓자식을 죽이지 않고도 같은 효과를 달성할 수가 있다. 암컷과의 교미에 앞서 수컷은 암컷에게 긴 구애 기간을 강요할 수 있다. 이 기간 동안 수컷은 다른 수컷이 암컷에게 접근함을 금하고, 또한 암컷의 도망을 저지한다. 이런 방법으로 수컷을 암컷이 뱃속에 의붓자식을 배고 있는지의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만일 의붓자식을 수태했다면 암컷을 버리면 된다. 교미에 앞서서 암컷이 긴 '약혼 기간'을 요구하고 싶어하는 이유를 후에 생각할 것이나 수컷도 또한 그러기를 요구하는 하나의 이유가 여기서 분명해진 것이다. 만일 다른 수컷과의 접촉에서 암컷을 격리할 수가 있다면 긴 약혼 기간의 존재는 수컷이 모르고 다른 수컷의 자식에게 은혜를 주는 것을 회피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면 버림받은 암컷이 새로운 수컷을 속이고 의붓자식을 양육시키는 수단을 성공시킬 수 없다고 가정하면 암컷에게는 달리 어떤 방법이 남아 있을까? 이것은 새끼의 크기에 많이 좌우될 것이다. 새끼가 아직 수태 직후의 단계였다면 어떨까? 이 경우까지도 이미 암컷은 새끼에 대해 난자 한 개만이 아닌 아마 그 이상의 투자도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경우는 새끼를 유산하고 빨리 새로운 배우자를 찾는 것이 그녀에게는 그래도 유리할지도 모른다. 수컷을 속여서 의붓자식을 양육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암컷에게 없다고 가정하고 있는 것이다. 유산은 신랑 후보자 및 그 암컷 쌍방에게 유리함에 틀림없다. 이것은 Bruce 효과가 암컷의 입장에서 보아도 유리하다는 이유가 될지도 모르겠다.
버려진 암컷이 선책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은 끝내 참고 단독으로 아이를 키워 보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만일 새끼가 충분히 자라면 이 선택은 특히 유리할 것이다. 새끼가 자라면 자랄수록 이미 새끼에 대해 투자된 분량은 많아질 것이고, 따라서 그 새끼를 양육하기 위해 앞으로 암컷이 투자해야 할 분량은 점점 적어져도 되기 때문이다. 비록 새끼가 아직은 어려서 짝 잃은 암컷이 먹이를 주기 위해 지금보다 두 배나 정성을 쏟아 일을 해야만 할지라도 초기의 투자를 허비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은 아직도 인연이 남아서인지 모른다. 새끼에게는 수컷의 유전자가 반은 들어 있으므로 새끼를 버리는 것은 수컷에 대한 보복이 될 것이다. 이것도 암컷에게 위로는 못 된다. 앙갚음은 그 자신에게 아무런 이점도 없기 때문이다. 그 새끼에게는 암컷의 유전자도 반은 들어있다. 암컷은 이 딜레마에 혼자서 대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기적인 배우자
역설적으로 들릴지는 몰라도 버림받게 된 암컷은 수컷에게 미움받기 전에 먼저 수컷을 버려야 하는 대책을 취할 수도 있다. 가령 암컷이 이미 수컷보다 많은 투자를 새끼에게 했다고 해도 이 대책은 암컷에게 유리할 수가 있다. 불쾌하게 생각될지는 몰라도 어떤 상황에서는 암수 어느쪽이든 먼저 상대를 버리는 쪽이 유리하다. 트라이버스의 표현에 따르면 남겨진 배우자는 가혹한 속박을 부담하게 된다. 이 논의는 좀 지겨우나 논지는 퍽 잘 되어 있다. 암수 어느쪽이든 다음과 같은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상황에 이르면 상대를 버릴 가능성이 있다.
"이 자식은 이젠 다 컸기 때문에 우리들 중 누구든 한쪽에서 키울 수 있다. 상대는 자식을 버리지 않을 것이므로 이쯤에서 이별해 버리는 것이 나에게는 이득이 될 것이다. 만일 내가 지금 이곳을 떠난다면 나의 배우자는 자기의 유전자에 대해 최선의 수법을 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미 나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겨진 배우자는 지금의 나보다 더 어려운 결단의 압력을 받게 될 것이다. 나처럼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면 자식들은 확실히 죽어 버린다는 것을 배우자는 '확신'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자기의 이기적인 유전자에게 최선의 길을 선택함에 틀림없다. 그러면 먼저 사라져 버리는 것이 나의 최선책이다. 확실히 이 방법이 좋을 것이다. 상대도 나와 똑같은 것을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선수를 쳐서 내가 버림을 다해 고통받는 일이 없어야지." 언제나 그랬듯이 이 독백은 단순히 설명을 위해 의도된 것이다. 나중에 자식을 버리도록 촉구하는 유전자가 선택상 유리하지 않다는 것만으로 처음부터 자식을 버리도록 촉구하는 유전자가 선택상 유리하게 될 수 있다는 점이 이 논의의 요점이다.
암컷의 최후 수단-교미 거부
배우자에게 버림을 받았을 때에 암컷이 취할 수 있는 수단을 몇 가지 생각해 보았는데 이것들은 모두 불리한 상태에서 최선을 다해 잘해 보려는 의지뿐이었다. 그러나 암컷이 그 배우자로부터 가해지는 착취의 정도를 줄이기 위해서 스스로 선수를 취할 수 있는 어떤 일이 있을까? 암컷에게는 강력한 최후 수단이 하나 있다. 즉, 교미를 거부할 수 있다. 암컷은 인기품 매도자처럼 인기가 있다. 크고 영양이 풍부한 난자라는 지참금을 암컷이 가지고 있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교미에 성공한 수컷은 자식을 위한 귀중한 영양원을 얻는다. 교미 전의 암컷이라면 혹시 힘들게 흥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단 교미가 끝나면 입장은 반대로 된다. 난자가 수컷에게 이미 제공됐기 때문이다. 수컷에게 배짱으로 흥정하는 암컷의 입장을 눌러 버리는 것은 매우 좋은 일이지만 어찌됐든 우리들은 이것도 하나의 비유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배짱을 부리는 흥정에 상대할 만한 사태가 자연 선택에 의해 진화될 수 있는 현실적인 방도는 있는 것일까? 나는 대표적인 가능성 두 가지를 생각해 보고 싶다. 그 하나의 가정의 행복을 우선으로 하는 수컷을 선택하는 전략과 또 하나는 용감한 수컷을 선택하는 전략이다.
암컷의 합리적 선택
가정의 행복을 우선으로 하는 수컷을 선택하는 전략 중에 가장 단순한 예를 생각하자. 암컷은 수컷을 미리 잘 조사하여 성실함과 가정적 성격을 잘 살펴보는 것이다. 성실한 남편이 된다는 성격에 관해 수컷의 집단 중에는 변이가 보일 수도 있다. 그런 성질을 사전에 식별하는 능력이 암컷에게 있다면 그러한 성질을 가진 수컷을 고를 경우에 암컷은 유리하게 될 것이다. 이것을 달성하는 하나의 방법은 괴팍하고 수줍어하는 암컷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암컷이 최종적으로 동의하기까지 교미를 인내하지 못하는 수컷은 성실한 남편이 될 가망이 없다. 긴 약혼기간을 강요하므로 암컷은 변절적인 구혼자를 제외하고 성실함과 인내라는 성격을 사전에 인정받은 수컷만 골라 최종적으로 교미를 하면 된다. 사실 암컷의 수줍어하는 성질은 긴 구애 행동 또는 약혼기간과 같이 동물들 사이에서는 일반적으로 볼 수 있다. 이미 기술한 대로 수컷이 속아서 다른 수컷의 아이를 양육하게 될 위험이 있을 경우 긴 약혼기간은 수컷에게도 유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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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고사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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己飢己溺(기기기익) 己(자기 기) 飢(굶주릴 기) 己(자기 기) 溺(물에 빠질 닉)
먼 옛날 대홍수(大洪水)로 백성들의 삶이 어려워지자, 요(堯)임금은 곤)에게 치수(治水)의 임무를 맡겼다. 그러나 아무런 결과가 없자, 요임금을 이어 즉위한 순(舜)은 곤의 아들인 우(禹)에게 이 일을 맡겼는데, 우는 13년후 치수에 성공하였다. 또한 직(稷)이라는 사람은, 어려서부터 농업을 좋아하여 항상 곡식의 종자를 모아 땅에 심었다. 후에는 간단한 농기구를 만들고 사람들에게 농경지식을 전수해 주었다고 한다. 전국(戰國)시대, 맹자(孟子)는 우와 직을 칭송하여 우는 천하의 사람들이 물속에 빠진 것을 자기가 치수(治水)를 잘못하여 그들을 빠지게 한 것이라 생각하였고, 직은 천하의 사람들이 굶주림에서 고통을 받게 되면 자신이 일을 잘못하여 그들을 굶주리게 한 것이라 생각하였다(禹思天下有溺者, 由己溺之也. 稷思天下有餓者, 由己餓之也) 라고 말했다. 이는 맹자(孟子) 이루상(離樓上)편에 나오는 이야기다.
己飢己溺 은 인익기익(人溺己溺), 인기기기(人飢己飢) 라고도 하며, 지금은 다른 사람의 고통을 자기의 고통으로 생각하고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책임을 다함 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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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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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디자서전. 시민의 불복종 - 간디 / 함석헌 역
제2편
17. 나탈에 정주
셰드 하지 무하마드 하지 다다는 1893년 나탈에 있는 인도인 공동체에서는 가장 뛰어난 지도자로 인정을 받고 있었다. 재정적으로는 셰드 압둘라 하지 아담이 그 중에서 으뜸이지만, 공적인 일에 있어서는 그도 또 그밖의 모든사람보다 첫 자리를 셰드 하지 무하마드에게 돌렸다. 그랬기 때문에 그를 회장으로 추대하고 모임을 압둘라 셰드의 집에서 열고 투표권 법안을 반대하고 나서기로 결정하였다. 지원자들을 모집했다. 나탈 출생 인도인들, 주로 그리스도교 신자인 인도 청년들을 그 모임에 초대했다. 더반 재판소 통역관인 폴 씨, 미션 학교 교장인 수반 고들프리 씨가 출석했는데 그들의 수고로 수많은 그리스도교 젊은이들이 이 모임에 참석했다. 이 사람들이 다 지원자로 등록했다. 물론 많은 지방상인들도 등록을 했는데 그 중에서 두드러진 사람으로는 이런 이들이 있었다. 셰드 다우드 무하마드, 무하마드 카삼 카므루딘, 아담지 미야칸, A.콜란다벨루 필라이, C.라츠히람, 랑가사미 파디아치, 그리고 아마드 지바, 파르시 루스톰지도 물론 거기 포함되었다. 사무원 중에서는 마네크지 씨, 조시 씨, 나르신람 씨, 다다 압둘라 회사의 사원과, 그외 큰 상사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모두 자기네가 공공의 일에 참여하고 있다는 데 한껏 놀라면서도 기뻐했다. 그와 같이 참여해 달라는 초청을 받는 것은 그들의 생애에서 새로운 경험이었다. 운명을 같이하는 공동체에 들이닥쳐 온 환란에 직면했을 때에는 높으니 낮으니, 작으니 크니, 주인이니 사환이니, 힌두니, 이슬람 교도니, 파르시인이니, 그리스도 교인이니, 구자라트인이니, 마드라스인이니, 신드인이니 하는 차별은 다 잊어 버려졌다. 모든 사람은 똑같이 조국의 자녀요 사환이었다.
법안은 이미 제2독회를 통과했거나 그렇지 않으면 그 직전이었다. 법안 심의 때 발언자들은 인도인들이 이 가혹한 법안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들어 그들은 투표권을 가질 자격이 없다고 주장했다. 나는 이러한 정세를 모임에서 설명했다. 우리가 첫째로 한 것은 입법원 의장에게 전보를 쳐서 그 법안의 심의를 연기하라고 요청한 일이다. 같은 전문을 우리는 수상 존 로빈슨 경에게 보냈고 또 하나를 다다 압둘라의 친구인 에스콤 씨에게 보냈다. 의장은 즉시 우리에게 회답을 보내어 법안의 심의를 2일간 연기한다고 했다. 이것을 받고 우리는 마음이 기뻤다. 입법원에 제출한 청원서가 작성되었다. 세 통을 준비해야 했고, 신문사에 보내기 위해 한 통이 더 있어야 했다. 또 청원서에는 될 수 있는 한 많은 서명을 받기로 했다. 그런데 이 모든 일을 하룻밤 사이에 해야 했다. 영어를 아는 자원자들과 그외의 몇 사람이 하룻밤을 꼬박 새워야 했다. 글씨 잘 쓰기로 이름난 노인 아더 씨가 원본을 썼고 그외의 것은 누가 불러 주어 다른 사람들이 썼다. 그렇게 해서 다섯 통이 동시에 준비되었다. 상인 자원자들은 자기 마차로, 또는 자기 돈으로 세낸 마차로 서명을 받으러 떠났다. 이것이 잠깐 사이에 이루어져서 청원서는 제출되었다. 신문들은 호의적인 논평을 가해서 게재해 주었고, 또 입법원에서도 마찬가지의 반응을 보여 주었다. 원내에서 토의가 되었고, 법안 지지파는 제출된 청원서의 주장에 대하여 반박을 내놓았으나 그것은 분명히 불충분한 것이었다. 그러나 법안은 통과되고 말았다.
우리는 다 그것이 처음부터 빤히 알려져 있던 결론인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시위운동은 공동체 안에 새 생명을 불어넣어 주었고, 그들에게 공동체는 하나요 나눌 수 없는 것이며, 상업상의 권리를 위해서와 마찬가지로 정치적 권리를 위해서 싸워야 하는 것이 자기네의 의무라는 것을 확신하도록 해주었다. 그 당시 리폰 경이 식민지 담당 국무상이었으므로 그에게 장문의 탄원서를 보내기로 했다. 이것은 작은 일이 아니요, 하루 동안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자원자가 모집되었고, 각자가 나와서 일을 적당히 분담하였다. 이 탄원서를 기초하는 데 나는 상당히 고심했다. 나는 그 문제에 참고가 될만한 문헌을 죄다 읽었다. 나의 이론의 중심은 하나의 원리와 하나의 방편에 있었다. 우리는 인도에서 일종의 선거권을 가지고 있으므로 나탈에서도 가질 권리가 있다고 나는 이렇게 주장했다. 나는 또 그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인도인은 매우 소수이므로 그것을 그대로 가지고 있게 하는 것이 편리하다고 역설했다. 두주일 동안에 1만명의 서명을 얻었다. 주 전지역에서 이만한 수를 확보하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사람들이 이 일에 대하여 완전히 생소했다는 것을 생각할 때 더욱 그렇다. 서명자가 그 탄원의 취지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경우가 아니면 단 한자의 서명도 받지 않기로 결정을 지었으므로 그 일을 위해서는 자원자 중에서도 특히 그럴 만한 능력이 있는 사람을 선발해내야 했다. 촌락들은 서로 먼 거리에 흩어져 있었다. 일이 신속히 되려면 몇 사람이 전력을 기울여서 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렇게 했다. 모든 사람이 자기가 맡은 일을 열성으로 했다. 그러나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 내 눈앞에는 셰드 다우드 무하마드, 루스톰지, 아담지 미야칸, 그리고 아마드 지바 등의 모습들이 또렷또렷이 나타난다. 그들은 가장 많은 수의 서명을 받아 왔었다. 다우드 셰드는 온종일 쉬지 않고 자기 마차로 돌았다. 그것들은 순전히 사랑으로 한 수고였다. 한 사람도 자기의 주머니 돈으로 쓴 비용조차도 청구한 이가 없었다. 다다 압둘라의 집은 곧 대상여인숙인 동시에 공용 사무실이 되어 버렸다. 나를 도와주던 여러 유식한 친구들과 그 밖의 사람들이 그곳에서 식사를 했다. 이와 같이 모든 조력자들이 다 꽤 많은 비용을 썼다.
탄원서는 마침내 발송이 되었다. 천통을 인쇄하여 사방에 분배 발송했다. 인도 민중은 처음으로 나탈의 실정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 사본을 내가 아는 모든 신문과 논평가에게 보냈다. 타임스 오브 인디아 는 그 탄원에 관한 논설에서 인도인의 요구를 강력히 지지해 주었다. 사본을 영국 내의 각 정당을 대표하는 신문과 평론가들에게 발송했다. 런던타임스가 우리 요구를 지지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법안이 거부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기 시작했다. 나는 이제 나탈을 떠날 수 없게 되었다. 인도 친구들이 사방에서 나를 둘러싸고 이곳에 영주하라고 간청을 했다. 나는 나의 어려움을 표명했다. 나는 이미 공공 비용으로 머물지는 않기로 결심했었다. 독립된 가계르 이뤄야 한다고 나는 생각했다. 집은 좋아야 하고 좋은 지역에 위치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또한 변호사다운 생활을 하지 않고는 사회의 신망을 얻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러한 생활을 하려면 적어도 연간 3백 파운드를 갖지 않고는 불가능할 것으로 보였다. 그래서 나는 거류민들이 최소한도의 수입을 얻을 수 있는 법률사무를 보장만 해준다면 머물러 있을 수 있다고 결정하고 그말을 그들에게 전했다.
그들은 그러나 당신이 공무를 보시고 그만한 돈을 받으면 되지 않습니까? 우리는 그것을 무난히 모을 수 있습니다. 물론 그것은 당신이 개인적으로 법률사무에서 버시는 보수와는 별도의 것입니다. 라고 말했다. 아닙니다. 나는 공공의 일을 하고 여러분들에게서 돈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라고 내가 말했다. 그 일은 내가 변호사로서 가지는 수완을 많이 이용해야 되는 것은 아닙니다. 내 일은 주로 여러분들 모두 일하도록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여러분에게서 보수를 받을 수 있습니까? 그리고 나는 그 일을 위한 자금 때문에 여러분에게 돈을 요구하는 일이 자주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만일 내 생활비를 여러분으로부터 받게 된다면, 내가 많은 금액을 달라고 할 때에 그러기가 좀 어렵게 될 것이고, 그러면 결국 우리 일은 정돈 상태에 빠지고 말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나는 우리 단체가 공공사업을 위해 매년 3백 파운드보다는 더 많은 돈을 내주기를 바랍니다. 이제 우리는 얼마동안 지냈기 때문에 당신을 압니다. 필요치 않은 것을 내라 하시지 않을 것을 압니다. 그런데 당신을 여기 계셔 달라면서, 우리가 당신의 비용을 못낼리야 있겠습니까? 당신들이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사랑해 주시기 때문이요, 지금의 열성때문입니다. 이 사랑과 열성이 영원히 계속된다고 누가 보장할 수 있습니까? 그리고 여러분의 친구요 사환으로서, 나는 여러분께 간혹 심한 말도 하게 될 것입니다. 내가 변함없이 여러분의 사랑을 받을지 누가 압니까? 그러나 알아야 하실 것은 나는 공공사업을 위해서는 어떤 보수도 받아서는 안된다는 사실입니다. 내게는 여러분이 여러분의 법률사무를 내게 맡겨 주시겠다고 승낙만 해주시면 충분합니다. 그것도 여러분께는 어려우실 것입니다. 한가지 아실 것은, 나는 백인 변호사가 아닙니다. 법정이 나를 받아 준다고 내가 어떻게 장담합니까? 내가 정말 변호사 노릇을 할지 어떻게 압니까? 그렇기 때문에 내게 사건 의뢰를 한다는 것부터 하나의 모험을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내게 일거리를 주시는 그 사실조차도 저의 공공사업에 대한 보수로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 토의의 결과 약 20명의 상인들이 그들의 법률사무를 1년 동안 내게 맡겨 주기로 결정하였다. 이밖에도 다다 압둘라는 내가 떠날 때 주려고 했던 사례금으로 필요한 가구를 사 주기로 했다. 이렇게 해서 나는 나탈에 정착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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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동서고전/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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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지중해 신화와 전설 - 홍사석
제10장 영웅의 등장
8. 오이디푸스
오이디푸스(Oedipus)는 테베 왕 라이오스와 왕비 이오카스타의 아들이다. 부계쪽이 아프로디테 가문이라 헤라 신은 오이디푸스에게 비운과 고난을 주었다. 라이오스 왕은 오이디푸스가 태어나기 전 델포이 신전에서 이오카스타와 결혼하여 아들을 낳으면 그 아들이 아비를 살해할 것이라는 신탁을 받았다. 라이오스는 과거 잠시 펠롭스 왕실로 망명하였다가 그 왕의 아들 크류시포스를 변태적인 색욕으로 유괴하고 살해한 적이 있었는데 그 앙갚음을 받게 된 것이다. 공포에 질린 라이오스는 이오카스타에게 접근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으나 그만 취중에 동침을 하고 말았다. 이에 왕비가 아이를 갖게 되고 라이오스는 후환이 두려워 아기를 낳자마자 없애라고 명령을 내렸다. 어미는 할 수 없이 아들을 내주었고, 시종도 가엾기는 하지만 왕의 명령이 워낙 엄하였으므로 키타이르 산으로 가서 아이의 뒤꿈치를 묶고 발바닥을 꿰어 나뭇가지에 매달아 놓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기는 이 고장의 왕 폴류보스의 양치기 눈에 띄었다. 양치기는 아이를 집으로 안고 가서 애가 없는 코린트의 왕비 페리보이아에게 건네주어 왕실의 아이로 자라게 하였다. 발견 당시 다리가 부어 있었기 때문에 그에게는 부은 다리(swelled foot)라는 뜻의 오이디푸스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페리보이아의 친아들과 마찬가지로 자란 오이디푸스는 뛰어난 소양을 갖추고 힘은 장사에 구변이 출중한 젊은이로 성장하였다. 한 번은 그를 시기한 한 친구가 그에게 얻어다 기른 아이라고 하자 이 말에 의기소침해져 키워준 어미 페리보이아에게 물었다가 잘못된 의심이라고 야단을 맞았다. 그럼에도 의심이 풀리지 않아 델포이의 신탁을 받아보니 놀랍게도 집으로 돌아가지 말라고 하였다. 몹시 당황스러웠지만 이제 자기 집이 없다는 것을 알고 코린트로 돌아가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비운이 다가오고 있었다.
오이디푸스는 노정을 포키아로 잡았다. 푹 패이고 좁은 다울리아 길목에 다다랐을 때, 마침 무기를 지닌 수행원을 데리고 이륜마차에 앉아 있던 라이오스와 마주치게 되었다. 라이오스는 오만불손한 어조로 오이디푸스에게 길을 비키라 하였다. 오이디푸스는 이를 거절하였고 급기야 싸움이 붙어 라이오스와 그 수행원을 살해해 버렸다. 그리고 그들이 누구인지 가문이나 지위는 어느 정도인지에 전혀 관심을 갖지 않고 다시 길을 떠났다. 플라타이아 사람 다마시스트라토스가 이 곳을 지나다가 쓰러진 사람을 발견하고 불쌍히 여겨 묻어주었다. 한편 길을 떠난 오이디푸스는 마침내 테베에 도착하였는데 당시 테베는 공포스런 괴물 스핑크스의 소문이 자자하였다. 스핑크스는 헤라 여신이 그 나라를 황폐하게 만들기 위해 보낸 괴물로, 테베를 지나는 사람에게 수수께끼를 내어 못 풀면 잡아먹었기 때문에 나라의 큰 화근이 되어 있었다. 라이오스가 죽자 테베의 왕위에 오른 크레온은 이 스핑크스를 퇴치하는 영웅에게 왕관과 선왕의 왕비 이오카스타를 주겠다고 공표하였다. 그런데 괴물의 수수께기란 "아침에 네 발, 낮에는 두 발, 저녁에는 세 발로 걷는 동물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었다. 마침 이 괴물과 맞닥뜨린 오이디푸스는 "그것은 사람이다"라고 답하고 그 까닭은 태어나서는 손과 발을 써서 걷고, 성인이 되면 두 다리로 걸으며, 황혼기에는 지팡이에 의지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였다. 정확한 이 답에 괴물은 패배의 굴욕감으로 머리를 바위에 부딪혀 자살하고 말았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오이디푸스는 환호를 받으며 테베의 왕위에 오르고, 이오카스타와 결혼하여 두 아들 에테오클레스와 폴류니케스, 두 딸 이스메네와 안티고네를 두었다. 그런데 그가 왕위에 오르고 15년이 지난 후부터 테베에는 악역이 번져 온 나라가 공포에 휩싸이게 되었다. 신탁을 받아보니 선왕 라이오스를 죽인 자를 보이오티아에서 추방하면 악역이 끝날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라이오스가 죽은 것은 이미 아주 오래 된 일인데다 또한 누가 살해했는지도 몰랐으므로 이 신탁은 테베 사람들의 최대 관심사가 되었다. 오이디푸스는 온갖 노력을 기울여 이 사건을 추적하고 마침내 범인 색출에 성공하여 진상이 드러났다. 그러나 어쪄랴! 바로 자신이 아비를 죽인 자로 판명되었으니. 더 엄청난 비극은 아비를 죽였을 뿐 아니라 어미를 아내로 삼은 패륜을 저질렀다는 점이었다. 극심한 비통에 빠진 오이디푸스는 슬픔과 죄책감으로 세상을 볼 자격이 없다며 스스로 자신의 눈을 찌르고 테베를 떠나 버렸다. 그리고 딸 안티고네에 이끌려 아티카의 땅의 아테네 근처 콜로노스에 은거하였는데 이 나라 왕 테세우스가 이 비운의 일행을 잘 돌봐주었다.
이 곳에는 복수의 여신을 모시는 숲이 있었는데, 생의 마지막 날이 다가오자 오이디푸스는 숙명적으로 자기의 뼈를 묻는 나라가 번영할 것이라는 신탁을 회상하고 테세우스에게 이 땅에서 생을 마치겠다는 뜻을 전하였다. 테세우스가 그를 찾아오자 오이디푸스는 증거를 보이기 위하여 도움 없이 홀로 걸어 한 지점에 가서 숨을 거두었다. 그러자 땅이 갈라지고 오이디푸스는 지상에서 사라졌다. 일설에는 오이디푸스와 이오카스타 사이에는 자식이 없었고 패륜이 자명해지자 이오카스타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한다. 오이디푸스의 무덤은 파우사니아스 시대에 아레오파고스 언덕 근방에 있었다고 한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어릴 때 아들이 동성인 부친에 반발을 나타내고 모친에 대해 사모의 정을 품는 무의식적인 경향으로 심리학자 프로이트가 정신분석학에서 사용한 술어다. 여기에 대조되는 낱말이 엘렉트라 콤플렉스이다. 엘렉트라는 아가멤논과 클류템네스트라의 딸로, 남동생 크레스테스를 부추겨 아비를 살해한 친어미와 그 정부를 죽여 아비의 원수를 갚았다. 이에 연유하여 엘렉트라 콤플렉스는 딸이 부친에게 무의식적으로 품는 성적인 사모를 의미하게 되었다.
소포클레스 75세 되던 해인 기원전 420년, 오이디푸스의 전설을 기반으로하여 비극시 '오이디푸스 왕'을 썼고, 15년 후 두 번째로 '콜로노스 오이디푸스'를 완성하였다. 콜로노스에는 오이디푸스를 수호신으로 모시는 사당이 있고 작가는 이 곳에서 태어나 성장하였다.
안티고네 안티고네(Antigone)는 테베 왕 오이디푸스와 왕비 이오카스타의 딸이다.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비극이 백일하에 드러나자 왕위를 버리고 테베를 떠나버렸고 왕위는 그 아들들이 계승하였다. 그런데 왕위를 놓고 형제 간에 싸움이 일어나 결국 둘은 결투를 벌여 서로를 죽이게 되었다. 이에 이오카스타의 오빠인 크레온이 공석인 왕권을 인계하여 형 에테오클레스의 장례는 지내주되 싸움의 불씨를 던진 동생 폴류니케스는 장례를 치르지 못하도록 엄명을 내리고 명령을 어긴 자는 생매장을 하겠다고 공고하였다. 그러나 안티고네는 이 명을 어기고 오라비의 장례를 치른 후 자신도 죽음을 맞이하였다. 그녀를 열렬히 사랑했던 크레온의 아들 하이몬은 끝내 그녀를 구하지 못한 슬픔을 이기지 못해 그녀의 무덤에서 자결하였다. 소포클레스의 대표적인 비극작품에 나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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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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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2 - 류시화
인디아 어록 1. 눈에 눈물이 없으면 그 영혼에는 무지개가 없다.
다음은 내가 지난 여러 해 동안 인도를 여행하면서 인도인들로부터 들은 인상적인 말들을 모은 것이다. 나는 수첩에 '인디아 어록' 코너를 만들어 그것들을 기록해두곤 했다. 인도인들은 짤막한 말로 사물의 핵심을 잘 찌르는 것으로 유명하며, 나 역시 그 말들을 듣고 당황하거나 말문이 막힌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길에서, 기차 안에서, 또는 버스 지붕 위에서 대중 속의 현자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그 재치있는 순발력과 번뜩이는 통찰력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 여행길을 자꾸만 인도로 향하게 만든 것은 바로 인도 여행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이 어록들이었다.
60원 어치의 기억 "신이 나를 기억하는 한 신은 당신도 기억할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이 내게 잘해주었고, 그것을 내 마음이 평생 동안 기억하고 있을 테니까." 남인도 케랄라 주의 코친에서 만난 한 늙은 거지에게 2루피, 약 60원 정도를 적선하자 그는 완벽한 영어로 그렇게 말했다. 60원을 얻은 걸 갖고 뭘 그러느냐고 하자 그가 말했다. "그렇지 않다. 나는 지금까지 내게 적선한 사람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하고 있다. 만일, 당신이 여기에 2루피를 더 얹어준다면 나는 다음 생에서도 당신의 은혜를 잊지 않고 꼭 기억할 것이다." 60원의 위력이 그 정도까지 된다는 걸 그때 나는 처음으로 알았다.
신발 두 켤레 "당신이 신발 두 켤레를 소유하고 있다고 해서 둘 다 신고 다닐 순 없지 않소. 그러니 나머지 한 켤레는 날 주시오." 역시 케랄라 주의 트리반드룸에서 버스 지붕에 올라타고 여행할 때였는데, 내 배낭 속에 슬리퍼 한 켤레가 들어 있는 걸 목격하고는 맞은편 궤짝 위에 손톱 시커먼 인도인이 그렇게 말했다.
안 죽었지 않은가 뭄바이에 사는 깨달은 스승 유 지 크리슈나무르티를 만나기 위해 릭샤를 타고 갈 때였다. 속도를 줄이라는 내 거듭된 충고에도 불구하고 운전사는 전속력으로 달리다가 결국 릭샤가 전복되고 말았다. 마침 길가 진흙밭으로 떨어져서 목숨을 건졌지만 난 참을 수 없이 화가 났다. 그래서 운전사에게 다가가 죽을 뻔했지 않느냐고 소리 지르자 운전사는 오히려 화내는 나를 나무랬다. "죽을 뻔했을 뿐이지, 죽지 않았는데 왜 화를 내는 거요? 일어나지 않은 일을 갖고서 분노의 감정으로 쓸데없이 자신을 괴롭히지 마시오."
눈물과 무지개 "눈에 눈물이 없으면 그 영혼에는 무지개가 없다." 올드 델리에서 만난 젊은 릭샤 운전사가 인생의 고통에 대해 얘기하던 중 나를 돌아보며 그렇게 말했다.
인연 "난 널 만나기 위해 이번 생에 태어났다. 그러니 내 생활비를 네가 전부 대줘야만 하겠다." 북인도 바레일리에서 만난 얼굴 지저분한 수도승은 날 보자마자 계속 그렇게 주장했다. 결국 나는 거의 한 달치에 달하는 생활비를 그에게 헌납하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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