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외수의 감성사전
잡초
인간들에게 비위를 맞출 줄 모르는 풀들을 통틀어 잡초라고 일컫는다. 꽃이나 열매는 볼품이 없지만 생명력만은 어떤 식물보다 끈질기다. 인간들은 끊임없이 잡초를 뽑아내지만 인간들보다 먼저 땅을 차지한 것도 잡초였고 인간들보다 먼저 숲을 키운 것도 잡초였다.
먼지
모든 우주의 출발점. 모든 우주의 귀착점. 모든 우주의 중심부. 철학의 저울대에 올려놓으면 성단 하나로 추를 삼아도 무게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비중이 크지만 그 형체는 매우 작다. 화창한 날씨에 육안으로 보면 햇빛에 미세하게 반짝거리며 공기보다 가벼운 느낌으로 허공을 떠다니는 광경을 포착할 수 있다. 우주 어디에나 산재해 있으며 똑같은 모양은 단 한가지도 없다. 먼지는 산이 되기를 서두르지 않는다. 먼지는 바람을 역류하지도 않는다. 오직 여여할 뿐 한 생각도 일어나지 않으니 바로 그 속에 부처가 있다.
나비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날개를 가진 곤충이다. 꽃향기에 취해서 항상 비틀거리며 날아다닌다. 산간지방에 서식하는 일군의 나비들은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길을 따라 허공에도 전용도로를 만들어 놓았는데 이를 접도라고 한다. 세월의 강물에 떨어진 꽃잎들은 윤회의 바다에 다다라 나비가 된다, 나비가 되어 꽃에게로 날아가 꿈을 꾼다. 나비와 꽃이 둘이 아니며 생시와 꿈이 따로가 아니다.
다리
미지로 가는 건널목이다. 떠나기 위해서 만들어 놓은 건널목이 아니라 돌아오기 위해서 만들어 놓은 건널목이다. 밑에는 언제나 강이 흐르고 위에는 언제나 허공이다. 다리는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길의 관절이다. 땅 끝까지 이어진 해후의 사다리다.
달동네
주거지의 위치는 높으나 사회적인 신분이 낮은 사람들의 안식처. 생활은 어두우나 마음은 밝은 사람들의 도읍지. 달빛이 가장 먼저 비치는 성지. 참다운 인생의 진리를 터득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보금자리. 대개의 입지적인 인물들이 일생에 한 번쯤은 이런 동네에서 어둠의 세월을 보냈던 기억을 가지고 있다.
아파트
인간 보관용 콘크리트 캐비닛.
외제
동족에 대한 의리보다는 자신에 대한 허영심을 충족시키는 일에 더 비중을 두는 사람들이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외국에서 들여온 제품을 말하며 사용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생명의 위협을 느끼거나 생활의 붕괴를 초래하지는 않는다. 미개인이라고 손가락질을 받지도 않으며 가난뱅이라고 따돌림을 받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병적으로 외제를 선호하는 사람들은 대개 외제로부터 영혼의 안식을 느껴야 할 정도로 의식이 황폐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외제를 선호하게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은 외제의 우수성이나 소비자의 허영심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국산품의 불량성이나 생산자의 비양심에 있다.
자만심
이 세상 만물들이 모두 자신의 스승임을 자각하지 못한 사람들이 필수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가장 심오한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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