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외수의 감성사전
정오
도시의 광장 시계탑이 그림자를 발밑으로 불러들이고 시계가 모든 바늘을 열 두시 정각에 합체시키면 바람이 숨을 죽인다. 고양이의 눈꺼풀이 가라앉는다. 정오다. 꽃들은 가장 눈부신 자태로 그 환희를 드러내고 숲들은 묵상에 잠겨 먼 강물 소리를 듣고 있다. 하루 한번씩 태양의 해탈의 참모습을 보여주는 시각이다. 그러나 인간들은 대부분 그 시각에 배를 채울 궁리나 하는 것이 고작이다.
시간
탄생과 소멸의 강이다. 모든 생명체는 그 강에서 태어나고 그 강에서 죽는다. 그러나 흐르지는 않는다. 흐르는 것은 시간의 강이 아니라 그 강에 빠져 있는 물질들이다.
모래
주로 해변에 많이 산재해 있는 최소 단위의 금빛 혹성
그림자
언제나 무심지경에 빠져 있는 실체들의 참 모습이다,
생노병사, 희노애락에 걸려들지 않는다.
빛이 존재하는 한 영원히 실체를 떠나지 않는다. 모든 형태와 동작을 실체가 갖추고 있는 대로 드러내 보인다. 그러나 실체가 아무리 높은 신분을 가진 인격체라 하더라도 그림자는 그 계급장까지를 반영해 주지는 않는다.
명예박사
자신이 진짜 박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대학이나 학술단체로부터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사람
가난뱅이
빈곤을 재산으로 삼아 경제를 꾸려 가는 생활인. 어리석음이 밑천인 가난뱅이와 무소위가 밑천인 가난뱅이로 대별된다. 전자는 가난을 불행으로 생각하여 물질에 대한 탐욕을 키우고 후자는 가난을 수행으로 생각하여 물질에 대한 탐욕을 버린다. 그럼으로써 결국 가난에서 모두 탈피하게 된다. 그러나 진실로 성공한 가난뱅이는 가난에서 탈피하는 순간 신이 자신에게 무엇을 깨닫게 하려 했던가를 명확히 알게 된 사람이다.
식인종
인구증가와 식량증가를 동일시하는 종족
불만
불연소된 욕심의 찌꺼기다. 성냥개비 한 개만한 능력으로 대궐 만한 집을 지으려 드는 사람들이 많이 가지고 있는 감정이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성경말씀의 진의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감정이다. 가열되면 증오로 변하거나 배반으로 변한다. 그러나 불만이 없으면 개선도 없다.
고성방가
아무리 노력해도 결코 자신은 훌륭한 가수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취중에 만인에게 발악적으로 증명해 보이는 행위. 외로움과 소외감의 또 다른 표현. 비틀거리는 인생에 대한 절규. 소음을 통해 자신의 존재 불필요성을 타인에게 확실하게 알리는 행위.
총알택시
승객과 기사를 장약하여 죽음을 향해 발사되어진 지상용 교통 미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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