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지중해 신화와 전설 (그리스신과 영웅들)
1. 그리스 나라의 개요
그리스의 자연
현 그리스의 면적은 남한은 1.3배, 경작지는 20% 이내로 국토의 5분의 4가 산지이며 1000m를 넘는 높은 산이 흔하다. 이 나라 산중에서 최고봉은 2917m의 올림포스 산봉으로 신화시대에는 주신들의 상징적 주거지로서 외경하는 성역이다. 고지대에는 나무와 숲이 있으나 대부분의 높은 산은 석회질 절벽의 민둥산이며 중턱부터 완만한 고원 경사지로 이어지기도 한다. 옛 켄타우로스족이 살았던 테살리아 고원은 800평방km가 넘는 비옥한 목초지이며 말 사육지로 이름 높다. 고원의 계곡을 흐르는 이 나라 최장의 강 페네이오스는 2000km가 넘는 긴 강이지만 상류는 물살이 세고 하류는 완만하나 수심이 얕아서 항해에는 적합하지 않다. 대부분의 내륙 골짜기는 좁아서 겨울 우기에 계곡의 하천이 범람하며 겨울이 지나면 건조기로 들어가 하천은 계속 말라붙어 자연의 혜택이라곤 거의 없다. 원래는 산야에 나무가 많아 소나무를 비롯한 플라타너스, 느릅나무, 떡갈나무 등 거목이 무성하여 날짐승과 들짐승이 우글거렸으나 원시시대부터 가옥, 목선, 숯을 만든다고 나무를 마구 베어내고 말았다. 따라서 이미 기원전 5세기에 무성한 숲은 자취를 감추고 산지나 언덕은 지금과 같은 메마른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이에 따라 자연의 섭리에 무지한 주민은 별 수 없이 땡볕과 바윗돌, 우기에는 광란하는 물결에 몸을 맞기는 신세가 되었다. 이러한 산지와는 달리 육지 둘레의 바다-지중해는 문자 그대로 대지 한가운데에 있는 풍광 명미한 고요한 내해로, 겨울철을 빼놓고는 천혜의 낙원이다. 해산물이 풍부하고 교통이 편리하며 거기에다 금상첨화로 쪽빛 바다의 뱃길은 그지없이 상쾌하고 삶의 즐거움을 솟게 한다.
[리토코로에서 바라본 올림포스 산]
고대에는 지정학적으로 소아시아 문명과 이집트 문명이 키프로스, 크레타, 키클라데스를 거쳐 점진적으로 북상하여 그리스 본토에 전파되고 미케네 문명으로 이어졌다. 그리스의 큰 땅덩이 펠로폰네소스 반도는 지세로 보아 북쪽 본토의 짧은 줄기에 달린 큰 섬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현대에 와서 줄기 부위인 코린 토스 협부를 개척, 이오니아해와 에게해를 연결하는 운하를 개통시켜 섬으로 만들고 교량을 가설해서 육로를 소통시켰다. 이 나라 해안선은 굴곡이 심해서 도처에 만과 곶이 있고 해안선이 이오니아해, 에게해, 지중해로 매우 어지럽게 펼쳐져 있다. 이 때문에 일찍부터 사람의 왕래나 짐을 나르는 데는 언덕을 넘어야 하는 육로보다 배를 이용하는 바닷길을 선호하여 해운이 발달하였다. 남쪽 전설의 고장 크레타는 지중해섬들 중 시칠리아, 사르디니아, 키프로스, 코르시카에 이어 다섯 번째로 큰 섬으로, 높은 산들과 산맥이 군데군데 끊긴 대형 협곡이 산재하고 최고봉은 이다 산의 타원형 단일봉 티미오스 스트라브로스(2425m)이다. 섬의 해안선은 1000km가 넘고 기원전 2000년경 해안을 끼고 도시가 건설되었으며 그 중 크노소스의 미노스 궁전은 가장 유서가 깊고 이름나 있다. 에게해의 중앙 부위에는 델로스를 둘러싼 한 무리의 섬들이 점철하는데 이 군도를 키클라데스라 한다. 여기에는 기원전 3000년경 이미 독특한 문화가 존재하였으며 대부분 석회질 바위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옛 지각변동이라는 대역사는 아티카, 에우보이아 산맥의 동남쪽 연줄을 바다 속으로 내려 놓아 높은 산봉만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고 동쪽으로 가서는 다시 아시아의 산맥으로 이어진다.
북쪽 산악지대는 겨울철에 몹시 춥고 눈이 많은 대륙성 기후로 옛적에는 인구가 희박하였다. 이에 비하여 남쪽 해안지대와 에게해 섬은 아열대의 전형적인 지중해 기후로 사철 내내 밖에서 지내도 큰 지장이 없다. 겨울철 우기에는 서해안 쪽에 비가 많고, 동해안 쪽에는 비오는 날보다 맑은 날이 많다. 봄.여름.가을철은 대체로 많은 날이 이어지고, 초여름에서 늦가을까지 햇볕이 따가워 개울물이 줄어들고 초목이 시들며 말라 버린다. 해변은 해풍으로 견딜만 하고, 햇볕이 그리워 찾아오는 인파가 비취색 지중해 해안으로 모여든다. 태양열로 흐르는 땀을 식히느라 시원한 그늘진 곳을 찾는 모습은 일찍이 기원전 5~4세기의 희극시인 아리스토파네스도 희극시 '말벌'에서 "나귀 그늘을 차지 하느라 다툰다"라고 묘사하고 있다. 평지에는 곡물을 심기도 하나 뿌리를 잘 내리지 못하므로 가뭄을 타지 않는 올리브, 포도 또는 더위에 강한 실과나무를 심으며, 생산되는 올리브유와 포도주는 예로부터 이 나라의 주요 산물이 되었다. 언덕은 목축지로 이용하여 양이나 산양을 기르고 있으나 소를 키우는 데는 적당하지 않다. 따라서 경작지의 부족으로 식량을 자급자족하는 것이 불가능하였기 때문에 외국에서 조달해야 했다. 도시국가 아테네에서는 기원전 7세기 솔론 시태부터 올리브유, 포도주, 도자기 등을 수출하고 곡물, 특히 소맥의 수입을 무엇보다 중요한 시책으로 삼았다. 그런데 곡물은 주로 흑해 연안의 여라 나라와 이집트에서 들여왔고, 따라서 흑해로 가는 길목인 헬레스폰트 해협을 지키는 것은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하였다. 기원전 1240년 미케네가 유괴당한 헬레나를 되찾는다는 명목으로 트로이 성을 공략하여 헬레스폰트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고자 장장 10년에 걸쳐(기원전 1240~1230) 전쟁을 벌인 것은 유명하다.
다르다넬스 해협은 에게해와 마르마라해를 잇는 터키의 해협이다. 고대 고전에서는 헬레스폰트 또는 그리스어로 헬레스폰토스(고대 그리스어, Hellespontos, ‘헬레의 바다’라는 뜻)로도 잘 알려져 있다. 길이는 61킬로미터이지만 폭은 1~6킬로미터 밖에 되지 않는다. 평균 깊이는 55미터이고, 가장 깊은 곳은 81미터이다. 보스포루스 해협과 함께 터키를 아시아와 유럽 양쪽으로 나눈다.
아테네는 북위 38도선에 위치한 그리스 수도로 인구 1100만 명중 400만 명이 시내와 근교에 거주한다(1995년 현재). 고대에 신전과 성채들로 들어찼던 아크로폴리스는 156m의 언덕으로 페르시아 전쟁 중에 완전히 파괴된 것을 승전 후 아테네의 전성기를 구가한 페리클레스 시대에 파르테논 등 우아하고 찬란한 구조물과 조각상을 재건립한 성역이다. 지금은 폐허가 되고 신전의 돌기둥, 부조된 박공, 대들보 등의 조각만이 옛 영광의 그림자를 보여주고 있는데 여전히 옛 아테네인의 창의성과 예술성을 접하고 느낄 수 있는 감동적 유적이다.
자연은 거기에 자리한 생물, 인간의 생활과 얼들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 나라 사람들은 빈곤을 극복하는 강인성과 자립심이 유달리 돋보이며 쾌청한 기후 조건을 배경으로 쾌활한 심성을 지니게 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용감성에는 각별히 찬사를 보내고 신체단련을 게을리한 적이 없으며 연극 경연에 열정을 The아 도시마다 또한 신전이 있는 곳마다 우아한 원형극장과 경기장을 설치하여 축제를 올렸다. 조각예술의 장인은 자연의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데 전력을 기울이고 그리스인은 아름다움이 곧 선이라는 사유를 지니게 되었다. 교역의 길로서 일찍이 해운이 발달한 바다는 그리스인의 삶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바다는 신화의 세계가 펼쳐지는 무대였으며, 또한 이 바다를 통해 건너온 해외 문물에 접하여 독특한 헬레네스 문화를 꽃피워 낼 수 있었다.
그리스 사람은 어느 민족에 못지 않은 강렬한 조국 사랑의 혼을 가지고 있다. 종교 이상의 정서가 지배하는 이 혼은 오랜 역사의 오랜 역사의 흐름속에서 그리스(그리스어로 말한다면 바로 헬레네스)를 강고하게 지켜 오는 힘이 되었다. 오랜 오토만의 지배에서 벗어나 나라를 되찾고자 1821년 총궐기하여 항쟁하는 헬레네스의 용사를 위해 솔로모스는 다음과 같은 해방의 송시를 발표하였다.
당신의 날카로운 공포의 칼날은 해방을 이루게 할 줄 아나이다.
당신의 빛나는 광채는 국토를 비추어 줌을 잘 아나이다.
거룩한 폐허에서 되살아나는 헬레네스의 위대성과 자유
지난 날처럼 용감하여라! 만세 만세 오! 우리의 해방!
이 송시 158연 중에서 첫 7연이 1865년 그리스의 국가로 채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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