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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질대로 살자
소설가 손홍규
내게 고향은 하나의 고전이다. 소설을 쓰다 막히면 고전을 들춰보듯 살아가면서 난제에 부딪힐 때마다 나는 고향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곤 했다. 고향에 뿌리를 내린 옛 벗들이 몇 있다. 그런 벗들 가운데 어린 시절부터 꽤 꼬장꼬장했던 한 녀석이 있다. 고등학생 시절 중장비 학원을 다녀 굴삭기 자격증을 획득한 뒤로 줄곧 그 일을 업으로 삼고 있는 녀석이다. 본명 동섭이는 온데간데 없고 누구나 다 똥섭이라 부르는 녀석이다.
똥섭이는 친구의 부탁으로 축사의 하수도를 파주기 위해 새벽 댓바람부터 굴삭기를 끌고 나갔다. 그 축사에 가려면 굴삭기 한 대가 겨우 지나갈 만한 길을 반드시 통과해야 했다. 똥섭이가 그곳에 도착해보니 2.5톤 사료차가 축사 입구를 떡하니 가로막고 있는 게 아닌가. 똥섭이는 부아가 났다. 이럴 거면 왜 새벽부터 오라했는지 친구가 원망스러웠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그까짓 하수도 파주는 거 일도 아니라며 술 한잔 얻어먹은 걸로 갈음하자고 큰소리 탕탕 쳤으니. 트럭 한 대분 사료쯤이야 장정 몇이 달려들면 금방일 테니 조금 기다려보자 싶었다. 하지만 트럭기사는 담배만 뻑뻑 빨고 손가락도 까딱하지 않았다. 똥섭은 기사에게 언제쯤 일이 끝나겠냐고 물었다.
여자에게도 그래본 적 없는 은근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기사는 똥섭을 힐끔 보더니 때가 되면 끝나겠죠, 라고 심드렁하게 말했다. 속은 부글부글 끓었지만 똥섭은 최대한 공손하게 다시 물었다. 대충 언제쯤 끝날지 알려주셔야 저도 기다리든지 갔다가 다시 오든지 하죠. 기사는 하품까지 하며 이번에도 똑같은 말을 했다. 똥섭의 인내심도 바닥이 났다. 알겠수다! 하지만 그냥 돌아갈 똥섭이 아니다. 트럭이 돌아나올 길을 굴삭기로 냅다 파버리고 줄행랑을 쳤다. 이제 상황은 바뀌었다. 하루 종일 기사는 똥섭에게 전화를 날렸다. 길을 다 파버리면 트럭이 어떻게 나간대요? 언제쯤 끝내고 오실 거예요? 똥섭은 이 순간을 기다렸다. 때가 되면 끝나겠죠.
성질대로 사는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그 뒤로 똥섭은 트럭 기사와 호형호제를 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도시에서 오래 살다보면 성질대로 산다는 게 쉽지 않다. 예의와 격식을 차려도 사람들은 좀처럼 서로 가까워질 수가 없다. 우리에겐 예의범절은 있어도 사연은 없기 때문이다. 똥섭이는 성질 좀 부려 트럭기사와 사연을 만든 셈이다. 그러니 너무 성질 죽이고 살지만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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