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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도라는 해」(시인 김영남) 2009년 7월 28일 |
1997년도. 행운의 숫자가 맨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는데도 나에게 그해 일어난 일들은 정반대였다. 반년 전부터 시작한 나라의 경제위기는 결국 IMF라는 관리체제를 불러 왔고 이는 우리 집까지 몰아쳤다. 맞벌이 직장생활 10년 만에 겨우 마련한 25평 아파트가 어느 날 갑자기 경매에 넘어갔고, 가압류 통지서가 직장으로까지 날아들었다. 보따리 싸들고 모두 길거리로 나서야 할 형편이 된 것이다. 보증을 함부로 서 준 결과였다.
가장으로서 체면이 여지없이 구겨졌고, 마라톤 선수 출신으로서 당당하고 씩씩한 모습도 온데간데 없어졌다. 그리하여 나는 매사에 풀 죽은 모습이었고, 마치 데친 나물처럼 기죽어 집에 들어오곤 했다. 저녁을 물린 다음 말끝마다 아내에게 핀잔까지 들어야 할 상황이 되었다면 그때 그 심정을 미루어 짐작하리라.
있을 법한 실수를 딱 한 번 저질렀을 뿐인데 이로 인하여 모든 것이 영 풀 죽어 버린 것이다. 그 풀 죽은 몸 때문에 또 밤마다 아내에게 당한 고충을 이제 와 다시 들먹거린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얼마나 시달렸는지 당시 노트에 메모해 둔 <나의 위크포인트(약점)>라는 시를 읽어보자.
*
고것이 형편없다며, 아니 너무 작다며 내 고충을 제일 잘 알고 있는 마누라가 밤마다 괴롭혀 오면 난 정말 죽을 지경이 됩니다. 형편없는 게 어디 이것뿐이겠습니까만 마누라가 베개맡에서 나의 제일 민감한 포인트를 아예 노골적으로 불평해 오면 나는 결혼한 것이 정말 후회스럽습니다. 더욱이 이를 개선할 돈도 없으니… 밤이 되는 것이 무서워집니다. 그러나 고렇게밖에 물려받지 못한 걸 어떡합니까? 그렇다고 옆집 아저씨에 견주고, 대학 동창들한테까지 비교하면 내 얼굴이 뭐가 됩니까? 난 또 어떻게 고개를 들고 거리를 다닙니까? 말이 났으니 터놓고 한번 얘기해 봅시다. 그것이 큰 게 좋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크기의 문제가 아니라 기능의 문제입니다. 아무리 으리으리한 기둥과 튼튼한 지붕 같은 것으로 만들어졌다 하더라도 부드러운 손, 따뜻한 가슴이 없으면 그건 말짱 헛것이에요. 그건 따뜻한 아랫목과 향기로운 이야기가 존재해야 진정한 의미의 그것이 될 수 있는 겁니다.
당신, 너무 큰 것만 좋아하지 마세요. 침실이란 작은 것이 더 따뜻하고 아늑해요. 안 그래요, 침실이란?
*
내가 이 시를 포함한 4편의 시를 묶어 세계일보사에 투고해 신춘문예에 당선된 것도 1997년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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