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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부동(和而不同)
새해가 되면 서로 덕담을 주고받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덕담을 한자성어처럼 압축된 말로 줄여서 전하기도 합니다. 시화연풍이니 근하신년이니 하는 말들이 그렇습니다. 《교수신문》이 180명의 교수들을 대상으로 올 한 해 희망을 주는 사자성어에 대해 설문조사를 했더니 '화이부동' 이라고 대답한 사람이 가장 많았다고 한 일간지가 전합니다.
'화이부동'(和而不同)은 참 좋은 말입니다. 이 말은 "군자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하고 소인은 동이불화(同而不和)한다"는 데서 비롯된 말로『논어』'자로' 편에 나옵니다. 군자는 화합하고 화목하되 남들에게 똑같아지기를 요구하지 않으며, 소인은 같은 점이 많아도 서로 화합하지 못한다는 뜻으로 풀이합니다. 화이부동의 부동(不同)을 더 넓게 보면 남에게 똑같아지기를 요구하지 않는 것만이 아니라, 내가 소신 없이 남과 똑같아지려고 하지 않는다, 즉 부화뇌동하지 않는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화합하려면 상대방을 인정해야 합니다. 상대방은 나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생각이 다르고 살아가는 방식이 다른 타자의 존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그와 대화하고 공통의 이해가 만나는 지점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화합의 과정입니다. 화합은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을 기본으로 합니다. 이념이 다르고 계층이 다르고 추구하는 목적이 다르고 살아온 지역과 문화가 다르지만 그것을 어떻게 아우르고 대립을 최소화하며 싸움과 전쟁으로 가지 않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군자가 해야 할 일입니다.
차이와 불평등을 인정하지만 어떻게 그것을 최소화하고 갈등을 풀어가며 공통의 이해를 끌어내어 평등하고 민주적인 결론을 도출해 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게 정치입니다. 그래서 정치는 어려운 것입니다. 동이불화(同而不和)하기는 쉽습니다. 나하고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 같은 목적을 가진 사람하고만 모여서 이야기하고 밥 먹고 그 사람들하고만 어울리며 같은 이해관계만을 관철하는 일은 쉽습니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은 힘으로 누르고 따르지 않으면 폭력을 사용해서라도 관철시키고 복종하게 하는 일은 편한 방법입니다.
생각이 다른 사람들 하고 어떻게 일하느냐는 말이 대통령의 입에서 자주 나온다는 말을 듣습니다. 이 정부의 임기가 끝나고 나서 평가를 받아야 할 때 가장 아프게 지적받는 것 중의 하나가 화이부동하지 못하고 동이불화한 정권이었다는 평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경제적으로 불평등하고 사회적으로 불균형한 것을 조정하고 최소화해나가는 것을 정치라고 합니다. 목적한 것을 이루기 위해 힘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정치가 아니라 폭력입니다.
사회가 성숙한다는 것은 동의 논리에서 화의 논리로 변화해 간다는 것입니다. 싸움보다는 화합, 힘보다는 대화, 전쟁보다는 평화, 지배와 억압보다는 공존공생, 차별보다는 존중, 편견과 무시보다는 관심과 인정이 필요합니다. 정치만이 아니라 개인의 삶에서도 그렇고 국제관계와 남북문제에 있어서도 그렇습니다. 화의 논리를 받아들이는 것은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자신에 대한 믿음 인간에 대한 신뢰를 가진 사람은 화의 논리에서 출발합니다. 아니 화의 논리야말로 신의 의지이기도 합니다. 이웃, 즉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내 몸 같이 사랑하라고 끝없이 요구하는 분이 우리가 믿는 신입니다. 우리들 각자도 정치하는 사람들도 동이불화하지 말고 화이부동하는 한 해가 되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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