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윤곽선이 지워진 세계의 비극이 뭔지 아느냐?
뿌리를 뽑는다는 것.
그래, 잡초를 뽑으며 나는 뿌리를 뽑는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 십 년, 내 자신이 잡초처럼 척박한 땅에다 뿌리를 내리고 살아왔으니 손놀림이 모지락스러워지는 것도 결코 무리는 아닐 터였다. 그러니 잡초가 아니라 가슴에 응어리진 자기 혐오를 뽑아 내기 위해 나는 정신없이 땅을 파헤치고 있는 건지도 모를 일이었다. 내 스스로 뿌리를 내렸으나 내 스스로 거두지 못한 끈질긴 비관과 절망의 뿌리, 그것들은 지금 내 영혼의 어느 암층에까지 뻗어나가 있을가. 스물일곱에서 서른일곱 사이. 세월의 수레바퀴에 실려 간 꿈은 이제 아쉬움의 대상이 아니었다. 필요한 것은 적멸이 아니라 소멸, 그리고 또 다른 길을 향한 준비이거나 출발일 뿐이었다. 그러므로 십 년 세월 저쪽, 꿈과 무관한 길을 떠나던 시절의 기억은 부정이나 타파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 그것이 원하던 길은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그 시절의 나를 부정하고 지금의 나를 인정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원하는 길을 가기 위해 원치 않는 길을 에돌아가는 것, 그것을 통해 오히려 강화되거나 견고해질 수 있는게 꿈이라면 지금의 나를 무슨 말로 변명할수 있으랴. 꿈을 위해 꿈을 잠재우는 과정. 세상이 꿈꾸는 자의 것이라는 말은 세상이 결코 꿈꾸는 자의 것이 될 수 없다는 걸 역으로 반영하는 말일 뿐이었다.
"인생이 극도로 불투명하게 느껴질 때가 있죠. 내가 살아온 이유와 살아갈 이유, 그런 것에 아무런 확신도 가질 수 없을 때......그러니까 혼자인 게 당연하고 혼자일 수밖에 없는 시간 같은 거요. 아마 나는 지금 그런 시간을 지나가고 있는 것 같아요......"
박상우 <말무리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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