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윤영환 님, 친애란 무엇일까요?
누구나 편지를 쓸 때 친애하는 누구누구에게 라는 말을 써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친애라는 말은 ‘친밀히 사랑함’이라는 뜻으로 사람과 사람의 관계 속에서만 맺어질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는 친애 관계를 맺기 위해 몇 가지 조건을 들고 있는데, 사랑 그 자체의 순수함, 일방적으로 주는 관계가 아닌 쌍방적 선의, 서로가 서로에 대해서 모르지 않아야 한다고 하는 인지성이 그것이다.
어떠한 목적과 계기가 있는 친애는 진정한 친애가 아니고, 주인과 노예의 관계처럼 일방적 선의 사이에는 친애가 존재할 수 없으며,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친애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다면 진정한 친애는 무엇인지 친애의 세 가지 종류를 통해 알아보도록 하자.
“유익을 이유로 서로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상대로부터 자신들에게 어떤 좋음이 생겨나는 한 사랑하는 것이다. 유익을 이유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돌아오는 어떤 좋음을 이유로 상대에게 애착을 가지는 것이며, 그들은 사람 자체가 아닌 그가 유익을 주는 한 사랑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것들은 우연적인 의미에 따른 친애이다. 이러한 친애는 계속 이전 같지는 않을 때 쉽게 해체되고 만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첫 번째로 ‘유익함을 이유로 하는 친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친애는 순수해야 하는데 유익을 이유로 한 친애는 나에게 유익함을 주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므로 본질적인 친애가 아니다. 어떤 것을 목적으로 해서 친애가 이뤄져서는 안 되고, 이런 우연한 친애는 지속성이라는 측면이 깨지므로 쉽게 해체된다.
“젊은이들의 친애는 즐거움을 이유로 성립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즐거운 것들도 달라지게 된다. 바로 이 이유 때문에 그들은 쉽게 친구가 되고, 또 쉽게 헤어진다. 그들은 또 순식간에 사랑에 빠졌다가 순식간에 헤어지기도 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변하기도 한다. 이들에게 친애라는 것은 이런 식으로 생겨난다.” 두 번째로 ‘즐거움을 이유로 하는 친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유익함을 이유로 한 친애와 마찬가지로 상대가 나에게 즐거움을 주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다. 이런 계기 또한 순수하지 않기 때문에 본질적인 친애라고 볼 수 없다.
“가장 완전한 친애는 좋은 사람들, 또 탁월성에 있어서 유사한 사람들 사이에서 성립하는 친애이다. 이들은 그들이 좋은 사람인 한 서로가 잘 되기를 똑같이 바란다. 이들이 이러한 태도를 가지는 것은 우연한 것에 따른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을 이유로 한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사람들의 친애는 그들이 좋은 사람인 한 유지된다.” 마지막으로 ‘가장 완전한 친애’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이러한 친애가 지속적인 것은 당연하고 유사성에 따라 성립한다고 말하고 있다. 친애란 사람들과의 관계가 순수성, 상호성, 인지성을 모두 갖출 때 가장 완전할 수 있다.
친애는 동고동락하는 시간과 사귐을 요구한다. 친애의 마음은 빨리 생겨나지만 정말로 친애하기는 쉽지 않다. 친애의 대상이 되려면 즐거운 것이든지 유익한 것이어야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안 된다. 왜냐하면 즐겁거나 유익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친애가 깨지고, 지속성을 위반하게 되기 때문이다. 진정한 의미의 친애는 유익하고 즐거운 것을 넘어서 그 자체로 좋은 것이고, 그것에는 조건이 없다. 우리는 주변에 친애하는 많은 이들과 함께하고 있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친애 관계는 얼마나 될까? 한번쯤 진지하게 생각해 볼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