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처럼 인터넷에 목매는 나라도 없을 것이다. 유럽인들은 필요한 정보를 찾을 때를 빼면 사이버 공간에 들어가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반면 우리는 하루의 상당 시간을 인터넷에 들어가 산다. 메신저로 타인과 끊임없이 대화하고, 다른 이의 블로그, 기관이나 단체 홈페이지로 마실 다니기를 즐긴다. 서구의 인터넷 이용이 '정보적'이라면, 우리의 인터넷 문화는 이렇게 '친교적'이다.
소통에서 친교성이 중시되고, 논쟁에 감정이 실리는 것은 구술문화의 특징이다. 해방 직후 우리나라의 문맹률은 90%. 그때만 해도 인구 대부분이 구술문화에 속해 있었다는 얘기다. 그로부터 60여 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 사회의 문맹률은 거의 0%에 가깝다. 서구에서 몇 백 년이 걸린 과정을 우리는 몇 십 년 만에 뚝딱 해치워버렸다. 구술문화의 특성을 완전히 지우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 아닌가. 우리 의식에 아직 구술적 특성이 강하게 남은 것은 이 때문이다.
구술문화의 특징은 이성적이기보다는 감정적이고, 그 인격이 개성적이기보다 집단적이며, 혹은 그 의식이 반성적이기보다 의타적이다. 어떠한 사물을 ‘정의’하려는 시도도, 삼단논법의 형식 논리도 구술문화에서는 굳이 필요하지 않은 일이다. 인터넷에서 툭하면 벌어지는 집단 따돌림, 악플이 난무한 현상은 논증과 증거를 중심으로 하는 근대적 사법체계 이전, 즉 그 옛날 촌락공동체에서 행해지던 멍석말이의 디지털 버전이다. 구술문화의 사유와 정서를 가진 우리들에게 인터넷은 적어도 사이버 공간에서나마 잃어버린 촌락공동체를 다시 돌려주었다.
우리의 인터넷 글쓰기를 보면 논리나 추론은 없고 찬양이나 비난만 있다. 차가운 비판은 없고, 넘치는 것이 뜨거운 욕설이다. 자신의 인격을 책임진 개인은 사라지고, ID 뒤에 숨은 익명의 집단들이 떼를 이뤄 사냥감을 찾아 다닌다. 그러다가 공격 대상을 발견하면, 디지털 멍석말이에 들어가 마음껏 원시적 감정을 분출한다. 우리의 인터넷에서 너무나 자주 보는 이런 현상은 분명히 문자문화 이전의 습성, 일종의 문화 지체 현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정보화 시대를 맞아 이 정신적 낙후성이 외려 기술적 선진성의 토대가 되고 있다. 인터넷 자체가 새로운 구술성의 매체이기 때문이다.
인터넷 글쓰기는 입을 통해 나오는 말을 글로 타이핑하는 식으로 이루어진다. 여기서는 구술문화와 문자문화가 묘하게 뒤섞인다. 우리가 그토록 인터넷에 열광하는 이유는, 여전히 강한 구술성이 남은 우리의 의식이 거기에 적합한 첨단매체를 찾았기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