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글씨
손으로 글씨 쓰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에 ‘손글씨’는 생뚱맞은 낱말이다. ‘붓글씨, 펜글씨’는 ‘글씨’에 ‘붓, 펜’처럼 도구를 나타내는 말을 결합하여 만든 말이고, ‘게발글씨, 잔글씨, 덧글씨, 흘림글씨, 꼬부랑글씨’는 ‘글씨’에 ‘게발, 잔, 덧, 흘림, 꼬부랑’ 등 모양 또는 방식을 나타내는 말을 결합하여 만든 말인데, 이 모든 ‘글씨’는 결국 손으로 쓰는 것이다. 그러니 ‘글씨’에 ‘손’을 붙인 낱말을 만들 이유는 없다. 발로 쓰는 글씨라면 ‘발글씨’라 하겠지만 손으로 쓰는 글씨는 그냥 ‘글씨’라 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타자기에 이어 컴퓨터가 등장하면서 문서를 작성하는 데에서 손의 역할도 달라졌다. 자판을 두드리거나 마우스를 움직여 문서를 작성하는 일이 일상화되면서 ‘손으로 쓰는 글씨’가 특별한 의미를 띠게 된 것이다. 이처럼 ‘손으로 쓰는 글씨’가 당연한 게 아닌 세상이 되자 ‘손글씨’란 말이 만들어졌다.
‘손글씨’가 자리를 잡으면서 만들어진 말이 ‘손편지’다. ‘손편지’는 이메일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소식을 주고받는 것이 일상화되면서, ‘손글씨’로 편지를 쓰는 일이 줄어든 현실을 반영한 말이다. 그런데 ‘손으로 직접 하는’의 뜻을 나타내기 위해 ‘손’을 붙여 새말을 만드는 것이 최근의 현상은 아니다. 그간 ‘손’을 붙여 만든 낱말들을 보면 손으로 하는 것을 당연시하던 일들이 점점 없어져가는 시대의 변화를 가늠할 수 있다.
재봉틀이 일반화되면서 ‘손바느질’이, 기계로 뽑는 국수가 일반화되면서 ‘손국수, 손칼국수’가, 세탁기가 일반화되면서 ‘손빨래, 손세탁’이 만들어졌다. 시간이 흐를수록 손으로 하는 일은 점점 줄어들 것인데, 이제 어떤 낱말에 ‘손’을 붙여 새말을 만들게 될까?
최경봉 원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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