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의 애칭
우리가 벌써 열아홉번째 대통령 선거를 한다는 것은 애송이 공화국은 아니라는 말이 되기도 한다. 초창기 대통령 후보들에 대한 호칭은 주로 ‘박사’와 ‘선생’이었다. 그러다가 현행 헌법 체제부터 직업 정치인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면서 대부분 자기 이름의 알파벳 머리글자를 따서 ‘애칭’을 만들어 퍼뜨렸다.
왜 하필 애칭에 알파벳을 쓰냐고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래도 그런 애칭이 실제로 매우 유용하기도 했다. 워낙에 열광적인 지지자들이 많으면 그 지지자들 앞에서 맨이름 석 자를 마구 불러대기도 조심스러웠고, 일일이 경칭을 붙이기에도 마음이 내키지 않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지난번 대통령 선거부터는 이상하리만큼 이런 애칭들이 안 보이기 시작했다. 이번 선거에서도 그 많은 후보 가운데 누구도 그런 알파벳 애칭을 사용하지 않으며, 지지자들도 ‘이니’, ‘촬스’, ‘국민장인’, ‘심블리’ 같은, 애칭인지 별명인지 구별이 안 되면서 친근하게 부를 수 있는 호칭을 사용한다. 과거보다 후보자와 유권자들 사이에 격의가 많이 줄어든 모습이다. 이젠 직업 정치인들이 훨씬 더 대중친화적이 된 것이다.
호감 가는 애칭이나 별명은 어디까지나 선거운동원이나 지지자들에게나 유용할 뿐 똑똑한 투표를 벼르는 유권자들에게는 그리 중요한 게 아니다. 그러나 권력 주변을 탈권위화한다는 면에서는 분명히 효과가 있는 것 같다. 참여정부의 노무현 대통령 때는 주로 열렬 지지자들 사이에서 ‘노짱’이라는 애칭이 사용되었다. 이번 대통령부터는 선거 때만 애칭을 부를 게 아니라 아예 집권 기간 내내 일반 정치인들도, 언론도, 공무원들도 편하게 대통령의 애칭을 사용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권위주의를 영원히 떠나보냈으면 한다.
김하수/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