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의 이름
선거철이 다가오면 특이한 현상이 어김없이 나타난다. 툭하면 당적을 옮기는 이른바 ‘철새 정치인’들이 나타나거나 새로운 정당, 혹은 이름을 바꾸는 정당이 나타난다. 하나의 정당이 나뉘어 둘이 되기도 한다. 마음에 딱히 들지는 않지만 법적으로는 막을 길이 없어 보인다.
새로 생긴 ‘당의 이름’을 들어보니 우리 정당들의 문제가 함께 떠오른다. 전통적으로 정당의 이름은 추구하는 이념이나 정책과 같은 일정한 ‘방향성’을 나타냈다. 그리고 그것은 유권자들에게 자기 정체성과 정치적 지향에 대한 일종의 ‘언약’의 구실을 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그러한 정치적 방향보다는 우선 듣기 그럴듯한 이름을 선택했다. 어떤 경우에는 오히려 정치적 성격을 슬며시 감추려는 의도가 엿보이기도 한다. 기존의 정치 이념이 유권자들한테 불신을 받았던 탓일 것이다.
무릇 정당은 자신의 국정철학을 정직하게 내보이고 집권한 후에도 애초의 강령에 맞추어 제대로 가고 있는지를 지속적으로 감시를 받을 때 ‘바른 정치’가 가능하다. 당의 이름과 강령에 비추어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름만 듣기 좋은 정당이거나 아무 정당이나 써도 괜찮은 두루뭉술한 이름, 무슨 노선인지 알기 어려운 아리송한 이름들은 엄밀히 말해서 유권자들의 판단을 흐리게 하는 잘못된 이름들이다. 그런 점에서 여러 정당의 이름은 이미 시장화되고 상품화되어버렸다.
과자 이름을 보면 괜스레 맛있게 느껴진다. 그러나 무슨 성분이 들어 있는지, 유효기간이 언제까지인지는 이름에 드러내지 않는다. 정당이 자기 속성과 성분을 당당히 드러내지 않고 과자처럼 달콤한 이름을 쓰려 한다는 것은 정치의 정석을 걷지 않으려 하는 신호가 아니겠는가. 이러한 노선은 그저 ‘기회주의’에 불과하다. 올바른 정치는 올바른 이름에서 비롯한다.
김하수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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