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와 인권
오랫동안 사람들은 각종 폭력에 시달려 왔다. 그래서 현대 사회는 국가가 공권력을 독점적으로 관리함으로써 시민들의 일상생활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길을 택하고 있다. 그러는 중에 언어 사용의 자유는 점점 그 폭을 넓혀 왔다. 그러다 보니 요즘은 오히려 ‘언어의 횡포’가 기승을 부리면서 새로운 매체를 타고 그 폐해가 점점 커지고 있다. 과거엔 화장실 낙서에나 나오던 못된 표현들이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나돈다.
언어 표현을 사법적으로 징치한다는 것은 적잖은 부담이 있을 수 있다. 민주 사회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표현의 규제가 아니라 반사회적 ‘언어폭력’에서 피해를 보는 약자들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 하는 문제의식에서 시작하자는 말이다. 곧 ‘인권 수호’의 새로운 국면을 말하는 것이다.
특정한 개인에 대한 언어적 공격은 당사자의 제소를 통해 사법적인 해결을 구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불특정 다수, 곧 특정 지역이나 국적, 인종, 성, 종교, 이념 등에 대한 노골적인 공격 행위는 몇몇 개인의 힘으로 제어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특히 그 피해가 사회적 약자 집단에만 집중된다면 더 이상 방치할 수가 없는 문제다. 언어가 인권을 해치는 흉기가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사법적 장치를 넘어서 이러한 언어적 제도를 안정화시키려면 모든 공직자들부터 임명직이나 선출직을 막론하고 언어적 인권 보호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분명히 드러낼 필요도 있다. 지금은 다양한 인종과 종교 그리고 각종 신념이 뒤엉켜 살아가게 된 세계사적인 대전환의 시대이다. 우리가 문화적으로, 정치적으로 스스로를 단련시키지 않는다면 100여년 전의 대전환 시기에 저지른 실책이 또다시 반복될까 봐 걱정이다.
김하수/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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