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명구도(鷄鳴拘盜)
鷄:닭 계. 鳴:울 명. 拘:개 구. 盜:도둑 도.
[출전]《史記》〈孟嘗君列傳〉
닭의 울음 소리를 잘 내는 사람과 개 흉내를 잘 내는 좀도둑이라는 뜻. 곧
① 선비가 배워서는 안 될 천한 기능을 가진 사람.
② 천한 기능을 가진 사람도 때로는 쓸모가 있음의 비유.
전국 시대 중엽, 제(齊)나라 맹상군(孟嘗君)은 왕족으로서 재상을 지낸 정곽군(靖郭君)의 40여 자녀 중 서자로 태어났으나 정곽공은 자질이 뛰어난 그를 후계자로 삼았다. 이윽고 설(薛) 땅의 영주가 된 맹상군은 선정을 베푸는 한편 널리 인재를 모음으로써 천하에 명성을 떨쳤다. 수천 명에 이르는 그의 식객 중에는 문무지사(文武之士)는 물론 ‘구도’(拘盜:밤에 개가죽을 둘러쓰고 인가에 숨어들어 도둑질하는 좀도둑을 말함)에 능한 자와 닭 울음소리[鷄鳴]을 잘 내는 자까지 있었다.
이 무렵(B.C.298), 맹상군은 진(秦)나라 소양왕(昭襄王)으로부터 재상 취임 요청을 받았다. 내키지 않았으나 나라를 위해 수락했다. 그는 곧 식객 중에서 엄선한 몇 사람만 데리고 진나라의 도읍 함양(咸陽)에 도착하여 소양왕을 알현하고 값비싼 호백구를 예물로 진상했다. 소양왕이 맹상군을 재상으로 기용하려 하자 중신들이 반대하고 나섰다.
“전하, 제나라의 왕족을 재상으로 중용 하심은 진나라를 위한 일이 아닌 줄로 아옵니다.”
그래서 약속은 깨졌다. 소양왕은 맹상군을 그냥 돌려보낼 수도 없었다. 원한을 품고 복수를 꾀할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를 은밀히 죽여 버리기로 했다. 이를 눈치 챈 맹상군은 궁리 끝에 소양왕의 총희(寵姬)에게 무사히 귀국할 수 있도록 주선해 달라고 간청했다. 그러자 그녀는 엉뚱한 요구를 했다.
“내게도 진상한 것과 똑같은 호백구를 주시면 힘써 보지요.”
당장 어디서 그 귀한 호백구를 구한단 말인가. 맹상군은 맥이 빠졌다. 이 사실을 안 ‘그도’가 그날 밤 궁중에 잠입해서 전날 진상한 그 호백구를 감쪽같이 훔쳐내어 총희에게 주었다. 소양왕은 총희의 간청에 못 이겨 맹상군의 귀국을 허락했다.
맹상군은 일행을 거느리고 서둘러 국경인 함곡관(函谷關)으로 향했다. 한편 소양왕은 맹상군을 놓아 준 것을 크게 후회하고 추격병을 급파했다. 한밤중에 함곡관에 닿은 맹상군 일행은 거기서 더 나아갈 수가 없었다. 첫닭이 울 때까지 관문을 열지 않기 때문이다. 일행이 안절부절못하고 있는데 ‘계명’이 인가(人家)쪽으로 사라지자 첫닭의 울음 소리가 들려왔다. 이어 동네 닭들이 울기 시작했다. 잠이 덜 깬 병졸들이 눈을 비비며 관문을 열자 일행은 그 문을 나와 말[馬]에 채찍을 가하여 쏜살같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추격병이 관문에 닿은 것은 그 직후였다고 한다.
[주] 호백구 : 여우 겨드랑이의 흰 털가죽을 여러 장 모아 이어서 만든 갖옷. 귀족.고관 대작(高官大爵)만이 입을 수 있었던 데서 귀족의 상징 물이 되기도 했다고 함. 호구라고도 일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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