잎사귀 명상 - 이해인
꽃이 지고 나면
비로소 잎사귀가 보인다
잎 가장자리 모양도
잎맥의 모양도
꽃보다 아름다운
시가 되어 살아온다
둥글게 길쭉하게
뾰족하게 넓적하게
내가 사귄사람들의
서로 다른 얼굴이
나무 위에서 웃고 있다
마주나기잎
어긋나기잎
돌려나기잎
무리지어나기잎
내가 사랑한 사람들의
서로 다른 운명이
삶의 나무 위에 무성하다
- 나의 시 `잎사귀 명상`
어느 날 나는 유심히 창 밖의 나뭇잎들을 바라보다가 이런 글을 적어 보았습니다. 우리 수녀원의 어느 수녀님이 계절이 바뀔 때마다 꽃이 아닌 나뭇잎들을 작은 화병에 꽂으며 기뻐하는 모습을 본 일이 있습니다. 얼마 전엔 내 옛 친구의 집을 방문했더니 어떤 화가의 여러 종류의 나뭇잎만을 소재로 한 그림달력이 벽에 걸려 있었는데, 어찌나 아름답던지 꼭 갖고 싶다는 말을 하려다 괜한 욕심인 듯싶어서 접어 두면서 방학숙제로 동생과 함께 열심히 여러 가지 나뭇잎들을 채집하던 어린 시절의 추억을 즐겁게 떠올려 보았습니다. 소나무, 참나무, 미루나무, 느티나무, 오동나무, 은행나무 등등, 나무들의 종류는 참 많기도 하고 흩잎, 겹잎, 마주나기잎 등 잎사귀의 종류도 많으며 윈형, 선형, 피침형, 마름모형 등 잎사귀의 모양 또한 매우 다양합니다.
우리가 나무들을 전체적으로 감상하거나 그 꽃과 열매에 눈길이 가긴 쉬워도 나무에 달린 잎사귀 자체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는 일은 적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가을이 되어 꽃도 열매도 다 떠나 보낸 뒤의 나무 위에서 바람에 한들대는 나뭇잎들의 모습은 쓸쓸하지만 아름답게 보입니다. 고운 낙엽 한 장을 주워 책갈피에 끼우는 마음도 문득, 잊고 있던 잎사귀에 대한 애정과 떠나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과 그리움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길을 가다 보면 어쩌면 사람들의 모습이 저토록 다를까? 새삼 놀라게 되는 적이 있고, 공동체 안에서 살다 보면 함께 사는 이들의 너무 다른 성격과 기질에 거듭 놀라고 감탄할 때가 많습니다. 가까운 가족, 친지, 이웃들을 살펴봐도 글들이 걷는 삶의 길, 삶의 태도 역시 얼마나 다양한지 모릅니다. 누구나 한 번쯤 삶의 시작과 끝을 생각해 보는 가을. 어느 계절보다 가을을 사랑하는 나는 오늘 아침, 성당 유리창으로 비쳐 오는 상록수들의 푸른 그림자에 내 마을을 포개면서 문득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라는 나무뿌리에서 함께 그러나 서로 다르게 피어나 노래하고 기도하는 초록의 잎사귀들로 여겨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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