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이 묻어나는 편지 - MBC 예술단 엮음
셋 - 사랑으로 풀어내는 웃음보따리
망신살 부른 세계화
대망의 1992년 12월 25은 저에게는 아주 뜻깊은 날이었습니다. 지난 8년간 숱한 유혹을 뿌리치고 한 남자를 기다렸고 드디어 그 남자와의 결혼식이 있었던 그해 그날! 사실 이 남자와의 결혼은 축복 속에 치러졌습니다. 저는 그렇다 치고, 우리 엄마는 눈에 무엇이 씌었는지, 학교를 졸업도 안한 남자와 그것도 대기업 공채 시험에 번번이 서류전형에도 미끄러지는 사위를 맞이하려고, 곱게 키워 고등학교 때는 우등상도 타면서 비록 지방이지만 비싼 등록금 내가면서 명문 사립대를 졸업하고, 그대는 취직도 해서 월급도 타는 저를 사위 정말 괜찮다고 소문 내면서 결혼을 시켰습니다. 우리 남편 자랑이지만 그 당시는 졸업학점도 좋았고 영어실력도 괜찮아 보였고, 직장은 안 간 거지 못 간 것은 아니라고 강변할 정도로 자신 만만하던 시절이었으니까 우리 아버지도 반할 만했거든요. 결혼식장에서 신부 예쁘다는 소리보다는 남편 잘생겼다는 소리를 더 많이 듣는 결혼식은 처음이었으니까요. 8년간의 연애는 꿈 많은 소녀에게는 참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남편 말에는 복종해야 한다. 남편은 똑똑하다. 남편은 영어회화실력은 누구 못지 않게 좋다. 추진력하나는 끝내준다 등등. 그래서 저도 열심히 남편 따라 공부를 해야 했고, 남편이 영어실력이 좋으면 아내는 일어실력이 좋아야 한다.는 지상명령에 따라 남편 군대간 사이 저는 열심히도 일본어 공부를 했습니다. '세계화를 외치면서!'
신혼여행도 많은 고민 끝에 우리는 일본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제가 우겼죠, 세계화해야 한다고. 그것도 10박 11일.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결혼식이 중요하지 않고 신혼여행이 중요했던 이유는 일본으로의 배낭 신혼여행. 보잘 것 없는 남편의 기를 팍 죽이고 주도권을 잡으려면 신혼여행지에서 잡으라는 선현들의 말씀을 되새기며 해외여행 그것도 신혼여행으로 제가 잘하는 일본어가 통하는 일본으로 10박 11일이나. 호호호. 이해를 돕기 위하여 남편은 백수니까 그렇다 치고 신부는 직장인 인데 하고 의아해 하실까봐 설명해드릴게요.
10박 11일은 신정연휴 3일에다 결혼휴가 일주일. 가장 중요한 건. 제가 없어도 별로 타격을 입지 않는 회사였으니까 그렇게 오래도록 휴가를 가도 부도 유예결정 같은 거 안 나고 버텼다는 사실! 참고 하시기 바랍니다. 어쨌든 일본에 도착을 했습니다. 제가 먼저 공항 외국 심사 대에 올랐죠. 일본어로 무언가를 물어보는데 영 감이 오질 않데요. 분명 젊은 여자가 화장을 짙게 하고(신부화장)있으니 술집에 일자리 구하러 오는 걸로 착각한 모양입니다. 멍하게 있으니까, 이번엔 영어로 "캔 유 스픽 잉글리쉬(영어할 줄 아세요)?"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전 남편을 불렀습니다. 남편은 아주 자신만만하게 대답했습니다.
"예스, 아이 캔 스픽 잉글리쉬(영어 하죠)."
이러한 남편의 모습에 전 속으로 '역시 백수라도 미래가 보여.'하고 생각했는데 뒤따라 들려오는 말 "티켓 플리즈."티켓을 달라는 거예요. 전 그때 생각했습니다. '티켓이 뭐지.?' 남편도 멍하니 저를 쳐다보더군요. 우리는 고민을 했습니다. 왜 하필 저와 남편의 머릿속에 그 당시 유행했던 영화가 생각났던지. 남편은 또 영어로 말했습니다.
"왓져 티켓(티켓이 뭐예요)?"
그 일본관리 역시 멍하니 쳐다보며 옆으로 비켜 쭈그리고 앉아 있게 하데요. 완전히 불법취업자 취급하듯이. 모든 사람이 입국심사를 통과할 때까지 우리는 그 문제의 티켓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온갖 상상을 다했습니다. 일본에서 한국의 지하철 표가 왜 필요하지, 극장표를 달라고 하는 건가, 일본에도 한국의 티켓이라는 영화가 상영 되었는가, 하며 해외여행이 처음인 신혼부부는 그렇게 다른 나라의 차가운 바닥에 않자 일본관리의 처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알고보니 티켓은 돌아올 항공권을 보여 달라는 거였는데. 남편은 입국 심사 대를 빠져 나오며 혼잣말로 말하더군요.
"비행기표를 보여달라고 하지 괜히 티켓을 달라고 해."
그렇게 우리는 일본에서의 신혼여행을 손짓 발짓으로 기차 안에서 심야버스에서 두 손을 꼭 잡고 잠을 자면서 행복해 했습니다. 티켓으로 영어실력이 들통난 남편의 기를 죽여가면서. 마지막으로 우리는 동경의 디즈니랜드를 갔습니다. 일본 국민성이 워낙 친절해서 그런지, 종업원들의 우리가 구경하려고 줄만 서면 "남매데스까? 남매데스까?"하는 거예요. 저는 싱긋 웃으며 "이이예, 부부데스, 남매가 아니고 부부예요." 했죠. "부부는 닮는다고 하는데 일주일 만에 우린 많이 닮았나봐. 남매냐고 묻는 걸 보면." 천생연분임을 과시하며 티켓사건도 잊어버리고 일본어와 한자는 같으니까, 또 어느 정도 일본에서 생활한 게 있다고 아주 자랑스럽게 '부부데쓰'를 외치고 다녔죠. 그런데 이상한 게 아주 친절하게 "남매데쓰까?" 하며 묻던 사람들이 "부부데쓰." 라고 대답만하면 모두 고개를 갸우뚱하는 거예요. 웃고 떠들며 우린 외국인인데 아는 사람도 없고, 전문용어로 익명성이 철저히 보장되는 사회에서 '부부데쓰'를 외치며 다니는데 웬걸 뒤에서 "저 한국에서 오셨어요?" 하는 소리가 얼마나 반갑던지, 외국에 나오면 다 애국자가 된다고 우리 동포를 만나 반가움에 손이라도 덥석 잡으려고 하는데, "저,아가씨. '남매데쓰까'는 몇 명이냐고 묻는 거예요." 하는 겁니다. 남편은 저를 보고, 저는 쥐구멍을 찾고, 그렇게 일본의 신혼 배낭여행은 끝이 났습니다. 5년이 지난 지금 2명의 아이까지 낳고 잘 살고 있습니다. 직장일로 9번정도 일본을 더 다녀왔는데 아직도 '남매데쓰까?'하면 '부부데쓰'가 엉겁결에 나옵니다. 남편도 그날 이후 살아 있는 영어공부를 한다고 뛰어다니더니, 좋은 직장을 구했고, 영어실력 보여주겠다고 해외여행 가자고 큰소리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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