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이 묻어나는 편지 - MBC 예술단 엮음
셋 - 사랑으로 풀어내는 웃음보따리
매일 적시는 남자 - 김수현(여.서울 강동구 상일동)
안녕하세요? 이종환 오빠, 최유라 언니! 한해를 마무리 하면서 뭔가 뜻깊은 일을 해야 되지 않나 하는 신의 음성과 가까운 제 내면 밑바닥에서부터 끓어오르는 절규를 들었어요. 늘 '웃음이 묻어나는 편지'를 들으며 웃음 범벅으로 지내면서 저도 그들만큼 절절한 사연이 있었지만 이건 보나마나 누워서 침 뱉는 격일텐데.. 하는 망설임 때문에 여태까지 속 좁은 제가 참아야지 하면서 지내왔지만 이젠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괘씸함에 이르렀기에 지상천하에 터트리고자 합니다.
이종환 오빠, 최유라 언니... 제가 연말 선물로 대형 세탁기랑 건조기를 사달라고 남편에게 졸랐습니다. 도저히 7킬로 세탁기로 두 인간이 제조해내는 세탁물로 감당할 수가 없는 지경에 다다랐기 때문입니다. 요즘 전자제품들 그렇게 쉽게 고장나지도 않고 A/S도 잘 되는데 왜 그러냐 하시겠지만 다 이유가 있습니다. 남편은 멀쩡한 세탁기를 왜 바꾸냐며 정신나간 여자 취급을 했습니다. 허구헌날 이불빨래를 돌리니까 제아무리 인공지능 세탁기라도 뭐 별수 있겠습니까? 입이 씨꺼워 말하기가 싫었습니다. 남편 기 죽일까봐섭니다. 문제는 올 한해 바깥일이 바쁘고 술이 잦은 남편과 20개월이 지나면서부터 밤에 유독 기저귀를 차지 않고 자려는 아이가 번갈아 가면서 세계지도를 그리죠. 결혼할 때 해온 그 많은 원앙금침만 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그게 멀쩡해서가 아니라 차마 버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성격들도 가지가지여서 여름에는 솜이불, 양털이불을 덮어야 잠이 오는 인간들입니다. 제가 오줌에 쩔어 고생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어린 아이들이 곤히 자다가 이불에 지도를 그린다면 이해하시겠죠. 하지만 다 큰 남자, 멀쩡한 애 아빠가 좀 피곤하고 하루의 삶이 힘들었다고해서 이불에다 실례를 한다면 두 분 이해하시겠어요? 전 정말 피곤해 죽겠습니다.보통 아파트 가정집에서 수도요금이 2-3만원 나온다면 이건 문제가 간단한 게 아닙니다. 신혼초, 자다가 이부자리가 축축해서 잠에서 깨어보니 이부자리가 흥건히 젖어있는 게 아니겠어요? 전 예민한 편이라서 화들짝 놀라서 불을 환하게 켜보고 확인해보니 한강이 범람한 수준이더군요. 자다 봉창 두드린다는 표현이 딱 어울렸어요. 잠을 곤해 자는 남자의 어깨를 흔들어 깨워서는 다 큰 사람이 정신이 나가지 않고서 한강을 만들어 놓을 수 있냐고 했더니 자기 팬티를 만져보고 이불을 들었다 놓았다 하더니 자기는 싸지 않았다는 겁니다.
얼마나 잡아떼던지요... 원래 남편은 말솜씨가 논리적이고 한 번 잡아떼면은 증거가 있어도 고개 흔드는 사람이라 좀 흥분을 잘하는 저는 늘 말싸움에서도 지곤 했습니다. 저도 인정이 있고 분별력 있는 여자이고 아내여서 사람이 그것도 공사다망한 남자이니까 살다보면 피곤해서 그럴 수도 있지 하며 이해한다는 말을 했지만, 남자는 제가 실수해놓고는 창피해서 남편에게 뒤집어씌운다며 도리어 큰소리치며 아니라는 겁니다. 그렇게 시치미 떼는 소리를 들어보니 남편을 믿고 사랑하는 저로서는 제 속옷도 젖었으니까 남편만을 의심할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분명 저는 그럴 여자가 아니었어요. 그후 남편은 가끔 무단방뇨하는 일이 있었지만 차마 남들에게는 밝힐 수 없는 저만의 비밀이었고, 남의 약점을 빌미로 싸우는 일은 양심상 자꾸 할 수 없는 일이고 해서 늘 모른 척하고 넘어가 줬습니다. 아픈 구석도 감싸주는 게 부부인데.. 하면서 말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어머니의 반응은 어떨까 싶어 말씀드려봤더니 글쎄 오죽하면 남자가 오줌을 쌌겠냐며 피곤해서 야밤에 아무런 제어능력 없이 쉬-한 아들을 애처러워 쯧쯧거리시기만 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피곤해서 싸는 거라면 밤마다 오줌 싸는 남자가 어디 한둘이겠는가 말입니다. 하-얀 솜이불의 겉커버를 벗겨내보면 눈 뜨고는 못 봐줍니다. 금가루를 뿌려 놔도 그 정도는 아닐 거예요. 냄새는 얼마나 야릇하고 오만가지 잡동사니 냄새가 나는지요. 일명 지린내-. 골통이 찌근찌근해지고 이가 갈릴 정도의 심한 악취.
두 분께서는 왜 더럽고 찝찝하게끔 냄새는 킁킁 맡고 그러느냐 하시겠지만 그게 제 특기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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