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이 묻어나는 편지 - MBC 예술단 엮음
둘 - 생활속에 피어나는 웃음안개
사우나 고스톱
이종환씨, 지금부터 형님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저도 코가 좀 크걸랑요. 하지만 형님께 비하겠습니까. 이해해 주십시오. 오늘 소개 드리는 글은 자랑스러운 제 친구들에 관한 겁니다. 지금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저와 제 친구들은 논두렁 정기가 아닌 산좋고 물좋은 소백산 정기를 받고 단양이라는 곳에서 태어났습니다. 이렇게 정기가 좋으니 인생이 얼마나 잘 풀렸냐구요? 아닙니다. 그냥 정기만 좋았습니다. 그런데 형님, 혹시 백수 생활 해보셨습니까? 없으시면 다음에 한 번, 오래는 마시고 일정기간 해보는 것도 꼭 낭비만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한 번 해보시기 바랍니다. 때는 지금으로부터 약 15년 전, 그러니까 저와 제 친구들이 국방의 의무를 마치고 사회 초년생으로 출발하기 직전, 일부는 취업을 하고, 대부분은 '단백련(단양 백수 연합회)'의 일원으로 있을 때의 사건입니다. 등장인물은 전투지원 중대 출신의 저, 수색대 출신의 장씨, 경비대 출신의 엄씨,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 특공대 출신의 지씨. 모두 4명입니다. 사건이 있던 전날 평상시와 다름없이 백수들이 뭐 할 일이 있겠습니까? 고돌이나 잡으면서 소주잔도 기울이면서 이렇게 취업이 안되는 것은 문교부 정책이 잘못돼서 그렇다는 둥 말도 안되는 핑계를 대면서 시간을 죽였습니다. 결국 그날 밤도 늦게 잤으니 다음날은 늦잠을 자고 11시에 다시 모였습니다. 그리곤 할 일도 없으니 사우나나 가자고 장씨가 제의를 했습니다. 백수들을 모두 아무 이의없이 목욕탕으로 갔습니다. 가보니 여름이라 그런지 다른 손님은 아무도 없고 그저 우리들 세상이었습니다. 샤워를 하고 있는데 장씨가 또 제의를 하더군요.
"야, 우리 아무도 없는데 사우나에 들어가서 고스톱이나 치자."
사우나에 들어가서 고스톱을 치자니, 거기가 어딥니까. 거기가 어딘데, 거기서 그걸 치자는 겁니까. 그런데, 하나같이 좋은 생각이라고 하면서 동의를 한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무식이 종점도 없는 고열'사우나 고스톱 경기'가 시작됐습니다. 형님, 사우나 안에서 고스톱 쳐본 적 있으십니까? 아주 절묘합니다. 없으시면 다음에 형님하고 맹씨하고 지금 밖에 있는 PD선생님하고 한번 도전을 해보십시오. 최유라씨는 미련이 많이 남겠지만, 아직 우리나라에 남녀 혼탕이 없잖습니까. 억울하지만 좀 참아주십시오. 게임의 조건은 체력으로 못 버티고 사우나 밖으로 나가는 사람이 해장국과 저녁때 소주를 사는 것이었습니다. 처음 15분 동안은 정말 재미있게 쳤습니다. "야, 대한민국에 사우나 안에서 고스톱 친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고 그래." 요렇게 객기를 부렸습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있는 거라곤 시청앞 분수대밖에 없는 놈들이 사우나 안에서 땀 삐질삐질 흘리며 신문지 깔고 고스톱 치는 모습을요. 정말 가관이었습니다. 형님,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못한 상황에서 돈을 따면 어떻게 보관해야 하는지 아십니까? 우선 지폐를 따면 앞가슴에 한 장 붙입니다. 또 따면 배에다 붙입니다. 많이 따면 어떻게 되냐구요? 어떻하긴 어떻합니까. 분수대에도 붙여야죠. 동전은 이마에다 붙이면 확실합니다. 절대 안 떨어집니다. 그러나 20분이 지나자 온몸에 열은 올라가죠, 화투는 땀에 젖어 잘 쳐지지도 않죠. 그래서 다시 합의를 봤습니다. 고스톱은 3명이 치니까 광을 팔거나 죽은 사람은 나가서 찬바람을 마시고 들어오기 말입니다. 그런데 재수없는 놈은 되는 게 없었습니다. 다들 교대로 나갔다 오는데 오늘의 주인공인 지씨만 사우나 제일 안쪽에 앉아서 계속 나가질 못한 겁니다. 왜냐구요? 지씨는 용감하게도 계속해서 1등을 하고 있었습니다. 3점, 5점, 나가리, 또 3점. 이런 식으로 점수가 나니 죽을 수도 광을 팔 수도 없었습니다. 지씨의 얼굴은 사색이 되어갔습니다. 호흡은 점점 거칠어지고, 땀은 비오듯하고 온몸에 붙어 있던 돈들도 다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오로지 악으로 버티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잃은 놈들은 따겠다고 그냥 버티고 있었습니다. 그때, 구세주가 한 분 나타나셨습니다. 다름아닌 목욕탕 주인아저씨였습니다. 보통때 같으면 20분이나 30분 만에 나오는 놈들이 1시간이 돼도 안 나오니까 궁금해서 들어온 겁니다. 그랬는데, 탕 안에 아무도 없으니까 이상할 거 아닙니까? 사우나를 보니 사경을 헤매는 놈들이 몸에다 돈을 붙이고 고스톱을 치고 있으니 정말이지 백수 같은 놈들이라고 욕을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끌려나온 우리들은 바로 탕바닥에 댓자로 뻗어버렸습니다. 그렇지만 그 다음날 저녁 우리들은 또 모였습니다. 인원 점검을 해보니 특공대 출신의 지씨가 안 나온 겁니다. 전화를 했더니 병원에 입원했다고 하더라구요.
"짜식 특공대 출신이 그 정도 체력밖에 안돼!"
청취자 분들은 이렇게 얘기하시겠죠. 하지만 우리의 지씨는 그 정도밖엔 안됩니다. 우리 동네 특공대 출신이거든요. 마지막으로 형님, 명퇴 조퇴 황퇴가 횡횡하는 요즘 백수 여러분들께 너무 조급해 하지 말고 참고 기다리면 분명히 좋은 날들이 있을 것이라는 말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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