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이 묻어나는 편지 - MBC 예술단 엮음
둘 - 생활속에 피어나는 웃음안개
그래, 나는 초보다 - 이순연(여. 대전시 대덕구 법2동)
지금으로부터 8년 전의 일입니다. 운전면허증이 뭔지... 일상생활의 필수라는 둥, 지금 안따면 어렵다는 둥, 온갖 이유를 대며 법석을 떨었다는 거 아닙니까. 다리도 짧고 뱃살이 많아 운전하고는 거리가 멀다고 비아냥거리는 남편에게 보란 듯이 낙동강 오리알을 거듭, 또한 여덟번 만에 눈물어린 면허증을 저의 패스포드에 끼워 넣었지요. 그 날의 감격은 팔일오 광복절을 압도하고도 남았습니다.
"흥, 주민등록증 한 개 더 만들고 뭘 그리 좋아하고 그래."
남편의 말이 김샜지만 어디 그게 주민등록증으로 보입니까? 자고로 지금도 낙방을 밥 먹듯이 해서 얼굴이 노랗게 돼버린 사람들이 그렇게 갖고 싶어하는 '자동차 운전면허증'이라는 거 아닙니까. 친구들하며 동네방네 자랑을 하고 당장 차 끌고 다닐 듯이 호들갑을 떨었지요. 그런데 현실은 저의 환상과 착각을 긴 한숨으로 내뿜어 버리더라구요.
"나 면회갈 일 없으니까 운전대 만질 생각도 말어."
면박주는 남편이 얄미웠습니다. 옆집에 나보다 더 뚱뚱한 송이엄마도 하는데 나라고 못하냐, 당장 연수등록을 하고 운전을 배우겠다고 부산을 떨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휴일이었어요. 간밤에 남편을 살살 꼬여 운전 한번 해 보자고 했지요. 그래서 남편을 옆에 태우고 도로로 나섰습니다. 남편의 오른발이 브레이크 밟듯이 힘이 들어가며 들썩들썩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더니 이내 얼굴이 탈색이 돼가고 꼴깍꼴깍 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갑자기 앞차와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스톱'소리를 지르기에 팍 서버렸지요. 유리에 박치기를 한 남편은 죽으려고 환장했다느니, 그렇게 둔해가지고 무슨 운전을 하냐느니 성질을 내면서 그렇잖아도 긴장하고 있는 절 주눅들게 하더라구요. 내 참 치사하고 아니꼽고 더럽고 매스꺼워서 당장 내려 차를 뻥 차고 싶었지만 '고진감래' 문자가 뇌리를 스치면서 '인내'라는 두 글자를 가슴에 새겼습니다. 한 두어 시간 진땀을 빼고 구박만 잔뜩 먹고 돌아왔지요. 남편의 말투가 은근히 화가 나더라구요. 주방에서 요란스럽게 그릇을 씻으며 화풀이를 했습니다. 그런 저의 등을 향해 남편은 일장 연설을 하데요.
"이 사람아, 자동차 운전이 전자오락인 줄 알어? 사고를 내 본 사람이 운전을 잘하지만 그렇다고 사고를 낼 순 없잖아. 아까 같은 경우는 조금만 늦게 브레이크 밟았으면 범퍼 물어 줄 뻔했어. 운전은 경력이야. 경력은 곧 경험이고. 아슬아슬한 순간들이 다 재산이 되니까 그런 상황이 되면 조심하란 말야. 차라는 것은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세우는 것이 더 중요하단 말야. 그리고 내가 초보운전 써 줄 테니까 차 뒤에 붙이고 다녀."
그러더니 도화지에 정성들여 글씨를 쓰더라구요.
'초보운전(출발시 말처럼 펄쩍펄쩍 뜀)'
"아니, 이런 걸 어떻게 붙이고 다녀요?"
"다 생각해서 써주는 거야. 초보의 결함을 구체적으로 써야 다른 차들이 협조를 해 주지. 잘 될 때까지 붙이고 다니고 그거 안 붙이려면 차 만지지 마."
"치사하고 더러워서 나도 차 한 대 장만할까 보다."
그러나 국가적 차원에서 아니 가정경제 차원에서 우리집 거덜날 것 같아 할 수 없이 좀 창피했지만 붙이고 다녔습니다.지나가는 차들이 웃느라 정신이 없고 교차로 신호대기 때는 다를 멀찌감치 서더라구요. 남편은 일주일 정도 지난 다음 또 하나를 써 주더군요.
'초보운전(앞 보기도 바빠! 백미러 있으나마나!)'
나 원 참! 갈수록 태산이네요.
"기가 막혀! 날 뭘로 아는 거야. 이거 너무 무시하는거 아냐. 자기는 엄마 뱃속에서부터 운전 잘했어? 그래 난 앞만 보기도 바빠서 백미러 없어도 된다 왜?"
'나 운전 안해'하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꾹 참고 또 다시 붙였습니다. 그걸 붙이고 다니는데 동물원 원숭이 구경하듯 낄낄거리며 웃더라구요. 신호대기중이었어요. 택시가 다가오더니 그 기사는 우스워 죽겠다며 이러는 겁니다.
"백미러 필요없으면 저 줘요."
택시 안에 있던 손님들이 배꼽을 잡고 웃더라구요. 그리고 또 제가 다리가 짧다보니 의자를 바짝 당겨 앉아 있었습니다. 핸들을 꼭 껴안고 고개를 꼿꼿하게 앞만 주시하는 초보모양새 말입니다. 그렇게 되니까 핸들이 배에 닿더라구요. 그 옷 부분이 보푸라기가 일어났겠지요. 그걸 보고 남편은 '구멍나기 전에 가죽을 대'라고 놀려 대지 않겠습니까. '그래 놀려라. 나는 오직 고진감래라는 신조 아래 인내로 버티고 산다.' 남편은 망신을 톡톡히 줄 작정이었는지 또 한 가지 써주었습니다.
'초보운전(옆에서 불러도 안 들림)'
정말 미치고 펄쩍 뛰겠더라구요. 내가 이렇게까지 수모를 당하며 운전을 배워야 되나 싶더라구요. 한 번은 급히 정지하느라 시동이 꺼졌는데 그것도 모르고 출발하려니 차가 움직여야지요. 뒤에서는 빵빵거리며 야단이지요, 정신이 없더라구요. 그래서 또 써 준 것이 있습니다.
'초보운전(시동이 켜졌는지 꺼졌는지 잘 모름)'
이래저래 갈 때까지 간 망신. 이젠 망신 불감증에 걸려 신경도 안쓰였습니다. 제 생각엔 어느 정도 운전 실력이 느는 것 같았고 제법 초보티를 벗는 것 같았어요. 그래도 남편은 못 미더워서 신경을 엄청 쓰더군요.
"당신말야, 갈수록 겁없이 운전하는데 겁이 많은 사람이 조심하더라구. 당신 그런 식으로 했다간 큰 코 다쳐. 마지막으로 하나 더 붙이고 다녀."
'초보운전(뵈는 게 없음)'
짓궂은 남편 배려에 초보를 무사히 졸업했습니다. 남편은 제가 운전하고 다니며 욕 먹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나요. 여성 운전자를 눈꼴시럽게 보는 한심한 세태에 그렇게 보는 편견을 꼬집듯이 또 한 장이 굴러다니더군요.
'초보운전(밥 해놓고 나왔음)'
지금은 속도도 낼 줄 알고 개구리 올챙이 적 모른다고 지나가는 초보들을 비웃는 저를 발견한답니다. 친구들이 운전을 배운다고 하면 선생님인 양 떠들기도 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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