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이 묻어나는 편지 - MBC 예술단 엮음
둘 - 생활속에 피어나는 웃음안개
우리 엄마 누가 좀 말려줘요
저는 빛고을 광주에 사는 김용석이라고 합니다. 8남매 중의 막내가 나이가 서른이 다 되어 대학에 입학하고 중간에 휴학을 한번. 그래서 결국 지난 2월 10일 서른 넷의 나이게 졸업을 한 노총각입니다. 그러다보니 본의 아니게 홀로 계신 어머니께 불효막심한 막내자식이 되었고 혼자 사는 것이 늘 마음에 걸려 가끔 저에게 전화를 하곤 하십니다. 그런데 지난 가을 무렵의 일입니다. 그 무렵엔 졸업논문 준비로 자정을 넘겨서 들어오는 경우도 많고 해서 자동응답기를 설치해 놓았지요. 어느 날 저녁 늦게 우중충하고 총각냄새가 가득한 방 안에 들어오니 자동응답기에 누군가 메시지를 남겨 놓았더군요. 그래서 응답기의 메시지를 들어보던 저는 그만 까무러칠 뻔하고 말았습니다. 이유인즉, 저희 어머니는 제게 전화를 하셨는데 생전에 자동응답기를 사용해 보신 적이 없으셨으니 얼마나 답답하셨겠어요. 그날은 더욱이 마을 잔칫집에서 약주까지 한잔 하신 상태로 전화를 하셨던 모양인지, 온통 욕으로 도배를 해 놓으신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어머니가 하신 얘기는 이랬습니다.
신호가 몇 번 울리더니 전화받는 소리가 들리고, 제 목소리가 들리더랍니다. "(자동응답기 인사말에)예... 들꽃나라입니다. 저는 지금 외출 중이오니 남기실 말씀이 있으시면..."
"용석아! 엄마다."
말씀을 하셨는데 저는 어머니 말씀과는 전혀 상관없이 자기 말만 계속하더라는 겁니다.
"용석아 엄마당께... 왜 니 말만 혀...?"
그래도 제가 계속 제 말만 하더니 삐 소리가 나고 아무말도 없더랍니다. '이 녀석이 다른 일을 하던 중이었나보다...' 어머니는 이렇게 생각하시고 한참을 기다렸는데도 제가 아무 소리가 없자 답답해지셨답니다.
"용석아... 엄마여... 엄마당께. 왜 말을 허다 말어... (조금 소리를 높여서) 나여, 엄마여... 엄마당께... 아, 우리 막둥이 아녀? 문딩이... 썩을 놈... 어째서 말을 안혀... 아, 막둥아! 왜 말을 허다가 끊어부러.... '삐'가 머시여... 먼 소린지 알아듣도 못허것고 죽것구만... 얼렁 대답 안혀...? 망할 것... 인자 대답도 안허네... 냅둬부러. 문딩아, 인자 니한테는 전화도 안 할랑께." 하시면서 전화를 끊으신 것이었습니다.
동네 분들과 약주를 조금 하신 후에 막내아들이 생각나셨고, 여러 번의 시도 끝에 통화를 성공하셨는데 자동응답기가 받은 후 아무말도 없으니 화가 나실 만도 하지요. 그런데 또 이 여러 번의 시도란 무엇이냐? 저희 어머니는 연세가 드셔서 눈도 어두워지신 데다가 약주까지 한 잔 하셨기 때문에 큰 글자로 적어드린 전화번호를 보고 다이얼을 늦게 누르시기 일쑤였습니다. 전화번호를 잘 못 누르면 '지금 거신 전화는 없는 국번이오니...'하면서 안내말이 나오지요. 어머니는 분명히 한자 한자 확인하고 거신다고 거셨는데 그 소리가 나오니 어이가 없고 황당하셨겠지요. 첫 실수 때는 이랬습니다.
"문딩이 가시네. 우리 막둥이 집 걸었는디, 무엇이 없는 번호여..."
두 번째 실수에는 이랬답니다.
"아 우리 용석이 집에 전화혔는디, 어째 니가 나와서 그려... 처녀가 우리 막둥이 애인이여?"
"뚜- 뚜- 뚜-."
"여보쇼... 거그 우리 용식이 집 아니여?"
"뚜- 뚜- 뚜-."
"음마, 전화가 염병 허든갑네. 어쩌이려 전화가?"
어머니와 관련된 사건은 이 것 만이 아닙니다. 지금부터 4년 전. 저는 이 곳 광주에 있는 극단에서 연극을 한 적이 있는데 제가 연극을 한다니까 둘째 형님께서 어머니를 모시고 연극관람을 오셨습니다. 어머니는 연극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시골에서 '굿'과 같은 것으로 생각하고 오셨는데, 이 연극이라는 것이 조명은 괜히 켜졌다 꺼졌다 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으시거니와 당신이 낳으시고 키우신 제가 연기라는 것을 하고 있으니 도무지 시큰둥해져서 흥미가 일어나지 않으신거지요. 그래서 어서 집으로 돌아가 키우는 개 밥도 주고, TV 연속극이나 보는 쪽이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여담이지만 어머니께서는 서울이나 어디 멀리 출타를 하시게 되면 그 개밥 때문에 어서 돌아가시지 못해 안달을 하신답니다. (이건 비밀인데, 어머니께서는 당신이 기르신 개이면서도 여름에는 멍멍탕을 무지 즐기시거든요...) 아무튼 공연 중 흥미를 높이기 위해 중간에 장터 장면에서는 배우들이 객석까지 드나들며 엿이며 전통과자를 팔기도 하고, 무대 위 주막에서는 나이 드신 분들에게 막걸리도 한 잔씩 팔기도 했는데, 평소에 막걸리하면 주무시다가도 일어나실 정도인 어머니께서는 '이게 왠 술이냐'하시며 막걸리를 맛있게 드신 것입니다. 장터 장면은 끝나고 다시 연극은 시작되고 무대의 조명은 어두워지고 모두 숨을 죽이고 집중하고 있는데 아니 이게 왠 일입니까? 갑자기 무대와 객석이 환해진 것입니다. 무대 뒤에 있던 나머지 배우와 스탭들은 화재가 났다며 온통 비상이 걸렸습니다. 조명실에 인터폰으로 연락을 하는가 하면 소화기를 가지러 가는 등 야단이 났습니다. 오! 그런데 이게 뭡니까? 도대체 이게 어찌 된 일이란 말입니까? 오, 하늘이시여! 다른 사람도 아닌 우리 엄마가 세상에 울 엄마가... 장터 장면에서 막걸리를 한잔 드신데다 지루하기도 해서 담배가 한 대 생각이 간절하시던 차에, 극중에 배우들이 담배를 피우는 장면이 나오자 당신께서도 '옳지... 담배를 태워도 돠는구나'하시며 한 대 태우실 양으로 담배를 물고 라이터를 켜신 거지요. 우째 이런 일이... 곁에 앉아 있던 형님께서는 사태의 심각성을 직감하시고 황급히 담배를 빼앗아 껐지만, 장내는 온통 웃음바다가 되고 말았습니다. 공연분위기는 어수선해지고 전 얼굴을 들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운명의 여신이 하는 장난은 그 것으로 충분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겨우 분위기가 수습되고 공연이 다시 무르익을 무렵이었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있던 다섯 살 조카녀석이 갑지기 오줌이 마려워진 것입니다.
"할머니, 오줌 마려워요..."
"곧, 끝난께 조깨만 참그라..."
"할머니 오줌이 막 나오려고 그래 못 참겠어요."
"그럼 오줌 나오지 말라고 꼬추 끝터리를 꼭 잡고 있어부러라."
하셨으니 어찌 되었겠습니까? 곁에 있던 관객들이 일제히 폭소를 터뜨리고 만 것입니다. 물론 공연이 끝나갈 무렵이기는 했지만 이제 분위기는 완전히 산만해지고 말았습니다. 연극은 제가 맡은 역할이 죽음으로써 끝나는데 제가 연기가 제대로 될 리가 있었겠어요? 어떻게 연기를 했는지도 모르고 그냥 빨리 시간이 자나기만을 바랄 수 밖에요. 마지막 죽는 연기도 평소에 누워서 죽다가 그 날은 엎드려서 죽어야 했다는 거 아닙니까? 저희 어머니 정말 별난 분이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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