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이 묻어나는 편지 - MBC 예술단 엮음
둘 - 생활속에 피어나는 웃음안개
새댁, 니 봤나? - 문상자(여.부산광역시 동래구 안락2동)
저는 지금으로부터 약 16, 7년 전에 있었던 얘기를 들려 드릴까 합니다. 저희는 결혼한 지 3년 만에 조그마한 가게 하나, 방 하나, 부엌 하나가 딸린 집을 세 얻어 장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가게를 어렵게 얻어서 들어가고 보니 한 건물 안에 저희처럼 생긴 가게가 여섯이나 되었어요. 닭집, 횟집, 칼국수집, 건재상, 그릇 가게, 건어물 가게, 그런 것 중에서도 네 집은 부인들이 전부 연령이 저와 같은 또래였어요. 한 지붕 여섯 가족에 아이들끼리 싸움도 잦았지만그런 아이들 때문에 생긴 일들은 그래도 서로 이해하며 잘 견뎠어요. 오히려 심각한 문제는 연탄창고 문제, 화장실 문제, 마당청소 문제, 쓰레기 문제, 전기세 문제 등등이었지요. 먼저 연탄창고 문제부터 말씀드릴게요. 50장씩 넣으면 6집이 다 넣을 수 있는 연탄창고에 어느 한 집이 100장이라고 넣으면 한집은 자리가 없게 되죠. 그것까지는 좋았어요. 어떨 땐 연탄이 없어졌다는 거예요. 그러면 전부 나와서 숫자 세어 가면 집집마다 연탄 숫자를 헤아려 각자 고유의 표시를 하는 거예요. 일자니 열 십자니 하며.... 한번은 연탄창고 제일 안쪽 좋은 자리에 있던 사람이 이사를 나가면서 서로 그 자리를 잡으려고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죠.
그리고 공동 화장실 문제. 청소는 늘 하는 사람만 해요. 아예 6개월, 1년 동안 이사 나갈 때까지 화장실 청소 한번 안하고 나가는 사람도 있었어요. (그 땐 6개월이나 1년이 계약기간이었어요.) 그 다음 전기세 문제. 지금은 건물 안에 여러 가구가 거주하면 집집마다 계량기를 부착하지만 그 땐 한 건물 안에 하나씩. 그러다 보니 대충 누구 집은 전구가 몇 개니 얼마, 늦게까지 장사하니 얼마, 다달이 말썽이었어요. 그 말썽은 요금을 안 내려고 하는 게 아니라 조금이라도 적게 내려고 하다보니 생긴 거라지만, 전기세 걷는 이층에 사는 주인은 아예 자기 집은 전기세를 내지 않더라구요. 그래도 세 들어 사는 죄로 모두들 말 못했어요. 그럭저럭 싸우며 이해하며 이사 온 뒤 한겨울을 지내고, 초여름 어느 저녁 무렵 바로 문제의 그 날을 말씀드릴게요.
문제 중의 문제, 그것은 수돗물이었어요. 물이 잘 안 나왔거든요. 부엌은 전부 재래식이었습니다. 수도꼭지는 한 개, 마당에 놓인 하나의 꼭지에 여섯 가구가 번갈아가며 순서대로 물을 받아 썼어요. 지금이야 수돗물이 안 나오면 며칠 전에 TV나 라디오 방송 혹은 신문에서 미리 알려주지만 정말 그 땐 예고 없이 물이 이틀 사흘씩 안 나오는 게 허다했어요. 그러니 집집마다 물을 받는 갈색 고무물통은 필수품이었죠. 사건의 그 날도 아침에 우리 차례가 되어서 받는데 물통에 절반쯤 받았을까, 물이 졸...졸...졸 조금씩 나오더군요. 그래서 한통 받을 수 있을까 걱정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물이 뚝 끊기더라구요. 그래서 대충 기저귀랑 빨래들을 물을 최대한 아껴서 한 후, 곧 나오겠지 한 것이 하루도 아니고 이틀째 물이 나오질 않는 거예요. 우리는 기저귀 때문에도 걱정이었지만 식당, 통닭집들은 물 없으면 난리 나잖아요. 모두 물 때문에 전전긍긍하며 아랫집에서 조금씩 얻어다 쓰며 이제나 저제나 수도꼭지만 바라보게 됐지요.
드디어 사흘째 되는 날. 그 날도 밤까지 물 걱정하면서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있자니 어찌 그리 잠은 쏟아지는 지요. 앉아서 꾸벅꾸벅 하는데 앗! ‘쏴아- 주르르륵.’ 물소리가 콸콸 나는 겁니다. 그 소리에 저는 “물이다.” 하고 아기를 방바닥에 눕히고 “아줌마, 물 나와요. 수돗물.” 하면서 벽 하나 두고 살고 있는 옆집 아줌마를 부르니 그 아줌마도 “물이 나와?” 하면서 뒷마당으로 나왔고, 다른 집 아줌마들이 순식간에 우르르 나왔어요. 얼마나 반가웠는지.... 그런데 우르르 뛰어나왔던 여섯 아줌마들은 눈이 튀어날올 기막힌 상황에 직면한 겁니다. 이른 오후부터 통닭집에서 맥주 한잔 하고 닭 한마리 드시고 거나하게 취하신 손님 한분이 화장실을 물으니 뒤쪽 마당에 있다고 가게 아줌마가 가르쳐 줬는데, 이 양반 화장실은 못 찾고 꺼진 연탄에 얹혀 있던 구멍난 양은 양동이에 실례를 한 거예요. 양동이에 물 버리면 소리가 좀 큽니까? 그 소리가 '쏴아- 주르르륵!'하고 날 수밖에요.
그런데 아줌마들이 "물이다." 하고 여섯 명씩이나 막 뛰어나오니까, 실례를 하던 그 아저씨가 더 놀라셨습니다. 그리고 아저씨는 당황에서 돌아서다가 구석에 파놓은 조그마한 시궁창 맨홀에 한쪽 발을 빠뜨리고 말았어요. 소변은 멈출 줄 모르고 계속 흐르고(?) 한쪽 발은 시궁창에 빠지고.... 아저씨는 도망도 못 가고 그렇다고 옷도 못 추스르고 정말 황당해 하더라구요. 우리 역시, 그 아저씨를 붙잡아 드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 판단이 안서고 눈을 어디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더라구요. 그렇다고 잡아드릴 수도 없었어요. 왜냐구요? 글쎄요.... 그날 저녁 가게 문을 닫을 무렵 연세 약간 드신 횟집 아줌마 왈,
"새댁, 니 봤나?"
"뭘요...?"
"하하, 호호."
그날 이후 며칠 동안 우리들은 눈만 마주치면 웃었고 혼자서 밥하다가도 비실비실, 빨래하다가도 비실비실 웃었습니다. 지금은 모두들 뿔뿔이 헤어져 잘살고 있지만 가끔은 그때가 그립네요. 곤롯불에 시커멓게 그을린 냄비...등등 모두가 추억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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