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이 묻어나는 편지 - MBC 예술단 엮음
둘 - 생활속에 피어나는 웃음안개
앞과 뒤의 엄청난 차이.
전 30대 중반의 여성입니다. 아울러 안양시 여성의 건강을 책임지고 에어로빅 지도자의 길을 가고 있기도 합니다. 눈치 빠른 분은 벌써 헬스복 차림의 여자를 떠올릴지도 모르겠군요. 그렇습니다. 저희 체육관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들려 드리려 합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누구라고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저와 같은 건물에 사는 사람이라고도 밝히지 않겠습니다. 지난 겨울 어느 날, 저녁 수업이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평소 잘 알고 지내던 그분이 문을 열고 들어오셨습니다. 그분은 마치 여자 마피아 의상이었어요. 검은 코트를 팔도 끼우지 않은 채 걸치고 있었고 코트 자락 밑으로는 헬스 스타킹과 하얀 운동화 차림이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저분도 미리 옷을 입고 오셨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집이 가까운 분들은 와서 옷을 갈아입지 않고 미리 입고 오시곤 했습니다. 어쨌든 그분은 우아하게 코트를 벗고 맨 뒤쪽에 섰고 저는 수업 중이었으므로 거울 속에 비친 그분에게 눈인사나 하려던 순간 저는 그만 입을 쩌억 벌리고 말았습니다. 왜인지 밝혀야 하는 제가 쑥스럽네요. 글쎄 푹 패인 헬스복 앞자락 사이로 두 젖가슴이 다 쏟아져 나와 있는 게 아니겠어요? 자세히 보니 헬스복의 앞과 뒤를 바꿔 입고 있었어요. 원래 헬스복이란 것이 수영복과 비슷해서 등이 많이 파여 있는 게 기본형인데 그것을 돌려 입은 거예요. 검정색 헬스복은 하얀 피부와 형광등 조명 아래 더욱 검게 돋보였습니다. 헬스복의 가장자리는 고무줄 처리가 되어 탄탄히 누르고 있어 처음에는 거의 가슴의 정상부분까지만 노출이 되었는데, 그 가장자리가 누르고 있는데다 마구 흔들어대는 바람에 조금씩 조금씩 밀려 급기야는 완전히 쏟아져나올 지경이었습니다. 거기에다 오늘 처음 오셨으니 잘 되지도 않는 동작을 단단히 각오라도 하고 오신 듯 상.하.좌.우로 열심히 흔드는 거예요. 상상이 되십니까?
다음 순간 저는 어찌해야 이 난관을 처음 나온 분에게 무안을 주지 않고 넘기나 하는 생각을 했지요. 그 동안에도 그분은 열심히 뛰고 있었습니다. 그런 모습이 사방이 거울로 둘러싸인 곳에서 오래 감춰질 수는 없었지요. 초보자들은 얼마간은 거울을 정면으로 바라보지 못합니다. 거의 벗다시피한 모습으로 다른 사람과 공개된다는 게 쑥스러워서인가봐요. 그런 까닭에 그분은 자신의 가슴팍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 반란은 눈치도 못채고 열심히 제 동작을 쫓아 하고 있었습니다. '안되겠다. 가서 얘기해 줘야지.' 하고 제가 그분 쪽으로 걸어가는 것과 동시에 체육관 안은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습니다. 처음에는 입술을 깨물며 참던 회원들이 풋!풋!하는가 싶더니 급기야는 털썩 주저앉는 사람, 거울에 기대어 몸부림치는 사람, 마루를 내려치는 사람, 모두 눈물을 닦아내며 웃어댔습니다. 사정을 뒤늦게 눈치 챈 뒤 그분은 이러더군요.
"집에서 입고 거울을 보면서 헬스복이 야하다는 말만 들었는데 야하긴 진짜 야하네. 이게 무슨 망신이야."
그날 이후로 저녁반 회원들은 그분만 나타나면 웃음을 참아내며 그분의 옷차림을 몰래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그러던 며칠 후 어느날, 그날도 그분은 검은 코트를 걸치고 들어왔고 밤무대 댄서처럼 벗어던지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더욱 빨리 뒤집혔습니다. 또 다시 체육관 안이 숨이 넘어갈 듯한 웃음과 몸부림으로 들끓었습니다. 이번에는 아랫도리에서 일이 벌어졌습니다. 헬스복 중에는 외국 모델들이 많이 입는 아슬아슬한 비키니 수영복 같은 것이 있습니다. TV에서 세계 에어로빅 대회 같은 데서 선수들이 즐겨 입기도 합니다. 엉덩이 쪽은 1.5cm 쯤 되는 하얀색 가느다란 띠로 처리된 헬스복이지요. 오늘은 그 팬티의 앞뒤를 바꿔 입은 것입니다. 회원들은 이번이 두 번째인데다 이젠 안면도 생겼고 해서 이번에는 아예 처음부터 까놓고 웃어댔습니다. 장미꽃 한송이가 가슴에 활짝 핀 흰 탑을 받쳐입고 아랫도리는 1.5cm 가량의 가느다란 흰 끝이 묘하게 중앙을 가로지르고 있었습니다. 그러했으니 양옆으로 어지럽게 흩어진 검은 무엇인가를 고탄력 스타킹만으로는 가릴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지난번 모습까지 떠올리다 보니 저조차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나중에 들어보니 그분은 지난번 일을 만회해보고자 헬스복 매장에 가서 예쁘면서 야한 옷으로 달라고 졸라 몸매에 무리인 줄 알면서도 초보자들은 감히 입을 수 없는 문제의 그 원라인을 사다가 앞뒤 바꿔입은 것입니다.
에어로빅은 다들 잘 아시다시피 90% 이상이 다리를 벌리고 하는 동작입니다. 오랫동안 상상하지는 마세요. 사실 이 내용이 방송불가가 될까봐 걱정했는데 며칠전 치질로 고초를 겪게 된 동네 아저씨 얘기를 해주신 어느 분 편지에 용기를 얻었습니다. 사실 제 편지의 내용은 위치상으로 볼 때 항문보다는 덜 은밀한 곳에 있지 않습니까? 다시 얘기로 돌아갑니다.
그 상황이 더욱 우습게 된 것은 그분이 이번에는 당당하게 맞섰다는 겁니다. 뭐가 잘못이냐는 거지요. 다 알고 있는 이유를 혼자만 몰라 하더니 결국 나중에야 하시는 말씀이 더 걸작이었습니다.
"앞 동네가 좀 쑥스럽기는 했지만 팬티란 무조건 앞쪽이 좁고 뒤쪽이 넓은 것 아니야?"
이겁니다. 그러나 사실을 아시고 난 후 울상을 지으시며 말하더군요.
" 왜 헬스복과 수영복만이 예외여서 내게 이런 수난을 겪게 하느냐!"
그리고 그분은 그날 이후로 날마다 맨 먼저 와서 제게 복장 검사를 마친후 운동을 하게 됐답니다. 덕택에 지각하는 습관을 고치게 됐지요. 이 방송을 들으시는 분들 중에 에어로빅을 시작하시려는 분이 계신다면 제가 감히 충고 한마디 하지요.
"헬스복 예쁘다 방심말고 입은 옷도 다시 보자."
그럼 계속해서 즐겁고 유익한 방송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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