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이 묻어나는 편지 - MBC 예술단 엮음
둘 - 생활속에 피어나는 웃음안개
초보는 역시 초보야
운전면허증을 따고 운전이 하고 싶어 미칠 것만 같은 중독증에 걸려 신랑에게 애원하고 사정해도 위험하다는 이유로 차에는 손도 못대게 하고 운전수 옆 조수석 자리에만 앉혀놓기를 3개월째. 무지무지 속이 상했습니다. 그 인간은 운전하고 싶어하는 저의 간절한 열망을 무시한 채 지 혼자 잘도 하데요. 그 차는 제가 돈을 더 내서 산 건데.... 운전대도 못 잡아보게 하고, 추접더럽게 운전석에 앉아 운전대만 만져도 천원을 받는 그런 비열한 인간이 바로 저의 신랑이랍니다. 한번은 운전을 가르쳐 준다기에 콧노래까지 부르며 꿈을 잘 꾸었다고 몇 번이나 생각하며 운전을 했지요. 잘 간 것 같더구만 이놈의 웬수는 저보고 멍청이라 하지를 않나, 칭찬은 못해줄망정 "너는 안되겠다. 너무 못한다. 나는 내릴랑께 니 혼자 하고 가라."면서 무시하지를 않나, 좌측 깜빡이를 넣어야 하는데 안 넣고, 좌측으로 끼어들 때면 대번 깡통 깨지는 소리가 난답니다.
"너 죽을라고 환장을 했냐?"
너무나 비열하게 저의 자존심마저 깡그리 밟아버리지 뭡니까. 속으로 더러워서 못 배우겠다를 연신 외치며, 그래도 참자, 참아야 한다를 수도 없이 외치면서 참았습니다. 그치만 전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신랑한테는 더러워서 못 배우겠더라구요. 혼자 몰고 다니면 다녔지 신랑에게 배울 건 못 된다 생각했지요. 전 다시는 신랑에게 안 배운다 결심을 했고, 신랑이 없는 날 무조건 몰고 나갈 계획을 밥만 먹으면 세우곤 했답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요. 신랑 직원 어머님이 돌아가셔서 술을 마시고 새벽에야 들어올지 모른다며 일찍 들어와 차를 두고 갔지 뭡니까. 오늘이 하늘이 내려주신 절호의 기회라 생각하며 시장에 김칫거리랑 반찬거리를 사러 가기로 결심했고, 어째 맨정신으로 운전대를 잡는 게 겁이나 소주 2잔을 연거푸 마셨습니다. 역시 소주의 위력은 대단했습니다. 소주를 마시니까 너무너무 좋았어요. 기분은 죽여주고 뭐든지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요. 운전대를 잡기 위해 떨어야 하는 것도 소주 때문에 차분하게 잡을 수 있었고, 1단 기어를 넣고 출발할 때도 술 안 먹고 할 때보다 더 스무스하게 잘 빠져 나가고, 이건 어찌된 건지 두려움이란 손톱만큼도 없고, 되레 자신만만해지기까지 하더라구요.
"운전 흥, 뭐 아무것도 아니구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어렵더니 며칠 사이에 금방 느는구만. 뭐 운전처럼 쉬운 것도 없네. 애게애게 아무것도 아닌데 유세하기는. 아이고 더럽다, 더러워. 흥 그래 너 두고 보자. 여자가 운전하기만 하면 차분하게 남자보다 몇 배 더 잘한다더라. 조금만 기다려라. 비열한 인간, 너를 태우고 드라이브시켜주마."
저녁이라 주위가 어두웠는데도 운전을 잘하는 제가 스스로 기특했습니다. 몇 분만 가면 시장이 나올 건데 사고가 났는지, 신호 못 가서 차들이 빠져 나가지를 않고 밀리는 겁니다.이상하다 싶어 고개를 빼꼼이 내고 앞쪽을 보니 이건 웬일인지 경찰 아저씨는 분명한데 빨간 몽둥이를 들고 차를 일일이 세우는 거였습니다. 저는 그게 음주측정하는 건지 꿈에도 몰랐습니다. 근데 지나가는 아저씨가 음주측정한다고 일러주지 뭡니까. 웬 음주측정? 소주 2잔 마신 덕분에 차분했던 저의 가슴은 음주측정이라는 소리를 듣자마자 두근두근을 넘어 아예 벌렁벌렁, 얼굴은 창백해지기 시작했고 얼굴과 손에 식은 땀은 줄줄줄 흐르고 이건 정말 환장하겠더라구요. 음주측정한다는 걸 몰랐을 때는 차가 더럽게 빠져 나가지 않더니만, 음주측정한다는 말을 듣고 나니 잘도 빠져 나가데요. 저는 앞으로 앞으로 나아갔지요. 소주 2잔 마셨으면 음주측정에 제대로 나올 건데.... 이건 큰일났지 뭡니까. 평소 술을 즐겨마시는 것도 아니고, 용기있게 운전하려고 딱 2잔 했는데. '이거 한 번 죽어라 사정해봐, 아님 안 마셨다고 처음부터 잡아떼.' 이런저런 생각에 고민이었습니다. 어제만 해도 박하사탕이 굴러다니드만. 아무리 찾아봐도 없는 겁니다. 껌을 찾아봐도 마찬가지구요. 정말 미치겠데요. 자꾸만 앞차가 안 보이고 긴장을 하다보니 제 몸의 보일러는 물을 빼주라고 난리죠, 금방 나오려는 걸 참기 위해 아랫배에 힘을 막 주려는 순간 급기야 올 것은 오고야 말았습니다. 제 앞에 경찰아저씨가 빨간 몽둥이를 들고 흔들어대는 게 보였습니다. 전 완전히 죽었다 생각했죠. '그래 한 번 죽지, 두 번 죽냐? 그래 딱 한 번만 죽자.' 제가 이렇게 결심을 했을 때 경찰 아저씨는 저에게 음주측정기는 대지 않고 "실례가 많았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하며 거수 경례를 하지 뭡니까. 즉, 그냥 통과하라는 거였습니다. 제가 여자였기에 당연히 술을 안마셨다고 생각했는지 그냥 보내준 겁니다. 여자로 태어나길 정말 다행이라고 생전 믿어보지도 않았던 부처님, 하느님을 찾으며 고맙다고 인사를 했어요. 전 그곳에서 구사일생으로 빠져 나왔지만 벌렁벌렁한 저의 가슴은 쉽게 가라앉지를 않았답니다. 여전히 콩콩콩 숨가쁘게 단박질을 하는 겁니다. 시장에 무사히 도착해 차도 있겠다 몽땅 사고 나왔는데 좁은 일방통로 시장통에 갑자기 차들이 많이 주차해 있는 겁니다. 제가 아까 주차할 때까지만 해도 별로 없었는데 빠져 나가기가 힘들 정도로 빽빽이 주차해 놓았지 뭐예요. 갑자기 불길한 예감이 들었어요.
시장 나오기전 마셨던 소주 2잔의 알코올이 다 빠져 나갔나 운전대를 잡으려고 하니 다시 벌렁대고 쾅쾅 단박질을 하고, 손까지 부들부들 떨리는 게 아닙니까. 더구나 아까부터 제 몸의 보일러 물은 빼주라고 난리구요. 시동을 걸고 1단 기어를 넣고 출발하려는데 클러치를 너무 빨리 떼서 그런지 눈깜작할 사이에 일이 터진 겁니다. 대체로 여자의 직감은 예민하데요. 바로 앞에 있는 트럭을 박고 말았답니다. 심장이 멈춰버릴 것만 같았지만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길래, 후진 기어를 넣고 후진하는데 이건 또 웬일입니까? 뒤에 있는 승용차를 쿵하고 박은 겁니다. 앞이 깜깜했습니다. '그래 아무도 본 사람이 없으니 얼른 이곳만 빠져 나가야지 생각하며 1단 기어를 넣고 우측으로 빠져 나갈려고 했지만 하필이면 우측에 있는 봉고차의 옆구리를 다시 한 번 박고 말았습니다. 전 그때 처음 알았어요. 차가 그렇게 약하다는 걸요. 손이 부르르 떨려 도저히 차를 뺄 수가 없었습니다. 운전 뭐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했던 걸 후회하고 또 후회했답니다. 죽는 건 돈뿐이지만 전 나머지까지 다 죽여버렸어요. 살인 운전면허증을 죽여버렸고, 보해 소주 25도를 죽였습니다. 결국 5년이 지난 지금도 소주 한 잔 못 마시고, 운전대 잡으려고 천원 주지도 않을 뿐더러 신랑은 운전대 잡으면 이젠 만원 준다고 다시 한번 잡아보라고 그러지만, 그까짓것 십만원을 준다 해도 안하고 말겁니다. 그날의 김칫거리랑 반찬거리는 몽땅 쓰레기통으로 직행하고, 운전에 운자만 나와도 5년 전 저의 충격은 치를 떨게끔 도사리고 있지 뭡니까. 청취자 여러분! 우리 모두 음주 운전은 절대 하지 맙시다. 고맙습니다. 아참, 그때 보일러 물은 어떻게 됐냐구요? 3번째 봉고를 박을 때 자연스럽게 저도 모르게 빼고 말았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