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이 묻어나는 편지 - MBC 예술단 엮음
하나
추억이라는 이름의 웃음여행
춘발이를 구하라!
지난 어린 한 시절의 추억을 고백함에 있어 이 방송으로 자칫 개인의 명예가 훼손되는 일이 있다 하여도, 어디까지나 시효가 지난 사건으로 이해를 바랍니다. 아울러 이 방송으로 오래 전부터 연락이 두절된 친구들을 다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때는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초등학교 3학년 시절로 기억됩니다. 그 시절엔 어느 곳이나 비슷했습니다만, 제 고향인 안동에서는 특히 가정이나 학교에서의 예절교육이 대단했습니다. 학교에서의 선생님은 곧 염라대왕이요, 저승사자였습니다. 물론 모든 선생님이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기억 속의 수많은 선생님들 중 그 시절부터 유행했던 '슈퍼맨' '베트맨' 보다도 더 대단하셨던 선생님이 계셨습니다. 별명이 임꺽정이었는데 처음엔 이름이 비슷해서 붙였지만, 서서히 그 명성이 이름을 능가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3학년 2학기가 되던 때 별안간 우리반의 담임이셨던 우영방(우리의 영원한 우방- 실제 이름임) 선생님이 개인사정으로 학교를 떠나게 되었고, 임꺽정 선생님이 저희반의 담임으로 오시게 되었습니다. 하늘이 우리반을 버린 것입니다. 대책회의는 반장을 중심으로 무수한 의견이 제시되어 반 전체가 참가하는 투표에 부치게 되었습니다. 결과는 '수업거부!' 제가 다닌 초등학교는 대학부속 초등학교로 사립의 교육분위기가 매우 강했으며, 당시에 이미 선거와 교내 서클 등이 장려되어 일반화 되어 있었고, 학교 일정및 행사는 학생들의 의견과 투표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임꺽정 선생님은 별명 그대로 임꺽정 그 자체였습니다. 이런 우리의 사정을 아셨는지 2학기가 시작되던 첫날이었습니다.
"만나서 반갑다. 내일 임시시험을 보겠다. 이제까지 너희들의 영원한 우방이었던 우선생님의 노고에 흠이 생기지 않도록 최선을 다히기 바란다. 만약 80점 이하인 경우는 '개별면담'을 하겠다."
우린 순식간 분열되고 있었습니다. 완전한 공중분해였습니다. 우리가 그토록 우려했던 '개별면담.' 결코 들어서도 보아서도 안될, 그 전설적인 '개별면담'을 그것도 2학기가 시작되는 첫날에 듣고 말았습니다. 수많은 선배들이 이슬 같은 눈물로 대신했다는 전설. 교내에 구전되어 온 '영남선'의 전설 주에 가장 비인간적인 무시무시한 전설이 바로 임꺽정의 '개별면담'이었습니다. 우리에게 남은 선택은 없엇습니다. 집에 가서 열심히 공부하는 방법 이외에는 도리가 없었습니다. 결과는 물론 저는 80점 이상으로 '개별면담'을 피했습니다. 그러나 저의 가장 친한 친구인 박충신(별명 춘발)이는 50점으로 '특별면담' 코스까지 가야 하는 수준이었습니다. 춘발이는 거의 삶을 포기하는 것 같았습니다. 방법을 찾아야 했스빈다. 교통사고로 위장하여 장기 입원하는 방법, 할아버지 또는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이유로 장기 결석하는 방법, 전학가는 방법 등 많은 의견이 있었지만 실행가능한 방법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지난해 임꺽정 선생님의 '개별면담'에서 면죄를 받은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는 나쁜 시험성적으로 아버지로부터 이미 종아리를 맞은 후 '개별면담'을 하게 되었고, 종아리의 멍자국을 본 임꺽정 선생님은 너그러이 대화로 면담을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친구 3, 4 명이 더 모여 '춘구위(춘발이 구제 위원회)'가 발족되었습니다. 방법을 찾아보니 간단했습니다. 싸리비를 꺽고, 적당한 몽둥이를 구해 우리집으로 모였습니다. 그리고 춘발이를 패기 시작했습니다. 어린 마음에 아무리 때려도 멍이 들지 않았습니다. 춘발이는 어금니를 물고 참았습니다만, 조금 빨간색으로 상기될 뿐 자국이 남지 않았습니다. 춘발이는 가끔 비명을 지르기도 했습니다. 참아야 했습니다. 1시간이 지나고 2시간이 지나도 멍자국은 남지 않기에, 우리는 좀 비위생적인 방법이지만 멍자국이 남아야 할 춘발이의 종아리를 빨기 시작했습니다. '쪽쪽' 소리가 날 정도로 빨고 또 빨았습니다. 때리고 빨고, 또 때리고 빨고, 하지만 결국 멍자국은 생기지 않았고, 포기하게 되었습니다. 춘발이는 우리의 의리에 울었고, 아파서 울었습니다. 다음날 결전의 면담이 춘발이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결국 춘발이는 복날 끌려가는 뭐 마냥 그렇게 끌려갔는데, 이게 웬일입니까? 임꺽정 선생님의 눈이 커지면서 부들부들 떨고 이었습니다. 이유인 즉, 춘발이의 종아리가 온통 피멍으로 얼룩져 있는 것입니다. 전날 '춘구위'가 춘발이를 위해 실시했던 공작이 하루가 지난 당일날 표면화되면서 서서히 그 결과를 보이기 시작하였던 것인데, 우린 그것도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건은 심상치 않았습니다. 춘발이의 종아리는 단순히 멍자국을 넘어서 무슨 전쟁에서 입은 상처같았습니다. 임꺽정 선생님의 첫말씀이 "춘발이, 니네 부모가 친 부모 맞나? 혹시 웬수지간 아이가?" 학교가 온통 난리가 났습니다. 양호실로... 교무실로... 한동안 떠들썩하더니, 결국 일은 더욱 커졌습니다. "공범자 나와! 아니, 주범자 나와!" 의리없는 놈. 집으로 전화해서 부모와 면담을 하겠다는 임꺽정 선생님의 말에 춘발이는 자수를 하고 말았습니다. 저는 그날 냉장고에서 열이 나도록, 장마에 먼지 나도록 특별면담 코스를 거쳐야 했습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 동창들과 함께 자리를 하는 자리에서 앞의 사건으로 혼절이 되도록 웃어 봅니다만, 춘발이라는 친구는 4학년 그때 서울로 전학을 간 뒤 소식을 알 수 없답니다. 그리고 임꺽정 선생님은 현재 저희 고향인 모초등학교에서 교장 선생님으로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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