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이 묻어나는 편지 - MBC 예술단 엮음
하나
추억이라는 이름의 웃음여행
한방에 보내자 - 송근준(남.인천 서구 가정동)
때는 바야흐로 단기 4309년 여름이었습니다. 제가 다니던 초등학교 담임선생님은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늘 칠판 모퉁이에 단기 년, 월, 일을 쓰셨습니다. 단군의 자손이 단기를 모르면 단군의 자손이 될 자격이 없다고 하시며 우리 민족의 유구한 우수성을 역설하시는 분으로 별명은 '단군선생님'이라는 분이 계셨습니다. 지금의 초등학교 화장실은 모두 수세식 변기이겠지만 제가 다니던 초등학교는 그때만해도 재래식 변기(일명:푸세식)이었습니다. 지저분하지만 잠깐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요즘의 정화조 통위에 볼일을 보는 구멍을 몇 개 뚫고 그 사이를 판막이로 막은 그런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밑은 모두 하나가 되는 거지요. 그리고 벽 뒤쪽에는 변을 푸는 곳이 있는 그런 화장실입니다. 자,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점심 시간이었습니다. 화장실, 아니 그땐 변소라고 했으니까 현장감을 더하기 위해 변소라 하겠습니다. 변소 뒤에서 친구들과 놀고 있는데 별명이 땜통이라는 친구가 "똥통에 쥐가 있다."라고 하여 변통을 보았더니 여름장마가 지나간 후라 충만한 변통 안에서는 쥐 한마리가 유유히 수영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정부에서 '쥐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쥐 잡는 날'을 지정할 만큼 쥐는 곧 우리의 적이라는 생각에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변통 안의 쥐를 향하여 돌을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저는 큰 벽돌을 온힘을 다해 들고와 큰 목소리로 "한방에 보내자."하며 변통안에 사정없이 투하하였습니다.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완전히 크림슨 타이드 영화에서 잠수함이 폭발하는 것 같은 장면이 연출되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우렁찬 목소리로 "사격중지, 사격중지, 아니 폭격중지."하는 소리, 아니 절규의 비명소리가 들리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는 때마침 사격과 폭격을 중지하고 변통을 보았더니 정말 쥐는 사살되었는지 사격중지라는 소리는 들려오지 않아 아무 생각없이 오후 수업을 하기위하여 입실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단군선생님께서는 수업을 들어오시지 않는 겁니다. 그럭저럭 한 시간을 꽁으로 먹고 오후 2시간째 수업을 하기 위하여 기다리고 있었는데, 단군선생님께서 새옷으로 단장을 하고 들어오셔서 대뜸 하시는 말씀이 "한방에 보내자고 한 놈 나와!"하시는 거 아니겠습니까. 저희들은 영문을 몰라 서로 친구들이 얼굴을 쳐다보며 의아한 표정을 짓는데 선생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내가 머리에 털나고 똥벼락 맞았다는 얘기는 들어 봤어도 밑에서 똥분수를 맞는다는 얘기는 처음이다. 그렇게 사격중지, 아니 폭격중지를 외쳤는데도." 말끝을 흐리시더니 다시 완전히 이성을 잃어신 것 같은 얼굴로 "한 방에 보내자고 한 놈 나와."하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변통에 융단폭격을 할 때 단군선생님이 변소에서 볼일을 보시면서 봉변을 당하시던 장면과 "한방에 보내자."라고 한 것이 저라는 생각이 뇌리를 강하게 스쳤습니다. 그러나 저는 손을 들 수 없었습니다. 그때 어린 저로서도 뒤를 감당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이성이 조금은 있었습니다. 짧은 침묵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런데 믿었던 융단폭격의 참전 전우들의 눈동자가 무거운 침묵과 함께 모두 저를 향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땐 정말 쥐구멍이 아니라 변통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어차피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차라리 자수하여 광명 찾을 걸하는 생각은 했지만 그땐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그런데 '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문다."라는 속담이 진짜더라구요.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저는 큰소리로 말했습니다. "선생님 저는 쥐를 한방에 보내자고 한 것이지 선생님을 한방에 보내자고 한 것은 아닙니다." 용기있게 말하자 선생님께서는 "내가 빗발치는 파편을 그 좁은 공산에서 다 피했지만 그 한방에 완전히 폭탄 맞은 꼴 되었다. 이놈아!"하고 말씀하신 후 혼내줄 명분이 없어서인지 아니면 고의성은 아니라는 것을 아셨던지 조금은 이성을 찾은 얼굴로 "앞으로 똥통에 돌을 던지는 놈은 용서하지 않겠다."라고 하신 후 수업을 시작하셨습니다.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단군선생님께서는 6.25 당시 중위로 참전하여 군용어를 잘 쓰시는 편이었습니다. 변소에서 볼일을 보고 계실 때에 너무 당황한 나머지 사격중지, 폭격중지를 외롭게 연발하신 것 같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단군선생님의 명복을 방송을 통해 빌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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