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이 묻어나는 편지 - MBC 예술단 엮음
하나
추억이라는 이름의 웃음여행
총각은 개를 무척 좋아하나봐
이종환 형님, 그리고 최유라씨 혹시 개를 좋아하십니까? 저는 무척 개를 싫어합니다. 그래서 그 개하고 얽힌,정말 싫었던,다시 생각하기도 끔찍한 그런 일을 청취자 여러분들께서는 절대로 겪지 말라는 의도에서 이렇게 서두를 풀어볼까 합니다. 그러니까 이야기는 94년1월 제가 여러가지 이유로 인하여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세상에서 가장 힘든 작업인 백수시절을 보내고 있을때 이야기입니다. 집에서 계속 밤만 축내는 것도 눈치 보이고 또한 한겨울이라 마땅히 다닐 곳도 없던 터라 할 일 없이 이친구 저친구 집을 전전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 때 누군가가 아침에 신문배달을 해보지 않겠느냐며 아침에 운동도 되고 살도 빼고 돈도 벌고 좋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했습니다.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그래 집에서 놀면 뭐하냐 한푼이라도 벌러서 눈치밥 좀 면해보자는 심정으로 배달을 시작하게 되었지요. 주택 외곽지역과 아파트 중 배달하고 싶은 곳을 고르라는 국장님의 말을 듣고 전 당연히 주택지역을 원했지요.애냐구요? 아파트는 거의가 4-5층짜리 건물이라 계단을 오르내리는 일이 보통일이 아니고 무엇보다고 주택지역은 오토바이가 지급된다는 말에 무조건 솔깃해서 하겠다고 했지요. 1월 그 매서운 눈보라 속에서도 저는 끗끗이 하루도 빼놓지 않고 한달 정도를 돌렸을까... 이젠 웬만한 코스는 눈 감고도 다닐 정도로 익숙해져 있었지요.
그런데 제가 배달하는 지역은 시골동네라 집집마다 개를 키우는 집이 많았지요. 바로 거기서부터 문제가 시작된 겁니다. 어릴 적부터 '견 공포증'이 있는 저는 아침마다 저를 마중해주는 개들이 정말 싫었지요. 시골에선 다 그렇듯이 개를 묶어 놓고 기르는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침만 되면 골목골목에서 저를 반겨주는 개들이 어쩜 그리도 많았는지 하루하루를 긴장과 공포 속에서 지내게 되었지요.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면 따라와 물고, 짖고, 왜 나만 그리 미워하는지 개들이 있는 골목마다 가슴을 졸이며 지나가게 되었지요. 정말 더는 못 참겠더군요. 그래서 신문배달이 3년 정도된 친구녀석에게 구원을 요청했습니다. 맨입으로 안된다는 녀석을 라면 한 그릇과 소주 한병으로 요리하고 그 비결을 듣게 되었지요.
“개는 말이다. 무조건 기선을 제압해야한다. 처음에 딱 마주치면 절대로 눈싸움에서 지면 안된다. 개한테 시선을 빼앗기면 엄청 피곤해 지는기다. 처음부터 무조건 인상를 쓰고는 한참동안 노려보는 기다. 그러다가 갑자기 땅바닦에서 돌을 줍는 시늉을 하며 아무소리나 큰소리를 지르는 기다. 욕을 하면 더 좋지. 보통 개들은 욕에 익숙해 있거든. 달려가는 거야. 대개 이쯤이면 거의 95%정도는 개들이 도망갈기다. 만약 그래도 도망가지 않는 녀석이 있거든 분명 지능이 모자라거나 겁이 없는 녀석일기다. 그럴땐 가지고 있던 돌을 사정없이 던지는 기다”
하면서 주머니를 뒤적거리며 보여주는데 까만 윤기가 나는 돌맹이를 다섯 개나 가지고 있지 뭡니까? 자기는 전시를 대비해 늘 소지하고 다닌다나요. 이쯤되면 동네의 모든 개들을 평정하고 그 위에 군림하게 될거라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자기를 따라 오라고 하더니만 자기가 배달하는 동네로 데려가더군요. 그 동네 개들은 그 친구만 나타나면 꼬리를 감추고 도망가는 게 여간 부럽지가 않았습니다. 전 그 다음날 바로 실행에 옮겼지요. 개들이 꽁무니를 빼고 도망가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말입니다. 혹시나 싶어 주머니에 넣어둔 돌멩이를 몇 번씩이나 확인하고는 만일을 대비해 좀 크다 싶은 것으로 열개씩이나 주머니에 넣었더니 다니기에 불편했지만 승리의 그날을 위해 참을 수 있었습니다. 마음이 든든하더군요. 그날 전 참으로 약육강식이라는 말을 실감했습니다. 처음 만난 녀석은 누런빛이 나는‘코삐’라는 놈이었습니다.오늘도 역시 으르렁거리며 나타나더군요. 조금 긴장은 했지만 전 주머니의 돌맹이를 믿고 녀석을 똑바로 쳐다보곤 눈에 힘을 주었지요. 녀석은 의외라는 듯이 조금 더 크게 으르렁거렸지요. 여기에 질세라 저는 오토바이에서 뛰어내리면서 입으로 궁시렁궁시렁거리며 눈에 더욱 힘을 주고는 녀석 앞으로 한발 한발 다가갔지요. 녀석의 눈빛이 조금 흔들리더군요. 이때다 싶었죠.
“이놈 !”
하면서 바닦에서 돌을 줍는 시늉을 하니까 꽁지가 빠지게 도망가는 겁니다. 통쾌했습니다. 이렇게 쉽게 이기는게 어이없었고 그 동안 당한 것을 생각하니 더욱화가 나더군요. 전 그날 만나는 녀석들마다 초전박살, 임전무퇴, 백전백승이었지요. 그러기를 4일 만에 이제는 녀석들이 내 오토바이 소리만 나도 도망가더군요. 전 무척이나 고무되어 있었습니다. 정말 오장이 시원하고 육부가 날아가는 듯했습니다. 아침마다 고민거리가 없어졌고 배달일은 무엇보다도 즐거웠습니다. 개들한테만은 절대적인 군림자였지요. 그러던 어느날 아침에 한창 배달을 하고 있는데 저 멀리서 누가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평상시에 다니면서 저런집에는 누가 살까? 하고 늘 부러워하던 언덕위의 하얀 집, 아주 정원이 넓은 집에서 내일부터 신문을 넣어 달라는 겁니다. 이게 웬 떡이냐! (신문구독 요청을 받으면 수당도 받고 칭찬도 받고 아주 좋은 일이었지요) 그런데 아주머니께서 자기 집에는 개를 3마리 키우는데 저녁에는 개를 풀어 놓는다는 겁니다. 그래도 대문은 잠가 놓으니까 걱정하지 말라며 대문사이에 꼭 신문을 끼워 달라는 겁니다. 뭐가 문제가 되겠습니까. 저는 걱정하지 말라며 잘 넣어드린다고 인사까지 하고는 속으로 웃었습니다. ‘개가 뭐가 무섭나!’ 자신이 있었지요. 저는 그집의 개들을 쭉 째려 보았습니다. 그리고 눈에 힘을 주었지요. 외국산 개라서 그런지 만만치 않게 쳐다보더군요. 전 씩- 웃으면서 속으로 말했죠. ‘며칠만 기다려라. 귀여운 자식들...’ 그리고 배달하기를 며칠. 저는 새로운 습관이 생겼습니다. 그 집은 언덕위에 있어서 아래에 오토바이를 세워두고 50미터 정도를 올라가서 신문을 대문에 끼워두고는 그 집 개들을 노려보고 주머니의 돌멩이를 한번 보여주고 주먹질도 한번하고 돌아서서 집 나무 밑에서 시원하게 볼 일도(꼭 거기가면 소변이 마렵데요)보고 담배하나를 물고는 유유히 하늘을 보고 다시 개들한테 인상을 쓰고는 내려오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그 날도 신문을 대문에 끼워놓고 개들을 찾으니 개들이 안 보이는 겁니다, 이 녀석들이 다들 자나? 하고 돌아서서 시원하게 볼일을 보고있는데 느낌이 이상했습니다. 갑자기 뒤꼭지가 근질근질한 것이 아닙니까? 얼른 뒤 돌아 보니, 아 글쎄 그집 개들이 어느샌가 제 뒤로 다가와 제가 볼일을 보고 있는 걸 빤히 보고 있지 뭡니까. 순간 뇌리를 스치는 생각-. 아! 기선을 제압해야 하는데... 그러나 기선을 제압하기엔 보던 볼일도 남아있고 자세도 엉거주춤하고 걱정이 앞서더군요. 누가 대문을 열어논 모양입니다. 그러나 전 저를 달래며 ‘침착’,‘침착’을 중얼거리고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볼일을 마치고 뒤돌아섰지요. 그때까지 녀석들은 외국산 개라서 그런지, 아니면 비겁하게 볼일을 보고있는 사람을 공격하지 않으려고 했는지 아무 행동이 없더군요. 그런데 뒤돌아 서자마자 으르렁거리며 하얀 이빨을 드러내는 것이 아닙니까? 하얀 달빛아래 까만 개들의 코에서 뿜어나오는 하얀 콧김에 아찔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건 장난이 아니다’ 저녀석들 한테 한 번씩만 물려도 최소한 상이용사 내지는 사망신고서 작성하러 동사무소에 사람보내야 할 것 같은 생각에 빠르게 머리를 굴렸지요. ‘이미 기선을 못 잡았으니 어쩌지?’ 그때 주머니의 돌멩이를 생각하게 되었지요. 그런데 아뿔사! 그 동안 동네 개들 위에 주름답고 다니느라 돌멩이가 필요없어서 모두 버려버린 것이 아닙니까? 후회해도 소용없고 유비무한의 정신을 늘 새기지 못한 제 자신을 원망햇지만 지금은 전시상태라 그것만 생각할 순 없었지요. 설령 있다고 해도 송아지만한 개 세마리를 동시에 이길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다리를 조심스럽게 옮겨 봤습니다, 옮기자마자 으르렁거리며 이빨을 드러내는 것이 아닙니까? 등에서 소름이 쫙 끼치더군요. 많은 생각이 머리속을 지나쳐 갔습니다. 그래서 작전을 바꿨지요. 아주 다정한 목소리로 개들을 향해 말했지요. ‘너희들 나와 있었구나. 잘 잤니? 무척춥지?’ 전 평소에 안 하던 애교를 부리면서 살살 내려갔지요. 아, 그런데 이것들이 내가 발만 옮기면 으르렁 거리는 겁니다. 이거 참 보통 큰일이 아니데요. 이럴 줄 알았으면 평상시에 잘 보일 걸 괜히 인상을 쓰고 겁을 준 걸 후회도 해보았지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설상가상으로 이 녀석들이 내 주위를 돌며 곧 물어버릴 듯이 으르렁 거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가만히 있을 수많은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저는 가만히 조심스럽게 바닥에 쭈그리고 앉았지요. 그리고 그중 제일 순하게 생긴 녀석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으면서 ‘착하다. 이쁘다.’를 연발했습니다. 역시 개들은 단순하데요. 그러기를 한 10분 지나니까 이녀석이 이제는 경계심을 풀고 눈을 지그시 감고는 내 무릎 위에 머리를 올려놓고 기어오르려고 하는 겁니다. 다른 녀석들도 서로 쓰다듬어 달라고 머리를 들이미는 것이 아닙니까. 말릴 수가 있어야지요. 한 녀석은 연신 저의 얼굴을 그 징그러운 혀로 문지르고 한 녀석은 무릎위에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고 있고 또 한 녀석은 자기도 해 달라고 자꾸 파고드는 겁니다. 참아야 한다. 어쨌든 살아나가야 한다는 일념으로 그 수모를 참으며 아줌마를 불렀지요. 그것도 큰 소리로 부르면 녀석들 비위를 거스를까봐 작은 소리로 불렀습니다. “아줌마! 아줌마(아주작은 목소리로)” 들릴리가 있겠습니까? 때는 동지섣달 추운 겨울이라 다들 문을 꼭꼭 닫고 잘 테고 더군다나 새벽3시니... 게다가 주위에 집도 없는 언덕이라 난감하더군요. 여기서 오토바이까지는 50미터. 뛰어가면 될까? 안 되겠지. 이녀석들과 싸워볼까? 안돼! 1대3이면 불리하지. 더군다나 무기도 없고 ... 할 수없다. 끈기로 버티자. 그런데 이때! 갑지기 무릅이 시원해지는 겁니다. 꼭 곰같이 생긴 녀석이 제 무릎위에 걸터앉아서는 볼일을 보는 겁니다. 피할 수도 없었습니다. 많이 참았는지 한참 동안이나 볼일을 보더군요. 그리고는 시원한지 제 얼굴을 혀로 문지르더군요. ‘참아야 한다.’ 시간이 흐르고 30분, 1시간, 2시간... 저는 그 언덕에서 2시간 30분 동안이나 개들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어야 했습니다. 한쪽 다리는 젖어서 추위에 얼어있고 이놈 쓰다듬으면 저놈이 으르렁거리고 저놈 쓰다듬으면 저놈이 으르렁거리고 저놈 쓰다듬으면 이놈이 으르렁거리고... 정말 죽고 싶었습니다. 못난 제 자신이 얼마나 한심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어쩝니까. 그때 그 순간에는 개 소변보다도 추위보다도 흉측스럽게 드러난 그놈들의 이빨이 더 무서웠으니까요. 개머리를 두 시간이상 쓰다듬어 보신 적 있습니까? 그것도 세 마리를 번갈아 가며... 전 해냈습니다. 그 추위와 싸우면서도 그 수모를 견디면서도 오직 살아야 겠다는 일념으로 이겨낸 겁니다. 그리고 2시간 30분 정도가 흐른후 나오신 아줌마! 제게 충격적인 말씀을 하시던군요.
“총각은 개를 무지 좋아하나 봐요.”
저 머리에서는 오토바이 시동이 꺼지던군요. 기름이 다 떨어졌던 겁니다. 전 그날 주유소를 찾아서 오토바이를 끌고 추위에 얼은 다리 절룩거리며 다시는 개를 쳐다보지도 않겠노라고 맹세를 하고 또 했습니다.
ps. 개들을 사랑합시다. 그리고 자주 쓰다듬어 줍시다. 그렇지 않으면 저처럼 평생 쓰다듬을 일을 하루만에 다 하는 수가 생깁니다. 그리고 전국의 신문 배달사원 여러분!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늘 주머니에 돌멩이를 잊지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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