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할 땐 별이 되고 - 이해인
- 기도 시
사랑의 길 위에서
-고 이광재 디모테오 신부님께
한번도
당신을 만난 적이 없지만
당신을 생각하면 목이 메이고
동해의 바닷바람, 가을바람이
가슴을 적십니다
당신의 그 온전한 봉헌은
우리를 울게 합니다
1909년 6월 가난한 시골에서 태어나
1936년 3월 사제로 서품되시고
1950년 10월 41세로 생을 마치실 때까지
당신의 매일은 그대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타오른 불꽃이었으며
그분의 수난에 동참한 거룩한 미사였습니다
참혹한 전쟁의 한가운데서도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안전지대로 가지 않고
죽음이 더 가까운 위험지대로
뛰어들기를 주저하지 않으신 신부님
어리석게도 그것은 오직
사랑 때문이라 하셨습니다
단 한 명의 신자를 위해서도
사제는 희생할 의무가 있다며
스스로 피 흘려 제물되신 신부님
"교회의 앞날을 위해
나보다 더 훌륭한 성직자, 수도자들
하나라도 더 구해야 한다"며
목숨을 걸고 그들의 월남길을 돕는
길잡이로 온갖 고초를 겪으시다가
마침내 체포되어 죽임을 당하신 분
감옥에서도 기도를 멈추지 않으시고
어둠과 악취뿐인 방공호 속에서
총을 맞고 숨져 가는 최후의 순간까지
자신보다 이웃을 더 많이 생각했던
당신은 진정 또 하나의 예수였습니다
죽어 가는 동료들의 신음소리 들릴 때마다
"응, 내가 가지요. 내가 도와 드리지요"
"물을 떠다 드릴텐데 일어날 수가 없군요"하고
극심한 고통중에서도 이웃을 향해
사랑의 헛소리를 되풀이하셨던 신부님
앉지 않고 꿇어서 고해성사를 들으시고
잠시 머물던 나그네와 헤어질 때도
이승에서의 마지막을 예감하고
강복을 주시며 눈물 흘리셨던 신부님
당신은 진정 위대한 성자
잊혀짐을 두려워 않는 겸손한 성자였음을
이제 우리는 다시 압니다
이웃을 살리는 사랑의 길이 되어
당신은 오래 전 우리 곁을 떠나셨지만
죽음보다 강한 그 믿음, 그 사랑은
당신이 목숨 바쳐 사랑했던
한국 교회 안에, 우리 가슴 안에
더 깊이 뿌리내려 열매 맺고 있음을
하늘나라에서 기뻐해 주십시오
맡겨진 양떼를 돌보는 선한 목자로서
11년 동안 밤낮으로 애쓰시던
이곳, 양양성당에 와서
우리는 당신의 손때 묻은 기도서와
남루한 제의를 만져보며
사랑의 숨결을 느껴 봅니다
당신의 시신이 묻힌 원산
가깝고도 먼 북녘 땅을 바라보며
당신을 그리워합니다
순교의 마지막 순간까지
당신이 찬미했던 주님을
우리도 새롭게 찬미하며
간절히 기도합니다
갈라져서 상처가 많은
우리 겨레의 화해의 일치를 도와 주십시오
우리의 처음과 마지막 행동이
당신처럼 두려움 없는 사랑일 수 있도록
더 깊고 큰 믿음을 뿌리내리게 해주십시오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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