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할 땐 별이 되고 - 이해인
선물의 집
어쩌다 외출을 하게 되면 책방이나 꽃집과 마찬가지로 나의 시선을 끄는 것은 규모가 별로 크지 않고 아담하게 꾸며진 `선물의 집`입니다. 특별히 살 것이 없어도 마음에 드는 `선물의 집` 간판이 눈에 띄면 일단 들어가서 구경을 하고 가끔은 내 분수에 맞는 작은 선물을 사들고 나오기도 하는데. 하여튼 아기자기하고 예쁜 물건들이 많이 놓여 있는 방에서 선물을 고르는 이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즐거운 일입니다. 여기선 우울과 불안으로 찡그린 얼굴보다는 밝고 환하게 웃음 띤 얼굴. 어떤 희망과 기대에 찬 고운 표정들을 많이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밖에 있는 선물의 집에 비할 바는 못되지만 오래 전부터 나는 경우에 따라 공부방도 되고, 기도방도 되고, 침방도 되어 종종 `다목적 방`이라 부르는 내 자그만 방에 둥근 바구니 한개를 준비해 두고 이웃에게 주어도 좋을 만한 카드. 그림엽서, 조가비, 돌맹이, 연필, 색종이 상자, 신문이나 잡지에서 오려낸 좋은 글귀나 그림 등을 모아 두었다가 필요할 때 선물 하곤 합니다. "수녀님, 친구에게 보낼 멋진 시 한 편 골라 주세요" "어린이에게 어울리는 카드 있으면 한 장 주세요" 등등의 부탁을 받을 때 즉시 들어 줄 수 있을때마다 나는 힘 안 들이고 기쁨을 파는 행복한 선물의 집 주인이 된 것 같아 흐뭇합니다. 가끔은 스스로 멋에 겨워 자아도취에 빠지거나 어떤 보답을 바라는 허영심이 스며들까 걱정도 되지만 내가 살아 있는 동안은 이 일을 계속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극히 하찮은 물건이라도 사랑의 마음이 담기면 빛이 나지만 아무리 비싼 물건이라도 사랑이 묻어 있지 않으면 이내 빛을 잃고 싸늘해집니다. 우리가 누군가로부터 선물을 받을 때도 그것이 나 자신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다른 이에게 주기 위해 받는 것일 때 더 부담 없고 기쁜 것을 자주 경험하게 됩니다. 굳이 어떤 물건을 주고받지 않더라도 우리는 서로 사랑하는 가운데 존재 자체가 걸어 다니는 선물의 집. 움직이는 기쁨의 집. 나눔의 집이 될 수가 있지 않을까요?
한 해를 마무리하며 몸도 마음도 바빠지는 12월. 곧 다가올 크리스마스를 준비하여 우리는 서로 물질로 주고받는 선물은 더욱 간소화하되, 마음으로 주고받는 선물은 더욱 늘여가면 좋겠습니다. 용서와 이해의 눈길. 따뜻한 미소, 친절한 말. 상대의 마음을 정성껏 들어 주기. 주변의 가난하고 힘든 이웃을 시간 내어 챙겨 주기 등등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선물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가장 완벽한 사랑의 모델이신 예수께서 만나는 모든 이에게 당신 존재 자체로 다른 이의 필요를 채워 주는 `선물의 집`이셨듯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또한 이웃에게 자신을 기꺼이 내어 주는 한 채의 아름답고 따스한 선물의 집이길 바라며 나는 다음과 같이 노래해 봅니다.
사랑할 때 우리 마음은
바닥이 나지 않는 선물의 집
무엇을 줄까
어렵게 궁리하지 않아도
서로를 기쁘게 할 묘안이
끝없이 떠오르네
다른 이의 눈엔 더러
어리석게 보여도 개의치 않고
언어로, 사물로 사랑을 표현하다
마침내는 존재 자체로
선물이 되네, 서로에게
사랑할 때 우리 마음은
괴로움도 달콤한 선물의 집
이 집을 잘 지키라고 하느님은 우리에게
하느님은 우리에게
사랑하는 마음을 심어 준 것이겠지?
- 나의 시 선물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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