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할 땐 별이 되고 - 이해인
튤립꽃 같은 친구
멀리 떨어져 살고, 한동안 소식이 뜸하더라도 어릴 적의 친구는 늘 따뜻한 아름다움과 그리움의 대상으로 살아온다. 어린 시절에도 빨간 스커트에 샛노란 스웨터를 즐겨 입던 나의 친구는 나이 쉰이 된 지금에도 빨간 원피스와 빨간 코트를 입고 내 앞에 나타났으나 조금도 어색한 구석이 없고 오히려 멋져 보였다. 그 친구를 볼 때마다 나는 빛깔이 화려하고 선명한 한 송이 튤립을 떠올리곤 했다. 편지를 쓸 때면 서두에 `좁은 문의 벗에게` `나의 그립고 사랑스런 벗에게`라고 즐겨 쓰며 끝에는 `나의 예쁜 벗에게, 꼬마 친구가`라고 쓰는 친구. "이 나이가 되어서도 네겐 예쁘다는 말밖엔 달리 할 수가 없구나"라고 되풀이하는 내 어릴 적의 친구. 바로 옆에서 소곤대는 것처럼 다정한 마음과 따스한 웃음이 넘쳐나는 그의 글들을 읽을 때마다 나는 문득 먼데 있는 그가 보고 싶어진다. 현재 캐나다에 살고 있는 내 어린 시절의 벗 현숙이가 퍽도 오랜만에 나와 연락이 된 후 보내 온 첫 편지의 몇 구절을 다시 읽어 본다.
`...그리운 친구야. 반가운 손님이 집에 오면 맨발로 달려나가서 춤추고 싶은 심정처럼 이 편지도 신발을 신지 않은 상태의 너를 반기는 나의 춤이란다. 초등학교 때, 너의 집에 가면 너의 어머님이 고추에 밀가루를 입혀서 찐 반찬과 감자를 주셨던 생각이 난단다. 그리고 네가 나한테 예쁜 조가비를 비단 헝겊에 싸서 준 생각도 나는데 그 귀한 조가비가 지금은 어디로 갔는지.... 예쁜 새들이 앞뜰에 와서 노래할 때마다 먼 곳에 있는 친구를 생각하게 됨은 언젠가 우리 둘도 정답게 앉아서 새들처럼 속삭이고 싶어서일 거라고 생각한단다. 정말 보고 싶구나. 네가 이곳에 올 기회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너의 시들이 내 마음에 닿으면 때로는 눈물이 되고, 때로는 사랑이 되고, 때로는 환희가 됨을 느낀다. 네가 옛날에 내게 써준 한 구절을 늘 기억하며 너를 그리워한단다. 너는 잊었을지도 몰라. `간밤에 별이 곱다고 주고받던 이야기, 깨고 나니 꿈이었구나`하는 구절을 말이야. ...나에겐 주은(June)이라는 키가 크고 예쁜 딸이 하나 있단다. 마음이 아주 착해. 그애가 영어로 쓴 시를 너도 한번 읽어 볼래?....`
앤(Anne)이라는 세례명을 지닌 내 친구 현숙이는 내가 창경 초등학교 5학년 때 강원도 원주에서 전학을 왔고, 6학년때도 한 반이었는데 환히 웃는 그의 하얀 얼굴과 귀여운 보조개가 인상적이었고, 늘 꾸밈없이 자연스럽고 구김살없는 밝은 성격이 내 마음에 들었다. 명랑하고 솔직한 그애에 비해 난 왠지 새침하고, 우울하고, 답답한 편이어서 더욱 그에게 매력을 느끼며 가까이 지냈는지도 모르겠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던 날도 난 다른 친구들을 제쳐두고 오직 현숙이하고만 학교 근방의 원남동, 동숭동 거리를 쏘다니며 졸업 후의 헤어짐을 아쉬워했던 기억이 새롭다. 서로 다른 여학교에 들어가서도 우린 종종 연락을 주고받으며 각자 새로 사귄 친구들을 소개해서 함께 어울리기도 했다. 한 번은 어떤 사소한 일로 현숙이가 나 때문에 몹시 화가 났다는 말을 전해 듣고는 확실히 알지도 못하고 그애의 이사간 집을 찾아 헤매다 눈물이 날 만큼 혼난 일도 있었는데, 일부러 화해의 먼 길을 달려온 나를 친구는 퍽도 감격하며 맞아들이던 생각이 난다. 친구가 대학을 졸업하고 혼담이 오갈 무렵 나는 이미 수녀로서 처음으로 서원을 한 후 서울에서 첫 소임을 하고 있었는데, 이름난 꽃꽂이 연구가인 친구의 어머니가 운영하는 연구소에서 있었던 몇 번의 만남을 끝으로 친구는 캐나다로 이민을 가고 나는 필리핀으로 떠나게 되었다. 외국에서도 서로 한두 번 편지를 주고받긴 했으나 연락이 끊어졌다가 거의 20년 만에 다시 연결이 되어 편지를 주고받은 뒤 6년 동안은 또 무소식 속에서 지냈다.
그런데 1993년 5월 어느 날 밤, 느닷없이 친구는 자기가 다니는 회사에서 내 연락처를 알아냈다며 국제전화를 걸어 외동딸 주은이가 미스코리아 캐나다 대표로 한국에 가게 되어 동행을 하니 잠깐이라도 꼭 만나자는 것이었다. 친구가 늘 모범 남편이라고 자랑하던 과학자인 강 선생도 우리가 25년 만에 만나 서로 어린애처럼 얼싸안는 모습을 지켜보며 빙그레 웃었다. 우리 수녀원에서 함께 점심을 먹으며 친구는 내내 감동으로 목이 메인다면서 눈시울을 적셨고, 해인이란 이름에선 바다내음이 나지만 내 어릴 적의 이름 명숙이가 더 정겹다고 했다. 내겐 필요도 없는 알록달록한 팔찌를 풀어서 정표로 받으라던 친구는 예쁜 편지지와 카드도 선물로 잔뜩 놓고 갔다. 뜻밖에도 자기 딸 주은이가 잠시 한국에 와서 어떤 배우와 사랑에 빠졌는데, 그들의 사랑이 하도 아름다워 자신의 모습도 한 번씩 돌아보게 된다던 친구. 그 사랑을 꼭 축복해 주고, 언젠가는 축시도 보내 달라며 내게 그들의 사랑 이야기를 열심히 적어 보내던 친구다. 내가 다른 사람과 더 가까워 보이면 아직도 묘하게 질투심이 싹튼다고 고백하는 나의 `튤립꽃` 친구는 어제도 팩스로 편지를 보내 왔다. 열두 살에 만났던 친구이니 열두 살이 된 것 같은 마음으로 그의 편지를 읽으면 절로 미소가 떠오른다.
`너를 안 지도 벌써 거의 40년이 되었지 않니? 반평생인 셈이야. 주님께서 맺어 주신 참으로 고운 인연이라 생각한다. 그동안 나는 사위를 맞고 이런 저런 복잡한 일들도 많았단다. 봄 숨결 속에 피어난 예쁜 꽃들이 여러 빛깔로 뒤뜰을 장식하고 있는데 왜 나의 마음엔 예쁜 꽃이 피지 않는 것인지.... 현실에서의 도피가 아니고 부산, 너 있는 곳에 뛰어가 옛 친구, 꼬마 때 친구와 그리운 우리들의 작은 동네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그런 마음이야. 네가 여길 다녀간 지도 두 해가 지났구나.`
친구의 딸 주은이가 약혼하기 두 달 전쯤, 나는 수녀원에 관계된 일로 2주 정도 캐나다에서 머물게 되었고, 특별 허락을 받아 친구집에서 하룻밤을 묵을 수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꿈같은 일이라며 내내 입을 다물지 못하고 기뻐하던 친구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꽃들이 많은 그의 정원에서 둘이 손을 잡고 사진도 여러 장 찍었는데, 친구는 그의 빼어난 미적 감각으로 실내장식이며 정원을 무척 아름답게 꾸며 놓아 시에서 주는 `가장 아름다운 정원상`도 받았다고 한다. 얼마 전 장안의 화제가 되었던 `모래시계`라는 드라마의 주인공을 맡아 더욱 인기인이 된 사위 민수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외동딸 주은을 위해 친구는 너더러 "나는 그들의 인간 엄마이니, 너는 천사 엄마의 몫을 맡을래?"라고 물어 왔다. 엄마는 너무 힘들고 이모 정도는 하겠다고 했더니 주은이는 이제 마음놓고 나를 이모라고 부른다.
친구는 요즘, 꽃잎을 안으로 오므린 튤립같이 사람들도 별로 만나지 않고 자신을 쓸쓸히 오므리고 사나 보다. 하나뿐인 딸이 결혼해서 한국으로 훌쩍 떠나고 나니 가슴속엔 슬픈 거미줄이 쳐 있는 것 같다고 시무룩해 한다. 내가 가끔은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나오는 멜라니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며 오늘도 기도를 부탁해 오는 나의 벗 현숙에게 나는 바쁘더라도 종종 동심으로 돌아가 새처럼 즐겁게 편지를 써야겠다.
`...동무야, 잘 있었니? 내가 슬프고 우울할 때 가장 환한 기쁨과 웃음의 불을 켜서 당겨 주던 꽃. 튤립을 닮은 나의 동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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