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할 땐 별이 되고 - 이해인
흰구름 단상
18
그동안 노환으로 고생하시던 수녀님 한 분이 우리가 지켜보는 가운데 평온히 선종하셨다. 안구 기증을 하시고 나니 시신이 되어서도 하얀 붕대로 두 눈을 가리시고, 흰옷 차림으로 백장미 향기 속에 고요히 누워 계셨다. 약간은 푸른빛을 띤 얼굴. 십자고상과 묵주를 든 차가운 침묵의 손. 수녀님은 이제 오래 계속될, 누워 있는 침묵 자체였다. 깊고도 긴 침묵. 이 침묵 앞에서 우린 대체 누구이며 무엇인가? 조종을 치고 모든 장례 예절을 질서정연하게 진행하던 우리였지만 입관, 하관 예절을 할 때는 울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17통 1반인 우리 수녀원의 세대주이기도 했던 순애 수녀님의 그 이름을 지우려니 참으로 서운합니다."라고 한 총원장의 슬픈 고별사를 들을 때는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고,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 왔다.
19
나는 오늘 `하관`이란 시 한 편을 썼다.
삶의 의무를 다 끝낸
겸허한 마침표 하나가
네모난 상자에 누워
천천히 땅 밑으로 내려가네
이승에서 못다 한 이야기
못다 한 사랑 대신하라 이르며
영원히 눈감은 우리 가운데의 한 사람
흙을 뿌리며 꽃을 던지며
울음을 삼키는 남은 이들 곁에
바람은 침묵하고 새들은 조용하네
더 깊이, 더 낮게 홀로 내려가야 하는
고독한 작별인사
흙빛의 차디찬 침묵 사이로
언뜻 스쳐가는 우리 모두의 죽음
한평생 기도하며 살았기에
눈물도 성수처럼 맑을 수 있던
노수녀의 마지막 미소가
우리 가슴속에 하얀 구름으로 떠오르네
20
가까운 이들이 이 세상을 떠났을 때의 그 느낌을 시로 쓰고 나면 며칠은 시름시름 몸이 아프고 마음은 태풍에 쓰러진 나무와 같다. 간밤엔 때아닌 추위가 느껴져 꽁꽁 싸두었던 이불을 다시 꺼내 덮고 잤다. 슬픔을 일으켜 세우는 건 언제나 슬픔인가.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안으로 안으로 실컷 슬픔을 풀어내고 나면 나는 어느새 용감해져서 일상의 길을 걸어 들어가 조금씩 웃을 수 있다. 죽은 이들은 말이 없으니 그들을 위해 시를 쓰는 것은 어리석은 일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러나 어찌 보면 그렇게 해서라도 약간의 위로를 받고 싶은, 살아 남은 자들의 조그만 욕심인지도 모른다. `수녀님도 하느님 만나실 그날까지 예쁜 일 많이 하시다가 깊은 잠 자는듯 그렇게 떠나십시오` 라고 어느 지인은 내게 글을 보냈지만 죽음에 대해서만은 정말 아무 계획도 미리 세울 수가 없다는 것을 임종하는 이들 곁에서 절감한다.
21
예년보다 더디 오는 가을을 반기며 오늘 내 마음을 스쳐갔던 흰구름 단상.
가을바람은 어디에 숨어 있다가 이제야 달려오는가.
함께 있을 땐 잊고 있다가도 멀리 떠나고 나면
다시 그리워지는 바람.
처음 듣는 황홀한 음악처럼 나뭇잎을 스쳐 가다
내 작은 방 유리창을 두드리는 서늘한 눈매의 바람.
여름 내내 끓어오르던 내 마음을 식히며
이제 바람은
흰옷 입고 문을 여는 내게
박하내음 가득한 언어를 풀어내려 하네.
나의 약점까지도 이해하는 오래된 친구처럼
내 어깨를 감싸안으며 더 넓어지라고 하네
바다로 달려가는 바람처럼
더 맑게 더 크게 웃으라고 하네
- 나의 시 `바다로 달려가는 바람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