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할 땐 별이 되고 - 이해인
기도일기
봄꽃들의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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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지방에 내린 큰비로 집이 무너지고 많은 사람들이 다쳤다는 소식을 들으면서도 지금 내가 있는 곳엔 햇볕이 쨍쨍하니 전혀 실감나지 않는다. 다른 이의 몸과 마음이 아픈 걸 빤히 보면서도 내가 아프지 않으면 그저 겉도는 동정을 할 뿐 깊이 실감하지 못하는, 참으로 어쩔 수 없는 인간의 한계. 식량의 위협을 받는 북한 동포들의 소식을 들어도 그저 냉랭하기만 한 나를 반성하며 오늘은 다락방에서 혼자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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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가 무얼 알아? 뭐니뭐니 해도 여자는 아이를 낳아 키워 봐야 철도 들고 인생을 아는 거라구." 불쑥 전화를 걸어 내게 힘주어 말하는 동생에게 나는 잔뜩 주눅이 들어 "그래, 그건 나도 알어. 그러니 이제 어쩌란 말이니?"라고 대꾸해도 왠지 석연치 않은 느낌이다. 그래도 힘들고 괴로운 일만 생기면 제일 먼저 내게 전화를 걸어 "언니야?" 언니는 어쨌든 나보다 하느님 가까이 있는 것으로 되어 있으니 급히 기도 좀 해주라. 알았지? 나중에 한턱 낼게. 꼭이야." 라고 한다. 살아갈수록 결혼도, 인생도 사실은 별것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많다고. 언니는 가장 좋은 몫을 택했으며, 수녀 되길 정말 잘했다고 곧잘 후렴처럼 덧붙이는 우리집 막내. 나보다 네살 아래지만 때로는 여러 면에서 언니 같기도 한 아우가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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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아파요? 목소리가 힘이 없네."
"어때? 건강하지"
이런 말만 들어도 눈물이 핑 돌며 고마워지는 마음은 내 마음이 약해졌다는 것일까?
"언제 한 번 다녀가지 그래."
"언제 좀 안 올 거야? 보고 싶은데..."
어쩌다 안부를 전해 오는 가까운 친지들의 목소리가 새삼 반갑고 포근하게 여겨지는 것은 내가 조금씩 더 외로움을 탄다는 말일까? 단순하고 평범한 안부의 말이 어떤 멋지고 교훈적인 말보다 훨씬 따뜻하고 깊은 여운을 남길 때가 많다. `불혹이란 자기 몫의 외로움을 겸허하게 견디는 일`이라고 고백한 어느 시인의 표현을 자주 생각해 보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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