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할 땐 별이 되고 - 이해인
 기도일기
 봄꽃들의 축제
 
 3
 바깥에 머물던 세월보다  수도원 안에 머문 세월이 더 많아서일까.  잠시 수도원을 떠나 있어도 내  귀엔 문득 귀에 익은 종소리가 들리고,  수녀들이 함께 외우는 기도소리가  들리고, 풀밭에서 함께 웃는  웃음소리가 들린다. 어디엘 가나 계속 되는 이 환청을 나는 아름다운 것으로 받아들인다.
 
 4
 서원반지를 20년이나 끼고 있던  손가락이 어느 날부터 조금씩 부풀더니 매우 아프기 시작했다. 반지를 빼고 나서도  오래 아프고 말을 안 듣는다. 늘 끼고 있으면서도 잊고 살았던 내 동그란 반지처럼 너무 가깝기에 잊고 산 듯한 나의 하느님. 약속의 하느님을 오늘은 죄송하고 절박한 마음으로 그리워했다. 나는 그분 앞에 늘 염치없는 사람이다.
 
 5
 섣부른 충고,  경솔한 판단, 자기 자랑,  가벼운 지껄임 - 하루의  모든 말들이 내가 주어 온  침묵의 돌들 앞에서 부끄러워진다. 며칠 전  안동에 갔다가 700년 되었다는 용계 은행나무  아래서 기념으로 몇개 주어  온 침묵의 돌들이 밤마다 깊고 고요한 눈길로  나를 길들인다. 침묵으로 노래하라. 침묵으로  기도하라. 침묵으로 사랑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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