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이야기 2 - 정채봉, 류시화 엮음
3. 함께 사는 삶
하느님, 용서하십시오 - 이광환
미국 동부 시카고에서 서울까지는 비행기로 열다섯 시간이 걸린다. 공항까지의 이동과 입출국 수속 등까지 합치면 거의 하루가 걸리는 장거리 여행이다. 탐승 후 오랫동안 옆 좌석이 비어 있어 나는 매심 이번 여행은 편하겠구나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륙을 불과 몇 분 앞두고 몸을 가누지 못하는 장애인 여성이 휠체어를 타고 올라와서는 여러 승무원들의 도움을 받아 겨우 내 옆자리에 앉는 것이었다. 순간 나는 당황해서 승무원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승무원은 내게 "불편해서 어떡하죠?" 하며 만석이라 자리를 옮겨 드릴 수 없는 것이 죄송하다고 양해를 구했다. 비행기가 이륙한 후 나는 다시 한 번 옆 좌석을 보았다. 혼자서는 식사도 할 수 없고 화장실도 갈 수 없는 중증 장애인으로, 얼굴도 화상을 입은 듯 똑바로 쳐다볼 수 없는 흉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비행기가 출발한 지 서너 시간이 지난 뒤부터 나는 부끄러운 내 모습에 "하느님, 용서하십시오"하고 수없이 고백해야만 했다. 나와 그 장애인 여성이 앉은 옆자리에는 또 다른 미국인 승객이 앉아 있었다. 내가 쌀쌀한 모습으로 냉담한 것과 달리 잘생긴 그 미국 청년은 장애인 여성에게 이야기 상대도 되어 주고 식사 시간엔 손수 식사를 준비해 도와 주었다. 그리고 화장실에 갈 때면 부축해 주며 동행해서는 화장실 밖에서 기다렸다가 다시 좌석으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비행기가 경유지인 서울에 도착하기 전, 빗으로 머리까지 손질해 주는 그는 바로 천사의 모습이었다.
청년은 컴퓨터 엔지니어로서 태국의 수도 방콕으로 휴가를 가는 길이었고, 장애인 여성은 어릴 적 심한 화상으로 불구가 되어 미국에 입양되었다가 지금 태국의 친부모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매번 미국 여행 때마다 미국의 외적인 모습만 보고 본받고 싶지 않았는데 오늘 본 미국인의 모습은 바로오늘의 미국을 있게 한 힘이었다. 장애인의 어려움을 자기 일처럼 도와 주는 미국 청년, 화상으로 불구가 되어 버려진 고아를 입양해 성장시켜서는 다시 부모의 나라로 여행시키는 미국인. 그것은 내게 잊을 수 없는 교훈이었다. (경남 마산시 거주)
14년 만의 외출 - 윤진용
어느 해 가을이었다. 세모의 바쁜 걸음에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교도소 정문 밖에는 인정과 사랑 그리고 기쁨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오랫동안 흰벽돌담의 쇠창살을 사이에 두고 부녀간의 정을 나누던 수형자가 딸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7일 간의 휴가를 받아 교도소 문을 나섰다. 가시 한 번 하늘을 우러러보는 그는 민족의 비극이었던 6,25때 공산당에 부역한 죄로 붙들려 왔고 그때 외동딸은 고사리 같은 손으로 아빠를 부르며 재롱을 피우던 여섯 살의 귀염둥이였다. 그가 무기징역을 받던 날 아내는 헌신짝 버리듯 부녀를 두고 달아났고 귀염둥이 딸은 할머니 손에서 부모의 사랑을 그리워해야만 했다. 열 살이 되던 해, 아빠가 있는 교도소 근처 양과점에서 일하며 틈틈이 아빠를 찾아가 정을 나누며 눈물을 거두기도 했다.
"아빠, 내일이 어버이날이야. 카네이션 사 가지고 왔어."
"그래, 우리 미영이 착하기도 해라. 근데 왜 엄마는 안 오고 혼자 왔니?"
"엄마? 할머니가 그러는데 엄만 돈 벌러 갔대. 근데 아빠는 언제까지 여기서 살아야 해?"
"글쎄, 한 열 밤?"
면회를 시키던 그곳 교도관도 세상에 물들지 않은 어린 딸의 동심에 얼굴을 돌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던 그녀가 공장에 다니는 건실한 청년과서로를 이해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들은 결혼 승낙을 얻기 위해 교도소에 여러 차례 면회를 왔다. 그때마다 딸의 얼굴에서 그간의 사연을 생각하며 엄마 같은 여자가 되지 않기를 빌고 또 빌었으리라. 비록 그의 죄는 미웠지만 그 사람은 미워할 수가 없었다. 우리들은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딸의 결혼식에 축하객으로 참석할 수 있도록 교도소에서 휴가를 허락해 주었다. 14년 만의 외출, 생각하면 그것은 너무나 벅찬 기쁨이었다. 결혼식에 참석차 떠나는 그에게 교도소 직원들은 조그만 축하 선물을 안겨 주었고 그는 딸과 고향으로 발길을 옮겼다. 교도소의 아빠 손을 잡고 결혼식을 올린 지도 어언 몇 해, 세월이 지난 요즈음도 그때의 그 일이 눈에 선하기만 하다. (법무부 교정국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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