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이야기 2 - 정채봉, 류시화 엮음
3. 함께 사는 삶
성자의 거울 - 노기남
신학부 2학년 방학 때 프랑스인 손 부이스 신부님은 동창인 기낭 신부님을 만나러 상경했다. 나는 신부님과 동행, 군포로 나와 기차를 탔다. 늘 하던 대로 3등표를 샀는데 이날따라 3등칸은 발디딜 팀조차 없었다. 자리를 찾아 2등칸까지 갔으나 역시 붐볐다. 사람을 헤치며 1등칸까지 가서야 우리는겨우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짐을 챙기고 나서 차장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3등표를 1등표로 바꿔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차장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내가 신학생이란 신분을 생각하니 초조할 수밖에 없었다. 끝내 차장을 만나지 못하고 우리는 그냥 내리고 말았다. 신학교에서 하루를 묵고 우리는 시흥으로 내려가기 위해 다시 서울역으로 나왔다. 손 신부님은 1등표를 사라고 하셨다. 올라올 때 사람이 붐볐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나는 그냥 표를 샀다. 역 안으로 들어가자 손 신부님은 1등칸을 지나 3등칸으로 오르셨다. 내가 말했다.
"1등칸은 저깁니다."
그러자 손 신부님이 말씀하셨다.
"아, 그래. 알고 있어."
그러시면서 그냥 3등칸으로 오르시는 것이었다. 나도 따라 탔다. 이날도 3등칸은 붐볐다. 승객을 비집고 선 손 신부님은 웃는 얼굴로 나를 돌아보며 말씀하셨다.
"바아로, 오늘은 아무리 3등칸이 붐벼도 그대로 타고 가자. 어제는 3등표로 1등칸을 탔으니 오늘은 1등표로 3등칸을 타야지 빚을 갚지 않겠나."
(천주교 대주교)
책임을 아는 마음 - 하태민
병원을 한 바퀴 돌아보면서 나는 특히 환자들의 용모나 손발 등에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었다. 대개의 환자가 얼굴이 찌그러지고 손발이 뭉그러졌으나, 전혀 나환자답지 않게 깨끗한 모습의 환자도 제법 많았다. 만일 이 병원 밖에서 만났다면 누가 그들을 나병환자라고 여겼겠는가. 그 가운데 특히 시선을 끈 환자는 장님들이었다. 삼삼오오 줄을 지어 작대기 끝을 붙잡고 더듬더듬 다니는 모습이 얼마나 측은하던지, 차마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나는 원장 신정식 박사님을 만나서, 그 많은 장님들이 병 때문에 시력을 잃었느냐고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자 박사님이 말씀하셨다.
"아닙니다. 저 같은 의사들의 책임이죠. 비단 장님뿐만이 아니라 얼굴이나 수적이 상한 것도 모두 우리 의사들의 책임입니다."
서슴지 않고 자신들의 책임이라고 대답하는 그를 보고 나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잘된 일에 대해서는 큰 공을 세웠다고 으스대는 사람들을 자주 보아왔지만 잘못된 일을 두고 한 마디 변명도 없이 자기의 책임이라고 솔직히 시인하는 사람은 본 적이 거의 없었다. 자기를 낮출 아는 겸손함과 남을 돕는 박애 정신을 갖춘 그런 분들이 존재하는 한 우리 사회는 밝아질 것 같았다.
(광주시 광주 전매지청 서무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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