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이야기 2 - 정채봉, 류시화 엮음
1. 평범한 행복 2
친구의 편지 - 강준희
대학 3학년 때 우리 집이 망했다. 망해도 아주 철저히 쫄딱 망했다. 건축업을 하던 아버지가 어떤 사기꾼에게 속아 그렇게 된 것인데, 그때 우리 식구들은 살던 집은 물론 가재도구, 살림살이 도구, 옷까지 고스란히 남겨 놓고 알몸으로 거리에 나앉았다. 당장 잠잘 곳을 잃어버린 식구들에게 그나마 상도동 산비탈에 흙집을 마련한 것은 역시 아버지가 건축업을 했던 덕이었는지 모른다. 아무튼 그 한심하기 이를 데 없는 흙집이 아버지가 지은 마지막 작품이었다.아버지는 흙집을 짓고 나서 한 달 뒤에 그곳에서 분한 마음을 누그러뜨리지 못하고 숨을 거두시고 말았다. 졸지에 당한 겹친 불행은 나로하여금 끝없는 절망만 알게 했다. 거의 실신하다시피 되어 버린 어머니와 나이가 어린 세 동생들. 나는 장남의 입장에서 어쨌든 집안을 책임져 나가야 했지만 도무지 암담할 뿐이엇다.그 지경에 이르러서는 친척이란 것도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걸 그때 처음으로 뼈저리게 느꼈다. 죽음이라는 걸 몇 번이고 생각하며 오로지 절망만을 바라고 앉아 있던 어느 날 어떻게 알고 왔는지 K가 찾아왔다.
손에는 알사탕 한 봉지와 사과 한 봉지 그리고 엉뚱하게도 국화 한 묶음을 들고. K는 같은 서클 활동을 하던 고등학교 1년 후배로 대학에 진학한 뒤에는 그다지 자주 만나지 못했었다. 그런 그가 어떻게 알고 찾아온 것일까? K는 그날 별로 말을 하지 않고 그냥 돌아갔다. K의 편지를 받은 것은 그로부터 2주일쯤 뒤였다. 논산 훈련소로 떠나며 보내 온 편지였는데 편지 속에는 2만 5천 원의 돈과 함께 나의 고등학교 등록금을 낸 영수증이 들어 있었다. 형, 제발 언짢게 생각하지 말아 주십시오. 제가 무슨 서푼짜리 동정이나 베풀고 다닌다고 노여워하지 마십시오.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형은 저를 잘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졸병이 된 제가 형에게 경례를 붙이는 날, 그날 한 잔 사주십시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가 내게 보낸 돈과 등록금은 1년 동안 가정교사를 하며 꼬박 모아 온 돈이었다. 그 역시 넉넉치 못한 가정 형편으로 스스로 학자금을 마련해야 할 처지였고 내게 보낸 돈은 그의 전 재산이었다. 떡하게 된 내 처지를 보고 그는 군대에 지원 입대를 하고 대신 나를 구해 주기로 던 것이다. (회사원)
어떤 결혼 예물 - 이상헌
어느 날, 젊은 남녀가 내 사무실로 찾아왔다. 며친 전 결혼 예물에 대해 얘기했던 내 방송을 듣고 왔다는것이다.
"저희들은 곧 결혼할 사이인데 흔한 결혼 예물이 아닌 '우리들의 보석'으로 예물을 마련하고 싶습니다. 좀 도와 주십시오."
그들이 가져온 것은 그동안 보석 가공업과 금속 디자인을 해온 나로서는 처음 보는 보석(?)이었다. 아니 보석이라기보다 희귀한 돌맹이라고 보는 것이 전문가다운 감정일 것이다. 그들이 부부가 되기로 약속하고 처음으로 함께 등산을 한 강원도 어느 산골에서 주웠다는 그 돌은 산과 들에서 흔히 발견되는 아제이트(Agate) 류의 준보석이라든가 조직의 치밀도, 색상 등에서 볼 때 보석의 구비조건이나 호나가의 가치로는 탐탁치 않은 것이었다. 그런 그들은 사랑의 약속을 오래 오래 기념하고 굳게 다짐할 정신적 신표로서 이 돌을 꼭 간직하고 싶다는 얘기였다. 이 돌맹이(그들은 즐겨 그렇게 불러 주기를 바랐다)를 똑같은 모양으로 나눠 갖고 싶다면서 디자인까지 연구해 온 것이다. 남 보기에는 하잘것없는 돌맹이에 불과하겠지만 결혼 예물을 마련하는 마음 자세로는 이 이상 의미 깊고 정성스러울 수 없을 것 같았다. (보석 연구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