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참 가슴 찡한 이야기 - 황지니
가난한 곡예사의 헌금
프랑스 루이 왕 시대에 어느 가련한 곡예사가 있었습니다. 바르나베라는 이 사람은 콩피에뉴 태생으로 이 마을 저 마을 돌아다니며 힘든 곡예를 하며 살았습니다. 장날이 돌아오면 그는 우선 재미있는 얘기로 구경꾼을 모으고 이어서 백랍으로 만든 접시를 코에 얹어 균형을 잡았습니다. 물구나무서기를 하고, 구리공 여섯 개를 발로 차고 받고, 목덜미가 발뒤꿈치에 닿을 만큼 몸을 뒤로 젖혀 완전히 원을 그린 자세로 열두 개의 칼을 가지고 곡예를 할 때면 관중 속에서 감탄의 소리가 터져 나오며 동전이 비오듯이 날아와 깔개 위에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그의 생활은 매우 힘들었습니다. 하루 종일 비가 내리던 어느 날 저녁, 헐어빠진 깔개에 공과 칼을 말아서 겨드랑이에 끼고 저녁도 굶은 채 잘 만한 헛간을 찾아 걸어가던 그는 같은 길을 걷는 수도자를 보고 공손히 인사를 했습니다. 수도자는 바르나베와 이야기를 하는 도중 그의 순박한 마음에 감동되어 '마음이 깨끗한 사람'임을 알고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바르나베 친구, 나와 함께 갑시다. 내가 원장으로 있는 수도원에 들어올 수 있도록 하겠소."
이리하여 바르나베는 수도자가 되었습니다. 그가 들어간 수도원에는 각자 하느님께서 주신 재능과 지식을 다해 성모님께 봉사하고 있었습니다. 박식한 모리스 수사는 글을 독피지에 옮겨 쓰고 일렉산드로 수사는 거기에 아름다운 세밀화를 그려 넣으며 마르보드 수사는 쉬지 않고 석상을 깎고 있어서 수염과 눈썹, 머리칼이 온통 먼지로 하얗게 뒤덮여 있습니다. 수도원 안에는 또한 시인들도 있어서 성모님을 찬미하는 송가나 산문을 짓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서로 다투어 성모님을 찬송하고, 훌륭한 작품들이 많이 쌓이는 것을 보고 바르나베는 자신이 단순하고 무지한 것을 탄식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바르나베는 기쁜 듯 자리에서 일어나 성당으로 달려가더니 한 시간 이상 머물러 있었습니다. 저녁식사 후에도 또 성당에 갔습니다. 이때부터 매일 성당이 비어 있는 시간이면 바르나베는 성당에서 지냈습니다. 그의 행동을 수상히 여긴 수도원장이 고참수사를 데리고 문틈으로 유심히 들여다보았습니다. 바르나베 수사는 성모님 제단 앞에 거꾸로 서서 허공에 쳐든 발을 여섯 개의 구리공과 열두 개의 칼을 가지고 재주를 부리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수사가 분개하여 그를 끌어내려 할 때였습니다. 성모님이 제단에서 내려와 푸른 옷자락으로 곡예사의 이마에 흐른 땀을 닦아 주었습니다. 원장은 땅에 엎드려 말했습니다.
'마음이 깨끗한 자는 하나님을 뵙게 될 것이다.'
마음은 항상 비지 않으면 안되나니, 마음이 공헌하면 정의와 진리가 거기 와서 살 것이요, 마음은 항상 꽉 차 있지 않으면 안 되나니, 마음이 충실하면 물욕이 거기에 들어오지 못할 것이다. (홍자성)
타임머신을 타 보셨나요?
런던 교외의 길거리에서 웬 힘센 사내애가 저보다 어린 아이를 들어올린 후 내던졌습니다. 버티(허버트의 애칭)는 그 아이를 받으려다가 그만 한쪽 다리가 부러지고 말았습니다. 그는 몇 개월 동안 발에 추를 매달고 침대에서 고생했으나 접합이 되지 않아 수술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어린 소년에게 그 일은 참으로 무서운 경험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완전히 재수없게 걸려든 사고였지만 그것이 그에게는 큰 행운이었습니다. 꼭 1 년간을 꼼짝도 못하고 누워 있는 바람에 할 수 없이 책만 닥치는대로 읽은 결과 세계적 대문호로 성장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허버트 웰스는 도기점을 하는 집안의 2층 좁은 방에서 태어났습니다. 지하에는 음침한 작은 방이 있어 부엌으로 쓰고 있었는데 머리 위의 행길로부터 쇠창살 틈으로 광선이 들어왔습니다. 그는 창살문 위로 지나가는 사람의 신발을 보고 그 사람의 인품을 알아맞힐 수 있었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도기점이 망해 버리자 어머니는 부잣집의 가정부로 들어가고 버티는 포목점 점원으로 일했습니다. 수십 년 후의 '세계문화사 대계'의 저자가 될 인물이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 가게 청소를 하고, 난로에 불을 지피고, 하루에 14시간씩 혹사당한 것입니다. 한 달이 되자 그마저 쫓겨와 약방 점원이 되었지만 여기서도 한 달 만에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그는 또다시 다른 포목점에 들어가 2 년간 일을 했지만 어느 날 그곳을 도망쳐 나와 15 마일이나 떨어진 곳에 있는 어머니를 찾아가 눈물을 흘리면서 애원합니다.
"어머니 더 이상 가게에 못 있겠어요. 더 있으라고 하면 자살해 버리겠어요."
그런 후 은사로부터 교사 일자리를 얻어 교사 일을 3 년 정도 하고 있을 때 또 불의의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어느 날 축구시합을 하다 밀려 넘어져서 신장 한쪽이 짓이겨지고 오른쪽 폐가 파열되는 바람에 출혈이 심해 위험한 상태가 된 것입니다. 의사들도 외면한 상태로 생사의 갈림길에서 12 년 동안 목숨이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12 년간 그 수많은 생각을 했고 재능을 키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후 5 년간 필사적으로 글을 썼지만 모두가 아마추어 냄새만 풍긴다는 것을 알고 스스로 써놓은 것들을 모조리 불태워버렸습니다. 얼마 후 반불구의 몸으로 교사직을 얻었는데, 그곳에서 자기처럼 불구인 한 여학생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그래, 지금 당장 최대의 행복을 붙들어 두자"라고 다짐한 후 그는 그녀와 곧 결혼했습니다. 그 뒤로 그는 쓰러지거나 죽기는커녕 건강을 회복하고 정력적으로 집필에 전념해 '타임머신' 등 80권 이상의 책을 썼고 그것은 모두 전세계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인간에겐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일을 얻지 못하면 맥이 빠져 버리는 인간, 또 하나는 비록 일이 없어도 반드시 자신에겐 무언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믿는 인간, 이 두 종류의 인간이 있다. (디즈니)
평생을 두고 할 일
저희 할아버지는 폴란드에서 모자점을 경영하셨습니다. 할아버지는 만일 당신이 판 모자에 조금이라도 흠이 있거나 어떤 결함이 드러나면 손님의 집까지 찾아가 모자값에서 얼마쯤을 떼어 돌려 주셨습니다. 할아버지는 언제나 정당한 값을 받고 판다는 신념을 잊은 일이 없으셨습니다. 바른 장사를 하는 것은 하나님에게 바른 일을 하는 것과 같다고 당신 스스로 생각하셨기 때문입니다. 또 저희 외할아버지는 양복점을 경영하셨습니다. 외할아버지는 건너편의 양복점을 찾는 손님이 잘못하여 당신의 가게로 온 것이 아닐까 걱정이 되어 "틀림없이 저희 가게를 찾아오신 겁니까? 혹 건너편 양복점이 아니지요?"라고 확인하곤 했습니다. 양복점의 형편이 넉넉한 것도 아니었으므로 외할머니는 "새 손님이 오면 그저 잔말 말고 '이제부터는 우리 가게의 단골손님이 되어 주십시오' 하면 좋을 텐데"라고 불평을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외할아버지는 정색을 하고 "우리집만이 아니라 건너편의 양복점도 먹고 살아야 한단 말야" 하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태어날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이 평생 얼마 만큼의 일을 할 것인가를 미리 정해 놓으셨어. 그러므로 일을 너무 많이 하면 정해 놓은 일이 빨리 끝나고 그만큼 빨리 죽는 거야." 그 덕분인지 외할아버지는 오래도록 건강하게 사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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