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참 가슴 찡한 이야기 - 황지니
나는 무엇이 되고 싶은가?
짬렁 시므렁, 그는 뇌물을 모르는 채식주의자로 하루 한 끼밖에 먹지 않으며 서민들의 마음을 어떤 정치인보다도 잘 이해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 자신이 이미 서민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두 차례의 방콕 시장 선거에서 우리나라 돈으로 약 18 만 원을 쓰고도 유효득표율이 63.5%의 지지를 얻으면서 당선되어 민주주의의 기치를 높이 세웠습니다. 그는 우편열차의 직원이었던 아버지와 지게 행상이었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였습니다. 그가 비록 가난한 집안의 아이였으나 그의 부모님은 훌륭한 분들이어서 어릴 때부터 바른 품성을 몸에 익혔습니다. 그는 스스로 말하기를 "나는 비록 가난한 집안의 아들이었고 길가에서 노는 아이들의 친구였지만 험한 말씨나 좋지 않은 말을 쓰지 않았습니다. 큰 소리로 버릇없이 떠들기는 했어도 악담은 하지 않았고, 천하게 남을 넘겨짚어 말하지 않았다는 점만은 장담할 수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물론 그에게도 계속되는 욕구와 갈등이 있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놀고 공부하였습니다. 먹을 것이 있기를 바랐고, 마음 맞는 친구와 훌륭한 선생님이 있기를 바랐습니다. 어머니에게 매를 덜 맞기를 바랐으며, 유명한 학교에 진학하기를 바랐습니다. 근사한 칼을 차고 다니는 사관생도가 되고 싶었으며, 좋은 직장을 갖고, 아름다운 여자와 결혼하고 싶었습니다. 땅과 집 그리고 자동차도 갖고 싶었습니다." 이러한 평범한 꿈을 가진 그가 1985 년에 방콕 시장에 출마하여 당선되자 스스로 자문하기를 '나는 도대체 무엇이 되고 싶어 하는가? 나는 크게 되고 싶어 한다. 무엇을 하든 지금보다 더 크게 되고자 노력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다른 사람과 달랐습니다. '만약 그 일이 되지 않는다면 나는 '짬렁'으로 돌아가고 싶다. 나는 7뼘의 폭과 12뼘 길이의 내 오두막으로 돌아가 자연과 더불어 즐겁게 그리고 계속해서 욕심을 잠재우는 참선을 벗삼아 살 것이다. 나는 더 바랄 것이 없다.'
그는 자신의 분명한 견해와 이상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의 입장이 올바른가를 항상 되돌아봤습니다. 그는 언제나 따뜻하고 부드럽고 예의바른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을 귀히 여기며 누구도 비난하지 않았던 그는 강한 인내의 소유자였으며 무엇보다도 항상 밝은 미소를 잃지 않았습니다. 그는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였고 군의 장학금으로 미국에서 공부하여 행정학 석사학위를 상원의원, 수상실 비서, 방콕 시장 등을 역임했습니다. 이런 그는 고기를 먹지 않으며, 취침시에는 널빤지 위에서 잘 뿐 아니라 우산을 갖고 다니다가 밤이 되면 우산을 펴 그 아래에서 자기도 했습니다. 이런 그를 선거 때마다 다른 후보들이 비정상이라고 혹독하게 비난하지만 그는 조금도 개의치 않고 자기가 해야 할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검소와 친절 그리고 자비심이 바로 그가 하는 일들에 수반되는 정신이었던 것입니다.
훌륭한 정신을 가진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잘 사용하는 것이다. (데카르트)
세 곳에 보낸 편지
'동물 이야기'를 쓴 시튼(Seton, Emest Thompson 1860~1946)이 열아홉 살 때의 일입니다. 그 해 캐나다의 한 미술학교를 졸업한 시튼은 런던으로 유학을 가게 됐습니다. 시튼의 집은 가난했기 때문에 그는 런던에서 일을 하면서 공부를 계속했습니다. 시튼은 원래 그림공부를 했으나 장차의 꿈은 박물학자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책을 구해 읽으려고 애썼습니다. 그 무렵의 어느 날, 그는 브리튼 박물관에 전세계에서 발행된 귀중한 박물학 관계 서적이 많이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시튼은 곧 박물관으로 뛰어가서 열람을 신청했습니다. 그러나 도서계원은 그가 19세의 어린소년이라는 이유로 열람권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 계원은 박물관 규칙상 21세가 되야 입관이 허용된다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시튼은 박물관의 규칙을 알지만 박물학을 공부하려는 자신의 뜻을 저버리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시튼의 열정에 마음이 누그러진 계원은 그렇다면 한 번 사서관장을 찾아가서 부탁해 보라고 말했습니다. 계원은 자기로서는 어쩔 수 없지만 사서관장이 허락한다면 예외로 들여보내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시튼은 다시 사서관장실 찾았습니다. 그는 한참을 찾은 끝에 사서관장이라고 써붙인 방을 노크했습니다. 시튼은 사서관장에게 자기가 찾아온 뜻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사서관장은 융통성없는 어조로 말했습니다.
"학생의 뜻은 잘 알겠소. 그러나 여기서는 엄격한 규칙이 있어 그걸 어길 수는 없소. 미성년자들이 출입하게 되면 소설을 읽는다거나 과제 같은 것을 하는 사람이 많아서 정작 연구를 하는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기 일쑤요. 학생 같이 열심히 연구하려는 열성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안됐지만 어쩔 수 없소."
사서관장의 말을 조용히 듣고 있던 시튼은 별안간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기서 제일 높은 분이 누구십니까?"
사서관장은 그의 당돌한 질문에 웃음지으며 말했습니다.
"제일 높은 분이라, 여기서는 내가 최고 책임자지만 평의원의 지시가 있으면 그대로 따르겠네."
"그럼 그 평의원은 구체적으로 누굽니까?"
다시 묻는 시튼의 얼굴에서 진지함이 우러나고 있었습니다. 사서관장은 어느덧 시튼에게 마음이 끌렸습니다. 그래서 그는 부드럽게 설명했습니다.
"평의원이란 황태자, 대승정, 그리고 총리대신 그렇게 세 분일세만, 그분들이 과연 학생의 청을 들어 줄까?"
그러나 시튼은 사서관장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인사를 하고 물러나왔습니다. 시튼은 하숙집에서 밤늦게까지 편지를 썼습니다.
...... 박물학은 제게 있어서 생명과도 같습니다. 그러나 지금 제게는 그것을 연구할 만한 책이 없습니다. 오직 박물관에서만 그 책을 볼 수가 있답니다. 저는 언제까지 영국에 머물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박물학을 연구할 생각만으로 희망을 느낍니다. 원컨대 저로 하여금 박물관에서 연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십시오......
시튼은 세 곳에 편지를 보내기는 했지만 그 중에서 누구든 단 한사람이라도 회답을 주길 바랬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모두에게서 회답이 왔는데 한결같이 그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해 본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시튼이 사서관장을 찾아가자 그는 시튼의 손을 잡고 말했습니다.
"놀랍네. 최후까지 자신의 신념을 관철하려는 용기는 정말 훌륭해. 황태자께서 허락을 내리셨네. 오늘부터 자네는 마음대로 연구하게 되었네. 열심히 연구해서 꼭 훌륭한 사람이 되길 바라네."
시튼은 그때부터 열심히 연구하여 후에 유명한 작가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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