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참 가슴 찡한 이야기 - 황지니
행운은 누릴 자의 몫
유명한 지휘자인 토스카니니는 원래 다른 사람들보다 촉망받는 첼로 연주자였습니다. 그의 긴 손가락은 첼로 연주에 적합했지만 심한 근시였던 토스카니니는 몇 배의 노력을 기울여야 했습니다. 그의 눈은 연주회에서 악보를 볼 수 없을 정도여서 악보를 모두 외워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한번은 뉴욕에서의 공연 일정이 잡혀 단원 모두가 몹시 분주하게 연습에 몰두했습니다. 무척 중요한 공연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평소같이 이번에도 토스카니니는 악보를 모두 외웠습니다. 그런데 연주회를 이틀 앞두고 지휘자가 병원에 입원하게 됐습니다.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라 새로운 지휘자를 구할 처지가 아니었습니다. 연주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머리 속에 담고 있는 누군가가 필요했습니다. 연주 단장은 토스카니니를 불렀습니다. 당시 19세였던 토스카니니에게 지휘를 맡기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이 연주에서 토스카니니는 지휘자로서 실력을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 토스카니니(Toscanini, Arturo, 1867~1961)
이탈리아의 지휘자로 20세기 전반을 대표하는 거장의 하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뛰어난 음악적 재질을 보였다. 그는 명쾌한 리듬 감각과 강렬한 음량증감법을 효과적으로 구사하여 극히 현대적인 연주 양식을 확립해 놓았다.
영국제 미국인의 웃음 배달
가장 미국적 코미디언인 보브 호프, 발음이 엉뚱하고 횡설수설하면서도 관중들의 배를 끌어안는 폭소를 보는 순간 보브는 사람을 웃기는 것만큼 즐거운 일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8만 마일이나 날아가서 사람을 웃긴 사나이, 알제리에서는 적의 폭격을 만났고, 이탈리아에서는 폭격중인 공항과 탄약고 사이에서 오도가도 못하는 곤경에 처하면서도 종횡무진 전선을 누비며 향수병에 시달리고 있는 미군 장병들에게 그 나름의 천하지 않은 농담을 기관총처럼 퍼붓는 사나이. 그런 인물이 바로 보브 호프입니다.
한번은 영국에서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군인 60여 명이 10 마일의 황야를 터벅터벅 걸어서 보브 호프의 공연을 보러 오다가 도저히 끝까지 걸을 수가 없어서 실망을 안고 중도에서 돌아서게 되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보브 호프는 공연이 끝나고 마지막 박수소리가 그치기도 전에 단원 일동을 지프에 태우고 뒤를 쫓아가, 60 명의 군인들을 위해 비가 쏟아지는 황야의 한복판에서 다시 한 번 공연을 되풀이하는 것이었습니다. 무서운 열정이 아니고는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보브 호프는 가장 미국적인 코미디언으로 통하고 있는데, 사실은 영국 태생입니다. 양친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와 클리브랜드에 정착했을 때는 어금니가 한 개 정도 돋았을 나이였습니다. 일곱 살 때, 그 고장의 교회 추수감사절 행사에서 무대에 나가 시를 읊었습니다. 발음은 엉뚱했으며, 문구는 횡설수설, 관중들은 배를 끌어안고 폭소를 터뜨렸습니다. 대개의 아이들이라면 얼굴이 새빨개져 도망쳐 나왔을 것이지만 보브는 싱긋 한번 웃고는 공중제비를 넘은 다음 고개를 까딱하고 숙였습니다. 그 순간 보브는 사람을 웃기는 것만큼 즐거운 일이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입니다.
이후, 지독한 가난 속에서 삶은 콩과 도너츠만 먹고 살았습니다. 얼마나 신물이 났는지 삶은 콩과 도너츠는 보기만 해도 위가 스코트랜드 춤을 춘다고 익살을 부리곤 했습니다. 어느 날 극단 지배인이 보브에게 무대에 나가 내주의 공연 예정을 소개해 달라고 했습니다. 보브는 관중들 앞에 나갔습니다.
"사실은요, 지배인으로부터 부탁이 있어서요. 내주에는요, 아주 신나고 멋있는 연극을 보여 드릴 모양이에요. 제목은 뭐가 됐건...... 재미만 있으면 되지 않겠어요?"
그런데 관중들은 끝까지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휘파람을 불고, 마룻바닥을 동동 구르며 폭소를 터뜨려 마치 소동이 난 듯하였습니다. 보브가 무대에서 내려오자 지배인이 말했습니다.
"보브, 재주가 대단하군. 아마도 자네 밥줄은 관중들의 배꼽에 달려 있는 듯싶네."
그때부터 보브가 조크를 터뜨리면 1억 3천만 명이 한꺼번에 배를 쥐고 웃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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