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이야기 2 - 정채봉, 류시화 엮음
1. 평범한 행복 2
집배원 아저씨 - 유미경
아저씨 제 말 들리세요?
제 이야기 들어 보세요.
아저씨! 저도 아저씨처럼 좋으신 아빠가 계셨어요. 그런데 제가 1학년 때 아바께선 돌아가셨어요. 그때는 어려서인지 그렇게 슬프지도 않았고, 울고 계시는 엄마가 밉기만 했어요. 자는 아빠가 며칠 있으면 오실 줄 알았거든요. 그러나 아빠는 돌아오시지 않았어요.2학년이 되어 애들이 자기 아빠 얘기를 할 때면 난 그만 고개를 숙이고 그애들을 부럽게 생각했어요. 어떤 때는 '아빠'라는 말만 들어도 우리 아빠가 보고 싶어 죽겠고 돌아가신 아빠가 미웠어요.
전에는 아빠가 어찌나 보고 싶든지 '엄마랑 아빠가 바뀌어 되지 않고...'하는 철없는 생각까지 했었어요. 엄마가 싫어서가 아니라 엄마도 좋지만 아빠가 너무 보고 싶어서였지요.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편지 쓰기'를 배웠어요. 선생님께서는 멀리 있는 사람에게 서로 소식을 전할 수 있다고 하셨어요. 저는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왜냐하면 하늘나라에 계시는 우리 아빠에게 소식을 전할 수 있고 또 아빠의 답장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었어요. 선생님께서는 편지 쓰기 숙제를 내주셨어요. 그런데 아빠의 주소를 알 수가 없었어요.엄마에게 물어 보려다 또 엄마가 우실까 봐 그냥 '하늘나라'라고만 봉투에 써서 학교에 갔고 갔어요. 학교에서 우리는 처음 써본편지를 책상 위에 얹어 놓고 누가 예쁘게 썼나 비교해 보기도 했어요. 그런데 애들이 저를 놀렸어요.
"얘, 죽은 사람 사는 데가 어디 있니? 죽은 사람이 그 편지를 어떻게 받아? 그럼 또 그 편지를 누가 갖다 준대?"
나는 부끄러워 편지를 구겨서 가방에 넣어 두고 선생님께는 숙제를 안해 왔다고 거짓말을 했어요. 그러나 나는 그날부터 매일 아빠께 편지를 썼어요.
어느 날이었어요. 운동장에서 체육을 마치고 교실로 들어가는데 집배원 아저씨가 오시지 않겠어요. 저는 반가워 뛰어가서 "아저씨!" 하고 불렀어요. 하지만 뒷말을 잇지 못하고 있자 아저씨는 왜 그러느냐고 물으셨어요.
"아저씨, 하늘나라에도 편지가 가는가예?"
"왜, 하늘나라에 누가 있는데?"
"우리 아빠가예."
"그럼 아저씨가 주소를 크게 써서 아빠에게 보내 드릴게. 내일 네 주소를 써서 편질 갖고 와. 하늘나라에도 편지가 가고말고. 일본에도 가고 미국에도 가는데."
"아저씨, 얼마나 걸리는데요?"
"하늘나라는 멀기 때문에 1주일은 기다려야 답장을 받을 수 있을 거야."
전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그 다음날부터 저는 그때까지 써놓은 편지를 매일 한 통씩 아저씨께 드렸어요. 우표는 붙이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기 때문에 엄마에게 돈 달라는 소리를 안해도 되었어요. 처음 편지를 보내 뒤였어요. 아저씨가 아빠가 보내신 답장을 가져오셨어요. 얼마나 반가웠는지 몰라요. 아빠는 만년필로 한 장 가득 써 보내셨어요. 그렇지만 이 기쁜 소식을 엄마에겐 알릴 수가 없었어요. 엄마는 언제나 아빠 이야기만 하면 우시거든요. 그때부터 전 아빠에게 매일 편지를 썼고 아빠는 편지마다 답장을 해주셨어요. 전 아빠에게 칭찬을 받고 싶어 공부도 열심히 했고 팍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어요. 그리고 아빠 오실 날만 기다리고 있었어요. 아마 두 달쯤 편지가 오고 갔을 때였을 거예요. 어느 날 편지를 갖고 오신 분은 전에 그 아저씨가 아니고 다른 아저씨였어요. 그때부터 아빠는 편지를 보내지 않으셨어요. 저는 어느 날 다른 애들이 돌아간 뒤 선생님께 살짝 여쭈어 보았어요.
"선생님, 요새 오시는 집배원 아저씬 꼭 제 편지만 빠뜨리고 오시나 봐요."
"왜 누구 답장을 기다리는데 그러니?"
"예, 우리 아빠예."
"아빠가 어디 계신데?"
"하늘나라예..."
"그래?"
한참 나를 바라보고 계시던 선생님께서는 내 손을 잡으며 말씀하셨어요.
"미경아, 하늘나라에는 편지가 갈 수 없단다. 이젠 미경이는 3학년이 되었으니 알 수 있겠지. 먼저 아저씬 정말 훌륭하신 분이었구나. 미경이가 아빠 안 계신다고 서러워할까 봐 미경이에게 용기를 주려고 아저씨가 미경이 아빠 대신 답장을 해주셨던 게로구나."
나는 그만 울음이 터졌습니다. 그 아저씨를 아빠라고 부르고 싶었습니다. 나는 그때서야 선생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난 그 아저씨를 생각한답니다. 우리 아빠가 되어 주셨던 집배원 아저씨. 나의 가장 좋은 친구 집배원 아저씨. 나는 아저씨가 우리 아빠였음 좋겠어요. 하늘나라에 계시는 아빠만큼 좋은걸요. 아저씨, 언젠가 제가 자라서 훌륭한 사람이 되면 아저씨 은혜 잊지 않겠어요. (경남 휴천초등학교 5학년)
탱자 향기 - 김지은
대학을 졸업하고 나는 기차역도 없는 시골한 중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다. 20년 넘게 도시에서만 자란 내게는 고요한 시골 생활이 몹시 견디기 어려웠다. 나는 휴일만 되면 서울로 올라갈 궁리를 하면서 지냈다. 그해 가을이었다. 하루는 종례를 마치고 교무실로 오는데, 평소 말이 없던 내 반의 미순이가 수줍어 하며 반 아이들이 한 개씩 가져온 것이라면서 큰 봉지 하나를 내밀었다. 무얼까 궁금해 하며 묵직한 봉지를 받아 들고 교무실 내 책상에 와서 뜯어 보니 노랗게 익은 탱자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마치 교실에 가득이 들어찬 일흔 명의 아이들처럼. 나는 그걸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 예쁜 바구니 하나를 구해서 칠십 개의 탱자들을 쏟아 넣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자 마치 탱자들이 살아 있는 것처럼 다투어 진한 향기를 뿜어대기 시작했다. 온 방안이 탱자 향기로 진동했다. 내 몸은 온몸에 꽃가루를 묻힌 한 마리 꿀벌처럼 향기에 감싸였다. 그것은 행복감 그 자체였다. 그날 밤 나는 이 향기 드높은 행복에 겨워 하다 탱자가 무언지도 모를 서울 친구를 생각해 내고 반쯤 골라서 서울로 보냈다. 여러 겹으로 포장해 탱자 향기가 중간에서 새나가지 못하도록 해가지고.
(가을이 깊어진 것을 아니? 시골 아이들이 모은 탱자 향기를 네게 가을 선물로 보낸다.) 이런 내용의 쪽지와 함께.
(주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