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이야기 2 - 정채봉, 류시화 엮음
1. 평범한 행복 2
싸움의 가치 - 정명숙
대학 시절에 아르바이트로 기자 생활을 한 것이 인연이었다. 작가 한 분에게 원고를 청탁하러 찾아 다니면서 몇 번이나 허창을 쳤다. 더구나 교통 수단이라곤 걷는 것밖에 없던 부산 피난 시절이었다. 울상이 되어 거의 단념하려 할 때 탈고를 했노라며 전달식을 하자는 연락이 왔다. 고급 레스토랑에 불려가 양식을 먹으면서 작가가 묻는 대로 띄엄띄엄 신세 타령을 했다. 1,4후퇴 때 월남한 탓에 영어 실력이 모자라 고민이라는 고백도 했다. 그러자 그 작가가 말했다.
"그래? 내 집에 매일 오라구. 개인 지도를 해줄 테니."
나는 구세주를 만난 듯이 고마워서 시키는 대로 했다. 작가는 독신으로 어린 두 아들을 데리고 자취 생활을 하고 있었다. 나는 한 자라도 더 배울 욕심에 매일 저녁 찾아가서는 빨래와 청소, 취사까지도 거들어 준 뒤 영어 몇 줄을 배우곤 했다. 그리고 우리는 결혼했다. 전쟁이 끝나고 서울로 돌아온 뒤 '학생 엄마'는 전처 소생의 아들 둘을 기르느라고 여간 힘들지 않았다. 이가 들끓는 개구쟁이의 옷은 아무리 빨아도 소용없어 태워 버려야 했고, 시장에 나가 구호 물자 중에서 얼추 맞을 만한 옷을 골라다 서투른 솜씨로 개조해서는 학교에 입혀 보냈다. 하지만 고학년이 되자 이유 없는 반항을 하는 데는 무척 서운했다. 계모에 대한 반항이었다.
당시 아이들 사이에는 시간제로 자전거를 빌려 타는 놀이가 성행하고 있었다. 한 번은 저녁때가 지났는데도 자전가를 타고 나간 큰아이가 돌아오지 않았다. 찾아 나섰더니 친구 아이들 말이 자전가를 타다가 부닺혀 어떤 어른의 코트를 찢은 탓에 잡혀 갔다는 것이었다. 상대를 거칠고 무식하기로 동네에서 소문난 사내였다. 사과도 할 겸 변상을 하려고 찾아갔더니 아니가 마루에 꿇어앉은 채 훌쩍훌쩍 울고 있었다. 애쓰고 찾아 다닌 일도 분한 데다가 내 신세 내 설움이 복받쳐 나는 죽기 살기로 싸움을 벌였다. 정말이지 이 싸움에서 죽어도 좋다는 만만한 투지로 악을 쓰며 덤비고 욕설을 퍼부었다.
"그 코트가 대체 몇 푼짜리이길래 무슨 권한으로 남의 집 귀한 애를 잡아다가 폭행을 가하는 거야?"
울면서 불꽃처럼 대드는 '학생 엄마' 앞에 '적'은 마침내 굴복하고 말았다. 그뿐이었다. 아들과 나 사이에는 아무런 대화도 없었다. 나는 그 애를 야단치지도 않았고, 아이 역시 비슷한 건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심전심이었을까, 그 뒤부터는 반항이 사라졌다. 아들이 대학을 마치고 군복무를 끝내고 취직이 되기까지 우리 사이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비밀스런 의논까지 아버지를 제쳐놓고 나에게 의논하는 아들이 되었다. 이제서른 살이 넘은 아들은 아버지보다 10센티미터나 더 큰 늠름한 모습으로, 대기업의 한 부서의 채깅ㅁ을 맡고 있다. 분가를 했지만 가끔 찾아오면 내 앞에서 응석을 부린다. 아버지와는 별로 대화가 없지만 내게는 시시콜콜한 생활 보고로 밤 가는 줄을 모른다. 이 대견스런 보람은, 내가 난생처음으로 단 한 번 벌였던 혈투의 결과일 것이다. 아니, 싸움을 통한 마음과 마음의 접근인 것이다. (명지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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