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이야기 1 - 정채봉, 류시화 엮음
2. 평범한 행복
잊을 수 없는 중국인 가정 - 이경희
그 가족과의 사진을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 실패한 몇 개의 필름 속에 들어 있는 모양이다. 미국 여행중 방문한 가장 인상적이었던 하와이의 한 가정.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도 잊혀지지 않는다. 파티에서 정말 우연히 만나 인사를 나눴는데, 그 집 부부는 나를 자기 집에 초대했다. 사실 낯선 여행에서의 초대란 그다지 반가운 일은 아니지만, 그들이 중국인이라는 데서 이상하게도 같은 민족을 만난 것 같은 친근함이 들어 초대에 응했다.
"저 분은 언제나 말이 적습니다. 그러나 속은 무척 다정하답니다."
저녁 식사가 끝나자 별말 없이 자기 방으로 가버린 남편을 보면서 상냥한 부인이 내게 말했다. 방으로 들어가는 그 남편의 뒷모습만으론 결코 부인의 설명대로 다정하게 느끼기는 어려웠으나, 말 없는 남자의 본심은 어떤 것일까 하는 호기심이 들었다. 공과 계통의 연구소에서 일한다는 그 남자는 재미 중국인 2세였다. 부인은 대만에서 이곳으로 공부하러 왔다가 그와 결혼해 그대로 눌러앉게 된 미모의 어학도였다. 아직 아이가 없는 이 부부는 모두 직장에 나가고 있었다. 부인의 유일한 즐거움은 남편이 운전해 바래다 주는 직장과 집 사이의 드라이브 코스, 그리고 먼 곳에서 찾아오는 손님의 대접 같은 것이었다. 애들이 없어서인지 무척 쓸쓸하게 느껴지는 이 가정에서 한 동양 여인의 생활상을 나름대로 평가하며 앉아 있었다. 차를 마시면서 부인은 서랍에서 아주 귀중한 보물이라도 만지듯 예쁜 봉투 하나를 꺼내 보여 주었다. 봉투 안에는 비행기 표가 들어 있었다.
"이거 비행기 표예요."
물론 나는 알고 있었다.
"타이베이로 가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저이가 어머니날 선물로 제 어머니를 위해 저에게 사준 거랍니다."
그녀는 감격으로 거의 울상이 되면서 그 표의 사연을 내게 얘기하는 것이었다.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자기가 항상 타이베이에 계신 어머니를 생각한다고 남편이 그곳의 왕복표를 이렇게 마련해 주었다는 것이다.
"우리 월급으로는 굉장한 금액입니다. 저이는 자신이 즐기는 일체의 것을 끊고 절약해 이것을 마련해 주었어요. 그리고는 제가 어머니를 초청하는 것처럼 하라고, 딸이 초청하는 게 어머니날의 선물로 더욱 뜻있지 않겠냐고 말했어요."
나말고도 벌써 몇 사람에게 했을 그 자랑스러움. 그녀는 끝내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별로 말이 없는 남편과 부인과의 관계... 그러나 그들의 조용한 대화며 정중한 태도는 내게 아무 설명 없이 그 가정의 따스한 분위기와 향기를 말해 주었다.
(서울전문직업여성클럽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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